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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의 사람, 갈렙 (수 1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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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교회를 섬길 임원들을 임명하는 주일입니다.  

이미 임원으로 교회를 섬기는 분들과 오늘 새롭게 임원으로 임명받는 교우들이 닮아야할 성경의 인물 한분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렙’이란 사람입니다. 
여러분, 갈렙이란 사람이 어떤 분인지 아시지요? 
제가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민수기 13, 1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가 그들이 점령해서 살아갈 가나안 땅을 미리 알아보기 위하여 각 지파에서 한명씩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그 땅이 살기 좋은지 나쁜지, 그 땅의 성들이 산성인지 진영인지, 나무와 숲은 있는지 없는지를 자세히 조사해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악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울고불고,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불평합니다. 

백성들 가운데 반란이 일어날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2명의 다른 정탐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면서 호소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6-9)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 편에 섰던 사람입니다. 
갈렙이 45년이란 세월이 지난 다음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갈렙은 그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갈렙은 지고도 이긴 사람이며, 잃고도 얻은 사람이며, 섬김으로 높아진 사람이며, 아낌없이 남을 위해 박수를 쳐주고 아낌없이 박수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갈렙이란 인물은 연구하면 할수록 매력을 주는 원숙한 인격자입니다. 
그의 인격이 얼마나 원숙했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모세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가? 
여호수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갈렙이 될 것인가? 
성경을 아시는 여러 교우들께서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당시에는 여호수아보다 갈렙이 앞섰습니다. 
영향력이 더 많았다는 것이지요. 
성경을 찾아봅시다. 

민 14:30절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갈렙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또 민 32:12절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여기서도 갈렙은 여호수아보다 앞섰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뒤를 잇는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이때의 갈렙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경쟁에 앞섰던 사람이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날 때의 그 참담한 기분! 

보통 사람 같으면 광야시대의 원로라는 이름으로 어깃장을 피워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심사가 뒤틀려 여호수아의 지도력에 반항하거나 훼방을 놓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공동체에서 뛰쳐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경선에서 지면 온갖 핑계를 대고 뛰쳐나가고, 공천에서 탈락하면 그 집단에서 뛰쳐나가고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잖아요? 

그러나 갈렙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여호수아 뒤에 물러서서 민족의 내일을 위하여 45년 동안 묵묵히 봉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85세 된 갈렙이 그의 마지막 생애를 민족의 제단에 바치려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갈렙은 원숙한 인격자입니다. 
갈렙 같은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갈렙은 어떤 인물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갈렙은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민 14:24절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갈렙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도 다르게 살기로 결심하길 바랍니다. 

‘성도!’  
우리를 성도라고 부르잖아요. 
성도란 ‘거룩한 무리’란 뜻입니다. 
그런데 ‘거룩하다’는 말은 희랍어로 ‘하기오스, hagios’인데, 그 뜻은 ‘구별되다’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란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로서,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께서는 롬 12:2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이 세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세대의 여러 가지 특징 중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1) 물질적인 삶 

사람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밤을 새웁니다. 
사람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인격과 영혼을 위해서는 삶의 배려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특징입니다. 

제가 사역했던 이집트만 하더라도 콥틱 수도사들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평생을 사막 한가운데서 은둔생활을 하며 수도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검은 수도복을 입고, 사막 한가운데서 수도하는 수도사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볼 것도 못 보고, 먹을 것도 못 먹고, 왜 저런 고생을 하지?” 

그런데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금세 깨닫게 됩니다. 
물질로 찌든 내 눈, 갖가지 욕망으로 뒤엉켜진 내 마음, 방향도 없이 끝도 없이 좇아가는 내 소욕의 덩어리가 그들의 눈앞에서 서서히 노출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은 얼마나 더 순결해지고 있는지, 내 인격은 얼마나 더 성화되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얼마나 더 완전한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2) 내세를 거부하는 삶 

사람들은 현세를 위해서는 저축도 하고, 기술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사귑니다. 
그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세를 위한 삶의 배려가 없습니다. 

물질이 풍부하면 할수록, 내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은 오늘에만 몰두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좀 더 즐거운 것은 없을까?’, ‘좀 더 짜릿한 것은 없을까?’, ‘좀 더 재미있는 것은 없을까?’, ‘좀 더 멋있는 것은 없을까?’에 있습니다. 

