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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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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17~44)


할렐루야! 
복된 자리,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지독한 감기가 돌고 있습니다.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이미 감기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번 감기는 목이 아프고 기침이 심하고 열이 나고 … 전염도 잘 된다고 합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전염되는 것은 감기만이 아닙니다.
- 졸음도 전염됩니다. 예배시간에 보면 조는 사람은 꼭 몰려있습니다. 
- 하품도 옆 사람에게 전염됩니다. 
한 사람이 하품을 시작하면 그 주변 사람들이 차례대로 하품을 합니다. 

이런 것만 전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열정도 전염이 됩니다. 
제가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열정으로 살자고 하니까
여러분도 생각이 달라지고 열정으로 살기를 결심하고 열정으로 사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꿈과 비전을 품고 열정으로 사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열정을 전하며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은 예수님과 특별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절에 보면 
“ …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요 11:2)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했습니다.(요11:3) 
그런 나사로가 병들어 심각한 상태가 되자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께 알려 드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 교회에 등록하고 적을 둔 성도들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병들었을 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 
나사로의 누이들처럼 교회(목회자)에 연락해 도움을 청하고 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원에 입원하여 다 치료받고 퇴원한 후에
‘아유 죽는 줄 알았다고 …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고 하는데 
얘기안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하지 말아야지 
듣는 사람 미안하게 왜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원했을 때, 많이 아플 때 연락해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요청하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사람입니다. 
혼자 다 어려움 당해놓고 왜 늦게 연락합니까.

또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며 …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혼자 장례 다 치루고 와서 
나중에 얘기하는데 … 나중에 왜 얘기합니까. 미안하게 …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하는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가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랑을 베풀고 받을 줄도 아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기 오빠가 아프자 예수님께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셨는데도
무슨 일인지 즉시 나사로에게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신 뒤에(요11:6)
나사로에게로 향하셨습니다.(요11:11)
예수님이 멀리 계셨었는지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습니다(요11:17).

- 나사로가 위독하여 사람이 예수님께 연락하러 갔고,
- 나사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머물던 곳에서 이틀 더 머무시다 움직이셨고
- 예수님이 도착해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된 것을 보아 
나사로는 누이들이 병든 것을 알리기 위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직후에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9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버니의 일로 위문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문하러 간 것을 보면 나사로와 그 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생활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사는 동안 덕을 끼치며/남에게 유익을 주며/
은혜를 베풀며 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인간, 잘 죽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 그리고 슬픔 당한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슬픔을 당했다면 찾아가 위로하고 
미처 찾아가지 못했으면 나중에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는 아무 반응 없이 살다가 자기네 일 당하고 난 뒤에 
‘아무도 안오네. 우리교회는 사랑이 없어.’라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베풀어야 하지만
대부분 …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함께 슬퍼할 줄 아는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로 사시기 바랍니다. 

벌써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조문객을 맞고 있는 나사로 집에 예수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오빠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대했던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았습니다(20절).
“ …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1:21) 
마르다는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자기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2절에 보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1:32) 


이제라도 …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그렇게만 말하고 그치지 않았습니다.
22절에 마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22) 
마르다는 이미 나사로는 죽었지만 … 예수님이 늦게 오셨지만 …
이제라도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실 줄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분명하고 틀림없이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니 소망이 있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 …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요 11:23)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 …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 고 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또 안다고 하며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리라”(요 11:23)고 하신 것을
마지막 날, 세상 종말의 때 다시 살아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26절에,
“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육체와 상관없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 부활 신앙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돌을 옮기라

그때는 사람이 죽으면 돌을 뚫어 구멍을 내거나 
자연동굴을 찾아 무덤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무덤 입구는 돌로 막았습니다.

당시 무덤은 언제나 열고 닫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유족들이 원하기만 하면 무덤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시체가 다 썩으면 뼈를 수습하여 
유골함에 넣어 무덤 한 쪽에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무덤은 개인의 무덤이라기보다 가족 전체의 무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 세 사람의 시신을 함께 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기라고 하신 것은
우리나라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예수님은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을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 …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했습니다.

- 22절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든 구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 27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던 마르다인데 … 
정작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려고 하자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고 … 냄새가 난다고 … 하며 예수님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나사로/마르다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비전과 열정을 품고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다는 비전 
- 예수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 된 사람답게 살겠다는 비전 
- 세상의 빛 되고 소금되는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겠다는 비전
-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겠다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열정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비전을 향하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가 있으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 평지가 되리라”(슥 4:7)선포하며 가자고 했습니다. 
산을 깎고 터널을 뚫더라도 비전을 향해 열정을 다해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두려움을 만나면 기도하고
한 숨 쉬던 입은 찬송하고, 모든 일을 ‘쎄게’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처럼 먼 훗날에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먼 훗날의 믿음”으로는 날마다 전쟁 같은 세상 삶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만나는 큰 산 같은 장애들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
위기를 만나도 밀어 제치고 가야 하는데 …
‘이미 때가 지났습니다.’, ‘벌써 실패의 냄새가 납니다.’
‘불가능합니다.’하며 기적을/능력을 막아서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많은 사람들이 
- 입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지는 못합니다. 
-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막상 힘들어 넘어질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 구원받았고/하나님의 자녀 되었고/천국 백성이 된 것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이 땅에서 구원받은 사람답게/하나님 자녀답게/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답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비전과 열정으로 승리하는 2009년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 머리로 판단하고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불신앙의 돌’을 먼저 옮겨 놓아야 합니다.(요11:39) 
우리가 우선적으로 열정을 쏟아야 할 일은
하나님의 기적을 가로 막는 돌을 옮기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을 듣고 
썩어 냄새나는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돌을 옮기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합니다.
‘열정도 좋지만 이미 끝났어’, ‘벌서 냄새 나는데 뭘 해’
‘아무리 열정을 품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지 나사로를 살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돌을 옮기라’는 말을 나사로를 살리라는 말로 착각하여 …
‘안된다, 못한다, 안되겠다, 어렵다, 끝났다, 냄새난다’… 하는
믿음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
우리의 작은 머리로 판단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기준으로 하여 예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전을 향해 가는 우리 앞에 어려움과 문제는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돌을 옮겨야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부정적인 말의 돌을 옮겨야 합니다.
37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앞 못 보는 사람의 눈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나?”(요 11:37, 쉬운 성경)
하며 빈정거렸습니다.

