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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나의 희망 나의 하나님 (시 71: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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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희망 나의 하나님 (시 71:1~8,14)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주일예배에 참예하신 여러분과 가정 위에 주의 은혜가 금년 내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신년 초에 각종 매체를 장식한 화두가 있었습니다. 위기, 그리고 희망입니다. 대통령의 신년사와 국정연설에서도, 신문의 사설에서도, 재벌 총수의 신년사에서도, 각 회사 단체의 시무식에서도, 종교인들의 메시지에서도 그랬습니다. 저 역시 오늘 동일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항상 새해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으레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유난히 희망에 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는 반증일 겁니다. 모두 어렵다, 어렵다 하니까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어쨌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희망을 이야기해도 확실한 근거가 없이 말만 하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요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괜히 말만 무성하다 나중에 가서 오히려 더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을 가지되, 확실한 근거가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확신도 넘치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면 정말 후회도 실망도 없고, 반드시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2009년 새해에 분명한 희망, 근거 있는 희망을 품고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성경 시편 71편은 다윗의 비탄시(悲嘆詩)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슬픔과 고통을 토로한 노래입니다. 그 배경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B.C. 979년경, 사무엘下 15장)로 짐작됩니다. 얼마나 기기 막힌 상황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자식이 반역을 일으켜 궁궐에서 쫓겨났으니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비탄시인 동시에 희망시(希望詩)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희망을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금년 한 해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희망을 품고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1] 희망의 중요성 : 인간의 생존 에너지   

먼저 우리 인생에서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봅니다. 희망은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Homo Esperance)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종군 기자 중 홍일점이었던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전쟁의 현장에서 당찬 취재를 함으로써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중공군의 개입해서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져 후퇴할 때의 일입니다.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는 미 해병 중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얼어붙은 통조림을 따먹고 있는 한 병사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내게 어떤 소원을 구하겠습니까?” 그 병사는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Give me tomorrow!” 내일의 희망을 달라는 겁니다. 내일만 보장된다면 어떤 고생인들 못하겠느냐 이겁니다.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정말 그렇죠. 내일의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말기 암에 걸린 의사 선생님(이희대 박사)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강남 세브란스 암센터 소장이며 유방암 권위자인데, 6년 전 대장암이 발병되어서 계속 투병 중인 분입니다. 대단한 것은 매주 몇 건씩 수술을 감당하면서 정상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그래요.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절망이 죽이는 것이다.” 실제로 두려운 마음이 골수를 녹여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당당하게 버티는 것은 바로 희망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시편 71편을 쓴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나이 많은 노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신하들도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처절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잘 버텨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에게 희망이 없었다면 즉시 무너지고 말았을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희망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실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신적 에너지인 것입니다. 
  

[2] 참 희망이 없는 세상 : 장망성   

그런데 세상에 과연 참 희망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세상에는 참 희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참 희망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은 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입니다. 1회용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라도 있어야 하루하루 살겠죠. 만일 그것마저 없다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찾아내는 희망은 어떤 것들입니까? 세상의 물질, 세상의 권세, 세상의 인맥 그런 것들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영원히 우리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것에 모든 희망을 걸면 언젠가 실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윗을 보세요! 누구에게 배반을 당했나요? 자기 친 아들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충신으로 행동했던 신하들과 백성들입니다. 그토록 대단해 보이던 왕권도 그 많던 재산도 위기 상황이 닥치니까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지탱해주고 붙잡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말씀합니다. 잠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물질이 영원히 내 인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마치 날개 달린 독수리처럼 있는가 싶었는데 잠시 후에 보면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물질에 희망을 걸면 종내는 실망하게 되고 맙니다. 또 고전7:31에서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passing away)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신속하게 지나간다는 겁니다. 휙~ 하고 말입니다. 

