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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너진 성벽의 재건 : 성전건축 (느 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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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벽의 재건 : 성전건축 (느 2:11~20)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이 환경미화원 다섯 명을 채용하려고 지원을 받아보니 모두 63명이 지원해서 12.6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63명 가운데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11명이었고 그 중에는 경북에 있는 한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36세 남자도 지원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신문에는 환경미화원에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지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제는 대졸자는 물론이요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지원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는 12일 체력 검정과 20일 면접시험을 치른 뒤 22일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 박사학위 소지자가 합격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만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해도 사람들이 아직 궂은일이나 힘든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고들 하는데 여전히 초봉이 적거나 힘든 일, 어려운 일, 위험한 일, 소위 3D 업종이라고 부르는 일을 잘 안 하려 들어서 이런 분야에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물리학 박사든 어떤 학위를 받았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내가 그 일을 하겠노라고 나선 이 사람은 용감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젊은이들 가치관이 바뀌어야 이 나라가 삽니다. 경제위기는 돈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큰 위기는 사람들의 생각과 자세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다, 어렵다 해도 여전히 체면 따지고, 대우 따지고, 폼 잡고 하느라 힘든 일 어려운 일을 꺼린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보다 좀 고생을 더 해봐야 정신 차릴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힘들어도 우리 자세가 바뀌고 우리 생각이 건강해지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가진 사람을 찾아서 들어 쓰십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그 나라, 그 민족은 희망이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학개와 스가랴, 그리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같은 사람들을 찾아 택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들은 망해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하루아침에 재건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먼저 무너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그 다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맨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영적으로 다시 세우는 과정을 차근차근 거치면서 완전히 절망하고 쓰러졌던 신앙 공동체를 재건해 갔던 것입니다.

지난주 이들 가운데 첫 번째로 느헤미야 총독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을 말씀드리면서 느헤미야는 겉으로 보이는 성벽을 재건하는 것보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잃고 “우리는 이제 틀렸어, 우리는 안 돼” 하고 절망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그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재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줄 알고 이 일을 해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됩니다. 자세가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살아서, 힘들어서, 바빠서 못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헌신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올 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무너진 성벽을 못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무너져서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부터 바로 서야 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느헤미야가 어떻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 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새 성전 건축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과정을 치밀하게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또한 성전 건축뿐 아니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는 일도, 나아가 나라와 민족이 바로 서는 것도 모두가 이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재건의 첫 번째 과정 : 치밀한 준비와 사전 답사(11~16절)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궁전에서 술 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한 끝에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을 띤 유대 총독으로 가게 됩니다. 유대 총독도 낮은 지위는 아니지만 바사 제국의 임금의 최측근에서 실세 노릇을 하는 술 관원과 비길 바 못되는 한직입니다. 

느헤미야가 경제가 어렵고 취직이 어려워도 여전히 봉급 따지고 체면 따지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부류였다면 이렇게 못 합니다. 나라를 살려야겠기에, 민족을 구해야 하겠기에 체면이고 편한 자리고 다 버리고 유다 총독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을 알아보시고 택하여 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천성이 아주 신중하고 치밀한 사람입니다. 유다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예루살렘 성벽재건공사가 아무리 중요하고 급하다 해도 곧바로 그 일을 서둘러 시작하지 않고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부임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흘 동안 마음속에 청사진을 그려본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느헤미야가 사흘 동안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계획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나갔다는 뜻입니다. 마치 설계도를 그리듯 자신이 앞으로 성벽재건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할 것인지 하나하나 그려나간 것입니다.

‘로드맵’(road map)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전자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입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운전해 갈 때 미리 이 로드맵을 살펴보며 “아, 내가 여기를 가려면 어떤 길을 따라 가다가 어디서 도로를 바꿔 타고 이렇게 가면 되겠구나” 하고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는 것도 다 성격대로 합니다. 급한 사람은 급하게 운전하고 느긋한 사람은 느긋하게 합니다. 계획성이 있는 사람은 출발하기 전에 이 로드맵을 살펴보고 미리 계획을 한 후에 떠나지만 어떤 사람은 무조건 가고 봅니다. 그러다가 엉뚱한 길로 들어서 헤매기도 하고 시간을 낭비합니다. 

