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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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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왕하 4:1~7)

 
선지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남편이 많은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채권자가 그의 두 아들을 종으로 잡아가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두 아들과 함께 마을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있는 기름을 그릇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대로 기름을 부었으나 끝없이 계속 나와서 빌려 온 그릇을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머지로 생활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1. 문제 앞에 선 인간

세상을 사는 사람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지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관점에서 죄 때문에 당하는 벌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지 생도의 아내처럼 선한 목적의 삶을 사는 사람도 시련은 있습니다.

1) 성도에게도 고난은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과 축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지키시고(신 32:10), 손바닥에 아로새긴 보배처럼(사 49:16) 아끼시며, 물 속에서나 불 가운데서도 죽음을 면하게 보호하신다고 하였습니다(사 43:1-4). 

그렇지만 세상에서는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여기 엘리사를 찾아온 사람은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 한 여인”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주님을 위해서 헌신자의 삶을 살고자 다짐하는 사람에게 시련이 온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여인이 두 아들마저 빼앗기게 되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고난이 있다는 것과 거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약 1:12).

2)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2절). 그 말은 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해결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엘리사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가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 말은 사실입니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빚을 갚을 만큼 돈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매사를 육신의 범주에서 판단하곤 합니다(롬 8:5). 그것은 결국 절망적인 판단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욥 2:9).

3) 영적인 안목을 가져야 됩니다.

엘리사의 질문을 받은 여인이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고 했을 때 엘리사는 즉시 그에게 희망적인 명령을 하였습니다(3절). 그 여인은 한 그릇의 기름이 그 많은 부채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보았지만, 엘리사는 그것을 물질적 가치가 아닌 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성경은 ‘기름’을 성령으로 상징합니다(삼상 16:13). 

성령으로 거듭 난 사람의 눈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특수한 은혜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실상은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고전 15:10). 바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고후 6:10).


2. 말씀 앞에 선 인간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그에게 나아오는 사람은 어떤 말씀이든지 거기에 자신을 맡겨야 됩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베드로를 초청하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자 엎드렸습니다(행 10:33).

1) 믿음으로 수용해야 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남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렘 42:3).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왕과 백성이 이방인에게 끌려가는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예레미야 42:6에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경우 보잘 것 없는 한 그릇 기름을 두고 이웃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라는 말을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히 11:1).

2) 그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순종을 통하여 그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하였습니다(약 2:22). 믿음에 따르는 순종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 여인도 “너는 밖으로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고 하는 엘리사의 명령에 어떤 이유나 조건도 달지 아니하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한 그릇 기름으로 그 많은 그릇들에 붓게 하였을 때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비는 묵묵히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체험하게 됩니다. 가나 혼인집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을 때 연회장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았다고 하였습니다(요 2:9).

3) 빈 그릇을 준비해야 됩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두 아들과 함께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적은 양의 기름이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행사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순종하는 여인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이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금도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빈 그릇을 준비해야 됩니다. 빈 그릇은 마음을 비우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3). 어차피 준비할 바에야 큰 그릇을 준비하여야 됩니다.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믿음의 도량이 큰 사람이라야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은혜 앞에 선 인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필요에 따라서 베풀 수 있는 은혜의 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사 55:1-3). 다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고후 6:1-2).

1) 은혜의 충만함을 깨닫게 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왔던 이 여인은 결국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가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삶의 목표와 방향을 확실하게 붙잡기만 하면 병도 약이 되고 시련도 축복의 근거가 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겨우 한 그릇에 불과한 기름이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준비한 것만큼 다 채우도록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풍성함과 그침 없이 이어지는 지속성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계속되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삶을 일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어떤 조건이나 자격에 상관없이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를 받은 사람일 경우 거기에 걸맞는 삶의 책임이 있습니다. 

2절에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가 져야할 짐을 남에게 떠넘기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7절에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순리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돈이 생겼으면 즉시 빚부터 갚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 다음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입니다.

3) 베풀며 살아야 됩니다.

성경은 은혜 받은 사람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 받은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나누며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곧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Noblesse Obilige)을 뜻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자기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3:11에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만 바라지 말고 오히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힘쓰라고 하였습니다(엡 4:28). 

모름지기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가 받은 복으로 다른 사람이 같이 누리게 하는 행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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