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 (왕하 5:8~10)

  • 잡초 잡초
  • 513
  • 0

첨부 1


요단강에 몸을 씻으라 (왕하 5:8~10)


당시에 아람 나라는 이스라엘과 사마리아 북쪽 거의 전부를 장악하면서 상당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군대 장관 나아만이 치명적인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나아만이 아람 나라의 구국 공신인 까닭에 그의 병은 아람 나라 전체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나아만을 통하여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이 얻은 승리를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방인까지도 섭리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히브리적 사유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모스 9장 7절에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비록 문둥병에 걸렸지만 아람 나라에서는 이스라엘과 같이 추방당하지 아니하고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장관직 수행에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까지 도움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그가 아람 왕의 도움을 얻어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에게 도착했습니다. 엘리사는 사자를 나아만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은 

Ⅰ. 복음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있다는 사실 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1) 복음은 작은 자를 통하여 전해졌습니다. 

열왕기하 5장 2절에 『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라고 했습니다.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잡아 온 계집아이 하나가 나아만 장군의 아내에게 수종들고 있었습니다. 

『 여기 떼를 지어 나갔다 』는 말은 몰래 습격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계집아이는 자신을 잡아온 자들에게 복수 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했습니다. 계집아이는 종이 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인을 겸손하게 섬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2) 복음을 믿고 순종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 5장 3절에 『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계집아이는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작은 소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을 이방나라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낮은 자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의 천사는 예수 탄생의 소식을 양치는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했습니다(눅 2:8-14). 당시 사회에서 피지배층인 목자들은 예수 탄생의 소식을 세상에 전했습니다(눅 2:15-20).

그 계집아이는 자기 고향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선지자 곧 엘리사에게 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소녀의 말은 나아만 장군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었고 아람 나라 전체에게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3) 복음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본문 5장 9절에 『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아람 왕에게 계집아이가 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때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보낼테니 가라고 했습니다. 계집아이의 말은 아람 왕에게도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즉시 자기 신하를 시켜서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왕의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글을 읽자마자 옷을 찢으며 분노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문둥병을 고치라는 것은 아람 왕이 이스라엘에 시비 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5:7).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지가 있는 줄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5:8). 참으로 이 말은 비장한 말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엘리사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나아만을 치료하므로 아람 왕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엘리사는 이 일로 인하여 아람 왕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 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아람 왕 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은 


Ⅱ. 구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본문 5장 10절에 『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고 했습니다. 
율법에는 문둥병이 고쳐진 후에 깨끗하게 되었다는 상징적 행위가 몸을 씻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깨끗하게 되기도 전에 몸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예컨대 예수께서 한 소경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요 9:7). 그 소경이 즉시 순종한 결과 눈이 밝아져서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은 완전한 순종과 온전한 인내를 동시에 명령하는 것입니다. 

1) 나아만은 엘리사가 고치는 줄로 알았습니다. 

본문 5장 11절에 『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당처 』는 환부를 의미합니다. 『 손을 흔든다 』는 말은 나아만이 아람 나라에서 흔히 보아왔던 주술적 행위를 말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에게 나와서 상처를 보고 무엇인가 피부적으로 현장감 있는 사실적 치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사람을 보내서 전했으니 나아만으로서는 싱겁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2) 나아만은 강물에 무슨 약효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본문 5장 12절에 『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의 이런 생각은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하나님의 기적의 일차적 요구가 온전한 믿음과 절대 순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신명기 30장 8절에 『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합리적인 생각을 앞세워 불순종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창 22:12-14). 광야에서 뱀에 물린 백성들이 모세가 장대에 단 놋 뱀을 쳐다보지 않고 합리적인 생각을 앞세워 불순종했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민 21:6-9). 
강물에는 문둥병을 치료하는 약효가 없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을 치료하기도 전에 먼저 씻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믿고 요단강물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아만은 이미 치료된 것입니다. 

3) 억지로라도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5장 13절에 『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의 종들은 지극히 존경을 다하여 나아만을 향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심으로 나아만이 요단강에 씻을 것을 권했습니다. 주인을 향한 종들의 충심을 듣고 나아만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일곱 번 씻기 위해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은 


Ⅲ.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그 무엇 때문에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그 무엇 때문에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산물입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하박국 3장 18절에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1) 나아만은 더 나은 몸이 되었습니다. 

본문 5장 14절에 『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일곱 』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여기 『 순종 』은 온전한 인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때 나아만의 나이 30대인데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장법이 아니라 사실로 믿어야 됩니다. 

2)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본문 5장 15-16절에 『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문둥병에서 해방된 나아만은 자기 종자들과 함께 엘리사 앞에 왔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보고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는 달라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강청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나아만이 주는 예물을 거절합니다. 만약에 엘리사가 예물을 받으면 나아만이 생각하기를 자신의 문둥병을 고쳐준 공로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지 아니하고 극히 작게라도 엘리사에게 있는 줄 알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의 이와 같은 행위는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치료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주입시키고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예물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인간의 공로는 없어지고 하나님의 능력만이 높여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걷게 했을 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사도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이러한 기적이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천명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2절에 『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으면 그는 노새 두 마리에 실을 이스라엘 땅의 흙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람 땅에 가서 여호와께만 제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람 왕이 림몬의 당에 들어가서 몸을 굽힐 때 왕이 자신의 손을 의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아만의 솔직한 고백은 직책상 자신도 왕과 함께 몸을 굽힐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후에 엘리사는 나아만의 말에 반응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에게 평안히 가라고 전송했습니다. 

3) 하나님은 자기영광을 자신의 피조물에게 빼앗기지 아니합니다.
 
열왕기하 5장 27절에 『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이스라엘을 떠나는 나아만을 좇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엘리사가 시킨 것처럼 속이고 나아만에게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았습니다. 

게하시는 한 달란트를 요구했는데 나아만은 두 달란트를 주었습니다(5:23). 나아만이 두 달란트를 받으라고 할 때 게하시가 저를 억제했다고 했습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의 말이 너무 뜻밖이고 고마웠지만 그는 엘리사의 입장에 서서 제법 체면을 부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게하시는 이 물건들을 자기 집에 감추었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 앞에 나타나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갔다 왔느냐고 했습니다. 아무데도 가지 아니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5:25). 엘리사는 게하시가 행한 일을 영적 통찰력으로 다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5장 26절에 『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라고 했습니다. 

여기『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는 말은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와 늘 함께 있었는데도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 주인을 속였습니다. 
탐욕은 하나님의 벌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탐욕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게하시가 엘리사 앞을 물러날 때 그에게 문둥병이 눈같이 발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응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하시가 받은 천벌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했다는 이유입니다. 엘리사는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은혜라는 사실을 나아만에게 주입시켰습니다. 그런데 게하시의 탐욕이 이 사실을 무색케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의 행위는 보은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열 문둥이 중에 사례하는 문둥이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찾았습니다. 

내 생각은 인본주의입니다. 내 생각은 합리주의입니다. 내 생각은 겸손하지 못한 교만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내 생각은 영적 문둥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은 치명적인 병든 자의 생각입니다. 교회에서 '내가 무엇을', '내가 어떻게 하고' 하는 등등의 '내가'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하셨다는 등등의 말로 언제나 하나님을 앞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29장 16절에 『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3절에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 『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라고 했습니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을 위한 자기 결단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자신이 했다고 한다든지,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