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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도전하라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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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도전하라 (수 14:6~15)
 
 
1. 도전

지난 2007년, 영국의 한 남성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잠 안 자고 깨어 있기’ 부분 기록에 도전했으나 ‘황당한’ 결말에 이르렀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보도했습니다. 

토니 라이트(43)라는 이 남성은 껑충껑충 뛰거나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등의 온갖 노력을 해가면서 잠을 이긴 끝에 266시간, 약 11일 동안을 잠을 안 자고 깨어 있었고, 세계적인 기록 달성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기네스 측이 이 ‘잠 안 자고 깨어 있기’ 부분이 건강에 아주 위험하다고 여겨 이 부분을 이미 폐지한 후였는데, 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설사 ‘잠 안자고 깨어 있기’가 존속했더라도 라이트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1964년 한 미국인이 세운 264 시간이 최고인 줄 알았으나, 실제 최고 기록은 한 핀란드 인이 세운 277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록 달성은 허무하게 끝이 났더라도 그에게 이 도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뭔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비록 기록을 갈아치우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어서, 그 이후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도전은 이후 그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들 힘든 때에 날씨마저도 추우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껏 움츠러들어 보입니다. 왠지 작아 보이고, 기가 죽어 보이고, 주눅이 들어 보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도전(挑戰)이란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또는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갱신 따위에 맞섬’을 뜻하는 말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움츠러들지 말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그 상황을 이기고, 또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오늘 주님은 “도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가장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떤 도전을 했을까요?


2. 믿음으로 도전했더니 …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지경 안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벌이던 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아직 땅을 정복한 것은 아니고, 다만 지도상으로 각 지파의 구획이 정해져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각 지파는 자신들에게 분배된 땅, 즉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직접 나서서 정복해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각 지파가 나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을 정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에 아주 오래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연합한 것도 아니고 개 지파가 그들과 전투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버겁고 어려운 일이었기에 다들 망설이고 있었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땅을 얻고 싶은 욕심을 다들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각 지파에게 주어진 기업 안에서도 집안 별로 소위 ‘노른자위 땅’을 얻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일 때, 누가 보아도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갈렙, 그 동안 쌓은 공로를 보아서라도 가장 좋은 땅을 선물 받아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사람인 그가 나서서 가장 험한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지금 내게 주소서(12).” 이러한 갈렙의 요구는 갈렙 자신에게나 당시 상황에서는 너무나 도전적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불가능을 향한 도전 

오늘 본문에서 갈렙이 달라고 하는 땅은 사실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누구도 갖기를 거부할 땅입니다. 

그 이유는 ❶ 첫째로 “산지”이기 때문입니다. “헤브론 산지”는 지형이 험하고 요새가 많아 가나안 정복사에서 가장 전쟁하기 어려운 곳으로 분류된 곳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땅, 그래서 모두가 꺼리는 땅이었지요. 사실 갈렙은 흐르는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평야 지대를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잘 발달된 도시를 요구할 자격도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요구를 해도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가 광야 시절부터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운 공이 많았고, 또 모든 이스라엘이 존경하는 원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산지 땅을 요구했습니다. 힘들여 개척해야하고, 밭에 흙보다 더 많은 돌을 골라내야 하고, 땀을 비오듯 흘려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뭐한다고 85세 된 노인이 이런 수고를 자처하고 나섰을까요? 

❷ 그리고 갈렙이 원한 그 산지에는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3장 33절을 보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 중 열 명의 보고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낙 자손들이 많이 사는데 우리가 그들과 마주서 보니 … 그들 앞에 메뚜기와 같더이다.” 아낙 사람은 장대한 거인 족속이었고 싸움을 잘하는 호전적인 민족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갈렙이 달라는 지역인 ‘기럇아르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인인 아낙 자손들 가운데서도 가장 덩치가 큰 사람들이었습니다(15). 아주 호전적인 산지 족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덩치가 가장 큰 사람들과 맞붙어 싸워서 그 땅을 얻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입니다. 

❸ 또한 그 땅은 크고 견고한 땅이었습니다. ‘크고 견고하다’는 말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헤브론은 단순한 산동네이거나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헤브론의 또 다른 이름은 ‘키럇아르바’인데, 그 뜻이 ‘네 개의 도시’입니다. 따라서 헤브론은 아주 크고 견고한 네 개의 요새로 된 도시 국가들이었습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지요. 이렇게 네 개의 성채로 구성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헤브론을 향하여 85세의 노인이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갈렙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갈렙은 자신이 정복하겠다고 하는 땅의 형편을 전혀 모르는, 치매기가 있는 노인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곳이 크고 견고한 성읍으로 이뤄진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가장 어렵고 거저 줘도 안 가질 바로 그 땅을 향하여 갈렙은 생애 마지막 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며, 쓸데없는 객기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럴 필요도 없는 원로가 왜 이런 고생과 수고를 자처하고 나선단 말입니까? 그러나 갈렙이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갈렙이 산지에 도전한 이유

❶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향하여 도전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갈렙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12절 후반절에 보면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갈렙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비록 그곳이 험한 산지일지라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상대가 문제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도전할 상대가 어떻고, 지금 자신의 형편이 어떻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아무리 자신이 85세 노인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갈렙처럼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대나 환경이나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한 것만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빛의 5%만을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95%의 빛은 우리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습니다. 만일 보이는 것만 인정하겠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존재하는 것의 95%를 부정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사람의 귀는 진동수 16에서 2만 ㎐ 사이의 소리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동물들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만일 들을 수 있는 소리만을 인정하겠다고 한다면, 4만 ㎐까지도 들을 수 있는 개보다도 못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렇듯 보고 듣는 것, 또는 경험하는 것만 믿겠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고, 들리지 않아도 존재한다고 믿으며, 경험하지 못했으면서도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이 생각보다는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도 우리처럼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와 세상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성도와 세상 사람들의 차이는 그들이 믿는 것 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 더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85세의 노인 갈렙이 나서는 것을 보십시오. 그가 이렇게 겁 없이 나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이 이런 신앙으로 도전을 하니까, 오늘 본문 13절부터 15절에 있는 대로 그의 도전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갈렙의 도전이 그대로 이루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험한 산지도 기름진 옥토가 되고, 거인족 아낙자손도 메뚜기처럼 쫓아낼 수 있다는 갈렙의 믿음과 용기를 여러분들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아낙 자손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험한 산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도전을 이루어 주십니다. 

