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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그리스도인 (엡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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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그리스도인 (엡 1:3~12)

 
비밀은 젊을 때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비밀’이라는 말은 젊은 시절 우리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사람은 비밀이라는 신비를 접하면서 성숙합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신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부모님께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자녀를 키우다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저런 질문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가끔 우주의 비밀을 캐묻는 질문을 하여 우리를 당황케 합니다. 
  
“엄마, 왜 해는 동쪽에서 뜨지? 왜 해는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질까? 하늘의 별들은 왜 안 떨어지는 거야?”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엄마, 사람은 왜 죽어? 죽으면 천사가 되는 거야? 그러면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천사야?” 이렇게 물어볼 때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삶의 신비가 들어오면서 성숙하고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춘기 때 우리는 육체의 비밀에 눈이 뜨이면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육체가 너무 빨리 성장하여 몸을 가눌 수 없었던 사춘기 시절의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때 사랑의 비밀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인생의 비밀을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지?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내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했던 고통스러운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삶 속에 있는 비밀은 사람을 성숙하게 합니다.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 속에 있는 비밀, 신비는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멋지고 설레는 말입니다. 또한 비밀, 신비라는 말은 수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자의식은 비밀을 가질 때 독립합니다. 그리고 비밀을 경험할 때 자기 스스로 삶의 영역을 새롭게 펼쳐 나갑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폴 투르니에는 「비밀」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나이에 이르면 비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자라면서 그 비밀의 필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어느 누구도 비밀스러운 고뇌, 비밀스러운 탐색, 비밀스러운 회한 없이 성숙에 이를 수가 없다.”
  
나이를 가늠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정신적으로 신비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남아있으면 아직 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고 마음속에 결정하는 순간 정신세계는 늙어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밀을 어떻게 추구하고 밝히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도와 개인의 자유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틀림없습니다. 자아 성숙과 독립을 위한 신비와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비밀을 알 때 신뢰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인간의 유대관계 속에서도 비밀은 매우 소중합니다. 때로 인간관계 속에 있는  비밀은 불행한 것일 수도 있고 행복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서양 의학의 윤리와 양심적인 근거를 제공했고 2000년 이상 가치관이 이어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 직업을 수행하는 동안, 그 밖에 사람들과 교제하는 동안 보거나 듣는 것이 무엇이건 널리 퍼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거룩한 비밀로 여겨 결코 누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와 대화하며 몸에 연약한 비밀을 확인했을 때 환자와 의사만의 비밀의 공유를 통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게 됩니다. 의대 졸업식에서 사용하는 제네바 선언문에는 이런 말도 쓰여 있습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이것은 비밀이 가진 고유적인 신뢰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비밀은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에게 비밀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각자가 가진 비밀이 커지면 신뢰관계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비밀을 아는 공유의 자리가 있을 때 더욱 더 신뢰하며 성숙할 수 있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비밀은 감추어야 할 비밀입니다. 그런데 자아성숙이나 인간의 유대관계인 비밀을 넘어서 신적인 관계와 맺어지는 비밀의 역사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긍정적 사고나 대가 지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비밀을 누설하면 천기를 누설했다고 엄하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이 자기계발 정신을 확대하면서 오히려 비밀이 드러나야 한다고 쓴 책들이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에서 이런 특징이 나타납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돈과 부, 명예와 권력, 야망을 찾는 비밀이 우주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해서 우주로 생각을 보내고 바라는 것을 얻으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되고, 원하는 대로 하고,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소원에 대해서 이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에게 명령을 내려라.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우주에 알려라. 그리고 우주가 당신의 생각에 응답하게 될 건데 우주의 힘과 당신의 주파수를 맞추어서 그 우주의 힘을 끌어당기라.”
  
