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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홀로 기꺼이 앞장 서라 (삼상 1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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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기꺼이 앞장 서라 (삼상 17:31~37)

 
지난 주 금요일에 울산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느 할아버지가 아들네 집에 가시려고 울산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얼마 후에 아들네 집에 도착해서 보니 택시 요금이 1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8,100원만 내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택시 기사가 "할아버지, 요금은 1만원인데요?"라고 했더니 이 할아버지가 씨익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놈아! 1,900원부터 시작한 거 내가 다 봤다!"

여러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생사람 잡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십시오.  어설프게 하는 사람이 결국 자신도 힘들고 가정도 힘듭니다.  어설픈 종교생활이 자신의 인생을 더 곤고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 가십시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은 어디에다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살아오셨습니까?  여러분의 자녀에게 인생을 거셨습니까?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에게 인생을 거셨습니까?  아니면 돈과 명예에 여러분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거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잠시 잠깐의 땅의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승리를 얻기 위해 내 인생을 주님께 걸어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걸면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을 주님께 걸면, 내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놀라운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을 주님께 걸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확정되고 또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보게 하옵소서.  주여! 내 인생을, 내 가정과 일들을 당신께 걸었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 하십시오.  모든 근심으로부터 자유 하십시오.  저는 살아갈수록 하나님의 변수를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여건이 어떻든지 간에, 인간의 무슨 통계치가 어떻든지, 아니면 우리가 분석해 보았더니 결론이 어떻게 났든지, 그런 인간의 진단이나 인간의 예측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용서도 믿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믿습니다.  내 때보다 더 정확하신 하나님의 때도 믿습니다.  인간의 진단이나 예견을 너무 믿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수치나 여론조사도 너무 믿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개입을 사모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자손과 네 기업이 구원을 얻으리라."
인간은 행복과 축복을 위해 지음 받았지, 불행과 저주를 위해서 계획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이 땅에 생명을 선도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붙들고 축복을 선언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자리가 어디일까요?  마음입니다.  마음은 믿음의 자리이고, 입은 믿음의 선포의 자리입니다.  입으로 나와야만 믿음입니다.  입으로 나오지 않으면 행동이 안됩니다.  입으로 자기 선언을 하십시오.  입으로 선포를 해 버리십시오.

"나는 복을 받으러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불행과 저주를 위해서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위해 태어난 생명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내 영혼아, 너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내 관점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도 꼭 기억할 것은 책임 없이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싶어하는 그 어리석은 욕망으로부터 먼저 자기를 자유 시키십시오.  왜 입만 열면 나는 그렇게 남을 자꾸 비판하고 싶은지, 남을 판단하고 싶은지, 왜 내게는 아직도 그렇게 이상한 에너지가 넘쳐서 그렇게 험담하고 싶은지…, 그릇되고 헛된 정력과 에너지로부터 자유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이지, 결코 보는 것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 그 어디에도 "보는 것으로"라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힘은 모든 폭력의 힘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응답이 무엇일까?  어떤 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우리의 생애의 가장 위대한 응답이 무엇일까?  "돈이다!  선행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맞을지 모르지만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선행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잘못하면 더 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큰 선행을 놔두고 조그만 것 하나 하고서 "하나님! 나,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더 큰 믿음을 내 놓는 것입니다.  더 귀한 믿음을 내 놓는 것입니다.  더 확실한 믿음을 내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50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믿음이 참으로 귀한 보배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더 큰 믿음을 주 앞에 드리십시오.  더 귀한 믿음을 주 앞에 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믿음 없이 사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고, 그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그가 세상에서 기가 막힌 그 무엇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믿음 없이 사는 것은 죄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이 환상일까?  아닙니다.  믿음이 의지일까?  아닙니다.  믿음이 의욕일까?  그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입니다.  믿음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환상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내 생명을 내신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끝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앞에서 떨지 마십시오.  세상 앞에서 나약해지지도 마십시오.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보십시오.  바벨탑보다 더 견고하게 서 있을 것처럼 교만하던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의 월가가 무너졌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앞에 세상은 오늘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고로 확실한 믿음 속에 하나님도 확실하게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제발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너절너절하게 믿지 마십시오.  너절한 믿음 속에는 하나님도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책임은 혀의 말에 있습니다.  책임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진단이나 예견을 너무 믿지 말고, 하나님의 변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단을 해보니까 이제 6개월 산다더라.  죽는다더라.  끝이라더라.  금년에 우리 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더라.  희망이 없다더라.  분석을 해 보고 예견을 해 보니까 이제 끝났다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속단과 예견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어떤 분들은 신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부분을 모두 읽고서는 제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그래서 안됩니다.  세상의 모든 신문과 모든 학자들이 다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아니, 목사님! 세상 사람들이 다 안 된다고 하는데 목사님은 무슨 재주로 된다는 말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판단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유한한 인간들의 예견과 진단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유한한 인간을 뛰어넘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수치나 판단보다 세상을 주관하시고 영원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변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정복하지 못할 사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절망적인 상황도 이 땅에는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해 보리라!  하나님을 붙들고 이제 시작하리라!
 
