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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 (행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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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 (행 2:42)


미켈란젤로는 정말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그가 다윗상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자신이 만든 다윗 상을 보고는 “왜 너는 못 걸어? 왜 걷지 않아?”라고 한 적이 있답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 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입을 보니 금방 말을 할 것 같고 그 발을 보니 금방 걸을 것 같아 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작품은 아무리 뛰어난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품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에 비하면 장난감보다 못합니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 들어가면 마치 실외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호텔의 천장에 하늘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진짜 하늘같아서 실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천장에 달이 떠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가짜였습니다. 뛰어난 기술진이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었지만 저 하늘에 있는 달에 비하면 장난감보다 못합니다.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아무리 정성들여 만들어도 사람이 만든 것은 하나님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풀 한 포기 만들 수 없습니다. 풀처럼 보이게는 만들어도 풀은 못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믿는 사람에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믿는 사람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주어져서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 창조적인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작품이 더 훌륭한 것이고 그 작품의 가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인정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믿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모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목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베푸시는 변화의 능력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의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그 부흥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사도들이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교인들을 변화시키셨는데 그 때 사용하신 도구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그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 가르침대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시 1:1,2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므로 복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다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시 1편의 비전을 봅니다. 영적인 시냇가인 교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생명수인 말씀을 풍성하게 공급 받으셔서 시냇가의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전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말씀이 주는 복이 크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해야 합니다. 따라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겠다” 빗길에 미끄러지던 트럭이 한 주택을 들이받았습니다. 구조대와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건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목격됐습니다. 야단법석인 와중에도 방에서 한 여성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 여성이 벌떡 깨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청각은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하는 일반적인 기능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듣고 싶은 소리만을 선별해서 듣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듣기로 결심했다면 아무리 세미한 음성일지라도 듣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제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큰 소리일지라도 결코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굳게 건 빗장 때문입니다. 이 두 번째 기능 때문에 부모의 잔소리를 듣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야기가 마음에 전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아무리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뼈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뼈가 튼튼해지고, 간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간이 좋아집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이 내 속에 들어가면 나를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아름다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의 전도특공대원들이 불교의 한 보살을 데리고 와서 등록을 시키고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전도는 강제로라도 해야 됩니다. 천사들이 롯과 그 부인과 두 딸을 끌어냈듯이, 끌고서라도 교회에 데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목사님께서 그 보살의 집에 심방을 가셨습니다. 그분이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며 “어이구, 주지 목사님께서 친히 오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잘 믿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나니 그분이 상 위에 봉투 하나를 얹었습니다. 봉투에 ‘시주감사헌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집을 나오실 때 그분이 “주지 목사님을 뵈오니 살아있는 부처님을 뵈옵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분이 예수님을 믿고 변하여 지금은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변하여 새사람이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능력은 사람마다 달리 경험하게 됩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건물 속에 있는 사람의 옷은 절대 빗물에 적셔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비를 맞는 사람의 옷은 흠뻑 젖게 되어 있습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집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고 있는 사람의 피부는 햇빛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의 피부는 벌겋게 익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귀한 말씀이 선포된다고 하더라도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이 변화되려면 자기편에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말씀으로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1. 믿음으로 결부된 말씀