❷ 두 번째로 갈렙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 갈렙은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땅을 주시기 위하여 여호와는 45년 동안 자기를 생존하게 하셨다’고 했고, 12절에 보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을 때, 이 산지를 꾸미는 형용사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갈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85년이나 산 분들은 젊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경험들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일제시대, 6‧25 한국전쟁, 4‧19 의거 등 …, 그런 경험이 그들만의 주관과 가치를 형성케 했을 것입니다. 확실하고도 강한 주관, 경험, 인생철학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나 갈렙은 그런 것보다는 오직 주님의 말씀 하나 붙잡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갈렙에게 특별한 자신감을 주었기에 오늘의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게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을 성경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밤낮으로 그것을 읽고 외우고 읊조려라. 그리고 거기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실천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이 평탄할 것이고 삶의 통찰력을 얻을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비록 많이 공부하지 못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오직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그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께서 삶의 지혜를 주실 것이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도록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갈렙이 바로 이것을 자신의 입으로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함께 동역했던 필립 멜랑히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루터보다 열다섯 살 아래였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얼마나 친했든지, 두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유언에 따라서 마치 부부간처럼 비텐베르크 교회의 한 무덤 안에 묻힐 정도였습니다. 루터가 행동주의자였다면 멜랑히톤은 이론적인 학자였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종종 좌절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친구였던 멜랑히톤은 늘 “자네가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야 하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쓸 때마다, 말할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멜랑히톤은 루터에게 성경 한 구절을 통해 그를 격려하였고 루터도 그 성경 구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결국 루터는 친구를 통하여 끊임없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붙잡았고, 그 결과 종교개혁에 성공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서 그 험한 산지도 정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지테크연구소>라는 곳에서 “말씀으로 이끄는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이라는 글을 지었더라구요. 

말씀은 …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이다. 말씀을 담은 성경은 내 재산목록 1호다. 말씀이라는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은 내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선하고 옳은 길로 안내할 때는 파란색 사인을 보내 준다. 자칫 악하고 그른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는 빨간색 사인을 반복해서 보내 준다.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은 나를 말씀의 은혜로 인도해 준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어디서 출발해야 하고 언제까지 도착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운전을 즐겨서가 아니라 자동차 안에서 말씀을 온전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하는 시간은 내 영혼을 살찌우는 소중하고 은혜로운 말씀과 찬송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나만의 공간인 차 안에서 듣는 말씀이야말로 내 영적 건강을 체크해 보는 데 그만이다. 말씀이 행위로 나타나지 않을 때 말씀의 능력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 
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는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이 ‘너는 지금 말씀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 준다. …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은 여러 통로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길로 이끌어 주었고 말씀을 점점 더 사모하게 해줬다. 말씀은 나를 믿음과 진리와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렙의 자신감과 그것에서 나온 도전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좇은 데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길로만 사는 사람은 갈렙처럼 도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온전히 말씀을 따라, 그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산지를 정복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3. 도전하면 이루리라 !

최근 미국 유튜브 사이트에서 9일 만에 천만 명이라는 사상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한 ‘폴 포츠’ 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한 TV 방송사에는 <브리튼스 갓 탈렌트>라는 신인 발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예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펑퍼짐한 외모에, 치아도 삐뚤어진 초라한 차림의 한 남성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 남성은 더 주눅이 들었습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아만다 홀렌’이 관심 없다는 듯 물었습니다. 
“무얼하시겠습니까?” 
“오페라를 부르겠습니다.” 

잠시 후 CD 반주에 맞춰 이 남성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었습니다. 방청객들은 모두가 일어나 그를 향해 휘파람을 날리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그의 아리아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 역시 처음엔 시큰둥한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세를 바로하곤 감동어린 표정으로 그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는 황실을 배경으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유명한 아리아였습니다. 이 곡은 음역도 높고 부르기 힘든 곡이라 내노라 하는 테너 성악가들도 잘 부르지 않는 곡입니다. 그런데 초라한 행색의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아리아는 너무나도 기가 막혔습니다. 

이 화제의 주인공은 서른여섯 살 된 휴대전화기 외판원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평생 직업으로 오페라 가수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가정이 너무 가난해서 정상적인 성악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이태리로 건너가 두 번 단기 과정 오페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으며,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러 악재로 인하여 그는 번번이 오페라 가수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핸드폰 전화기 외판원을 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남들이 모두 무모하다고 하는 도전을 하여 결국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 …. 이것은 성도의 삶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앞에 있는 정복하기 어려운 산지를 향해 도전하십시오. 여러분 보다 덩치나 조건이나 모든 것이 더 나아보이는 적들을 향하여 도전하십시오. 신앙은 도전입니다. 상대방 때문에, 환경 때문에,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도전하십시오. 그러면 바라는 것을 얻고, 원하는 것을 이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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