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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 매핑(2) : 다락방 (행 1:12~14,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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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 매핑(2) : 다락방 (행 1:12~14, 행 2:1~4)

 
신학자들은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곧 ‘구속사’(Salvation History)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속사에서 사도행전 2장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고 신약 교회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1장을 함께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1장에서 인류가 경험하게 된 문제의 해결의 희망이 비로소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인류는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져 전 세계로 흩어져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되고 민족과 민족 사이에는 벽들이 쌓여지고 언어와 마음이 소통되지 않는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고 성령을 체험하자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다른 언어에도 불구하고 한 마음이 되어 한 메시지를 듣고 민족과 언어의 벽,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초월하여 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교회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런 성령의 강림 그리고 교회의 탄생이 이루어진 곳이 예루살렘 옛성 시온 문을 나와 100m 지점 시온의 언덕에 자리 잡은 2층 다락방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이제 예수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그들은 그들이 유하고 있던 다락방(방 한가운데 3개의 기둥이 주위 벽에 서있는 기둥들과 연결되어 아름다운 아취 형상을 이루며 천정을 받치고 있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이 다락방은 평소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모이던 마가 요한의 집(행12:12)에 있던 다락방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고 여기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바로 그곳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그들은 성령의 강림을 경험했고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신약의 교회가 탄생한 요람이 된 곳입니다. 

이 예수의 처음 제자들이 경험한 역사적 성령 충만의 비밀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해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의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비밀-무엇일까요?

1.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 이 다락방에 모인 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다락방 성령 체험의 시발점이 된 행1:4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 분부의 말씀이 주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눅24:49에서 분부된 말씀이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리므로 이 처음 성령 충만의 자리는 순종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누가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순종하는 제자들입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니까 머물고, 모이라고 하니까 순진하게 모인 것입니다.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종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 진 것입니다. 행5:32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매사에 계산에 빠르고 매사에 비판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인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신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결단하십시오. 주께서 모이라고 하면 모이십시오.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십시오. 가라고 하면 가십시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진한 순종을 어리석음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순종이 신앙의 기본임을 구구 절절이 강조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불순종이 초래한 불행을 또한 구구 절절이 보여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신앙에 입문하는 순간,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해 베이징 올림픽의 국가적 영웅이었던 역도 장미란 선수는 그녀의 역도 선수로서의 성공의 비밀을 아버지에게 순종한 결과라고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한때 역도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네가 갈 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결국은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이 그녀의 역도 인생의 성공의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미란의 아버지는 그녀의 딸을 강압만 한 것이 아니라, 꿈을 동시에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무명의 선수 시절에 미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싸인을 만들어 주고 연습해 보라고 했답니다. “제게 무슨 싸인이 필요해요?” 라고 말하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유명한 싸인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전체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된 우리에게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우리의 복이라고, 우리의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도 여러분, 이제 순종의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첫 스텝입니다.


2.성령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자, 주께서는 이미 처음 제자들에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해 그들이 얼마간 예루살렘에 머물러 성령의 능력으로 입히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들이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 그래서 제자들이 어떻게 했다고 본문은 증언합니까? 1:13-14절입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래서 그 다음 절(15절)에 보면 120명이 모여 다락방에서 기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12사도와 그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가 주의 부활의 일치된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열흘 가까이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교회 공동체가 이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전적으로 한 열흘만 온 교회 온 교우가 함께 모여 기도에 몰입하고 기도에 올인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 봅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욕심을 이루는 통로가 아닙니다. 모든 치열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됩니다. 행2:1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저는 이 대목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 오순절이라는 명절의 타이밍을 맞추어 주께서 이루신 일임을 강조하려는 사도행전의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오순절은 이스라엘 3대 명절(유월절, 초막절과 함께)의 하나로 유월절이 지난 50일째 날에 시작되는 추수의 첫 열매를 감사하며 바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처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그 날은 예수님 부활 후 40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신 후 몇 날이 경과된 날입니다. 

오순절(pentecost)이란 말의 뜻이 본래 50일 이라는 뜻입니다. 그 날 성령이 강림하시고 교회가 예수 부활의 새 생명의 열매를 안고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은 오시기로 작정된 것이지만, 그냥 오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사역 이전에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분들을 보면 자신의 고집과 자신의 소견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모든 고집도 소견도 내려놓고 그냥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사역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령 충만의 자리인 것입니다.


3.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체험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단순한 하나의 사상이 아닙니다. 이론도 아닙니다. 교리도 아닙니다. 물론 교리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교리 이상의 사건이요 사실이요 체험 곧 'reality(실제)'라는 말입니다. 2절에 보면 급하고 강한 바람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불이 혀같이 갈라져 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성령의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방언이 요즈음 말하는 소위 영음 방언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고유 언어들인 여러 외국어를 말하는지는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 없습니다. 대체로는 본문의 문맥상 여기선 외국어를 뜻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2장 6절이하에 보면 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여 든 사람들이 제자들의 증거를 각각 자기의 방언(자기 언어)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고 9절 이하에 보면 그 여러 나라와 지역의 이름들이 열거 되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기 언어로 주님의 복음을 알아듣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성령의 놀라운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를 동반한 것입니다. 바람과 불이 동반된 것입니다. 성령이 바람과 불로 임하여 복음의 진정성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표적은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시고 거기에 임재하시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임재의 체험은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되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의 체험을 지나치게 보편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그 날 오순절의 다락방에서도 체험은 사람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불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혀같이 갈라지는 불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배우지도 않은 다른 언어를 말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어떤 사람들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지루한 일상을 깨는 뜨거운 희망이 불덩이처럼 가슴에서 솟아남을 경험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나타난 가시적 체험은 없었을지라도 의식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강력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성령의 임재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소심한 다락방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날개를 펴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새끼를 잡아 집안에서 닭장에 넣고 병아리, 닭들과 함께 길렀습니다. 이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독수리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한 마리의 닭이 되어 얌전하게 닭들의 세계에 적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다른 닭들과 마당에서 닭 모이를 먹고 한가롭게 걷고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해가 저물면 닭장에서 다른 닭들과 함께 곤히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이 되어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날 갑자기 닭장위에 독수리 몇 마리가 나타나 닭장 위를 비상 하며 가을바람을 타고 비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독수리 새끼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나래를 편 독수리는 자신들의 동료를 따라 창공으로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그들과 함께 수평선 저 너머로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닭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지만 그들은 아직도 세상의 자녀들과 다름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여 기도하던 예루살렘 다락방에 한 순간 성령이 바람처럼 임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력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불이 임했습니다. 그들의 혀는 불을 토하며 예수의 생명과 소망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의 사람,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당신의 인생을 하늘로 들어 올릴 이 거룩한 바람에 당신의 현존을 맡길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야 말로 내 춥고 외로운 인생의 마당에 거룩한 불이 임하여 나의 실존을 능력의 불로 태울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 바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할 시간이요, 지금이 바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시간입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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