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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행복 (엡 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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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행복 (엡 2:7~10)


I. 목적을 아십니까?

전설적인 팝 가수 엘비스를 아십니까? 그는 약물중독으로 죽어가며 "난 만족이란 걸 배우고 싶다"라고 절규했더랍니다. 그의 부인 프리실라의 말을 빌리면 「엘비스는 자신이 이 땅에 사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산 사람입니다. 그는 이 땅에 사는 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설교하는 목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섬기는 사회 봉사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불쌍한 사람을 위한 어떤 기관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엎드려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연출가들이 계획해 주는대로 무대에 섰고, 무대에 서면 청중의 환호에 미처 노래했고, 공연이 끝나면 공허감을 이기지 못해 약물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42세에 약물중독으로 죽었습니다.

행여 우리도 엘비스처럼 급한 일에 쫓기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뭔가에 끌려 다니며 살지는 않습니까? 당신을 위해 디자인 해 놓으신 하나님의 멋진 그 목적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적도 방향도 없이 썩어 없어질 허무한 끈을 붙들기 위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국 속담에-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여행을 해라. 한달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일년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한평생 행복하고 싶거든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사역을 위해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시간과 이 세상 자원을 갉아먹다 끝나는 소비품으로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중요한 공헌을 하라고 지음 받았습니다. 인생의 과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떤 공헌을 하며 사느냐? 어떤 선한 열매를 남길 것이냐? 내 곁에 어떤 변화를 이루어 낼 것이냐? 의 문제입니다.

김삿갓이란 사람이 한 마을을 지나다가 초상집을 만나게 됩니다. 
배운 것이 없는 집안인터라 선비 김삿갓에게 비문을 써 달라고 부탁합니다. 
"벼슬은 무엇을 했습니까?" 
"벼슬이라니요?" 
"어떤 업적을 남겼습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거듭니다. 
"식욕 한번 끝내줬지요." 
붓을 들어서 비문에 「다죽다먹」이라고 씁니다.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하고 비싼 돈을 들여서 비문을 세웁니다. 
훗날 다죽다먹이 뭔가? 꼼꼼히 생각하다 거꾸로 읽어보니까 
먹다죽다. 인분 제조기. 똥만 만들다 죽었다는 얘기겠지요. 


II. 섬기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때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은 섬기고 싶은데 교회 사역은 싫다고 합니다. No. No. 그럴순 없습니다. 
그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섬기고 싶은데 다른 사람, 다른 지체를 섬기는 일은 싫다고 합니다. 
No. No. 그럴순 없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지체들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공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었습니다.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은 존재들입니다. 

미국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 오바마는 그의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우리 인간은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살아가고 미국은 세계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어두운 곳을 무척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엄마, 바깥은 지금 캄캄해서 너무 무서워요." 아이를 달래는 요량으로 
"얘야, 예수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신데 뭐가 무섭니?" 
"지금 밖에도 예수님이 계셔. 너를 지켜 주실 거야." 
"진짜 밖에 예수님이 계실까요?" 
"그럼 예수님은 어디든지 계신단다. 네가 두려울 때 언제나 네 곁에서 너와 함께 계신단다."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더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세요."

철없는 우리는 가끔 신앙생활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하기 싫다. 예수님이 다해 주시니 우리는 놀고 쉬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그런 당신의 주님이 아니라 하인이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사역은 구원받은 목적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사역이라고 할때 이 말은 목회자들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섬김과 사역」, 「종과 사역자」는 모두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때문에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소중한 사역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 받은 것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 날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좋을텐데 왜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셨을까요? 이 땅에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내 곁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내 곁에 우리가 섬겨야 할 많은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천국에 남게될 그 사역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예정은 구원과 관계가 있고 부름과 선택은 섬김 즉 사역과 관계가 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신 이유는 이웃을 섬기라고, 사역을 감당하라고 불러주셨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두 눈을 같이 사용하다가는 두 눈이 다 나빠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쪽 눈만 사용하다가 이쪽 눈이 나빠지면 다른 눈을 사용하자! 그래서 궁예처럼 가죽끈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다음 눈이 나빠졌습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서 가죽 붕대를 감아 놓았던 눈을 떠 보았더니 눈을 쓸 수 없게 되어 있더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동굴에 사는 물고기들은 눈이 모두 퇴화되어 있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속한 교회를 섬기지 않기 때문에 이 땅의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 전도의 사명을 가진 우리가 전도의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 구원의 문들이 닫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과 재능과 은사를 받고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기 때문에 이 땅의 교회들이 허약한 교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고전적인 얘기지만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사해와 갈릴리 바다의 비교입니다. 사해 바다는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지 내보내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 바다는 죽은 바다입니다. 생물들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는 많은 물들을 받아들이지만 계속해서 물을 내어 보냅니다. 때문에 거기에는 생명이 풍성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찾아와서 은혜를 받는 것 너무나도 귀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일은 받은 은혜를 이웃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로 하나님과 이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III. 쓰임받는 사역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실까요?
준비된 그릇대로 쓰십니다.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기 칫솔이 엄마 칫솔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칫솔 맞아?" "그럼 칫솔이지?" "나 진짜 칫솔 맞지?" "칫솔이고 말고." "그런데 나는 칫솔인데 왜 신발만 빨아?" 