우리가 큰 일, 중요한 일을 할 때일수록 우리 마음에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급하게 서둘러서는 될 일도 안 됩니다. 좀 여유를 가지고 치밀하게 미리 계획을 세우고 로드맵을 그려보는 겁니다.

이 사흘의 준비기간이 끝나자 느헤미야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2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한밤중에 일어나 몇몇 측근들만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수련회 답사 하듯 미리 한 바퀴 돌며 답사한 것입니다. 치밀하고 신중한 느헤미야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더욱이 느헤미야는 자신의 계획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들 다 자는 한밤중을 택해 답사를 합니다. 몇몇 측근들만 데리고 행여나 소리가 날까 나귀도 자기가 탄 한 마리만 끌고 갑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이런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사를 해보니 예루살렘성의 형편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성벽을 온통 무너지고 성문은 다 불타버렸습니다. 샘문과 실로암 연못을 지난 후부터는 무너져 내린 성벽의 잔해로 길이 메워져서 나귀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상황을 보면서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실망이 아니라 그러기에 더더욱 성벽을 재건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렇게 답사를 다녀온 후 성벽재건에 대한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데도 16절에 보면 방백들, 즉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알리지 않습니다. 

17절 첫 머리에 ‘후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최소한 며칠 동안은 이를 알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틀림없이 그 기간 동안 느헤미야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서두르지 말자.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요 나 혼자 의지를 불태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 일은 오직 온 백성이 함께 힘을 모아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잘 설득해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연구해 보자.” 

저도 목회하면서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하고 치밀한 계획 없이 일단 먼저 성도들에게 말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발표해서 일을 망치거나 중간에 흐지부지 하게 된 일말입니다. 기왕이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급하게 발표하기 전에 치밀하고 분명한 계획을 세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듭니다. 이런 시행착오가 없게 하려고 느헤미야는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느헤미야가 실행한 성벽재건의 첫 번째 과정입니다.


❚재건의 두 번째 과정 : 성벽재건을 결의함(17~18절)

성벽재건의 두 번째 과정은 이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치밀하고 신중한 과정을 거친 후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과 지도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계획을 상세하고도 분명하게 말해줌으로 결국 그들 스스로 “일어나 건축하자”고 결의하기에 이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똑똑하고 잘 난 사람 혼자나 몇몇이 일을 빠르게 산뜻하게 이루는 것보다 좀 느리더라도 좋으니, 좀 천천히 가도 좋으니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선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성벽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이 엄청난 일을 느헤미야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성벽을 답사할 때 데리고 간 측근들 몇 명만 데리고도 안 됩니다. 이럴 때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권력’입니다. 느헤미야는 얼마든지 총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백성들에게 성벽재건을 강요하고 명령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함께 일하자는 의지를 갖게 만듭니다. 권력과 힘을 이용해 명령하면 당장은 좀 하는 척 할 수도 있지만 그 일이 잘 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백성들 스스로 성전을 재건하자는 생각이 생기도록 만든 것입니다. 17절에 보니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이렇게 설득합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이 말은 지금 이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문제임을 환기시킨 것입니다. 이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는 의식이 없이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나올 리 만무합니다. “이 일은, 이 수치와 곤경은 우리 자신이 당한 것이지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득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내’ 교회입니다. 남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은 내 일입니다. 새로운 성전을 짓는 일도, 교회가 발전하고 부흥하는 것도 결국 목사나 장로나 몇몇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내 일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함께 이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느헤미야가 한 말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입니다. 그가 ‘수치’라는 말을 쓴 것은 다분히 의도가 있습니다. 자존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존심, 자부심이 다 무너지고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있는 처지를 상기시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불일 듯 일어나게 하는 의도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민족적인 자부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잠자던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 속에 다시 하나님의 백성, 선민으로서의 자존심과 성전 재건에 대한 의지가 불일 듯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거룩한’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입니다. 우스운 사람들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우스운 교회 아닙니다. 못나고 능력 없는 그런 교회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니까요. 자랑스러운 교회 성도니까요. 자존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그리고는 마지막에서야 지금까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또 아닥사스다 왕이 성벽재건을 전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밝힙니다. 하나님이 선한 손이 도우시고, 또 바사의 왕이 직접 후원하겠다니 이 정도면 누구나 “우리 한 번 해봅시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나 다를까,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말합니다. 우리 한 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모두 힘을 모아서 이 일을 한 번 해보자는 의욕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참된 동력(에너지)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얼마든지 유대 총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백성들에게 성벽재건을 강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설득해 그들 스스로 성전을 재건하자는 생각이 들도록 만듭니다. 자발성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자발성에서 나온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결심하고 일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지금 기도하고 꿈꾸고 있는 성전건축은 이런 과정이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려는 마음, 의지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건의 세 번째 과정 : 원수들의 방해를 이겨냄(19~20절)

