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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일어나 성전을 재건하자 (느 2:11~20) : 성전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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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성전을 건축하자 (느 2:11~20) 

 
❚무너진 공동체를 재건하라!

새해 첫 주부터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하고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쉬운 질문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몇 권으로 되어 있을까요? 한 권입니다. 그런데 이 한 권의 성경은 다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나누어집니다. 따라서 성경이 몇 권으로 되어 있냐고 물으면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합니다. “한 권입니다” 해도 정답이고 “66권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정답입니다. 

그런데 왜 66권으로 된 성경을 제가 굳이 한 권이라고 하느냐?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저자에 의해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쓰인 작품입니다. 대략 40명의 저자가 1600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썼다고 하니 이 신구약 66권 모두가 얼마나 다른 사상과 내용을 담고 있겠습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66권은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66권 다 내용도 다르고 강조점도 다른 것 같지만 이 66권을 따라 흐르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굳이 성경은 66권이지만 한 권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모든 책이 다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 66권 가운데 어느 한 권만 떼어 따로 읽거나 한 구절만 읽으면 안 됩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잘못된 해석과 이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권이기 때문에 반드시 함께, 서로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구약만 읽거나 신약만 읽어서도 안 되고 반드시 신구약을 함께 읽어야 하며 마태복음만 읽지 말고 마가복음도, 그리고 다른 모든 책도 함께 연결해서 읽어야만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의 본문인 느헤미야서입니다. 느헤미야서 한 권만 읽어서는 절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반드시 에스라서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따로 되어 있지만 본디 히브리말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을 보면 에스라 느헤미야서가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두 책은 긴밀하게 연관된 책이기에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와 에스라서는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학개와 스가랴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물론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네 권은 시대가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이 네 권이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공동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로 지내면서 무너져버린 민족 공동체가 주전 538년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을 듣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바사 제국 안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입니다. 이것은 나라도 민족도 무너지고 희망마저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구원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간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도 불타 없어지고 성벽도 무너졌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해이해져 이방인과 결혼하고 우상을 용납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모든 희망이 다 무너지고 만 상황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방금 말씀드린 네 권의 책, 즉 에스라-느헤미야와 학개-스가랴서는 이 송두리째 무너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단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1단계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인 성전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에스라서 1~6장이 바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중심이 되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때와 마찬가지로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시작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성전재건을 당장 중단하라는 위협이 안 먹히자 온갖 거짓말과 중상모략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고발하여 결국 성전재건이 중단되고 맙니다(스 4:24). 바로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학개, 스가랴 두 선지자는 하나님이 스룹바벨 총독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기름 부어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서 친히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를 원하신다고 선포하여 성전재건 중단으로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격려하고 결국 힘을 모아 성전은 재건됩니다. 그 다음 2단계는 율법학사 에스라가 나타나 성전 재건 후 이스라엘 공동체를 영적으로 재건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 내용이 에스라 7장부터 마지막 장인 10장에 나옵니다. 

그 다음 3단계는 성벽 재건입니다. 총독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됩니다. 산발랏 도비야를 비롯한 사마리아인들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벽재건공사는 완성됩니다. 

그 다음으로 느헤미야가 한 일은 바로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영적으로 재건한 일입니다. 여러분, 숨차시지요? 이렇게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은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에스라-느히미야-학개-스가랴, 그리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등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2009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일어나 건축하자”라는 주제로 새로운 시리즈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네 주에 걸쳐 방금 말씀드린 에스라-느헤미야-학개-스가랴에 나온 이스라엘 공동체 회복의 과정을 다루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성전재건-성벽재건-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재건이라는 세 단계입니다. 

