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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건하라! (느 8:1~12) - 성전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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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으로 재건하라! (느 8:1~12)
 
 
❚바뀌어야 산다!

‘소니’(Sony)라는 일본 회사를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이나 LG에 많이 따라잡혔지만 아직도 전 세계 사람들이 ‘전자제품’ 하면 ‘소니’라는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전자기기 생산의 대명사인 회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에나 교회에 이 소니 제품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 집에도 최소한 한 두 개 이상은 소니 제품이 있을 것입니다.

소니는 1946년 창립될 때 다른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바로 ‘도쿄통신공업’이라는 좀 촌스러운 이름이 소니의 모태가 된 회사입니다. 이 도쿄통신공업은 처음에 전압계, 전기방석, 공진음 발생기 등을 만들다가 1950년에 생활가전제품인 녹음기를 시장이 야심차게 내놓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 6.25 전쟁에 나던 해에 녹음기를 생산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합니다. 품질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회사가 망하게 생겼답니다. 하도 물건이 신통치 않으니까 사람들은 ‘도쿄통신공업’이라는 회사 이름을 완전히 불신하게 되어서 이 회사에서 나온 다른 제품도 안 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회사가 폭삭 망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하지만 소니 창업주인 모리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한 회사 이름을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회사 이름을 ‘소니’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이름만 바꾸었다고 망해가던 회사가 다시 잘되겠습니까? 아니지요. 회사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아예 회사의 경영 마인드, 기업정신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회사 모토를 “소비자 만족 경영”으로 바꾸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면밀하게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제품을 개발, 생산한 것입니다. 과거 상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무리 좋은 물건을 내놔도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내놓고, 다음으로 워크맨이라는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소니의 신화가 시작됩니다. 무너져가던 회사를 이름만 바꿀 뿐 아니라 기업 정신을, 마인드를 바꿔서 다시 살리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재건한 것이지요.

이렇게 기업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든 어려울 때 어떤 방법으로 다시 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도, 아무리 튼튼한 가정이나 국가도 한번쯤은 위기가 닥쳐오게 마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런 위기가 닥쳐왔을 때 슬기롭게 극복해서 더 건강한 기업,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가는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그 위기를 이겨내지 못해서 무너지고 마는 기업도 수없이 많습니다. 가정도 국가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위기를 이겨내느냐 못 하느냐는 어디 달려 있을까요?


❚마인드를 바꾸라!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떤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로 인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니가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기업이 다시 잘 된 것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 마인드를 바꾸었을 때 가능해 진 것처럼 어떤 겉모습이나 이름이나 외적인 요소가 바뀐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지만 성벽만 재건한다고 이스라엘 민족이 재건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다. 정신이 바뀌어야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민족이 다시 살고, 기업이 다시 살고, 가정과 교회가 다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기업들이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리노베이션’이란 ‘갱신, 부흥, 새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레노바레’(Renovare)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렇게 부흥과 갱신이 같은 어원인 레노바레에서 나온 것을 볼 때 부흥하려면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갱신은 단순히 겉모습 몇 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름 좀 바꾸고, 조직 좀 바꾸고, 사람 좀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혁신,’ 혁명적으로 바뀌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그리고 국가와 가정과 교회조차도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혁신적 리노베이션에 성공하면 살아남지만 이것을 못하면 사라지고 맙니다. 이 리노베이션은 무엇으로만 가능하냐? 소니처럼 정신이 바뀌고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니 같은 기업은 어떻게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까? 소비자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아도 소비자들의 생각을 읽는 데 실패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소니처럼 소비자의 심리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잘 내놓아야 성공한 기업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마인드가 바뀌어야 사는데 교회는 누구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하느냐? 소비자가 아닙니다. 교인들도 아닙니다. 요즈음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기업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기업의 CEO, 최고경영자와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무엇보다 교인들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요즈음 성도들은 옛날처럼 집과 교회가 거리가 가깝다고 그 교회 가는 것이 아니랍니다. 집집마다 다 차가 있어서 조금 떨어져 있는 교회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교회를 훨씬 까다롭게 고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교회도 새 가족들을 보면 여러 교회를 다녀보고 잘 골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교회를 고를까요? 물론 목사 설교도 볼 것이고, 교회 건물이나 시설도 보고, 자녀들을 위해 교회학교가 잘 되어 있나도 볼 것입니다. 기준이 그만큼 까다로워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깐깐한 교인들도 일종의 소비자로 보고 그들의 욕구에 맞게 교회를 만들어 가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이론입니다. 