이제 마지막 세 번째 과정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할 때면 어김없이 원수들의 방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신앙이 좀 자라려고 하면 반드시 우리의 원수인 사탄이 훼방을 놓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일을 만들어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이 자라면 마귀는 큰 일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방해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가 좀 발전하고 성장하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가 시기합니다. 어려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게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지을 때도 반드시 방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해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절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자고 결의하자 사마리아 사람인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비웃고 방해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이 이 지역을 지배하며 권력을 누리며 살던 사람들이기에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이 생기면 큰일 난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방해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부터 보면 이들은 끝까지 온갖 수단방법을 총동원해 성벽재건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밖에서만 이런 원수들의 방해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6장에 가면 이스라엘 지도자와 귀족들 중에도, 심지어 예언자나 제사장 중에도 이들과 결탁하여 느헤미야를 해치고 성벽재건을 방해하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내부의 적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뜻하신 예루살렘 성벽재건은 안팎으로 수많은 방해와 공격을 받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이 좀 자라려고 하면, 교회가 좀 흥왕하고 잘되려고 하면, 또 성전건축이나 중요한 일들을 하려다 보면 반드시 방해와 공격이 있는데 교회 밖에서는 원수 마귀들의 집요한 공격과 방해가 계속되고 심지어 교회 내부에서도 방해가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다른 사람은 다 비웃도 손가락질을 해도 성도들끼리는 그러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도 교회에서 좀 중요한 일을 하려다 보면 성도들 중에도 비록 일부기는 하지만 비웃고 조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쓸데없이 그런 일을 하냐”고 말입니다. 심지어 손가락질도 합니다. “그렇게 밖에 못 하냐”고요. 좀 열심히 해보려는 분들, 자기 시간과 물질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너무도 쉽게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심심치 않게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앞장서 해보려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들고 힘들게 합니다. 느헤미야 때처럼 모든 성도가 한 마음 되어 힘을 합해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정말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본문 마지막절인 20절에 보면 이런 원수들에게 느헤미야가 한 말이 나옵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이 말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입니다. 즉 우리는 지금 사람의 뜻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성벽재건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아무리 방해하고 공격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셔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이 일을 마쳤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상급 말입니다. 기업과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신 바 이 선한 일을 이루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기억해 주시고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공격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방해하고 비웃는 사람들은 결코 어떤 기업도 권리도 없고 그 이름이 기억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분깃도 축복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그토록 충성합니까? 시간이 남고 물질이 남아돌아서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바쁘고 우리도 힘듭니다. 우리도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고 바쁜데, 가진 것도 부족하고 나 혼자 쓰기도 넉넉지 않은데 그 와중에도 하나님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이루겠다고, 성전을 새로 짓겠다고, 교회를 한번 멋지게 부흥시켜 보겠다고 그렇게 고생하고 희생하면 뭐가 남는 것입니까? 도대체 뭘 바라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놀라운 분깃과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세상 그 어떤 일도 줄 수 없는 놀라운 복과 은혜가 상급으로 주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몰라주고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주님만은 아시고 나를 기억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찬양처럼, 그리고 느헤미야처럼 우리에게는 우리 교회를 새로이 세우고 재건하고 부흥시킬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다시 재건하고 흥왕시킬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느헤미야처럼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왜 하필 이 때 교회를 새로 짓는다는 거냐?”가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내 시대에, 바로 내가 교회에 나오는 이 때 나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시니 너무 큰 은혜”라고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심지어 산발랏 도비야 같은 원수들도 느헤미야를 이렇게 인정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교회를, 나라를, 내 가정을, 내 주변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재건하고 흥왕하게 하려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 사명을 기억하고 능히 감당하여 우리의 이름을 영원히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특별한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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