평소에 입의 혀같이 놀던 사람들이나 권세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118:8~9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사람들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권세자들도 자기 자신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하는데 누구의 안전을 보장해 준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 인간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은 실로 장망성(將亡城 City of Destruction)입니다. 장망성이란 말은 청교도 작가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장차 망할 세상이란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 것에 희망을 겁니다.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근거 없는 희망이요 실체 없는 희망입니다. 그래서 흔히 인생은 속아서 사는 것이라 말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3] 유일한 참 희망 : 나의 희망 나의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항상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희망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주변을 보면 온통 절망뿐입니다.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의지하고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고백합니다. 5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my hope)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오직 하나님만이 희망이라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믿었지만 정말 그렇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리의 희망입니다. 딤전1:1 보면 바울도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 ...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our hope)이신 그리스도 예수 ... ”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 나의 희망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구체적으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할 뿐 아니리 우리를 사랑하셔서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히13:5 “ ...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특히 그렇게 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인간으로 보내셨고 십자가에 대속의 재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 보배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께서 결단코 우리 성도들을 포기할 수 없으신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좋을 때는 좋지만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고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대우하셨나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스스로 힘들어 했던 적은 있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떠나신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 중에 이런 곡이 있죠.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렇습니다! 세상은 때때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속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이 되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럴 때 사람들은 다 나를 외면하고 떠나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죽음이 닥쳐와도 나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해 주십니다. 성도는 죽어도 천국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에게는 정말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잖아요. “그리스도인의 사전에는 절망이란 단어가 없다!”(존 뉴우튼, Amazing Grace 작시자)
  

[4] 시련 중에 승리한 그리스도인 : 희망의 산 증인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 중 하나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은 오히려 기회입니다. 어떤 기회인가요? 하나님이 희망임을 체험하고 증거할 기회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살아있는 희망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는 말이 있죠. 무슨 말인가요? 평소에는 사람의 됨됨이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고 시련이 올 때 드러납니다. 상록수가 보통 때는 다른 나무들 틈에 끼어서 잘 모르지만, 겨울철에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요즘 모두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대목을 만난 겁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희망임을 우리의 삶을 통해 확인하고 증거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벌벌 떨고 두려워한다면 체면이 서지 않겠죠.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이시기에 우리는 이럴 때도 담대하고, 얼굴에 희망의 미소를 띨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다 보니까 과거 역사 속에서 위기를 극복했던 영웅들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루스벨트 대통령입니다. 세계대공황 당시 그가 국민들을 향해 외쳤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은 바로 그 두려움 자체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무슨 말인가요? 두려울 게 없다는 겁니다. 그가 그렇데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 자신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었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국민들을 리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의 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① 믿음으로 희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금년 한해, 아니 남은 생애 내내 나의 희망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다윗은 처절한 상황이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1절~3절.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 ” 그는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받아주는 피난처이며, 견고한 바위 같은 분입니다. 

그는 다른 시편에서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62:5~8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나님만이 희망이기에 그 분만 바라보고, 그 분만 의지하고, 그 분에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우리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현실 가운데 사는 사람인지라 때때로 시선을 놓쳐버립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두려움과 걱정 가운데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삶을 위해서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시선 싸움’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보느냐 하나님을 보느냐, 문제는 보느냐 예수님을 보느냐 이겁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을 바라보되, 아예 시선을 고정시키라는 겁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승리하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분 자신이 살아있는 희망의 증인입니다. 승리의 모델입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2009년 들어서서 한 신문사에게 금년도 키워드(Key Word)를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사자성어 ‘운외창천’(雲外蒼天)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구름 너머에 있는 푸른 하늘’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은 먹구름이 끼어 있지만, 그 너머에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이 말대로 현실은 위기요 시련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너머에서 승리를 예비하고 미소 짓고 계신 하나님 말입니다. 그 분이 바로 ‘나의 희망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새가 비를 피하는 법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독수리처럼 구름을 뚫고 더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거나 참새처럼 처마 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장은 처마 밑에 피하는 참새가 약은 것 같지만, 참새는 구름 위 눈부시게 푸른 하늘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면승부를 거시기 바랍니다. 시련이 닥쳐와도 당당하게 맞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② 당당히 승리하고 희망의 하나님을 증거하라! 

