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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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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마 26:36~46)
 

오늘은 시험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다보면 시시 때때로 시험이 다가옵니다. 이 세상에서 시험이 없는 곳은 무덤밖에 없을 것입니다. 죽어 무덤에서 잠자는 자는 시험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시험에서 면제된 것입니다. 그러나 산 자는 어딜 가든지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시험을 받았고, 위대한 엘리야 선지자도 시험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우리 주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다가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이 다가올 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시험에 들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다 함은, 시험을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험에 들면 영적인 차원뿐 아니라 심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큰 피해를 입지만, 시험을 이기면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첫 번째로, 시험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하시는 시험이 있습니다.

욥기를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루는 천상의 회의가 열렸는데,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섰고 사단도 그 가운데 와서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시니, 사단이 대답하기를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시자, 사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곧 행동을 개시해서 욥의 열 자녀를 죽게 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시험치고 이처럼 무서운 시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빈손으로 나왔으니 또한 빈손으로 그리로 돌아 갈 것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로써 사단은 완전히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그칠 사단이 아닙니다. 또 다시 천상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시니, 사단이 대답하기를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대답하기를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꿀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이에 사단이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욥은 그만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욥에게 이르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습니다.

욥이 당한 시험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써 그 무서운 시험을 이겨 냄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으며,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아누렸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이삭은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독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엄청난 시험을 온전한 순종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것도 삼일 길을 걸어갔습니다. 삼일 동안 길을 가면서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 많은 시험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려놓고 이삭을 결박해서 그 위에 놓고 칼을 빼어 이삭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이삭은 번제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알아보시려고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험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과도 같습니다. 학생들은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등 여러 종류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잠도 못자고 공부하느라 수고를 합니다. 만약에 그런 고생이 싫어서 시험을 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학생은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진급도 못하고 퇴교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시험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험을 통해서 연단하십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순물이 제거 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서 1장 12절에는 이르기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욕심 때문에 받는 시험이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지 아니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악한 의도로 시험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선한 의도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자기의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습니다. 어제 뉴스 시간에, 어느 고위 공무원이 뇌물을 받은 일로 사퇴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뇌물을 거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은 자기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든 것입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으로부터 “나에게로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해 달라 그리하면 금은보화와 높은 지위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데도 불구하고 발락에게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범죄케 만드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 결과, 발람은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패할 때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 왕은 육체의 정욕 때문에 시험에 들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땅 판 돈의 절반을 감추고 절반만 사도들 앞에 바치고는 전부를 바치는 것처럼 속였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시험으로 인해 시험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욕심을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시험을 물리쳐야 합니다. 


셋째로, 마귀가 가져다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극도로 주리셨을 때에 마귀가 나아와서 시험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번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번에도 예수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하심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에 마귀가 또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밀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시니, 마귀는 패하여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통해서,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서, 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시험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 것은 그가 마귀의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증언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의 생각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이미 시험에 든 상태였기 때문에 마귀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주님의 칭찬을 받은 일과 책망을 받은 일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해서 칭찬 받은 사람이라도 마귀의 시험에 들어 주님의 일을 방해하다가 책망 듣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시험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 하신 사도 베드로의 권면에 순종하여 마귀를 대적해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첫째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욥이 그처럼 무서운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알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혹독한 시련의 한 가운데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한 것 역시,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번제 나무를 지고 산을 올라가던 이삭이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라고 물었을 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혹 이삭을 번제로 바칠지라도 하나님께서 재 가운데서 이삭을 살려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절대 순종할 수 있었고,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삶 속에 시험이 다가왔습니까? 먼저, 그 시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주신 시험이거든,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혹 자기의 욕심이나 마귀로 인한 시험이 다가왔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선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로부터 세 번에 걸쳐 시험을 받으셨으나 그 때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였을 때 마귀는 완전히 패하고 물러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에베소서 6장 17절에 보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한 것은,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무기라도 사용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이해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셋째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대적들이 들이닥쳤을 때 주님을 버려두고 다 도망쳤습니다. 시험에 든 것입니다. 제자들은 삼년 반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들을 가까이서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믿었으며,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주님께 대한 의리를 지킬 것을 다짐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말하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재차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을 때도, 그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장담하였고, 다른 제자들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았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 믿는 일로 인해 시험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는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또는 부모 형제로부터 시험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또는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친구들의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평온할 때에는 누구나 베드로와 같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험이 다가왔을 때에도 변함없이 주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만 가지고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잡히시던 날 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셔서 한 곳에 머물게 하고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려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않고 다 졸며 잤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빠진 것은 어찌된 까닭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괴로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기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육신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우리의 육체를 포함해서 우리의 연약한 본질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22:45-46에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슬픔에 잠길 때, 낙심하게 될 때, 우리는 기도할 힘을 상실하고 잠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또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우리는 기도의 필요성을 망각하고 잠들 때가 있습니다. 또는 몸이 병들고 약해 졌을 때 쉬 피곤을 느끼고 기도하지 못하고 잠자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말씀은, 우리가 육신의 연약함을 이유로 깨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너희가 육신이 연약하니까 더욱 정신을 차리고 분발해서 깨어 기도하라.”는 당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때때로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시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시험이 다가온다고 해서 누구나 다 시험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시험을 이깁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어떤 때는 시험을 이기지만, 또 어떤 때는 시험에 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로든 시험에 들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적으로 잠든 상태에서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요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기도의 목적을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기도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삶의 필요를 공급 받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하는 목적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마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다가 큰 시험에 빠졌던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에게 이같이 권면하였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다가 깰 때입니다. 이 시기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때입니다. 때가 악해졌습니다. 세상이 악할 뿐 아니라, 교회에도 세속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는 돈 때문에 시험에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못할 것이 없는 줄 알고는 자나 깨나 돈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그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여 시험에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에 보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였습니다.

돈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삶을 맡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생활을 할 적에 농사도 짓지 않고 무역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옷이 헤지지 않게 하셨으며, 신발이 닳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무려 40년 동안이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시고 입히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도님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깨어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을 분간할 수 있지만,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은 이 순서를 거꾸로 구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순서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물질이 생기더라도 그것 때문에 신앙에 손해를 입지 않지만, 잘못된 순서로 구하는 사람은 물질이 생기면 그나마 남아 있던 믿음마저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자는 이 시대의 징조를 분간할 줄 알지만,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슨 큰 사건이 터지면 이것이 주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무슨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 아파트 시세가 어떻게 변동될 것인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 말세의 징조를 파악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깨어 있는 성도들은 이 시대의 파수꾼과 같습니다. 다들 잠자는 시간에 파수꾼이 홀로 깨어서 전방을 주시하고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피듯이, 성도들은 이 죄악의 밤에 잠자지 않고 깨어서 시대의 징조를 살피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는 데 대한 변명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자인하고 겸손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고 하였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우리와 같은 본성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할 때 육신의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대한 영적 승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사노라면 여러 방면으로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갈지라도 시험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구나 현대와 같이 말세가 가까워진 때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시험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시험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떠한 시험도 능히 물리칠 뿐 아니라, 시험을 통해 연단 받아 영적 성숙을 이루고 큰 승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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