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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찬양하라 (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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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찬양하라 (엡 1:3~6) 


미국 뉴저지주의 프린스턴 신학대학(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 신약학 교수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본인이 음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별명을 '찬송 음치'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가 어찌된 일인지 채플시간에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놀란 학생들은 음정도 틀리고 박자도 희한하게 들렸지만 목소리만은 힘차게 나오기에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강의 시간에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찬송을 다 부르시고." 그랬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백을 합니다. 전날 밤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천국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대학 교수라고 소개를 했더니, 베드로가 장부 같은 것을 뒤지며 말하더랍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군요.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자를 원합니다.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천국 문이 탕하고 닫혀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찬송의 능력, 찬송의 기쁨, 찬송의 기적, 찬송의 제사를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찬양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에베소서 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3-14절까지 찬양부분과 후반부의 기도부분입니다. 3절은 에베소서가 시작되는 서사시로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격적인 찬양입니다.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신령한 복은 육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 사슬에 매인 상태에서도 찬송하리로다 고 외칩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서 찬송할 이유가 있다고 증거합니다. 

6절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2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4절입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 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령한 복을 베푸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반복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값없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 감동도 감격도 감사도 없이 형식적으로 입만 벌려 찬송하는 것은 아닙니까?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이미 주신 복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슬픈 일을 당해도, 어떤 괴로움을 당해도, 신령한 복을 얻은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택하심으로 

한국 목사가 미국에 거주할 때 한국 아이들을 입양해 기르는 미국인 부모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자녀가 둘이나 있음에도 한국 아이 셋을 입양해 기르는 미국인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입양한 아이들 셋은 모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뇌성마비, 다리를 절고, 비정상적인 아이들입니다. 미국인 목사에게 한국 목사가 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입양할 때 잘 생기고, 건강한 아이들을 입양하는데 당신은 왜 이런 아이들을 입양하게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그 미국인 목사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었던 나, 흠이 많고 모자란 나를 선택하셔서 입양하여 당신의 자녀를 삼아 주셨습니다. 내가 이러한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나의 작은 소망입니다." 그 목사의 입양계획서에는 '장애아동을 입양하기 원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던 모자라고, 결점투성이고, 흠이 많던 나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음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너는 내 것이라 선택하여 주신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르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만 찬양할 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선택하여 주셨고, 예정하신 분명한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생을 되돌아보며 우리를 택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선택의 사실 못지 않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해 주신 목적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신 은혜는 바다를 먹물로 삼아 기록한다해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백성의 삶은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다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들은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오로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둘째로 사하심으로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일본이 낳은 종교가입니다. 고배(神戶)에서 첩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는 늘 첩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눈치를 보며 자라야만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늘 부모를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담 모퉁이에 기대서서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 북 치고 나팔 불며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전도하며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순간 가가와 도요히코는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시나요?" "아무렴,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의 글 가운데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의식과 감격이 가가와 도요히코를 확실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속량' 이란 말은 헬라어로 '텐 아폴뤼트로신' 인데 '값을 치루고 다시 사서 자유케 한다' 는 뜻입니다. 이 말은 본래 노예 시장에서 쓰여진 단어입니다. 당시 로마 귀족들은 노예를 시장에 팝니다. 노예들은 쇠사슬에 묶여 서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다 노예를 보고 흥정합니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샀습니다. 노예의 주인은 돈을 내고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신의 노예로 삼기 위해 값을 치룬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놓아주려고 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벌을 아들에게 지우고 아들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만 사해주신 것만 아니라,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의 문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흘린 피 값으로 마귀의 노예가 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입니다. 


셋째로 인치심으로 

신문배달을 하던 영국의 소년이 범선을 본떠 만들어진 모형배를 보게됩니다. 가격을 물었는데 자신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재료를 구입하여 한 달 가까이 만들었습니다. 배를 강물에 띄웠는데 너무도 멋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그 순간 격류에 휘말린 배가 쏜살같이 떠내려갑니다. 배는 잡을 수 없었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소년은 배가 눈앞에 아른거려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3주 후에 소년은 고물상에서 자신이 만든 배를 발견합니다. 주인에게 자신의 것이라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을 가져오라며 막무가냅니다. 소년은 배를 사려고 석 달 동안 신문배달을 하고 그 돈으로 샀습니다. 소년은 배를 얼굴에 비비며 말합니다. "사랑하는 배야! 너는 이중으로 내 것이다. 너를 만들었기에 내 것이고, 너를 다시 샀기에 내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드셨는데 사단의 손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다시 사시려 예수의 피로 그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여기의 '인치심' 은 원어로 '스프라기스' 로 '도장 찍음'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문서의 진실성을 보증하거나 소유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본문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표시합니다. 당시 유대인은 할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표시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호를 몸에 표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심령에 하나님의 소유된 표시를 가지게 됩니다. 서류에 도장을 찍어 그 사실이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확인의 증거를 만드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보증하기 위해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에 찬양할 수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힐츠(Hiltz)산맥에는 카나리아(canary)를 사육하는 조류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카나리아의 소리를 들은 방문객들은 놀라운 탄성을 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원의 주인은 새를 팔 때 노래를 주도하는 솔리스트(Solist) 카나리아는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나리아 새들의 합창단 속에는 노래를 주도하는 몇 마리의 솔리스트가 있는데, 이 새들이 다른 새들을 자극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삶이 힘드십니까? 암울합니까? 고통스럽습니까? 솔리스트 카나리아처럼 먼저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나를 택해주신 하나님,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 성령으로 인치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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