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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통하고 계십니까? (삼상 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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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통하고 계십니까? (삼상 3:1~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주현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 이시간 설교를 통하여서 주현절이란 주인 주(主)에 나타날 현(現)를 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보이신 것을 말한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은 사람 자신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시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믿을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설명하시고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통하여 그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현절은 우리에게 스스로 보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얼마나 알 수 있게 되느냐가 이 절기의 관심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사무엘이라고 하는 한 어린아이 어머니 한나가 기도 서원을 통하여 얻은 이 아들을 서원을 이루기 위하여 어린 이 사무엘을 성전에 가 바치고, 어린 나이부터 성전에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채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어린 아이였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은 깜짝 놀라서 자기가 섬기는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뛰어가서 제사장 앞에서 ‘제가 여기있습니다. 부르셨습니까’ ‘아니 부르지 않았는데, 가서 자라’ 또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사무엘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 일어나서 다시 뛰어갔습니다. ‘제가 여기있습니다. 부르셨습니까’ ‘아니 부르지 않았는데, 가서 자라’ 세 번째 ‘사무엘아, 사무엘아’ 들리는 소리에 또 깜짝 일어나 엘리에게 가 섰더니, 엘리가 생각하기를 ‘아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 사무엘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는 구나’ 이 늙은, 나이 많은 엘리가 그것을 깨닫고 ‘다시 네가 가서 자되,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여호와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의 종이 듣겠삽나이다. 여호와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렇게 말하라’ 

그래서 사무엘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어 오늘 10절까지는 돌아가게 되고,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는 내용이 다음에 나오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숙한 믿음을 가졌던 사무엘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음성을 ‘miss’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미숙하여 나를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것을 혹시 miss 하지는 않았을까.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그냥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지나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 오시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시고 뭔가 얘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내가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이와같은 일들이 이미 여러번 있었을런지도 모릅니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서 내게 다가오시어 자기를 내어 놓으시는, 자기를 보이시는, 자기를 설명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그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통합니까. 나는 하나님과 잘 통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고개를 끄덕여 보십시오. 제가 어느 날, TV를 통해 이른 시간에 어떤 심리학자인가 의사인가 나와서 강의를 하는데, 그 제목이 참 신통하더라구요. 여러분도 아마 기억나시는 분이 계실거에요. ‘불통(不通)하면 통(痛)한다’ 불통의 통자는 통할 통(通)자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통한다. 통(痛) 아플 통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것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병이 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우리의 혈류가 통하지 않으면 금방 병이 납니다. 우리의 신경이 통하지 않으면 금방 병이 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통하지 않으면 금방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의 영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불통(不通)하면 통(痛)한다. 하나님과 내가 통하지 않으면 병이나고 아픔이 생긴다는 말이에요. 그제목이 참 좋더라구요. ‘불통(不通)하면 통(痛)한다’ 저는 오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형통한다. 하나님과 통하면 형통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통해야 하는거에요. 

제 신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참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옛날에 경북고등학교를 나왔으니까. 서울대학교를 쳤다가 떨어져서 감신에 왔어요. 누가 소개를 시켜줘서 어떤 여자와 데이트를 시작하는데, 데이트를 나가는데 라디오를 들고 나가요. 그리고 귀에 례시브를 꽂고 나갑니다. 데이트 나가는 놈이 그 딴 것들은 왜 가지고 가느냐고 기숙사 한 방에 있는 친구들이 나무랬습니다. 그래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할 말이 없어 라디오를 듣고 걷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그 연애가 잘 되었을 것 같습니까? 당근이지요. 잘 될 리가 있습니까? 지금도 목사가 되어 우리 교회에 가끔 들리곤 합니다.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까? 당근이죠. 그런 태도를 갖고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둘이 사랑하면 그 사이에는 반드시 한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대화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도 안하고 지낸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언제나 대화가 있습니다. 나는 말하고 상대방은 얘기를 들어줍니다. 또 상대방이 얘기할 때 나는 들어줍니다.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대화, 곧 기도. 그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 하나님과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십니까. 지난 주일에 교회 왔다가 일주일 지나고 오늘 교회 올 때까지 기도 한번도 안하고, 하나님과 말 한마디도 안하고 그러고 하나님하고 사랑한다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부부가 살아가다 싸우면 제일 먼저 안하는게 있어요. 말을 안해요. 부부가 싸우면 우선 말을 안해요. 말을 안하는게 화가 났다는 표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과 말 한마디 그것도 일주일 내 한마디 안하고 오늘 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뻔뻔하기도 해요. 하나님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과의 대화는 기도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러분 일주일 내 교회를 떠나 살면서 한번도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백하지 못하고 말 한마디 기도 한번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과 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불통이지. ‘불통(不通)이면 통(痛)한다’ 그러면 아픔이 생기는 것이요 고통이 생기는 것이에요. 통하셔야 합니다. 통하시려면 대화가 있어야 하듯 하나님과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의 시간이 꼭 길고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진실하고 진솔한 기도를 해야합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에 말 너무 잘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을 청산유수(靑山流水)라고 해요. 