잘 쓰임 받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기 영성과 태도를 잘 다듬지 않으면 칫솔이 신발 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고 교회 안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역자가 되길 원하면서도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쓰는 사역자가 되지 못하고 기쁨과 감사, 능력과 영향력을 잃게 되는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늘 급한 일을 먼저 하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사역이 있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섬김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선뜻 그 사역의 자리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음성과 기회를 거부하는 것입니까? 분주하다는 것입니다. 바빠서 섬길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시간표에 걸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망가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이 무엇인가? 올바른 우선순위입니다. 먼저 무엇을 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림길에 서 있을 땐 우선 순위는 더욱 분명해 집니다. 

기억하십시요. 
우리는 시간의 청지기들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주님이시요 우리는 그 시간을 얻어 사용하는 청지기요 종입니다. 종이란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은 "내가 원할 때에만,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에서만 섬기겠습니다."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종은 스케줄을 통제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습니다. 
"주님! 언제든지 명령만 하십시오." 이게 종의 자세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마음은 사역을 하더라도 잘못된 동기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역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 봉사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 봉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 봉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을 감당할테니까 예수님 이러 이러한 일들을 날 좀 도와주세요." 잘못된 동기들이지요. 잘못된 동기로 섬기는 사람은 영향력 있는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사역이 건강한 동기에서 하는 사역인가? 아니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내가 사역을 하고 있는가? 중요한 바로메타 하나가 있습니다. 내 가슴속에 감사와 감격이 살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에 부딪히면 금방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은 분명 동기가 잘못 되어서 그렇습니다. 사역을 하는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피를 흘려야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내 가슴속에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건강한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지금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IV. 서로 함께 Team이 되어 섬겨라

오늘은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다섯 번째 주일 "서로, 함께 섬기면 행복합니다" - 섬김 주일입니다. 왜 우리는 서로, 함께 섬겨야 할까요? 내 인생, 나의 신앙생활에서 왜 다른 사람이 필요할까요? 

① 첫째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우리 삶의 도구가 아니라 목적입니다. 우리는 서로 섬기며 사랑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② 둘째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함께 섬기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체입니다. 내 몸에서 짤려 나간 손가락이나 발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 몸이 아닙니다. 시체 덩어리일 뿐입니다. 지체는 서로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③ 우리는 왜 서로, 함께 섬겨야 합니까? 
셋째 함께 하면 더 잘 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모든 소그룹은 서로 돕고 함께 모일 때 비로소 가능하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500개가 넘는 우리 목장은 이런 하나님의 팀(Team) 사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행복한 가족, 행복한 목장, 행복한 소그룹 사역팀을 이루고 싶다면 Team이 되어 서로, 함께 섬기십시요. 영어의 Team은 T.E.A.M. 네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T = Trust 서로 신뢰하라.
E = Empathy 서로 공감하라.
A = Accommodation 서로 배려하라.
M = Mission 팀엔 분명한 목적 즉 사명이 있다. 

① 첫째, 팀을 팀되게 하는 접착제는 Trust - 신뢰입니다. 팀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믿을 수 있어야 되고 잘 감당해야 됩니다. 


·일괄된 행동기준이 없이 항상 오락가락하고 걸핏하면 넘어지고 함께 모이는 책임감마져 없으면 안됩니다. 
·팀이 서로 신뢰를 할 수 있으려면 팀에서 나눈 얘기들의 비밀이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서로 다른 감정과 사실들이 팀 밖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서는 안됩니다. 가정의 나쁜 얘기, 목장의 아픔, 교회의 약점이 밖으로 흘러나오면 그 사람은 외인이요 이방인입니다. 
·친밀할수록 팀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마음을 많이 나눌 때 우리는 더욱 친밀해 질 수가 있고 서로를 신뢰하게 됩니다. 

② 둘째 Team의 E는 Empathy - 공감입니다. 우리가 서로 섬기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하고 감정이 통하는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여러분 다른 사람을 보며 행복하고 즐거워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아플 때 함께 울어 보셨습니까? 그것이 가족이요 하나님 사역의 Team입니다. 

③ 셋째 A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 입니다만 Accommodation - 배려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할까요? 행복하게 섬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행복한 사역자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그 모습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사역자가 있습니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일을 하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같은 팀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함께 드러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잘 드러나시도록 높여 드려야 할 목표가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능력, 다른 과제를 주셨습니다. 