초대교의 문서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 중에서도 두 부류의 신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오늘을 바라보는 신자들, 또 하나는 그 날을 바라보고 있는 신자들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읽어드리면, “오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들, 그들은 오늘 나의 신앙이 당장 보상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오늘 나의 신앙이 수반하는 고난 때문에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더러는 타락하고 주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신앙의 초점이 오늘에 머물렀던 사람들, 오늘이 내 삶의 전부였던 사람들은 타협하거나, 타락하거나, 주님의 곁은 떠났다는 것이지요. 

이 문서는 계속 말합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들, 그 날 주님 앞에 서는 그 시간을 생각했던 사람들, 그 날 주의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내 봉사와 내 공력의 모든 결과를 시험하는 그 날, 내 신랑 되신 주님 앞에서 내 삶을 결산하는 그 날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들은 로마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현세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우리들은 내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오늘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우리들은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갈렙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복음성가 :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찬송이 천국예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찬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천국에 해같이 빛나리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2.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입니다. 

본문 수 14:8절 “…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수 14:9절 “…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은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수 14:14절 “…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민 32:12절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온전히!’라는 단어가 갈렙을 소개하는 말씀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온전히!’라는 단어는 ‘한마음으로’, ‘한결같은’라는 뜻이 있습니다. 


1) ‘한 마음으로’ 

갈렙은 하나님을 좇는데 있어서 ‘한 마음’으로 좇았습니다. 
목적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관심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 부분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고, 다른 부분에는 세상 욕심이 있어서 주님을 따르다가도 곁눈질하거나, 주님을 따르다가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창19장에 나오는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소돔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유황불로 멸망될 때, 롯을 구출하는 천사는 그 가족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창 19:7절 “그 사람(천사)들이 그들(롯의 가족)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런데 26절을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마음이 갈리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쫓았어야 하는데 두고 온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2) ‘한결같이’ 

‘온전히’라는 말은, ‘한결같은’이란 뜻이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 같습니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갈렙의 신앙자세였습니다. 

바깥에서 우리 교회를 칭찬하는 말 중에 “한결같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리 교우들을 가만히 보면 다들 한결같습니다. 
뭐 맡았다고 설치지도 않고, 안 맡았다고 토라지지도 않습니다. 
잘해준다고 간을 빼줄 듯이 하지도 않지만 뭐가 틀린다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습니다. 
한결같습니다. 
참 좋아요. 

딤후 4:10절에서 바울사도께서는 이런 슬픈 말씀을 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가 어떤 사람입니까?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바울사도께서는 로마의 복음화를 위해 바울 곁에 있었던 동료를 이렇게 적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또 골 4:14절에 보면, 바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인물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러니까,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는 바울, 그 오른편에는 누가가 있었고, 왼편에는 데마가 있었다.”라는 말처럼, 바울과 함께 사역했던 사람이 바로 데마였습니다. 

바로 그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좋게 시작하였다가 나쁘게 끝났습니다. 
옳게 시작하였다가 그르게 끝났습니다. 
충성으로 시작하였다가 배신으로 끝났습니다. 
열심히 시작하였다가 나태함으로 끝났습니다. 
한결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한결 같았습니다. 


3. 갈렙은 영원히 젊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수 14:12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산지에는 아낙자손이 살고 있습니다. 
아낙자손은 가나안땅에 살고 있는 족속 중에 가장 강대한 족속입니다. 
얼마나 강대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우리는 그들에 비교하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산 위에 쌓아 올린 산성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85세의 원로지도자, 갈렙은 맨몸으로 올라가기도 벅찬 산지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젊은 족장들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 땅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렙을 영원히 젊게 산 사람’이라고 별명을 붙입니다. 

그러면 그가 젊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삶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열정적이게 하고, 자신만만하게 하고, 꿈의 사람이 되게 하고, 힘차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본문 수 14:12절이 그 해답을 줍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즉 하나님이 내 편 되시면 내 자신의 사정과 바깥 사정에 관계없이 그 성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 되시면, 내가 힘이 없던 나이가 많든 문제가 안 됩니다. 

그 성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 되시면, 그 성이 크든 높든 문제가 안 됩니다. 
그 성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제지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갈렙은 이 믿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갈렙 같은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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