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자 (시 25:1~2)

  • 잡초 잡초
  • 386
  • 0

첨부 1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자 (시 25:1~2)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감각 기관을 오관(귀, 눈, 입, 코, 피부)이라고 모두가 다 중요한 기관들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배로운 부분을 말한다면 아마도 눈을 말해야 할 것 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그냥 듣는 것보다 텔레비죤을 통해서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말입니다. 세상 만사가 다 보는 것으로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의 맛을 본다고 하고 어떤 물건을 만지면서 만져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 본다고 하고 돈을 계산해 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본다" "시장본다" 모든 것들이 보는 것과 통하는 셈인 것입니다.

시험본다고 말합니다.
고대 철학자의 교훈 가운데 "너의 눈을 밝혀라"는 말이 있읍니다. 눈이 어두우면 어두운 인생이고 눈이 고장나면 고장난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너의 눈이 어두우면 몸 전체가 어두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6:22-23절에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신앙 생활도 눈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에서 우러러 본다 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아래에서 높은 곳을 정중히 쳐다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대상이 인격적 존재일 경우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중히 높이여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아 애가 3:41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마음과 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는 것 즉 전 인격적으로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경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간절함으로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 하나님만이 나의 왕이라는 의미로 절대적 존경과 절대적 경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우러름의 대상입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다 받으시며 찬송 받으실 분입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본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만을 우러러 보는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면 어떤 은혜가 있을 까요? 


1. 주님을 우러러 보면 구원을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바라 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한 죄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인간 구원을 위해 대속제물로 주신 분입니다. 
시 80:19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얼굴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의를 바라봅니다. 

자기 의에 도취되어 자신의 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용감하게 주장합니다. 나는 깨긋하고 선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게는 그리스도가 필요없다 라고 외침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이 죄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양심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양심대로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속이는 자들입니다. 그 양심이란 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이 아니면 자기의 이익과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저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 간다면 나는 문제없어 저 사람 보다는 내가 백번 낫지 않은가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로합니다. 

여러분 결단코 이런 식으로는 구원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 개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것이지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의 신념이나 지도자를 바라봅니다. 아무 종교나 한 가지 믿으면 나름대로 구원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그 어떤 훌륭한 종교도 사상도 인간의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의 죄를 해결하실 분은 인간의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선하고 깨끗한 삶을 산다 해도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양심대로 산다 해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믿어도 그들이 정말로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을 얻으려 하면 그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롬14:10절과 고후 5:10절에 의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시 하나님 앞의 심판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석가모니를 믿는 사람도 공자님을 믿은 사람도 예수를 믿은 사람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아마 그 때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이 떨어질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모두다 지옥형벌이 선고 됩니다. 
그 때 석가모니나 공자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들은 평생 그 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심도 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을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오직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외에 구원받을만한 이름을 이 세상에 주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 그리고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라도 그리고 카톨릭의 교황이라도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신 지고 죽었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죽음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사람을 어느 정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원죄는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추종자들에게 변명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보고 착하게 살랬지 언제 내가 구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니?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주를 섬기며 살았던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변호해 주십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이 비록 지은 죄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내가 이 사람들의 죄 값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벌을 이미 받았으니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우러러 봅시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2. 주를 우러러 보는 영혼에게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 세상은 끓는 가마솥에 기름을 붓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의 일생은 온갖 고난과 괴로움의 가마솥입니다. 그러한 이 땅에서는 결코 평안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이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 4:8절에서 "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안전하고 평안하게 거하게 하시는 분 그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안심하라고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승객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엇습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 소녀 하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얘 너는 무섭지 않니?"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전혀 무섭지 않아요. 우리 아빠가 이 배를 운전하고 하시고 계시거든요."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을 속이고 괴롭히며 여러분을 환난 속으로 끌어갑니까? 그 속에서 낙심하고 절망합니까? 그렇다면 렘 29:11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모든 지혜와 능력을 지니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석에서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가도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분만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결코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환난의 바람을 맞아 요동하나 하나님은 노련한 솜씨로 여러분 인생의 키를 조종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실수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도는 수가 있어도 ....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 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 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쓰러질수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잘 아심일세...

그래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던 시인은 시 4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낙심하며 절망하여 불안할 때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놀라운 평안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3. 주를 우러러 보는 영혼에게 위로가 찾아옵니다.

고후 1:3절에서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를 위로하십니까?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사 49:13절에 보면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고난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대부분 우리 자신들의 잘못이나 실수 죄로 인해 당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당하는 고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위로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세상에 위로받지 않고 살만큼 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엔 위로하지 않고 살만큼 강퍅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들도 위로자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고백합니다. 시 69:20절에 보면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4:1절에는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왕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을 녹여 주고 어루만져 주고 같이 마음 아파 해주고 번민을 풀어줄 진정한 위로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 때 동방에서 최고의 부자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자식들과 재산을 잃어버린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나 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는 반드시 큰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약함, 나의 실패가, 나의 약점, 나의 가난"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위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위로받는 삶보다는 위로하는 삶이 더욱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로도 인간의 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한 말의 위로나 정서적 위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단순한 동정(sympathy)이 아닙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향해 마음을 아파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위로(comfort)는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도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질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41장 10절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오늘도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우러러 봅시다. 그분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억울한 일을 만난 자를 위로하십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질로 손해 보아 억울할 때도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아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는 자의 억울함을 신원하시는 분입십니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예례미아 선지자는 애가서 3:59절에서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시 86:17 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이 돕고 위로 하시므로 미워하는 자가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눈을 열고 우리의 온 몸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봅시다. 

1. 우러러 바라보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2. 우러러 바라보는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3. 우러러 바라보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