하나님 안에 변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붙들어 보십시오.  믿음만 생기면 새로운 길이 생깁니다.  믿음만 생기면 항상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믿음은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는 증인들을 길러냅니다.  믿음을 붙들면 하나님의 증인이 되십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너는 믿음으로 나가는 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라고 하여도 믿음으로 나가는 내 앞에는 모두가 무너지고 낮아지리라!"

현대인들에게는 미신이 많이 있습니다.  숫자놀이 미신, 확률 미신, 여론조사 미신….  이런 것은 다 미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론조사가 어디 있습니까?  언제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숫자를 믿느니 하나님의 변수를 믿으십시오.  여론조사의 미신도 너무 믿지 마십시오.  만일 여론조사로 민족의 비전을 만든다고 한다면 어떤 비전이 나올 것 같습니까?  어려운 일을 꺼려하는 그 맹목적인 대중들이 정말 그 시대에 바른 비전을 만들려고 발버둥칠 것 같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어느 철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중은 맹목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대중들이 죽였습니다.  돌을 들어 쳐죽였습니다.  대중은 언제나 맹목적입니다.  돌을 던지면서 십자가에 못박았던 그 대중들이 그 돌들을 다시 모아 가지고 "아! 저분이 사실은 구세주였다." 이렇게 합니다.  이게 대중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마다 쓰임을 받았던 하나님의 바른 종들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 여론 조사에 의존했다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지지를 받았을 것 같습니까?  정말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을 것 같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그 시대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했다면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을 것 같습니까?  아브라함 링컨이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을 것 같습니까?  미국을 개혁한 루즈벨트 대통령이 몇 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을 것 같습니까?  여론조사의 미신을 붙들고서 나라를 개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론조사를 붙들고서 이 나라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대중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 대중의 호감을 얻는 데에만 연연해서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것을 중단한다고 하면 역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자식을 키워보는데, 자식들이 인기나 자식들의 여론조사를 듣고 자식을 키운다고 한다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그렇게 미련하게 자식을 인기나 여론조사로 키웁니까?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옛날 이야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깊은 산중에 곰의 가족과 여우의 가족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곰의 가족은 우리가 아는 대로 재주가 별로 없습니다.  너무 성실해서 때로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조상 대대로 나무 타기, 나무 오르기만은 확실하게 가르쳤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그 기법을 전수하고 가르쳤습니다.  위급한 일만 있으면 너희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좀 미련한 것 같아도 시대를 이기려면 올라갈 줄 알아야 됩니다.  올라가십시오.  하나님을 붙들고 올라가십시오.  거기에 사는 길이 있습니다.  믿음을 붙들고 올라가십시오.  땅만 보지 말고 올라가십시오.  시각을 높게 가지라는 말입니다.  저 높고 큰데다가 여러분의 시선을 두라는 말입니다.  그곳에 여러분의 소망을 두라는 말입니다.  조상 대대로 확실히 배워둔 믿음의 길, 저 높은 곳에 뜻을 두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확실하게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만일 여러분 속에 오늘 여러분의 직장이 힘들어서, 여러분이 운영하는 사업이 정말 힘들거든 이 자리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올라가십시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붙드십시오!  