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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능력 (행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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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행 15:1~11)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사와 이적과 능력도 많이 행했고 믿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몇 날도 되지 못해서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선동에 휩쓸려 바울을 돌로 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언제는 복음에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바울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성도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고 금식 기도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부탁하고 여러 곳을 둘러 안디옥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또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성도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쳤는데 그 교훈은 매우 거짓되고 잘못된 교훈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단들의 유혹이 많았습니다.
1절에 보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잘못된 교훈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유대주의를 버리지 못한 자들이 내려와서 이런 거짓 교훈을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중진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토의하였습니다. 거기서 베드로 사도는 매우 신중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불러 고넬료에게 보내신 사실과 고넬료의 식구들에게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성령을 주신 사실과 그리고 저들에게도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사실을 미루어 보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분간치 않으신다는 것을 피력한 후 신앙 문제로 이방인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좋으나 그르나 한번 습성이 형성되고 나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려서 어떻게 배웠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신앙 생활할 때 어떤 교회에서 어느 목사님한테 배웠느냐 하는 것은 평생의 신앙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리새인들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지는 해도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요새 말하면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세례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변질시키는 이단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에 배치되는 이단 사상으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안디옥 교회 신자 중에는 저들의 말을 듣자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예루살렘 본부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말이니 여부가 있겠는가 순전한 생각과 둘째는 구원을 위해서 내 편에서도 조금은 공적을 쌓아야 될 것 같다는 합리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합리적인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어떤 행위의 조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합리적인 방법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 곧 복음의 능력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 다시 말해서 구원의 능력은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롬1:16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은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7절을 계속해서 보면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하박국 선지자도 2:4절에서 선언하기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갈2:21절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내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다 구원을 위해서 내가 무슨 공로를 세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은혜의 교리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어떤 조건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받기 위한 인간의 어떤 조건의 멍에를 이미 다 꺾어 버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믿음 이외에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모든 율법의 조건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1.  음은 인간의 모든 죄의 무거운 멍에를 꺾어 버리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무거운 죄의 멍에를 메고 허덕이던 가련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세상 풍속과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종노릇하든 소망 없는 인생들이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위해서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의 멍에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넘어지고 쓸어지면서 가셨습니다. 얼마나 우리의 죄의 멍에가 무거우면 그렇게 넘어지고 쓰러지셨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 이미 예수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의 무거운 멍에를 다 꺾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달리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엄위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서 우리의 모든 죄의 멍에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꺾어 버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2. 복음은 모든 장벽을 허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죄의 두꺼운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죄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에 막혔던 죄의 장벽이 무너져 없어졌음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잃었던 기쁨과 평안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힘써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화목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면 이간질하며, 불목케 하며,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화목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화목케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덮어놓고 좋게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피차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순종하므로 하나 될 때에, 다시 말해서 진리 안에서, 주안에서 함께 거할 때에 하나를 이를 수 있으며 여기에 참된 화평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참여하지 아니하는 자를 가리켜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수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오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식구니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의 역사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나타납니다. 진리로 하나 되는 것과 비 진리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 안에서, 말씀 안에서의 하나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인간적으로 좋게 해서, 아무나 하나 되고 아무나 화목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화목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순종하는 자들 가운데 주시는 복입니다. 비 진리로 하나를 이루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화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어디서든지 진리로 하나 되는 반면에 비 진리로 분리되는 역사는 항상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따르는 무리와 비 진리를 따르는 무리가 항상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가정에도 있고, 교회에도 있고, 어디든지 나타납니다. 이러한 역사는 주님이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무저갱에 가둘 때까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로 하나 되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 안에도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힘쓸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는 전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을 받은 자들로써의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는 무거운 멍에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멍에를 꺾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데 좋은 심부름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소질이 다르기 때문에 하는 일이 같을 수는 없고, 그 능력도 또한 다르기 때문에 또한 동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계질서가 곧 인간 자체의 등급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피부 색깔이 다른 민족이라고 해서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안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므로 인간의 모든 장벽을 헐러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동일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화평의 복을 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화평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예비하신 구원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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