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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당신의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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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 (히 12:1~2)

 
지난 금요일 저녁에 저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감동이 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서재실에 앉아서 온 몸에 전해지는 전율과 감동을 놓치기 싫어서 그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책은 최하진 선교사님이 지은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3년 동안만 중국에 가서 선교하겠노라는 다짐으로 갔지만 15년째 중국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분입니다.  오늘 저는 이 최하진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나는 서른 살 문턱까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썩어져갈 많은 것들에게 내 인생을 걸었다.  그때 나는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쫓기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점차 주님께 인생을 맡기다 보니 점점 단순해져가고 걱정할 것이 없어져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선교사로 중국에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니었다.  내게는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었고,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버리고 떠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서른 살 문턱에서 나는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한 번은 1년 정도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면서 선교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조심스럽게 아내의 의사를 타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펄쩍 뛰었다.
"당신, 미쳤어요?  난 죽었다 깨어나도 안 가요."

그래도 내 마음속의 불길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난생 처음 내 미래를 놓고 하나님 뜻을 여쭈었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내 안에서 거룩한 열정이 타오르게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참으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당신 생각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아요.  어제 기도하는데 갑자기 어릴 때의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 보이면서 요나에 대한 설교를 하는 거예요.  나는 어리석은 요나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이 정 가겠다면 따라갈게요.  하지만 솔직히 너무 겁나요."

그 후 나는 아내가 자기 자신과 씨름하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아내는 주님의 뜻과 자신의 뜻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변화될 것을 그저 묵묵히 기다리며 아내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면 아내도 기쁨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당시 나는 미국의 스탠포드대학교와 공동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가운데, 이미 그곳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놓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대덕의 연구소는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지내는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은 연구소가 설립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참 얄궃다는 생각에 나는 하나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좀 쉽게 갈 수 있도록 해주시면 어디가 덧납니까?  꼭 이렇게 고민하게 만드셔야 합니까?  가자니 굴러들어 온 꿀호박이 아깝고, 눌러앉자니 그 동안 고민하고 결단한 게 아깝지 않습니까?"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말씀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태복음 10장 39절에 이르러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나는 주님께 자신에 대한 '사망 선언'을 했다.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인 30대를 드리기로 했고, 연구소를 사직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나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사표를 내고 연구소 정문을 빠져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하늘을 향해 외쳐댔다.
 
"하나님, 이제 망해도 하나님 때문이고, 흥해도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십시오.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다 포기했습니다.  전 이제 아무 것도 없어요.  빈손이에요.  이제부터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때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뿐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썩어져갈 많은 것들에 자신의 인생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인생은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쫓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이 한해를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내가 하겠노라고 혼자서 몸부림치지 말고 주님께 당신의 인생을 한번 맡겨보십시오.  주님께 인생을 맡기고 보면 점점 단순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걱정할 것이 없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한 순간에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속적인 만지심을 사모해 보십시오.  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만지시는 손길을 기대하고 사모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엔가 내 인생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또 우리들 보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가 자기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의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만 쫓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단순성으로 대표되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풍랑 앞에서도, 태산을 무너뜨리는 권세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푯대가 있었기에 그들은 오직 주님께로만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 당신의 인생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인생을 걸면 삶의 참 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인생을 걸면 나는 주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질 것입니다.  꿈과 용기와 도전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참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어두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캄캄한 가운데서도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캄캄한 풍랑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오늘 주 앞에서 예배하는 여러분들에게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아골 골짜기에서도, 거대한 풍랑 앞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하여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일들을 내 인생 가운데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나에게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승리는 남들이 이루기 힘든 큰 일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께 순종하여 승리하는 영성을 소유하며 성령의 파도를 타고 이 2009년의 큰 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이 한 해 정말로 온전히 성령님께 순종해 보십시오.  그래서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헌신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어두운 그늘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어두운 면이 없었다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너무 열심히 좇다 보니, 한 자리에 서서 머무를 시간도 없이 그리스도를 따라 빠르게 뛰어가다 보니 내 주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길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비전을 좇으면 어두운 생각이 머릿속에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비전을 따라 우리 주님께 전부를 거는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성경 기자는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한 마디로 예수께 너의 인생을 걸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꿈을 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심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의 꿈은 잘 먹는 것입니다.  잘 입는 것입니다.  고대광실과 같은 좋은 집에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러다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꿈을 접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꿈이 흔들리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꿈을 꾸십시오.  방황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꿈을 꾸십시오.  그 꿈은 여러분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하나님의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입을 넓게 열고 외치십시오.
"주여, 이 산지를 나에게 주시옵소서!  이 언양과 울산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를 향한,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 성전, 주님의 몸된 피로 사신 이 제단에 하나님의 꿈이 심겨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씀합니다.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내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내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대사가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것들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  이제부터 나도 하나님의 꿈을 꾸리라!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대사가 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걸려면 믿음 이전에 꿈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린 2009년 신앙결심서에 담긴 여러분의 소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 읽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새해 꿈과 소망이 가족 건강, 사업 번성, 직장에서의 인정, 물질 축복 등이었습니다.