그러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머뭇거리거나 무의미한 형식적 절차에 시간을 다 버리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헛된 곳에 정력을 다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경영학에 '지네 딜레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 듯이 지네는 양쪽에 다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지네가 한 번 움직이려면 양쪽에 다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것이 박자를 맞추다 보면, 이 다리가 움직이려면 저 다리가 움직여야 되고, 뭐 하나 하다보면 한 발자국도 못나갑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지네 딜레마라고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회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저것 맞추다 보면 한발자국도 못 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나라가 이런 꼴입니다.  보수주의에 맞추다보면 진보가 난리를 치고, 진보에 맞추다보면 보수가 난리를 칩니다.  어느 지방에 맞추다보면 다른 지방에서 들고일어납니다.  수도권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지방들이 죽겠다고 난리 법석입니다.  지역 이기주의, 계층 이기주의, 사상 이기주의….  지금 우리 나라는 여기에 빠져서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보다 자신들의 이기주의에 더 깊이 빠져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국회 의원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한 달 월급이 2,682만원입니다.  여기에다가 각종 유무형의 특혜를 따지자면 실로 엄청납니다.  이 엄청난 돈을 국민 세금으로 꼬박 꼬박 받아먹으면서도 뭐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국가를 위한, 국민을 위한 소신도 없고, 정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겁함이 치러야하는 대가를 아십니까?  남들이 다 저러는데 나 혼자 안 그러면 어떻게 될까?  남들이 다 저리로 가는데 나 혼자 안 가다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이러한 것에 자유 하십시오.  위기의 때일수록 땅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십시오.  자기 신앙의 기준을 절대로 양보하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울수록 자기 신앙의 기준을 자꾸 높이십시오.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주님의 피묻은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위하여 자꾸 자기 믿음의 수준을 높여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한 번 증거하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한 번 보여주고 싶습니까?  정말 손이 닿고 발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길이 있습니다.  분명한 공식이 있습니다.  확실한 원칙이 있습니다.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사랑이 쏟아집니다.  이것을 알면 삶의 재미가 쏟아집니다.  이것을 알고 나니까 삶이 힘을 얻고 헌신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옵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생존에 대한 강한 의욕이 옵니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멋있게 살아야지, 힘있게 살아야지, 귀하게 살아야지!  이것을 알고 나면 자유가 옵니다.  모든 일체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나는 자유다!  일체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감, 자유!
 
이래서 예배 한번 잘 드리고 나면 한 주주간을 살아갈 맛이 납니다.  예배를 바르게 한번 잘 드리고 나면, 한 주간을 넉넉한 마음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를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것은 철저하게 공식적입니다.  철저하게 원리를 따릅니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지 안 보시는지 알 수 없는 아주 캄캄한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모든 사람들이 파도처럼 노도와 같이 반대하고 난리를 쳐도, 캄캄한 상황 속에도 하나님 한 분을 믿기에 기꺼이 혼자 앞장 서 보십시오.  틀림없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한 믿음 위에서만 하나님의 확실한 도움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 위에서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주여,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을 붙들고 캄캄한 곳에서 아무도 앞장서기를 원치 않고, 아무도 두려움 속에서 앞장서지 못할 때 만군의 하나님의 능력의 살아 계심을 알기에, 그 능력을 믿기에 혼자 외롭게라도 기꺼이 앞장서서 일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주시옵소서!"