이 세 단계에 걸친 재건의 과정을 말씀을 따라 살펴보노라면 우리는 왜 우리도 성전을 새로 지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냥 새 건물이 좋아서도 아니요, 돈이 많고 넉넉해서도 아니요, 남들이 다 새 교회당 지으니까 우리도 안 지으면 안 될 것 같아서는 더더욱 아니요 정말 새 생전 건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임을 깨닫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단순히 건물 하나 새로 세우고, 새 예배당 하나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를 영적으로 재건하고 새로 세우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 하나님이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라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성전을 짓고 성벽을 짓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영적으로 재건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과 재건을 완성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성전을 새로 짓고,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고, 우리를 영적으로 재건시키려고 하시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재건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의 순서대로 하면 에스라에 나온 성전재건이 먼저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을 먼저 다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재건 과정이 너무 분량이 많아서 다음 주일까지 두 번에 걸쳐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은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통해 과연 무엇을 재건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고, 다음 주일에는 어떤 과정과 단계를 통해 성벽재건을 완성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신축보다 어려운 재건

아무래도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는 교회 건축입니다. 하지만 전에는 제가 교회 건축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이 힘들게 교회 건축한 이야기를 해도 남의 얘기인가 싶어 별 관심이 없었고 새로 잘 지은 교회를 가 봐도 “야, 교회 멋지네” 하는 생각이 들 뿐 어떻게 지었는지, 어떤 시설을 했는지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가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정한 후 제 눈에는 새로 지은 교회들만 들어옵니다. 지나가다 새로운 예배당 건물만 보면 잘 지었느니 못 지었느니, 설계는 어떠니, 인테리어에 음향 영상에 냉난방에 온통 관심이 집중됩니다. 제 귀에는 교회 지은 목사님들 이야기만 들립니다. 이 역시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리모델링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것이 훨씬 쉽다”고 말입니다. 이 지역에도 최근에 큰 돈을 들여 리모델링한 교회가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신축보다 아무래도 돈도 적게 들고 더 쉽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다가 정말 고생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돈은 돈대로 많이 들고, 무엇보다 없는 데서 새로 짓는 것이 낫지 뼈대는 남겨두고 그 틀 안에서 뭔가를 하려다 보니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들어 차라리 새로 짓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당시 이스라엘은 바사, 즉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느헤미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궁전에서 술 관원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술 관원의 임무는 왕에게 술을 따르는 일입니다만 당시에 워낙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가 많았기 때문에 술 관원은 왕이 술을 마시기 전에 먼저 먹어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술 관원은 왕의 생명을 책임 진 중대한 직책이며 왕이 내 목숨을 맡여야하니 신하 중에 가장 신임할만한 사람을 뽑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늘 왕의 옆에 있으면서 왕과 함께 국사를 논하기도 한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쯤 될까요? 

그런데 이렇게 막강한 지위를 누리던 느헤미야에게 동생 하나니가 찾아와 동족인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성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의 운명은 바뀌고 맙니다. 이때부터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은 후 왕에게 요청하여 자신을 유다의 총독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물론 유다의 총독도 높은 지위입니다만 왕의 궁전에서 술 맡은 관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한직입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가 스스로 유다 총독으로 가려 한 것은 바로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려는 소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꽤 오랫동안 수요일마다 이 느헤미야서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정말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공사는 엄청난 어려운 과정들을 겪게 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원수들이 끊임없이 방해하고 위협합니다. 유다 인 내부에도 그들과 동조하여 성벽공사를 방해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재정도, 건축자재도, 공사를 할 인원도 모두 부족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도저히 성벽 재건을 이룰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없는 성벽을 새로 세우는 것이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다 무너지고 불에 타버린 성벽을 재건해야 할 어려운 임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느헤미야가 세워야 할 것은 무너진 성벽뿐 아니라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성벽을 다시 쌓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마음을 재건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라!