시편 57편 11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는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였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찾아낸다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칠흑 같은 암흑으로 둘러싸인 동굴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다윗은 절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꿈을 꾸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왕이 되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님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처럼 우리도 아주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꿈이 있다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의 공간을 꿈으로 채울 때, 내 안의 패배의식, 상처, 우울함, 막연한 두려움, 걱정거리가 활동할 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꿈을 꾸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속해 있는 사람은 영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내가 출세하고 내 혼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고 예수를 동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해 주님의 영광을 높이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런 꿈을 가지게 되면 어떤 장벽에 부딪히더라도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끊임없이 자신을 믿음으로 축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따라가는 길에서 자신의 사명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십시오.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주저하지 말고 선포하십시오.
 
인간은 언제나 보이는 것만 보고 상황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늘 흔들립니다.  환경이 어렵고, 협력자가 없고, 게다가 방해꾼이 있으면 하던 그 일을 포기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너무 쉽게 못할 수밖에 없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이래서 못했습니다.  저래서 못합니다"라고 자기 변명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나약한 습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미리 선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 나는 금년에 2명을 전도하리라!"
"나는 금년에 차량봉사를 내가 하리라!"
"나는 금년에 온전히 주일 성수를 하리라!"
 
그렇게 자기 선포를 사람들에게 하십시오.  선포는 선포한 사람 스스로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걸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금년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역사하실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든, 저 방법으로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꿈을 세상 사람들 속에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믿음을 선포하지 않고 두려움과 적당히 타협하려고 할 때, 우리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세상적인 계산으로 복잡해집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은 무능력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에게는 결코 승리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게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하실 일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주여, 우리로 하여금 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으며 우리의 대적들이 우리 앞에서 엎드러지게 하옵소서!"
"금년 한 해 나와 내 가정은 우리 교회와 함께 크게 부흥하리라!"
"성령이여!  이 성전을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여러분 자신이 계획해 놓은 그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주님께 거십시오.  그분은 나의 가장 커다란 비빌 언덕이십니다.  그분은 내가 기댈 곳입니다.  주님께 내 인생을 온전히 걸어보십시오.  주님께 내 인생을 걸라는 말은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상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을 절대적으로 주님께 걸어보십시오.  그것이 내가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전략이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일'이라는 시간을 자신이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일이라는 시간에 자신의 계획을 세웁니다.  "날이 새면 이렇게 하리라"  "한 달 뒤에는 저렇게 하리라"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내일이라는 시간은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이라는 시간이 내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에게서는 불안과 염려와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일이라는 시간이 주님의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염려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이라는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 당신의 인생을 거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내일을 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 우리의 전부를 걸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루 하루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기대감을 가지고 내일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을 주님께 걸고 걸어가는 이 사명의 길이 아스팔트처럼 쭉쭉 뻗은 평탄한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굴리시는 대로 가는 굴렁쇠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인생을 거십시오.  두 번 사는 인생도 아닙니다.  한 번 살다가는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가치 없는 것에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따라 주님께 인생을 거십시오.