죤 훌리(John Fully)박사가 노벨상 수상자 400명들을 15년간 연구하여 낸 책이 <유대인과 기독교인>(Jews and Christian)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벨상수상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64%, 유대교인이 22%, 천주교인이 11%, 불교인이 0.9%, 회교인이 0.1%였습니다. 그 결과를 보니 성경을 읽는 이들이 97%였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유대교, 천주교는 다 성경을 읽기에 셋을 합한 수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이들의 나라는 모두 23개국이었습니다. 1등부터 7등까지 보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화란, 영국, 미국, 독일 순입니다.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국가들입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듣고 읽은 말씀을 믿음으로 결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그 음식에 어떤 영양분이 있는지 모르고 먹어도 먹기만 하면 그 음식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몸이 섭취하게 됩니다. 또 누군가가 그 음식이 어떤 면에서 몸에 좋다고 가르쳐주는데 그 가르침을 믿지 않고 먹어도 그 면에서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의심하면서 듣는 것과 믿음으로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행 2장에서 오순절에 임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 날 변화된 3천명의 사람들이 교회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 본문입니다. 행 7장에서는 사람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들 역시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귀를 막고 스데반을 돌로 쳤습니다.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히 4:2에 보면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말씀이 유익이 되지만 말씀을 믿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유익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믿기 어렵습니다. 한 꼬마가 주일학교에서 돌아 왔습니다. 엄마가 오늘 무얼 배웠는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모세가 적들을 어떻게 이겼는지 배웠어요. 홍해에 도착하자, 모세는 다리를 건설해서 사람들을 모두 건너게 했데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건너자 그는 무전기로 본부에 연락을 해서 폭격기 지원 요청을 했지요. 폭격기는 폭탄을 떨어뜨려서 다리를 부쉈고, 애굽 군인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데요”, “아가,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이야기 하시던?”, “사실은 아니예요. 하지만, 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대로 말하면 아마 엄마는 못 믿을 걸요?” 어린아이들마저도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갖되 큰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어느 집의 아빠가 퇴근해 집으로 가니 사랑하는 어린 딸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돈 한 번 실컷 써 보고 싶다. 실컷 써 보게 돈 좀 많이 줘.” 아빠가 지갑을 열어보니 십삼만 원이 들어 있습니다. ‘얘가 십만 원 이상 달라 하면 어떻게 하지...’ 아빠가 걱정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래, 얼마나 주면 실컷 써 보겠니?”, “삼천 원” 아빠가 웃으며 딸에게 삼천 원을 주었습니다. 아빠는 십만 원도 줄 수 있는데, 딸은 기껏 삼천 원을 요구했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는 그 어린 딸처럼 ‘삼천 원’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복을 주세요. 저의 집을 창대케 해 주세요. 성경에 번성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를 번성케 하세요”, “얼마나 번성케 해 줄까?”, “삼천 원”이라고 대답하면 되겠습니까? 

믿음이 작은 것을 성경에서는 마음이 완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 81:10-12을 보면 하나님께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으나 내 백성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하지 아니하고, 마음이 완악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능력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믿고 따라가면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기도가 있는 말씀

말씀을 머리로만 알면 변화가 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듣고 머리만 키운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말씀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열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고등학생 나이일 때 왕이 되었으니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왕이 된 후 실수하지 않았고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론에 따라 흔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지 않았지만 그가 판단한 대로 하면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져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가 64년간 나라를 통치할 때 영국이 황금시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릴 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쉽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64년간 그렇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형통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합니다. 어떤 사람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여왕 폐하, 폐하께서는 하루에 기도를 몇 번 하십니까?”, “한 번 합니다”, “신앙 깊은 폐하께서 하루에 한 번밖에 기도를 안 하시다니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계속 기도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가 공급되었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을 태운 특급 열차가 어둠 속을 질주해 갑니다. 큰 다리로 진입하기 직전 갑자기 한 크고 검은 사람이 나타나서 기차를 가로 막습니다. 놀라 기차를 세우고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예감이 이상해서 주위를 돌아보니 기차 앞쪽의 레일이 끊겨 있습니다. 홍수로 인해 다리가 끊겼던 것입니다. 만일 기차가 그냥 달렸으면 빅토리아 여왕과 그 기차에 탄 모든 사람이 강물에 떨어져 죽었을 텐데, 그 이상한 그림자 때문에 살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기차 라이트에 나방 한 마리가 죽어서 붙어 있습니다. 나방이 날개를 퍼덕인 것이 마치 사람이 기차를 세우기 위해 팔을 벌린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 보고를 받은 빅토리아 여왕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나방이다. 하나님께서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을 살려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다윗처럼, 히스기야처럼, 빅토리아 여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음식의 재료가 최상품의 유기농재료라고 하더라도 불이 없다면 음식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 생쌀을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을 지펴서 익혀야 밥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기도로 불을 지펴야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거룩해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되는 것입니다.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참된 행복은 사람 안에도 없고 사람 밖에도 없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데 그 하나님은 우리 안에도 계시고 밖에도 계신다.” 

