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빌 2:12~18)

  • 잡초 잡초
  • 700
  • 0

첨부 1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빌 2:12~18)


전철 공사구간 식당에서 일하는 정경희라는 여집사님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김해 공항 옆 덕동 마을에 늘 환하게 웃는 성아라 부르는 미소 천사가 산다고 합니다.
성아는 서른 네 살의 뇌성마비 장애우 노처녀로서 손도 다리도 발도 뒤틀려 걷는 것도 먹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아는 늘 환하게 웃으며 사계절 빠짐없이 낡은 유모차를 끌고 열심히 박스를 모으러 다닙니다. 세상이 다 어렵고 힘들지만 성아는 늘 행복해 합니다.

오늘은 박스가 너무 많다며 “이모 고맙다”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를 연발합니다. 
성아는 82세 노모와 슬레이트 단칸방에 둘이 삽니다.
성아는 가끔 얼굴을 찡그리며 말합니다. “엄마는 이가 없어 너무 불상해요” 
성아의 말에 가슴이 저려와 빵을 먹으라고 주니
“이모, 빵 이거 내 주머니 넣어 주세요” 
“왜?” 
“엄마 갖다 주려고요” 

세상에 이런 천사가 다 있을까 싶습니다. 
성아는 팔십 노모를 부양하는 가장입니다.
“박스를 한 달 모으면 돈이 얼마나 되니?” 물으니 그저 히히 웃으며 “만원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성아가 너무 예뻐서 자기 식당에 들르는 근로자 아저씨도, 옆에 우체국 직원들도 성아가 올 때쯤 되면 박스를 미리 끈으로 묶어 놓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성아가 부탁해서 235mm 털신을 한 켤레 사주면서 잠바와 목도리도 함께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집사가 하는 말이 “성아가 나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가진 것 없다고 세상 살기 어렵고 힘들다고 투정하지 말라고 그래서 성아를 볼 때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는 성아가 교회 갈 때에 다른 사람이 5분 걸리는 길을 슬립퍼를 신고 한 시간이나 걸려 가는데 이 털신을 신고 30분 만에 갈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덕동 마을 주민들이 성아를 위해 대문 앞에 박스를 많이 모아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아는 덕동 마을의 미소천사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오늘 믿는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내고자 하는 삶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 설립자인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 디도 집사 편으로 보내어 준 선교헌금에 대한 감사와 빌립보 교회 안에 교인들 간의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갈등을 해소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이 세상에 희망을 보여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성숙에 걸림돌이 있습니다.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성숙에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12절)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데 있어서 늘 방해거리가 있습니다. 
그 방해거리를 사람들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주어진 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신앙이 자라지 않은 것으로 핑계를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경이 절대로 우리의 신앙의 성숙에 방해거리가 될 수 없고 도리어 1:12절에는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지만 도리어 자신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이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방해하는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데 방해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도 우리의 신앙의 성숙의 방해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이라 합니다. 빌립보 교회라면 누가 보아도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만 그러나 빌립보 교회 안에도 자세히 보니 교인 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4:2절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말은 빌립보 교회 안에 직분자 간에도 갈등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권면이 뭡니까? 누가 잘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위로가 뭡니까? 누가 상처 주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교회생활 하다가 교인 간에 갈등 생기고 문제 생기거든 갈등 품지 말고 문제 품지 말고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품고, 참고, 그 분의 말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개업을 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유대인 의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 유대인 의사는 유대인 의사들의 텃새에 배겨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한국계 여의사 한 분은 자신을 무시하는 유대인 의사들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병원은 항상 환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소문이 나니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 의사들의 텃세가 심한데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느냐? 유대인 의사들이 밉지 아니한냐? 고 물으니

1)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분들 예수님의 고향 마을 사람들이라 되려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2) 환자들에게 엑스트라 마일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엑스트라 마일이 무엇입니까?
마5:41절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이 여의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보여 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우리가 신앙이 성숙하는 데는 환경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사람이 방해거리가 될 수 없어, 문제는 너희 자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 안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있는 구절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건데 또 무슨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가? 왜 이런 의문을 갖는가? 하면 구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일반 교인들은 구원이라고 하면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 의미축소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말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회복의 전과정’을 말합니다. 

창3장에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담담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주로 믿으면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반드시 그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 것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지만 많은 경우에 제자답게 처신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두려워 비굴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세상을 향해 도전적인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만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4: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 때까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영적으로 계속하여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수준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성장의 목표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를 닮도록 성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가?


2.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가?(13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살려고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이러한 거룩한 성품이나 또한 그렇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도록 우리의 영적성장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갈 수 있는 힘 즉 에너지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은 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우리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선한 목적에 부합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것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솟아나는 선한 마음을 무시하고 소멸하지만 그러한 선한 마음의 생각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학자 <위즈비>의 빌립보 강해에 보면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방편이 있다 그 방편이 무엇인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만이 우리의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성장은 내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때 우리의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엘리 제사장은 형편없는 성직자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밤중에 와서 불러셨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라고 해라 합니다.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의 조언을 따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사들과 부모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꼭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3.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꼭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14절) 

14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다른 사람들 원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시비도 걸지 말라.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원망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을 약자 및 피해자로 인식시킴으로써 상대방에게 죄의식을 유발시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원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 해결보다는 원망을 통해 병적인 의존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더 큰 무의식적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기 전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늘 물으셨습니다. 