얼핏 듣기에는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물론 기업에서 좋은 면들을 배워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교회는 기업과 다릅니다. 기업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면 된다고요? 소비자 중심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시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는지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인은 소비자가 아닙니다. 교인들 눈치 보고 그들의 욕구에만 맞추는 교회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들 눈치를 보고, 하나님의 뜻보다 교인들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교회는 결코 잘 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좀 요란하게 잘되고 부흥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반드시 그런 교회는 오래 못가 한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이런 교회를 많이 봤습니다. 정말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시대에 좀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남들은 다 시대에 맞게 잘 달려가는데 우리만 구닥다리처럼 뒤쳐진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마인드를 바꾸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경영마인드도 아니고, 소비자 중심 마인드도 아니고, 하나님 중심 마인드로, 하나님의 뜻을 절대 순종하는 마인드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삽니다. 교회가 건강해 집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재건되어 위기도 극복하고 이 시대와 이 나라를 이끌어갈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재건하라!

자,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좋다, 교회가 사람이나 교인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방법은 뭐냐?” 

딱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성경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적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제 목회철학도 말씀목회입니다. 그래서 2009년 새해에도 성경공부, 큐티, 일대일 제자양육처럼 말씀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인들의 욕구를 잘 읽는 교회라면 이벤트성 프로그램도 하고, 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거창한 행사도 해야 하겠지만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가는 것입니다. 구닥다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시대에 뒤처진 교회라고들 조롱해도 좋습니다. 좀 열매가 빨리 안 맺히고 느려도 좋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갈 것입니다. 왜냐? 근본적으로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본질이고, 이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느헤미야의 개혁이, 무너진 이스라엘 민족을 재건하고 다시 일으키는 일이 성벽재건으로만 안 되고 말씀으로 그들의 마인드를 바꾸고 정신구조를 바꾸어 놓아야만 가능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하지만 새 성전을 건축하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벽이나 새로운 성전은 교회를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우선 그릇을 튼튼하게, 큼직하게 마련해야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벽도 재건한 것이고 우리도 새 성전을 지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좋은 그릇이 마련되어도 그 안에 담을 것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세상에 그런 교회 많습니다. 교회 건물은 화려하게 크게 지었는데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분쟁이 생기고 목회자가 어려움 당합니다. 왜요? 그릇만 크게 마련했지 그 안에 담을 것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새로 재건한 예루살렘 성벽 안에 담을 내용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으려는 새로운 성전에 담아야 할 본질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정신입니다. 새로운 마인드 말입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마인드는 어디서 온다고 했습니까?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운영되는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보 맨 첫 면 교회 이름 바로 아래도 보면 이런 세 가지 말이 쓰여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제가 설교 잘 한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준비에 전심전력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선포하겠다는 저의 결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 다음이 “○○교회는 말씀을 ‘잘’ 가르칩니다.”입니다. 
우리교회는 다른 것 안 합니다. 일회성이나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닌 오직 말씀을 잘 가르치고 배우고 함께 깨달아 나가는 데에만 전력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교회는 ‘늘’ 말씀대로 삽니다”입니다. 
말씀 잘 전하고 잘 배우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목회자와 모든 성도가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그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나가서도, 우리의 직장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정에서, 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사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하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잘됩니다. 재건됩니다. 리노베이션 됩니다. 부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으로 서고 말씀으로 재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새 성전 건축을 앞두고 성전 건축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말씀 중심 교회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새로 지어질 성전을 채울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의 종교개혁, 우리의 말씀개혁