동물들을 보십시요. 말은 잘 달리는 재능이 있습니다. 소는 힘이 셉니다. 오리는 물에서 수영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나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습 그대로 그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독특한 모습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특정한 일을 하기에 좋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거기에 꼭 맞도록 하나님이 설계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기성복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조립되어 나오는 똑같은 기성품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맞춤형 명품이요 진품들입니다.

첫째, 영적인 은사들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그 은사를 개발하고 하나님이 쓸 수 있도록 은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서로 다른 마음, 다른 열정을 주셨습니다. 
우리 손금이 모두 다르고, 눈의 망막 모양이 다르고, 목소리가 서로 다른 것처럼 우리 모두 다 독특한 심장 박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억의 인구 가운데 같은 심방 박동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마음, 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열정,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칭찬하지 않아도, 감시하지 않아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보상이나 상급이 없고 어떤 박수나 갈채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열정을 따라 사역하면 밤을 세워도 재미가 있습니다. 남들에겐 어려운 일이 내겐 너무나 쉽습니다. 효율성이 있습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을 따라 우리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오리는 물에서 사역을 해야하고, 독수리는 공중에서, 토끼는 육지에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물질을 얻는 것도 "내가 너희에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신8:1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업을 하면 돈의 흐름이 보입니다. 사업이 쉽게 확장되어집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넷째, 독특한 성격으로. - DISC 설명.

다섯 번째, 나만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모습 그대로를 감사함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모습을 즐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계속 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면 영원토록 하나님과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역을 통해 그 영원한 섬김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영원한 나라에서 서로 섬기며 살아가게 될 그것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④ 마지막 네 번째 Team의 M은 Mission - 사명, 목적입니다. 

다섯 손가락 목적
(공동체, 복음전도, 리더십, 상호책임(섬김), 어린가족 돌보기)


V. 하나님의 눈엔 작은 일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왕 섬길바엔 중요한 자리에서 크게 섬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선,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역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흔히 교회 안에서도 위대하고 큰일, 사람들의 눈에 두드러진 일들만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들에게 큰 일을 맡겨 주시는 곳입니다.

우리교회에서도 간혹, 이렇게 큰 교회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나 같은 사람들이 할 일이 있겠습니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교회는 할 일, 사역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셀목장 안에서도 사역을 나누어서 감당하다 보면 얼마나 셀이 건강해 지는지 모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오래전에 두 명의 소년이 한 교회를 찾아 예배당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앉을만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두리번거리다 밖으로 나가려 했지요. 그때 한 안내 사역자가 이 두 소년의 손을 잡고 "우리 앉을 곳을 한번 찾아볼까?"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구석진 자리, 두 자리가 비어 있길래 소년들을 앉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두 소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그 두 소년 가운데 한 사람이 빌리 그래함입니다. 이 무명의 안내 사역자가 없었더라면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한 전도자 중에 한 사람인 빌리 그래함을 잃어버릴뻔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작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게 맡겨진 그 일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큰 일입니다. 내가 사역을 감당하는 그 시간이 가장 위대한 시간입니다. 작은 자란 큰 축복을 받고도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작은 일이란 많은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도 아무런 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VI. 약한 나로 강하게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저도 멋있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 섬길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엔 작은 일도 없고 작은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약한 사람을 사용하기 좋아하십니다. 나는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쓰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약점을 부인하고 방어하고 핑계를 대고 숨기고 심지어 자신의 약점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고전1:27)

내 약점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셨습니다. 그 약점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성을 드러내시길 원하십니다. 

성경은 약점 때문에 사역을 거부하고 핑계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릭워렌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에 있는대로 소개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고, 야곱은 불안한 상황에 있었으며, 레아는 예쁘지 않았고, 요셉은 매도되었으며, 모세는 말더듬이였고, 기드온은 가난하였으며, 삼손은 의존적이었고, 라합은 부도덕했으며, 다윗은 간음했을 뿐 아니라 온갖 가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엘리야는 자살을 생각했었고, 요나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었으며, 나오미는 과부였고, 세례 요한은 괴팍한 행동의 소유자였으며, 베드로는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불같았으며, 마르다는 늘 걱정이 많았고,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했으며, 삭개오는 사회에서 따돌림당하였고, 도마는 의심이 많았으며, 바울은 건강의 문제가 있었고, 디모데는 마음이 연약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역의 현장으로 몸을 던지지 못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핑계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약점을 인정하십시오. 그 약점을 통해 오히려 강하게 쓰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요. 여러분이 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 연약함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도록 사역 현장에 우리의 몸을 던질 때에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낭비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투자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투자들이 있지만 영원한 나라를 위해 하는 투자가 가장 위대한 투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존전에 서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물을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허락했던 그 수많은 영적인 은사들을 통하여 너는 나를 어떻게 섬겼느냐? 내가 네게 주었던 열정을 통하여 너는 이웃을 어떻게 섬겼느냐? 너에게 주었던 수많은 재능과 삶의 자원들을 통하여 그대에게 맡겨준 공동체, 교회를 어떻게 섬겼느냐?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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