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빛이 있으라 (창 1:1~5)

  • 잡초 잡초
  • 516
  • 0

첨부 1


빛이 있으라 (창 1:1~5)


2009년 들어 새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새해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들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출발하였는데, 예전의 삶이 아니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십니까? 묵은해나 새해나 다름이 없이 그렇고 그런 날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당신이 목사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하니,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너 장로냐?” 라고 하니,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합니다. “장, 놀기만 하는 사람”이라나, 말도 잘 지어냅니다.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나, 장 놀기만 하는 사람으로 살지 말고, 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하는 한 해로 살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버드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가 쓴 “희망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희망을 주고 있었기에 긴장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버드의대의 제롬 그루프먼 교수의 선생님이자, 선배인 하버드의대의 병리학과 교수이며 학과장님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조지 그리핀박사가 위암으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1987년 조지 선생님의 입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음식을 아주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왔습니다. 그동안 소화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체중이 줄거나 식욕감퇴를 경험한 적도 없었습니다. 바륨 연하검사를 실시해본 결과 위 입구에 주먹 크기의 암덩어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조지 선생은 같은 의사이신 은하라는 한국인 부인과 함께 생검 조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암조직을 보는 순간 아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온통 커다란 기형세포였고, 그 중의 많은 수가 분열 중이었습니다. 일부 세포들은 위의 내벽을 넘어 혈관과 근육벽으로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조지 선생의 가족들 중에는 위암환자가 한 명도 없었고, 위암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육개월 생존율이 2-3%이고, 9개월 생존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성위암이었습니다. 계속해서 검사하는 중에 기관지폐포암도 있었습니다. 이러니 조지 그리핀박사는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인 은하는 병실 밖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조지 선생은 고용량의 화학요법과 집중적인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였습니다. 그런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은 치료받는 중에 세상을 떠나는데, 그런 강력한 치료를 선택하였습니다. 몇 개월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시간조차도 빼앗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지 선생은 치료를 받으면서, 격심한 부작용이 시달리는데, 소화기관이 화상을 입었고, 입술에서 직장까지 여린 조직들이 타들어 가고, 궤양이 생기고, 출혈이 심하였습니다.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모르핀 주사와 정맥주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지선생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였고, 현재는 회중교회에서 신실하게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술을 받고, 재수술을 받으면서, 부인 은하는 수술실 밖에서 밤새 기도하였고, 침상을 지켰습니다. 종양이 수없이 전이 되었기에 흉골 하단을 절제하여 골반 능선까지 수없는 부분을 잘라내었습니다. 외과의사인 제롬은 생각하기를 조지의 치료는 무익한 치료요, 무모할 정도요, 고문이나 다름없는 치료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자 자신은 그런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지는 마지막 치료를 받은 후 부인과 함께 남부인 뉴햄프셔로 이사를 갔습니다. 모든 의료진들이 치료를 포기할 때에, 환자인 조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의사들의 통계수치를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그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정원에 수선화 꽃을 심으면서, 내가 저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을지, 저 꽃으로 내 무덤에 장식될지는 모르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꽃을 심었습니다. 가슴 깊이 정말 살고 싶었고,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심하고 버텨나갔습니다. 

그는 시편 23편을 암송하였습니다. 조지 교수는 점차 회복되면서, 교회와 지역사회의 일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부인 은하와 함께 여행도 다녔고, 병리학회에 나와 강연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제롬은 그의 선배 조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병나기 전보다 더욱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희망전도사가 되었습니다. 희망을 잃은 암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해주고, 성경을 읽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편23편을 즐겨 암송하고 있었고, 자기에게 주신 성경말씀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그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 되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제롬이란 저자는 조지선생님이 암을 치료하고 사시는 것을 보면서, 어떤 환자에게 설혹 치료의 가망이 아주 낮을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과학만이 존재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간섭이 넘치는 시대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새해 희망을 가지십시오. 우리들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여도,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도 살아남았고, 해방의 격동기, 한국전쟁의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이긴 사람들입니다. 

저는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님이 쓰신 여러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미국에서 가장 큰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십니다. 한 때, “쳐치 리포드 매거진”의 독자들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에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희망의 목소리’로 그를 칭송하면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10인에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2004년 긍정의 힘이란 책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웃는 목사로 널리 알려졌는데,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설교자입니다. 그의 설교는 전 세계 150 개 국에서 매달 2천만 명이 시청하고 있습니다. 신학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일약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어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웃는 목사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별명은 삽시간에 파져나갔습니다. TV에서는 그를 닮은 사람이 나와서 똑같이 웃으면서 앞니를 드러내었습니다. 웃기는 많은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답니다. “그렇다고 내 안 웃을 줄 알아? 싫어하면 더 웃어 줄거야”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조엘 오스틴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남들의 비웃음도 웃어넘길 줄 알라고 합니다. 