말 너무 잘하는 사람은 딱 맞다들이면, 이거 사기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너무 기도를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딱 보시고 이거 사기꾼 아닌가 하십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솔해야 합니다. 많이 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렇게 대화가 끊어지면, 기도가 끊어지면 하나님과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진실한 진솔한 기도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연약하고 어렸을 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일방적으로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고 요구하고 내가 채우려고 하는 기도만 하게 되어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그런거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지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그 성숙한 기도의 대표적인 기도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로 들어가셨습니다. 겟세마네라고 하는 단어의 뜻은 기름을 짜다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진실하게 간절하게 기름을 짜듯이 온 몸에 기름을 짜져서 기름이 나듯이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 주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는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기도란, 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숙한 여러분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능하면 이 쓴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 뜻대로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엎드려 기도 하는 동안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 아버지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네가 죽는 것이 나의 뜻이다. 아무리 치욕스럽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은 떨리고, 아버지의 눈에는 피눈물이 맺힙니다. 아들의 엎드림 앞에서 뒤돌아서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을까요? 물론 알았으며, 이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도 그 아들도 분명히 확신했습니다. 주님은 기도의 시간에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솔한 기도는 결국 내 뜻을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생활도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기도를 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는 기도인데, 두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란 그 속에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만, 그것들을 우리에게 지식으로 전하고 알게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많은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인간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지금도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냥 시간 날 때 성경 읽지, 그냥 아무데나 펼쳐서 읽지 이런 태도가 아니라 나는 하루에 몇 장씩, 몇 분씩, 언제 이렇게 꼭 정하여 두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성경을 읽기 전에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열려있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하여 비유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씨가 뿌려지고, 씨가 길밭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또는 좋은 옥토에 뿌려지는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비유를 가만히 보면, 씨는 똑같습니다. 뿌리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문제는 그 씨를 받는 마음, 토양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다 똑같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생명의 양식이 될 수도 있고, 우리에게 자칫 잘못하면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숙독하고 진지하게 읽고 열려있는 마음으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과 대화하여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요. 나 대신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 대신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을 떼거나 인감증명을 할 때는 대리인이 할 수도 있지만, 연예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대리인이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대신 결혼을 하거나 신부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할 수 있는 일과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함께 지내는 시간, 하나님과 나와의 은밀한 관계 그것은 누구라도 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의 많은 교인들은 그것을 목사님이 대신하고 다른 인도자가 대신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대신하고 그 얘기를 들으므로 대리만족을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자기가 직접 그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한해동안 성경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서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숙독하고 묵상하므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불통하는 사람은 어떻다. 불통(不通)하는 사람은 통(痛)한다. 설교를 들어도 이해가 안되고 은혜가 안되고 잠만 오고, 성경을 펼치기만 하면 수면제인 사람들은 통(痛)한다. 그러면 병고가 생기는 것이요. 아픔이 생기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기도를 통하여, 대화를 통하여, 두 번째는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세 번째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 여러분, 저 사람과 내가 통한다고 말할 때, 그 통자는 무슨 통자입니까. 통할 통(通)자인데, 통한다는 의미 속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같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뭔가 같다.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고, 좋아하는게 같다. 그런 뜻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으면 같을 동(同)도 통이라고 읽을 수도 있는 것처럼, 통(동)하면 통한다. 같으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같아야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같을 방법이 없을까요. 하나님과 우리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同)하면 통(通)할 수 있습니다. 왜냐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의 감정과 하나님의 감정이 다릅니다. 우리의 요구와 하나님의 요구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인 예수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면 그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통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 속에 나를 지배하면, 그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통할 수 있는 이 신비한 기회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떠나시며, 우리에게 돕는자로 주셨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으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을 방법이 전혀 없지만, 성령이 우리 속에 가득하시면 그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과 통하게 되면, 형통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통하고 계십니까?’ 불통하면 통한다. 통하지 않으면 병고요, 아픔이 우리에게 생길 것인데, 여러분 하나님과 잘 통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잘 통하는 정말 하나님과 나는 잘 통한다고 확신을 가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통하면, 하나님과 통하면 형통할 것입니다. 형통할 것입니다. 2009년 한 해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통하면 여러분 만사가 형통하게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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