진정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먼저 무력감과 의존성의 고리를 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원망과 시비를 멈추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서길 원하는 자에게만 치유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고 합니까? 
본래 희랍어에서는 제일 중요한 말을 앞에다 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지금 강조하는 말은 모든 일입니다. 
어떤 일, 어떤 경우든 간에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은 반드시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빌4: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적성장을 방해하는 마귀적인 세력은 항상 원망과 시비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400년 광야생활입니다.  저들은 불평 원망하다가 망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먹읍시다.
원망 시비 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시비는 우리의 영적성장에 큰 걸림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일에 원망 시비하지 말고 너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까?
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하는가? 


4.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까?(15-16절)

15-16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 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 세상에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란 사실을 삶을 통해 보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영적성장이란 무엇인냐? 많은 교인들이 영적성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성장이라고 하면 자기중심적인 행위 즉 나를 기분 좋게 하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불행한 일로부터 단절시켜 주며 나아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아 교회 봉사하는 일군 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영적성장이 그런 것입니까? 
영적성장이라는 것은 내가 기분이 나빠도, 내 문제가 해결 안 되어도, 내가 불행한 일을 당해도 그 가운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여 줄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빛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어그러지다란 말은 비뚤어지다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다 삐뚤어져 있습니다.                   
거스린다는 말은 거역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그들 가운데 빛을 발하는 자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고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이유입니다. 
사실 이 세상이 대낮처럼 밝다면 다른 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깜깜하기 때문에 빛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렇게 표현합니다. 
오늘날 처럼 세상이 삐뚤어지고 하나님을 등져 어두운 세상이기 때문에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더욱 빛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최종만 집사의 간증입니다.
건축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재산을 다 날리고 싸구려 셋방을 구하러 가다가 골목에서 어린애가 뛰어 나오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내었습니다. 다친 어린애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어린애를 안아 차에 싣고는 병원 응급실로 급히 달려 갔습니다. 이제 내 인생도 끝장이구나 싶습니다. 응급실에서 아이의 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의 부모가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이의 부모의 태도입니다. 가해자가 누구인냐? 묻지도 아니하고 곧장 딸의 병상으로 다가 서더니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부부가 가해자에게 한 마디도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오래 동안 딸을 붙들고 기도 하더니 사고 경위를 물어 보더니 제 딸 아이 때문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하며 되려 위로합니다.

자식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가해자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이 분들의 행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일 동안 아이가 의식 없이 누워 있는데 가해자로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불교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이었지마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어린 지미를 꼭 살려 주십시오.” 

어린 지미는 3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몇 날 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어린 지미와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어린 지미가 
“아저씨, 꼭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그게 뭔데?”  
"아저씨도 이번 일요일부터 우리 교회에 나와서 같이 예배드려요”
“그래 알았다” 하고 근성으로 대답했는데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지미의 부모님들이 와서 자기 일같이 도와주는데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다 있구나 싶어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와 지금은 사업도 회복하고 부부가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는 간증입니다. 

영적성숙이란?
교회서 성경공부하고 제자훈련 했다고 다 영적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듣고 배우고 깨달은 말씀을 세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16절에 삶의 현장 속에서 [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저는 고후4:8-9절 말씀을 제가 개척교회를 시작한 이후부터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구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을 역설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삶을 통해 역설적인 진리 즉 생명의 말씀임을 보여 줘야 합니다.

아프리카 토고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토고의 훌라니 족들은 의식 중 아들의 성년식을 가장 최고로 여긴다고 합니다. 성년식에서 아들은 매를 맞아 피가 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 고통스러워하며 심지어는 의식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 절대 아픈 모습 보이지 말고 일어나 당당하게 걸어가라. 그래야 사람들이 너를 업신여기지 않을 거야 ”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의 삶 가운데 지치고 힘들어 할 때 귀에 속삭입니다.
“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절대 싸이지 않아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절대 망하지 않아 절대 비굴한 모습 보이지 말고 원망 시비 걸지 말고 일어나 당당하게 걸어가라 ”  할렐루야 !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까?
바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의 빛 즉 희망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교역자로서
몸은 멀리 떠나 있지만 같이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5. 교역자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간절한 바람이 무엇입니까?(17-18절)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세상에서 빛들로 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겠다는 것입니다.

17절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4:1절에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서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저는 제게 목사가 무엇하는 사람이냐? 고 묻는다면 
<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기 위한 양치는 목자다 >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될 때 목사의 목회의 보람인 것입니다. 
교회가 천 명이 모이고 만 명이 모인다고 거기에 목회의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보람이 무엇이겠습니까?
영적으로 성숙하여 교회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빛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예수가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환경이나 사람 때문에 영적 성숙에 방해 받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지마는,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세상에 빛을 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자신이 생명을 바쳐도 하나도 아까운 것이 없고 도리어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처럼 세상에 희망을 보여 주는 상징적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결론 >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성장에 환경이 방해거리가 되고 사람이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 자신인 것입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즉 우리의 영적성장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 원망이나 시비하지 말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말씀과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를 닮은 작은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임을 밝히는 자들이 되어 비록 비뚤어지고 어두운 세상이지만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그 가운데서 빛들로 살아가는 희망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