우리는 당당히 승리한 후에 기쁨으로 희망의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다윗은 아직 시련 가운데 있지만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희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8절.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그는 온 종일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말합니다. 14절.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항상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더욱 더 찬송하겠다고 다짐합니다. 15절.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하나님의 승리를 온 종일 널리 널리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윗은 희망의 증인입니다. 다윗 같은 희망의 증인들은 성경에 무수히 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희망의 책입니다. 성경 기록 이후에도 역사 속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의 증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희망의 산 증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사람을 소개해 드립니다. 

한 사람은 재미교포 정범진(Alex Jeong) 검사입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 뉴욕 브루클린 검찰청 최연소 부장검사로 임명받은 검사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는 전신마비 장애인입니다. 그가 법과대학원 재학 당시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혔겠죠. 그러나 믿음으로 극복하고 최연소 부장검사로 많은 사람들 앞에 희망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자기도 한 때 절망 가운데 방황했다는 겁니다. 자살까지 생각하고 ... 어느 날 어머니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예수 사진 당장 떼어버려요! 정말 살아 있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예요?”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퀸즈 공원묘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은 자보다 산 자가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이 음성을 듣습니다. “알렉스! 나는 너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했고 부활했는데, 너는 왜 자꾸 죽음을 선택하는 거니?” 결국 주님을 만난 그는 자기 곁에서 희망을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희망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주님이 재림하시고 부활하는 순간 두 팔을 번쩍 들고 마음껏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그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폴 포츠(Paul Potts)입니다. 그는 휴대폰 외판원에서 오페라 가수가 된 영국인이죠.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말이 어눌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습니다. ‘난장이’, ‘땅딸보’, ‘가난뱅이’ 등 수도 없는 별명으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정규 성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성가대를 하면서 성악가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시련이 거듭되었습니다. 가난, 질병, 교통사고, ... 계속해서 몰아닥칩니다. 여러 오페라단을 기웃거려봤지만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력서도 변변치 않고 얼꽝이니 당연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전국 장기 자랑 같은 프로(Britain's Got Talent)에 출연해서 아리아를 부름으로써 우승하게 됩니다. 심사위원들이 처음에는 초라한 행색의 그가 오페라를 부른다고 하니까 무시했지만, 일단 노래를 하기 시작하자 눈이 휘둥그레졌고 청중들이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는데 수 일 만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속하게 됩니다. 처음 나온 음반(One Chance)도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 곳으로 연주 여행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내한 공연을 했는데, 우리 교회 집사님(소프라노 김은경)이 협연해서 저도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우승한 직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우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 왜 저를(God, why me)’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 남은 절반의 인생을 노래하며 보내라는 ‘마지막 기회(One Chance)’를 주신 것 같아요.” 그는 이렇게 해서 희망의 증인이 된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시대에 희망의 증인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기적, 한강의 기적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이 나라와 민족을 통해 하시려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와 함께 하십니다! 

BRICs라는 말이 있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강대국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새해 들어서 WSJ에서 이제는 ICK(인도, 중국, 한국)를 주목하라고 금년도 증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일시적인 경제 전망이지만, 저는 이것이 앞으로의 세계 경제의 전망이요 선교 전망이라고 확신합니다. 세계 역사의 추세가 그래요. 복음 선교의 추이가 경제의 추이와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경제의 축복을 주시면서 그것으로 선교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에 분명히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선교를 꿈꾸는 교회와 성도들, 특별히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금년 표어는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입니다. 우리 각자가 먼저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을 나의 희망으로 삼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희망의 증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국의 교회마다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참 희망이신 하나님이 전파되기를 기대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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