이것이 신앙의 공식입니다.  내 안에서 실패자의 기질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내 안에서 구경꾼, 방관자의 기질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열까?  어떤 사람들은 분석을 통해서 열려고 합니다.  사회 분석학이 미래를 연다.  아니면 조사가 미래를 연다.  확률이 미래를 연다.  무슨 여론조사가 미래를 연다.  하지만 미래는 여론조사나 무슨 확률이나 분석이나 두려움이나 분노로 여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철저하게 믿음으로 엽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열쇠 밖에는 열리지 않습니다.  따라하십니다.
"홀로 기꺼이 앞장을 선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라도 기꺼이 앞장을 선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앞장서고 싶은데 내 아내가 반대를 해서, 나는 앞장서고 싶은데 우리 성도들이 못 따라 올까봐…."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를 못해서…."
 
그런 모든 가식과 가면의 탈을 벗어버리십시오.  내 아내가 반대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내가 앞장서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물론 앞장서고 싶지만 육신이 따라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약해서 앞장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자꾸 변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삼척동자도 더 잘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역사의 주역이 될 때, 아내의 동의를 얻어서 이삭을 바쳤습니까?  만약에 아내의 동의를 구했다면 그가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좀 헌금을 하고 싶은데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나는 하고 싶은데 나보다 못사는 우리 교인들이 어떻게 말할까봐.  믿음이 약한 교인들이 시험에 들까봐.  그런 구차한 변명에서 벗어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 구차하고 가식적인 변명을 털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나 혼자라도 때마다 시간마다 주도권을 잡고 앞장을 서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혼자 앞장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무수한 반대의 여론 앞에, 대다수의 침묵 앞에 도도하게 맞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눈을 딱 뜨고 나니까 나와 하나님만을 한편으로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의 반대자가 되는 그런 기가 막힌 처지에 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골짜기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전부 영적 난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겁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전부 서서 걷지를 못하고 앉아만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얕보고 쳐들어 왔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엘라 골짜기를 전부 점령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벌벌 떨어서 전부 죽게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칩니다.  여기에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치즈 덩어리와 빵 몇 덩어리를 가지고 그곳에서 싸우고 있는 형님들의 점심을 갖다주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 소년 다윗이 휘파람을 불며 그곳에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까 이스라엘 진영이 모두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단 말입니다.  이 때 그가 하는 기도는 위대합니다.

"왕이여, 내가 양들을 돌볼 때에 곰의 발톱에서 나를 구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왜 저 사람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했는데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지 않겠습니까?  사자와 곰도 쳤은즉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놈을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상황을 따지자면 다윗도 벌벌 떨었어야 했습니다.  여론을 따지자면 다윗은 벌써 줄행랑을 쳤어야 했습니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다윗에게 유리한 것은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없습니다.  0.0001퍼센트도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때마다 시간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사람 속에는 상황을 초월한, 여론을 초월한 하나님의 변수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은 다윗처럼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 하심을 믿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주저하고 있을 그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혼자서라도 분연히 일어나 앞장을 섭니다.

"왕이여, 나가겠습니다.  다만 저를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 되는 기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 시위되는 기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왜 머뭇거리고 계십니까?  왜 주저하십니까?  왜 그 많은 시간들을, 그 엄청난 시간들을 무의미한 형식적인 절차와 머뭇거림으로 인생을 다 보내려고 하십니까?  홀로 기꺼이 앞장서십시오.  노도와 같은 반대 여론 앞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드십시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높이 드십시오.  자기 감정을 통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인기나 여론조사보다도 천국 지향적인 가치관의 결정을 내리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일이기에 내가 그 일을 하리라!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욕심을 가져보십시오.  거룩한 열정을 품으십시오.  거룩한 일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방관자가 되지도 마십시오.  남들이 하지 않는 그 일을 내가 하리라!  아무도 나서지 않아도 나 혼자서라도 이 거룩한 주의 길을 가리라!  자기 도전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헌신에, 그 걸음에 30배, 60배, 100배로 갚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이 한해를 살아가면서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소망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시간마다 일마다 때마다 시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열정으로 이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보여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증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이 믿음을 쓰시옵소서!
주여! 이 생명을 쓰시옵소서!
주여! 이 기업을 쓰시옵소서!
주여! 이 손발을 쓰시옵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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