“이것도 지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지나갈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어려움도 웃어넘길 수 있다고 다짐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성경의 첫 마디, 구약의 창세기를 시작하면서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는 위대한 선언을 접하게 됩니다. “창조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라는 동사입니다. 창조하다는 말은 가만히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정적인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나님 자신이 그의 이름을 소개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야웨 하나님”이라는 말은 과거에도 계시고, 지금도 현존하시고, 미래에도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야 동사의 사역형으로 이해하면 “나는 존재할 것을 존재케 하는 자”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야웨’라는 이름은 ‘하야’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하야라는 동사는 “...이 일어나다”, “...이 되다”는 말입니다. 그 뜻은 ‘쉴 사이 없이 무엇이 되어간다’는 활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웨 하나님이라는 말은 “끊임없이, 쉴 사이 없이 무엇이 되어가는 자”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야웨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쉴 사이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5:17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1절 말씀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1절 말씀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직역하면 “태초에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 하늘들을 그리고 그 땅을” 그러나 이 말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태초라는 말씀은 “베레쉬트”라고 합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맨 처음에, 시초에, 최초에, 시작에, 이 말은 창조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인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태초라는 말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그의 성령이 존재하시던 영원이란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지으시는 그 시간이요, 절대자의 영원이 시간과 만나는 바로 그 역사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한 처음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은 “엘로힘”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 강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 경외해야 할 최고의 존재, 전능하신 자, 가장 존귀한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마음대로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가장 경외해야 할 분이며, 가장 존귀하신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90:2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창1:26-27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을 본떠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따라 지어주신 사람입니다. 

엡2:10을 보시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새번역으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냥 만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들어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설명하는데, 우리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천체도 그렇겠지만, 이 지구라는 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습니다. 이 지구는 아직까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정돈되지 않았고, 흙과 물이 혼합되어 있고, 무가치하게 혼돈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이 지구를 비롯하여 우주 공간은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습니다. 땅이 혼돈하였습니다. 생명체가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은 질서가 필요하였습니다. 정리하고, 정돈해야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땅이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영이란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여 바람이나, 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바람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물 위에 바람을 일으키신 것을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루아흐는 성령을 말합니다. 성삼위일체의 제3위 하나님이 되시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성삼위 하나님이 서로 협력하시는 중에 창조의 사역이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시니라”는 말은 “움직이셨다, 선회하다”는 말입니다. 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면서 그의 날개로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우주를 아름답게 만드시기 위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포근하게 감싸 안으시고, 돌보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실 때에 직접 손으로 만드셨는지, 명령하셨는지는 잘 모르나, 창조의 역사에 있어 빛은 명령하시므로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곧 능력이요, 생명이요,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최초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는 명령이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명령문입니다. “빛이 생겨라”는 말씀입니다. 간결한 명령 한 마디로 빛이 생겼습니다. 이 빛은 햇빛이나 달빛이 아닌 독립된 빛으로, 빛을 가능하게 하시는 생명의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여기 빛이란 것은 “에너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빛은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며,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입니다. 에너지가 없으면 사물의 질서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빛이 들어오면서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세계에서 소립자 운동이 시작됨으로써 질료로부터 에너지가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는데,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고 합니다. 이것을 등가라고 하였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따라 질료로부터 에너지가 나타남으로 우주와 만물에 비로소 질서가 잡히고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무질서하고 혼합되어 있던 지구는 에너지가 나타남으로 물질은 드디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빛 에너지에 의하여 원자구조의 핵 주위에 전자는 궤도를 찾고 운동하기 시작하였으며, 천체들은 자전과 공전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흑암 중에 밝은 부분이 생겨 낮과 밤을 구분하는 질서가 나타났습니다. 물과 흙으로 가득 차 있던 지구는 대기권의 궁창을 두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4-5절입니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바라보실 때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좋았다는 말씀은 “토브”라고 하는데, ‘좋다’, ‘아름답다’, ‘선하다’, ‘충실하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심히 좋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유일의 법칙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창세기 첫 장을 놓고 많은 것을 믿어야 하고 나의 신앙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우리의 사도신경 신앙고백에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하고 존귀하게 영광 돌려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지금도 온 우주 만물을 보존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있습니다. 

금년 일년은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해 보자는 말은 해를 보자, 빛 아래에서 살겠다는 말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도전하십시오. 금년 일 년 동안 주님을 바라보시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고,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우리에게 참 빛이신 우리 주님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