톨스토이도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여론 조사를 했더니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다.’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 행복하고 사람을 체험하면 나중에 후회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체험하면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에 교회적으로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저는 교회명의변경에 대한 응답을 감사하고 감격이 되어서 자꾸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안 됐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기도하게 하시더니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잘 못 느끼셨겠지만 앞에서 일한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물질로 헌신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 기도로 하늘보좌를 움직이는데 헌신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인생을 너무 조급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시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저와 여러분에 인생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고 누가 봐도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예수님이 중심이 된 말씀

행 2장에서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내용은 먼저 120문도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약속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예언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라고 선포합니다. 

행 3장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치료할 때도 금이나 은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앉은뱅이를 치료한 자신들을 높이려 하자 그 일이 자신들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되었다고 외칩니다. 

행 4장에 보면 관리들과 장로들이 사도들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라고 묻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 4:12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예수 중심의 신앙으로 만들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 막내아들을 통해서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100원의 가치를 알기 시작한 아들에게 500원을 주니까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500원의 가치를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 아이가 500원의 가치를 알았다면 100원을 던져버리고 500원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예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행 4:18절에 보면 유대교의 장로들이 사도들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돈 때문, 권력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일 학생, 영국 학생, 프랑스 학생, 일본 학생, 한국 학생이 고공 점프를 하기로 했답니다. 높은 곳에서 가물가물한 밑을 내려다보니 무서워 덜덜 떨며 아무도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관이 독일 학생에게 "명령이다. 뛰어내려!”라고 하니 뛰어내렸습니다. 영국 학생은 교관이 “너는 신사가 아니냐? 뛰어내려!”라고 하니 뛰어내렸습니다. 프랑스 학생은 교관이 “야, 저 아래를 봐라. 얼마나 아름답냐?”라고 하니 뛰어내렸습니다. 일본 학생은 교관이 “야, 천황을 위해 뛰어내려!”라고 하니 뛰어내렸습니다. 한국 학생은 교관이 “내신 성적에 반영된다.”라고 하니 뛰어내렸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의 가치기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상관없이 한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움직이는 예수 중심의 사람들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신앙생활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들은 텐트를 치고 어떤 장소에 머물든지, 텐트를 걷고 이동을 하든지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사방에 3지파씩 텐트를 쳤고, 이동을 할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6지파씩 움직였습니다. 그들의 머무는 것과 이동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사람, 돈, 감정을 따라서 행동하고 일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내 속에 계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교회생활도, 대인관계도, 개인적인 모든 판단과 결정도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병약한 사람이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늘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고 힘들게 살아가는데 하루는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희 집 앞에 있는 큰 바위를 날마다 밀어라.” 그의 집 앞에 있는 큰 바위를 볼 때마다 늘 답답해했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그것을 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저 바위를 옮겨 주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한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그 바위를 밀었습니다. 큰 바위라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지만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날마다 힘차게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차게 밀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털썩 주저앉아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게 바위를 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밀어도 바위가 꼼짝도 않습니다. 헛수고만 했습니다.” 
“아들아, 내가 언제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했느냐? 밀라고 했지. 자, 이제 거울 앞에서 네 모습을 보아라.” 
그래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더니 어느새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8개월간 바위와 씨름하다 보니 바위처럼 건강한 사람이 되어 기침도 하지 않고 잠도 잘 자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위를 밀다보니 이미 건강을 선물로 받았던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건강으로 인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영적 승리와 생활의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시고, 말씀을 믿으시고, 믿는 말씀 붙잡고 기도하시고, 말씀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영육간에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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