우리들 중에 부정적인 말/빈정대는 말/비꼬는 말/
낙심케 하는 말 … 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봤잖아’, ‘언젠 안 해 봤나?’, ‘안될 거야. 괜히 힘쓰지 마’
이런 부정적인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잠언에 보면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고 했습니다.(잠13:2) 
우리 입의 말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습니다.
또 민수기에, “여호와의 말씀에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 행하리니” 했습니다.(민 14:28)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
‘틀렸어, 안돼 …’라고 계속해서 말한다면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런 말을 들을 귀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계속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막4:9, 막4:23, 눅 8:8)

저에게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들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그만 그만하세요. 저 오늘 기분 좋은 날인데 
좋은 얘기 듣고 싶어요. 나쁜 이야기 하지 마세요’
당황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든 막으세요. 
들어서 믿음이 자랍니까, 경제가 좋아집니까!

긍정심리학의 대부라 불리는 
‘마틴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력감, 우울증, 비관주의에 빠지는 원인도 부정적인 언어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또 ‘인생에서 능력이나 재능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긍정적인 언어습관이다’라고 했습니다.
<매일경제 2008년 9월 3일 기사 참조>

여러분은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사십니까?
금년 들어 어떤 말을 많이 하셨습니까?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0절 봅니다. 
“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요 11:40)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자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 하셨습니다.

2009년, 비전과 열정을 품고 믿음으로 살려는 우리에게도
살아나는 역사가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 순종으로, 열정으로 … 가로막은 돌을 옮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의심으로 가로 막은 돌 … 부정적인 언어와 생각의 돌 …
게으름의 돌 …, 낙심의 돌 … 분노의 돌, 우리가 옮겨야 합니다. 
내가 옮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 옮겨 주시지 않습니다.

- 그런 돌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각자 각자 속에 있습니다.
믿음을 가로 막은 돌, 소망을 가로 막은 돌
사랑을 가로 막은 돌, 열정을 가로 막은 돌 …
누가 치워야 합니까? 누가 옮겨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내가 해야 합니다.

- 그런 돌은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도 있습니다.
부부간에, 가족 간에 사랑을 가로 막은 돌,
용서를 가로 막은 돌, 이해를 가로 막은 돌,
평안을 가로 막은 돌, 행복을 가로 막은 돌 … 
누가 치워야 합니까? 누가 옮겨야 합니까?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무례히 행치 않고 …
사랑으로 … 자기가, 각자 치워야 합니다.
내가 먼저 돌문을 치워야 주님이 나오라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 그런 돌은 우리의 일터에도 있습니다.
용기를 가로 막은 돌, 열심을 가로 막은 돌,
노력을 가로 막은 돌, 성공과 승리를 가로 막은 돌,
성실을 가로 막은 돌, 희망을 가로 막은 돌
어렵게 하고/낙심케 하고/포기하게 하고/한 숨 쉬게 하는 돌 …
누가 치워야 합니까? 누가 옮겨야 합니까?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것은 내가/우리가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그런 돌은 있습니다.
-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은 돌, 
- 소망을 가로 막은 돌, 
- 예배를 막고 주일 성수를 못하게 하는 돌,
- 설교를 듣고자 하는 믿음의 귀를 막아버린 돌
- 교회 나오게 하고 싶은 마음을 막아버린 돌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막아버린 돌
- 봉사하지 못하게 하는 돌 … 누가 치워야 합니까?
우리들 각자가 믿음으로/순종으로 해야 합니다.

제가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을 듣고, 몰랐던 말씀을 깨달으면 
‘아 하나님께서 내게 깨닫게 해주셨구나.
이제 알았으니 바르게 해야지’하는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찔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나보고 하는 말씀 같으네. 콕콕 찌르시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며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콕콕 찌르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누가 가서 일렀지?’ 한다면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콕콕 찌르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어찌할꼬?’하며 회개했습니다.

오늘도 말씀 듣는 중에 몰랐던 것을 깨닫는다면 감사하시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면 고치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돌은 다 갖고 있습니다.
‘안들어’하고 자기가 ‘귀’잡고 있으니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각자 자기 돌을 치워야 합니다. 
돌을 치워야 예수님이 소리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돌을 치워야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오라고 하십니다.
- 갇혀 있지 말고 나와라
- 앉아 있지 말고 나와라 
- 누워 있지 말고 나와라 
- 묶여 있지 말고 나와라 
나사로에게 소리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소리치십니다.
“나오너라”, “나오너라”
그 믿음과 순종으로 갇히고 막힌 곳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2009년의 여러분의 삶이 열리고 풀리고, 살아나는 
믿음의 삶, 승리의 삶, 간증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말씀을 듣는 자리에 나오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돌을 옮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을 붙드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도 돌문을 열어젖히지 못한 이들은 믿음으로 열어젖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돌을 옮기게 하여 주옵소서.
그럼으로 주님의 ‘나오너라 나오너라’ 하시는 음성을 듣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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