이것은 사람에게 긍정성을 보여주는 것같이 보이지만 많은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그려놓고 돈을 연상하면서 자기의 환상을 꿈꿉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그려놓고 권력을 꿈꿉니다. 잘못된 환상과 거짓된 꿈을 꿈꾸면서 인간이 가진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문제점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점은 우주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적인 것과 연결을 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주의 힘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우주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책속에 묘사된 우주의 힘은 잘못하면 거짓의 힘이 될 수 있고 사탄의 힘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판하는 「노 시크릿(No Secret)」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비판의 핵심은 「시크릿」에서 허황된 마음만 부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자기 성취를 위해서 공중누각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책 안에 일종의 사기성과 허위의식이 담겨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힘을 빌려서 꿈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가를 지불할 결심과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비밀이라는 사실에서 이것을 평가해 본다면「시크릿」이라는 책에서는 인간 삶의 가장 큰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땀과 눈물을 흘리며 생명을 건 피를 흘려야 역사의 변화와 목표가 성취되는지를 간과하고 허황된 꿈과 연상기법에 의해서 부풀리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문제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반대로 「노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대가 지불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대가는 무엇일까요? 생명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큰 대가는 무엇일까요? 내 사랑하는 자녀를 내놓는 대가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대가 중에 가장 큰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내가 죽어도 내 자녀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대가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죄에서부터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대가를 치루셨기에 우리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기독교는 참 신비한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인격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뒤따라가면서 땀흘리며 노력하고 충성하여 삶 전체를 내놓는 헌신도 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는 은혜 없는 대가 위주의 신앙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하나님이라는 사랑의 은혜 앞에 나아가는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역사가 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 예배드립니다. 기독교는 비밀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 비밀과 신비,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세계가 없다면 우리는 이미 기독교에 싫증을 냈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명의 신비를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할까요? 사도바울이 발견한 비밀은 사랑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에베소서 1:3)라는 말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사랑하면 노래가 나옵니다. 연애하는 젊은 청춘남녀는 중얼거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왜 우리 입술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요? 사랑의 역동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오래되면 낡아집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건이 아니라 인격이기 때문에 부부관계는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멋있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외모를 아름답고 젊게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새로움이 있어야 평생을 살아도 지겹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으로 매일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신비 속에 들어오는 것이 신앙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비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울에게 가르쳐주시는 놀라운 네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데 첫째는 시간이해입니다. 매일의 현재성 속에서 그는 영원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서 1:4)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택하셨는데 그것은 창세 전부터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어머니의 태에 조성하기 전에 자신을 택하셨다고 깜짝 놀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의 시간 속에 삶이 멈춘 것이 아니라 영원을 연결시키는 은총을 경험합니다. 현실을 살면서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면서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내 시간은 한계가 있지만 내 시간을 꿰뚫고 들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믿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두 번째는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5)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예수님의 아버지를 자신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너는 내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신앙의 자존감과 특권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붓자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세 번째 비밀은 죄책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7)

바울은 그전까지는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에 가서 양의 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단번에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제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바울은 죄책감과 죄악의 억눌림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바울이 깨달은 비밀은 인생을 사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경험하기 원하면 끊임없이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면 예수님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시간을 꿰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죄 용서를 받는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에베소서 1:8)

예수님 안에 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지혜이고 이 땅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우리가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예수님과 사랑의 비밀을 누리며 전합시다. 

새해에 예수님과 더불어 사랑의 비밀을 가집시다. 사랑의 비밀, 인격적인 비밀을 누립시다. 비밀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커져갑니다. 사람들은 모두 비밀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되고 공개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다 그 안에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기독교의 비밀은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비밀입니다. 
  
기독교는 폐쇄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자기만의 선을 긋고 우리 안에서만 독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오라고 초대합니다. 누구나 놀라운 비밀 속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비밀을 만들어 가고 말씀을 읽으면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비밀에 접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비밀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비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경험함으로 우리가 깨달은 비밀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포합시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초청하는 비밀, 하늘의 세계와 땅의 지혜와 총명을 붙잡는 비밀을 주님과 더불어 축복을 한 해 동안 마음껏 누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전할 때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이 땅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죄 용서와 지혜와 총명을 주시며 시간과 의미의 목표를 깨닫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경험하고 이 땅위에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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