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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듣고자 하여 (행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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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고자 하여 (행 10:24~33)

 
유대 나라가 로마의 침략을 받아 식민이라고 하는 어두운 역사를 보내고 있을 때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 지방은 로마 군인의 주둔 지역이었습니다. 만약에 경우 있을지도 모르는 유대인의 반란을 감시하고 무력으로 유대인을 다스리기 위해 마련된 로마 군인의 주둔지역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인 가운데 백부장으로 꽤 계급이 높은 고넬료라는 사람이 유대 나라에 와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경건하고 기도생활도 아주 열심히 했던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제 구시에는 언제나 기도하는 시간으로 생활했고 또 유대나라 식민지 백성들 중 어려운 사람을 보면 구제 활동을 로마 장교로서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신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큰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가 되었으니 지금 사람을 욥바에 보내서 베드로를 너희 집에 심방 오게 하라.” 

그래서 급히 부하를 시켜서 천사가 시킨 대로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시간에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이상한 환상을 보았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따리 하나가 내려왔는데 열어보니 우글우글하게 짐승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짐승들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먹지 않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잡아먹으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이런 부정한 동물을 내가 먹은 일이 없나이다.”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대화가 벌어졌습니다. 

환상에서 깬 베드로가 ‘이건 하나님이 주신 환상인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렇게 애를 쓰고 있을 때 문밖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와 베드로를 만나게 됩니다. 고넬료라 하는 로마 군대 백부장이 자기를 청하는 말을 듣고 베드로는 그때야 자기가 본 환상의 뜻을 깨닫게 되어서 ‘아!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고넬료 집으로 심방 가라는 뜻이다.’ 이렇게 따라가게 됩니다. 사실 베드로와 고넬료는 만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28절에 보면 베드로가 말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줄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신앙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만약 이 법을 어기고 난 다음에 내게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환상을 주셔서 내가 이렇게 왔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잖아요? 유대 사람들의 이런 문화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변 나라 국가들이나 세계인의 미움을 사게 된 그들만의 독특한 배타 신앙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도 교제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도 안 들어가는 삭개오 집에 왜 선지자가 들어가느냐고 막 성토하잖아요?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을 때 그 여인이 뭐라고 그럽니까? “당신 같은 유대 남자와 우리는 말을 안 하게 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왜 나한테 말을 거나이까?” 말을 안 하게 되어 있는 신앙 문화입니다. 그러니까 고넬료와 베드로는 절대 만나면 안 됩니다. 그런 관계인 것을 피차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가라 해서 왔고 오라고 해서 온 겁니다. 하나님이 중개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만나게 하셨는가? 이 사건은 기독교 역사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 민족을 벗어나 최초로 이방 세계로 전도 되어지는 역사적 포인트가 바로 여기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나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전해야 할 전도 대상을 자기 민족 혈통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만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의 보따리 안에 가득한 그 더러운 짐승들은 베드로 마음속에도 이방 사람들은 전도할 가치도 없는 짐승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환상을 주셔서 “내가 깨끗하게 했다.” 지금 베드로의 마음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고넬료의 집안이 모두 모여 베드로를 극진히 모셔 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이것이 이유가 됩니다. 그 집 식구들이 이 말씀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있어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베드로로 하여금 그 집에 심방 가서 설교하게끔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20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설교 마친 다음에 자신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세계관이 달라졌습니다. 뭐라고 자기가 말합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종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받으신 줄을 깨달았도다.”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에 놀라니 자기 자신이 놀라고 세계관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그 자리에서 성령을 받고 베드로에게 다 같이 세례 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으로서 즉, 이방 세계 최초의 세례인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 거기서부터 생겨졌습니다. 

우리가 말씀 가운데 교훈으로 삼을 것은 말씀을 사모했던 고넬료 집안의 신앙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충만하게 만들어 가시는데 반드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전하여지도록 하셨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국고를 맡은 국가적 인물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빌립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그에게 가서 설교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깨닫고 길가에서 자신에게 세례를 달라고, 예수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례를 받고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언자가 된 것이 에디오피아 최초의 교회를 창립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 되었잖아요? 

