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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 이름의 의미 (출 3:13~15)


시인들이 애송한다고 꼽은 100편의 시 가운데 5위에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올랐습니다. 
이런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에서 보듯이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우선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의 의미를 갖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뒤 아담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미 천지만물이 창조되어 존재했지만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존재를 존재되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존재하는 것과 관계를 맺게 해 줍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는 이름을 지어 부릅니다. 내가 이름을 지어 부른 그 강아지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이름은 서로 관계를 맺게 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이름이 소개되는 이야기입니다. 13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할 때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이름을 알려달라고 묻는 것입니다.

14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그리고 15절에 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이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이 이름이 네 개의 자음으로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 알파벹 요드, 헤, 와우, 헤입니다. 이것을 ‘신성 4문자’(Tetragrammaton)라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인 이 신성 4문자를 발음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름이 나올 때 대신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라고 읽었습니다. 심지어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이 문자가 나오면 두려운 마음에 목욕 재개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이 문자를 필사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 문자가 무려 6800여회 나오는데 그 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마소라 시대에 히브리 성경에 모음을 첨가하게 됐습니다. 성경 원전의 발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신성 4문자 발음은 결국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신성 4문자 자음에 주님이라는 뜻의 ‘아도나이’라는 말의 모음을 붙여서 발음한 것이 ‘여호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분명 이 문자의 정확한 발음은 여호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호와라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학자들 간에 “야웨”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의 설일 뿐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떤 특별한 관계를 발전시켜왔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

여호와란 이름의 첫 번째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이다.

본문 14를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는 "I am that I a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아왔습니다. 애굽은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을 섬겨왔습니다. 최고의 신으로 추앙해 온 태양신 라와 아몬, 나일의 수호신인 크눔과 같은 자연신들, 황소신인 므네비스와 같은 수많은 동물 신들, 오시리스와 같은 어둠의 신들, 심지어 사람인 바로까지 신으로 섬겨왔습니다. 이 모든 신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 마디로 만들어진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에 의해 추앙된 신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차별화됩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창조되기도 전, 온 세상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 그분은 먼저 계셨습니다. 그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추앙된 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시고 다른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저마다 신들을 믿고 추앙합니다. 마치 성경의 애굽 시대의 그 많은 신들처럼 수많은 신들을 추앙합니다. 이런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유일신 신앙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배타적이라고 비난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근자에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배경에도 이런 종교다원주의적 영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우리 기독교는 타협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 타협의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상대주의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으며, 각각의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마치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럿이듯이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보편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주장입니다. 꼭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베푸시는 편협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주장입니다.

셋째, 혼합주의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각 종교가 서로 이해하고 장점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발전해 가자는 주장입니다.

이와 같은 타협적 주장들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과연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참신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 문화적 소산물로 생겨난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저들을 공격하거나 폄하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저들의 노력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믿는 여호와는 저들이 믿는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은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고 섬기는 여호와는 유일하신 참 신이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란 이름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여호와란 이름은 여기서 처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창 12장 아브라함 시대부터 본문까지 160여회나 나타납니다. 아브라함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불렀고,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말씀하실 때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 6: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미 160회나 사용됐고, 아브라함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마치 모세에게 처음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신 것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이름의 뜻을 정확하게 알려주신 것이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전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뜻인지, 여호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그 이름만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여호와라는 이름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 3:7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보고만 계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고 그들을 그 고통 가운데서 건져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그 뜻도 모른 채 불러왔습니다. 그러다 430년 종살이의 그 고통 속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 이름의 뜻을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 이름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을 말입니다.


헨리 나우엔이 쓴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통은 우리를 초라하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냉정하게 일깨워 준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춤추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일어나 첫 스텝을 내딛게 하시는 곳이다. 고통과 가난과 불편함 속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떠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우리의 슬픔으로 들어와 우리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일으켜 세우며 춤을 청하신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고통과 가난과 불편함 속에서 애통해 하는 우리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고 춤을 청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민요 가운데 "하바 나길라"(Hava nagila)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자 형제들아 용기를 내어 즐거운 마음으로 일어나 함께 노래하자”(Hava nagila Hava nagila Hava nagila Venis' mecha...) 

비록 고통과 슬픔이 우리를 억누르지만 용기를 내어 일어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자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 춤을 추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름의 세 번째 의미는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본문 15-18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만 몇 곳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6:7을 보면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10절을 보면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리고 13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리고 14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7:24를 보면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고 되어있습니다. 24:14를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루어질지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4:24를 보면 “이 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약속하시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관계되어 나타납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지난 1988년도 미국대통령 선거 때 일입니다. 각 당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지명했습니다. 이 때 민주당은 메사츄세스 주지사 규카키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공화당은 조지 부시 당시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이 지명 대회에서 조지 부시 후보가 수락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로 공화당은 자신감을 얻었고 분위기가 열세에서 우세로 반전되었습니다. 그 연설에서 조지 부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주당 저들은 약속을 하지만 하나 우리 공화당은 약속을 실천합니다” 우뢰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TV를 시청하는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루어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약속을 하실 뿐 아니라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성경을 보면 약속을 파기하는 쪽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들 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을 지키도록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지켜야 할 서원을 반드시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날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주 소중한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너무도 귀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신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이름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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