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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오시면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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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행 19: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성령의 역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항상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29절과 39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또 13장 2절과 16장 6절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성령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과연 성령은 결정적인 시기마다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오순절을 맞아 함께 모여 약속하신 것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람들 위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8장에서는 빌립 집사에 의해서 전도를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가 파송한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사도행전 10장에서는 해변 도시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대하여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셨고 그 결과 그들도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은 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안수를 받자 성령이 그들에게도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는 사건은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마다 발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성령과 교회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 상반절)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2 하반절)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꾸짖었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또한 고린도전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영적으로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식이 없어서 어린 아이 같이 어리석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가르침을 깨달을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걸핏하면 남과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지적했습니까?
"...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 3:3~4)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찍이 주님이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그러자 주님이 베드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라 행하는 것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항상 밝고 명랑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령이 친히 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늘 즐겁게 살아갑니다. 늘 즐겁게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안겨 줍니다.

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무시를 당하거나 소외를 당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오히려 약한 사람들이나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섬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격도 또한 존중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까?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을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행 19:4~5)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자기 민족에게 버림을 받고 로마 당국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하게 죽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인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배운 것도 없이 성질만 급한 베드로, 스승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겁쟁이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위협하는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였고 마침내 그 복음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또 어땠습니까? 예수쟁이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화되어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해서 말 그대로 죽기까지 충성하지 않았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전에는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자기의 유익을 포기하며 기꺼이 그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세속적인 명예와 권세와 지위를 구하던 사람들이 사회의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 19:6~7)

성령의 역사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십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모일지라도 성령을 알지 못할 것 같으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받지 못할 것 같으면 결코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성령에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살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심히 힘들고 고달픈 상황에 빠져 있습니까? 지금 처해 있는 형편과 처지가 아주 절망적입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굳게 붙들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믿고 그 주님만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믿고 그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성령 충만한 가운데 참으로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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