성령을 보내심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고넬료가 이방 사람으로는 최초로 역사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전해야 합니다. 그 나머지 일은 성령께서 다 알아서 하심으로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예수 믿게 할 것인가?’ 걱정부터 하지 말고 전하기만 하면 그 다음이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말씀을 받는 고넬료 집안의 모습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24절에 말씀의 전달자가 올 것을 믿고 고넬료는 즉시 일가친척 친구들을 다 자기 집으로 모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심방의 역사적 시초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설교자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설교를 하고 은혜를 나누고,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고 성경에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은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를 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우 감동적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그토록 사모했고 원했던 것을 직접 만났을 때입니다. 우리교회에 미술가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한 폭의 값진 그림을 만났을 때는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심취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볼 때 별로 잘 그린 거 같지 않은데, 저 정도라면 누구든지 다 그릴 수 있을만한 그림인데….’ 그런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술의 가치를 아는 분들은 그런 그림을 하나 만나면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수십억 원을 들여서라도 사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파리에 처음 갔을 때 거기에 계신 목사님이 “목사님은 파리에서 뭘 제일 보고 싶으세요?” 그러셔서 “밀레가 만종을 그렸던 밭이 있다던데….” “그럼요. 멀지 않아요.” 그래서 함께 갔습니다. 지금도 밭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밭모퉁이에 밀레가 그린 만종 그림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아! 여기서 밀레가 이 그림을 그렸구나.’ 그러면 밀레네 집에 가서 그가 그린 작품을 구경하고 저도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감격적인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 한번 참석하는 것이 평생소원입니다. 세계적 음악의 대가들이 모여 한번 구경하면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듯 합니다. 마음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격해 하는 것 아닙니까?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 3대 테너가 공연할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표를 사서 워싱턴에서부터 와서 평석에 앉아서 관람했습니다. 저도 그날 무지 가고 싶었지만 표를 살 수가 있어야지요.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대가가 부르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감격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지금 베드로의 설교 한편을 듣기를 그렇게 희망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우리 집에 와서 설교 한번 해주셨으면….’ 그걸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물해주시는 겁니다. 환상을 통해서 두 사람의 만남을 이루어주십니다. 위법이지만 만나게 하신 겁니다. 

여기 보세요. 베드로가 문 앞에 들어서니까 고넬료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볼 때는 자기 국민, 즉 식민지 백성 중에 하나입니다. 베드로는 사실상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만 빼버리면 갈릴리 어부 출신에 무식한 소시민에 불가합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식민지 백성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그분을 모시는 태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럽니까? 베드로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집에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그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곧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지금 고넬료의 눈에는 베드로가 보이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발 앞에 엎드린 겁니다. 얼마나 황송스럽게 엎드렸으면 베드로가 너무나 무안해 잡아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라.” 사람같이 안보고 있는 겁니다. 밭이 준비된 상태입니다. 씨만 뿌리면 당장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듯 한 그런 자세와 호기심, 열려진 마음의 자세로 지금 심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우리 다 세례 주세요.” 그 자리에서 로마인 최초의 세례인이 되는 영광이 그 집에 주어지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 보면 또 다른 백부장 한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은 길바닥에서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내 하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나이다.” “그러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아니요. 이 자리에서 말씀만 하옵소서. 말씀의 권위로 나을 겁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잖아요? 그래서 그대로 되었잖아요? 제 목회의 경험인데 교인들이 목사의 말을 가장 잘 듣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임종할 때입니다. 그때는 거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고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아멘, 아멘” 다 그럽니다. 안 그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 한 편을 듣고 죽어도 좋다는 그런 심정으로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사실 다윗의 사생활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훌륭한가? 다윗에게는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을 그렇게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보다 더 달다고 말한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성전을 사모하는데 열심입니다. 

어느 날 성전 초막 끝에 참새가 집을 지은 것을 보고 그 참새를 부러워하는 겁니다. “너는 얼마나 복이 많아서 하나님의 집에서 사느냐?” 그래서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기를 그렇게 희망했었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장막을 볼 때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감탄사를 발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변함없는 마음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디 여행 가실 때 성경책은 가지고 다니십시오. 성경책 한 장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저녁에 한 장 읽는 것으로 하루를 닫아보세요. 한번 해보세요. 읽는데 한 5~8분 정도면 됩니다. 그렇게 어렵습니까? “나는 예수는 믿지만 성경책은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하시는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그들은 지금 베드로 앞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33절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이 오신 것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나는 사람입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당나귀를 타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겉옷이 자신의 인격을 말해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자기 겉옷을 벗어 당나귀가 걸을 때마다 발 앞에 갖다 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당나귀가 그것을 부드럽게 밟고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당나귀 위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등에 업고 가는 짐승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은 것 아닙니까? 말씀의 귀중함에 대해 성경 몇 군데를 기억해 봅시다.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 후에 주리신지라.” 떡이 극도로 필요했던 그 순간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