지난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 저는 2008년을 보내며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숱한 일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작년 한 해 참 좋은 일도 많았고 기쁜 때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 2008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최악의 사건으로 2월 11일 일어난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화재사건을 뽑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전에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 대형 사고들이 많이 있었지만 숭례문 화재사건이 우리에게 특히 큰 충격을 준 것은 그것이 다른 건물과 달리 복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너진 성수대교처럼 다시 세우면 되겠지요. 하지만 임진왜란도, 6.25 전쟁도 견뎌온 600년 역사는 이제 다시 복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허무함은 더한 것입니다. 모양은 그대로 복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는 복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숭례문이 무너지고 나서 우리나라 경제도 무너졌다고 말입니다. 하긴 작년 2월 숭례문 화재사건 이후로 급속도로 우리나라 경제가 나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디 숭례문 때문에 경제가 나빠지겠습니까? 우연히 그렇게 된 것뿐이지요. 더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600년 역사를 지닌 국보 1호가 한 노숙자의 방화로 불길이 번져 누각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질 때 이를 지켜보던 우리 백성들의 마음도 다 무너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어떻게 우리의 자긍심의 상징은 국보 1호가 저렇게 허술하게 관리되어 한 순간 무너지고 마는가 하는 생각에 국민들의 마음도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숭례문을 다시 복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무너진 국민들의 허무한 마음만은 다시 복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우리에게 찾아온 경제위기의 한파는 안 그래도 허전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너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고 경제회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허무하게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바로 이렇게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하고 재건하는 중대한 일을 맡은 것입니다. 성벽이야 어떻게든 재건하면 되겠지만 나라가 바벨론에게 허무하게 멸망당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불타 없어지고, 성벽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져 버릴 때 백성들의 마음도 함께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린 끝이다. 더 이상 희망은 없다. 하나님도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백성들의 마음에 가득했기에 이제 느헤미야가 총독이 되어 다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 보자고 해도 그들은 “우리 같은 못난 백성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스스로 포기하고 만 것입니다. 

성벽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그들 마음속에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것이 느헤미야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였던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나라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지금 정말 회복되고 재건되어야 할 것은 경제도 아니고 숭례문도 아니고 바로 무너진 우리의 마음입니다. 경제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우리 국민들 마음이 이미 너무 많이 무너져 있습니다. 희망도 무너지고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도 많이 무너졌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힘내자고 하는 자심감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너무 많이 무너졌습니다. 매스컴도, 주변 사람들도“ 온통 어렵다, 어렵다, 큰일 났다, 새해에는 더 어려워진단다”는 어두운 전망만 내놓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무너집니다.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돈이나 경제 때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시 왔다가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나라의 경제도 불황이 있으면 반드시 호황도 오게 마련입니다.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건강도 가정문제도 그 무엇도 결코 우리를 완전히 무너지게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이제 끝났어, 난 안 돼”라는 생각입니다. 포기입니다. 절망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끝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이냐? 인원이 적거나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교회당 건물이 적다고 해서도 아닙니다. 희망입니다. 그리고 자신감과 자부심입니다. “우리 교회는 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무너지고, 자신감도 자부심도 무너져서 “우리는 안 돼, 우리 교회 이제 큰일 났어, 우리는 할 수 없어” 하는 순간 정말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건축이 불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수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재정도 아니고 경제위기도 아닙니다. 경제위기가 닥쳐와서 헌금이 되겠냐, 이럴 때 교회 짓겠다는 것이 정신없는 짓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남들은 안 되어도 우리는 가능하다”는 자부심이 회복되는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세우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성벽을 재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재건을 통해 정말 그것을 해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의 재건’ 때문에 성벽재건도, 공동체의 회복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의 마음도 회복되고 영적으로 재건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쳐야 합니다. 누가 합니까? 

본문 18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처럼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 18절에 나온 것처럼 모두가 힘이 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결단하게 됩니다. 꼭 성전 건축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회복되고 재건되어 건강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바르고 능력 있는 신앙으로 무장해 교회의 신앙 공동체가 바로 세워지고 재건되어야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 건축하자! 성전을 건축하고, 우리의 신앙을 건축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를 건축하자. 기정과 나라도 재건하자”는 소망과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놀라운 재건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는 2009년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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