오늘 본문을 보세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후 곧바로 느헤미야 8장에 이르러 에스라의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재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서 좋은 그릇을 준비했으니 이제 그 그릇을 채울 마인드를 재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결국은 말씀운동입니다. 당시 로만가톨릭이 하나님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나자 말씀 회복운동을 한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 말씀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는 총독인 느헤미야가 맡았다면 이제 그 그릇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일은 학사 에스라가 맡았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맡아 가르치는 율법학사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 백성들의 마인드를 바꾸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모였다고 합니다. 장소가 어디입니까? 수문 앞 광장입니다. 성전 동문과 성벽 사이의 공터를 뜻하는데 이미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면서 마련한 장소에서 모인 것입니다. 그러면 모인 때는 언제입니까? 일곱째 달입니다. 이스라엘의 옛 달력에 의하면 일곱째 달이 바로 정월입니다. 2절에 이날이 일곱째 달 초하루였다고 하니 우리로 치면 설날입니다. 

다음 주면 우리 민족의 명절 설인데 우리는 고향 찾아가고 세배하는 설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에 다 모인 것입니다. 왜 모였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인 모든 백성들 앞에서 학사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기 시작합니다. 3절에 의하면 설날 새벽부터 정오까지 최소 6시간 이상 남녀를 불문하고 말씀을 알아들을만한 나이가 된 사람은 다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로 치면 새해 첫 날, 설날에 교회 모여 신년부흥회를 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간에 많은 과정이 있지만 다 생략하고 9절을 보시면 모든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웁니다. 말씀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이후에 보면 하루로도 모자라 이튿날에도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가서 율법 말씀을 함께 읽다가 그 율법에 일곱째 달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 지금까지 중단되었던 초막절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보세요. 여기 다 나옵니다.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입니다. 우리 교회처럼 에스라가 ‘참 좋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다음에 백성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이 생깁니까? 백성들이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지금까지 바쁘고 힘들다고 무시하고 안 지켰던 초막절을 하나님 말씀에 지키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대로 지키지 않습니까? 

또 13장에 보면 형식적으로만 지키던 안식일도 제대로 잘 지키게 됩니다. 겉으로는 안식일 따졌지만 실제로는 할 일 다 하고, 돈 벌 것 다 벌며 안식일을 범하며 살았는데 이제 안식일도 제대로 거룩하게 지키게 되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후 생계에 바빠서 먹고 사는 일에 정신 팔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구태의연한 습관과 삶의 방식을 더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삶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지키게 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정말 변화되고, 리노베이션이 일어나고, 재건되고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순전히 말씀의 능력입니다. 여러분도 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교회가 말씀만으로는 왠지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자꾸 다른 이벤트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한 불신입니다.

또 말씀의 능력이 회복되니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고 이방인들과 섞여 살고 자녀를 이방인들과 결혼시키며 살았는데 이런 생활을 다 청산하게 됩니다. 심지어 애써 재건한 성전에 제사장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도비야가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13:4). 제사에 필요한 거룩한 제물을 보관할 방이 이방인의 물건을 쌓아놓은 창고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고 말씀을 따라 변화되기 시작하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속감이 분명해집니다. 이전에는 대충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과 비슷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누가 뭐래도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임을 깨달아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게 됩니다. 남들이 아무리 유혹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우리 몸(고전 6:19)을 이제 더 이상 더럽히지 않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며(롬 12:1) 거룩하고 성결하게 관리하게 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안에 이러한 말씀의 역사가 정말 충만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두 가지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지난주일 말씀처럼, 느헤미야 시대처럼,  온 성도가 기도하며 한 마음 되어 “일어나 건축하자!”며 새 성전을 짓는 일과, 또한 그 새 성전 안에 채워질 마인드, 우리의 우리교회의 정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가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잘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정말 놀라운 부흥과 개혁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올 한 해 이러한 말씀을 통한 놀라운 부흥과 재건의 역사가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과 직장 위에,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위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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