성령의 역사는 언제 가장 크게 임하셨는가? 두 가지입니다. 기도할 때와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말씀을 들을 때 가장 강력했습니다. 초대교회가 하루에 3천 명씩 세례 받고 성령 받았다고 했는데, 무엇을 그렇게 했는가? 베드로가 설교한 후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공식적으로 정한 예배 시간은 빠지지 마세요. 다른 시간 조금 줄이세요. 우리 교회는 프로그램을 많이 계발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 중심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수요 예배가 되었든 새벽 예배가 되었든 주일 예배가 되었든 내 생활에서 이것만은 열심히 참석하세요. 그러면 신앙생활이 풍성하고 변함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에 보면 “말씀을 들은 자 중에 믿는 자의 수가 많으니 남자가 5천이라.”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 가운데 역사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세요. 기독교 역사가 언제 쇠퇴했는가? 사도들이 설교를 소홀히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이 일어나 “예배 모범 가운데 50퍼센트를 설교 시간에 배정하자.”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잖아요? 만약 “

교우 여러분! 설교 듣지 지루하죠? 다음 주일부터 설교 시간 빼겠습니다. 찬송 한 장 부르고 각자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칩시다.” ‘이야! 예배 시간 짧아진다! 좋다.’ 그런다면 일 년 안가서 이 교회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보세요. 

미국 공립학교에서 “아침기도 하라. 그리고 경건회 하라.”고 했습니다. 법적으로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서 “우리 아이는 예수 안 믿는데 강제성이냐?” 막 투쟁하고 데모하고 그래서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아침 기도 없애자. 경건의 시간 없애자.”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 학교에 마귀가 들어가서 학생이 선생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기 동료를 수십 명씩 쏴 죽이는데 그게 무슨 학교입니까? 말씀이 끊어지면 그때부터 마귀가 말합니다. “내 말 들어!” 그래서 뭐라고 그럽니까? “아침 기도 빨리 부활시켜라. 학교에서 경건회 빨리 부활시켜라! 왜 그만두느냐? 하나님 말씀을 접어두면 마귀가 그때부터 말한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느냐?” 세상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44절에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성경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설교와 함께 성령이 내려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에 큰 문제가 생기죠? 교회가 혼란해지고 헬라파, 히브리파가 싸워 교회가 갈라지거나 없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가 되었는가? 베드로가 말하지요? 이것은 우리 사도들이 잘못했습니다.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로 일삼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요.” 설교를 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설교 듣던 사람이 베드로나 요한의 설교를 듣고 만족하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이 “설교는 예수님처럼 해야지 저렇게 설교를 못하고….” 그러니까 “에이! 귀찮다.” 설교를 안 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마귀가 들어와서 교회를 파산지경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힘 있게 설교를 하니까 그때부터 교회가 부흥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틴 루터가 “교회가 무엇인가? 말씀의 집이다. 교인들은 왜 교회에 와야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지 않는 저와 아주 친한 사람 가운데 한명에게 성경책 한권 사다가 그 사람 몰래 책꽂이에 꽂아놨습니다. 그냥 꽂아놨더니 살아 역사합니다. 그 집이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 교회만큼 교인이 많은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그 교회에서 성경 제일 많이 읽은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여러분, 전도하고 싶으면 성경책을 그냥 한권 주세요. “이거 책이야. 가져!” 살아있습니다. 제가 결혼식 주례할 때마다 신랑, 신부에게 주잖아요? “이거 가지고 살아라. 틀림없어. 잘 지키고 살아.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왜? 말씀 속에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접하세요. 읽으세요. 그러면 오늘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어떤 일이 되는가? 고넬료는 이방 사람들 가운데 유대인 혈통을 벗어난 사람 가운데 최초로 세례 받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관문 역할을 했고 베드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로마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전도했는데 오늘 로마는 세계 교회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 중앙에 베드로 성당이라는 말씀의 집을 온 세계인의 관심 가운데 세워서 지금 영원하게 되었으며 그는 죽어서도 그 말씀의 집 지하 성당 복판에 그 시신이 지금까지 묻혀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성당입니다. 여러분, 말씀과 가까이 하세요. 말씀과 함께 승리하세요. 이것은 어떤 것도 이기는 능력과 힘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을 소중히 생각하시고 말씀을 잘 들으시고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세요. 그래서 모두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변함없이 저희들에게 하늘의 음성을 말씀으로 들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말씀에 가까이 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배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가 약속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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