시편 57편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기에서 '내 영광'은 영어 성경에서는 "my soul!", '내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처럼 겸손하고 낮아짐을 고백했던 그가 자신의 영혼을 영광이라고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본문의 바로 앞 절인 7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그렇습니다.  내 영혼이 내 영광인 이유, 내가 정말 특별하고 가치 있고 귀중한 이유는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영혼이 내 영광인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걸면 나는 다 끝나는 줄 알았지만 아닙니다.  그 때부터 주님으로 인하여 내 영혼은 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나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독수리가 그 넓은 날갯짓으로 높은 하늘을 유유히 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위풍 당당함과 높은 기백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기상을 이 독수리에 비유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 40:31)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에 비유하셨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독수리와 같이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힘차게 저 높은 하늘을 날아야 할 독수리들이 스스로 알아서 동물원 우리에 들어가서 따뜻하고 편한 곳을 떠나기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가운데 독수리 날개와 부리가 다 퇴화해서 병아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병아리가 아니라 독수리입니다.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타까운 것은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총장이었던 나단 푸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흔들 수 있는 깃발, 부를 수 있는 노래, 믿을 수 있는 신조,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히 흔들어야 할 깃발이 있습니다.  줄기차게 부르고 또 불러야 할 노래가 있습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가 믿어야 할 신조가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따라야 할 지도자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영원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목숨을 걸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사랑하십시오.  나의 믿음의 깃발을 흔들며 내 인생을 주님께 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내가 영원토록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9년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당신은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이 한 해 당신이 흔들 깃발을 발견하셨습니까?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을 찾으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어디에 거셨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혹여 이런데 인생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더 많은 월급, 번쩍 번쩍거리는 반지, 화려한 고급 외투, 더 넓은 아파트….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것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것은 풀과 같이 다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시 잠깐의 땅의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승리를 얻기 위해 내 인생을 주님께 거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걸면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세상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인생을 걸면, 기억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내 인생을 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주님께 인생을 거는 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을 주님께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주님께 보인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첫째로, 주님께 내 인생을 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열정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마칠 때까지 열정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심령에 복음의 열정이 날마다 때마다 뜨겁게 타오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열정이 사라지면 안됩니다.  열정이 사라진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함만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열정이 사라진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못합니다.  주님께서도 뜨겁지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차라리 뜨겁든지, 아니면 차든지 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십니까?  세균도 미지근한데서 잘 번식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열정이 사라지면 내 안에는 수많은 염려와 걱정과 시험이 밀려올 것입니다.  열정이 사라지면 사단이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기도와 찬양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헌신과 전도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둘째로, 주님께 내 인생을 건다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을 기도로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행동이 따르는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열심 있는 행동을 보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구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그 구한 것이 이루어질 줄을 믿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위해 노력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앉아서 기도만 하지 말고, 일어나 구체적으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셋째로, 주님께 내 인생을 건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고 싶어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내 지혜와 경험과 판단을 의지하지 말고 무식하리만치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처럼 아주 단순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주님께 내 인생을 건다는 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문제의 벽을 뚫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국민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인생을 건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담대히 하십시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저 여리고도 무너질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질 것입니다.

이제 저는 중국에 선교사로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주님께 걸었던 최하진 선교사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내의 갈등에 마침표를 찍어주셨다.  미국에서 다니던 교회의 수요예배에서 아내는 이런 내용으로 간증했다.
 
"나는 한국에서 살 때는 씀씀이가 꽤 컸다.  쇼핑을 너무 좋아해 압구정동에 있는 유명 백화점의 우대고객이 되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가정부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거의 부엌일을 안 하고 살았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솔직히 어떻게 하면 중국 선교를 안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 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듣고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쁨으로 중국에 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만져주셨다.
 
그리고 난 며칠 뒤, 찬양을 틀어놓고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정말 황홀하고 평안해서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때 내 귓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서 뭔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내가 안정된 생활을 떠나 미래가 불투명한 삶을 살아야 할지라도, 또 중국에 가서 선교사의 아내로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쌀을 씻어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중국에 가르치러 간다기보다는 밥하러 갑니다!'"

마침내 1993년, 우리 부부는 유치원에 다니던 딸 은혜를 데리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그마한 아파트를 얻었는데, 그 집은 비만 오면 천장과 벽면에서 빗물이 새고 온 집안이 습기로 가득 찼다.  수도를 틀면 흙탕물이 나오고 때로는 지렁이가 나올 때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고강도 적응 훈련이 시작되었다.

어린 은혜는 새로 다니게 된 중국 학교의 화장실에 적응을 못하고 화장실 가기를 두려워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양변기 대신 깊고 어두운 구명을 내려다보면 그 구멍 안으로 빠질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은혜는 학교에 있는 네 시간 내내 볼일 참다가 노래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은혜가 학교에서 옷에 똥을 산 것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했을 때부터 변이 마려웠는데 참다가 그냥 옷에 싸버린 것이었다.  아이는 그 상태로 네 시간을 버티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한겨울에 난방도 잘 안 되는 중국 학교에서 젖은 옷을 입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 똥 냄새와 사투를 벌였을 딸을 생각하니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그때 내 아내가 딸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나보다 아내가 훨씬 더 나은 선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야, 엄마 아빠는 여기 중국에서 죽을지 몰라.  우리는 죽을 때까지 중국의 언니, 오빠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 것 같은데, 너도 우리 가족이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적응해야 하지 않겠니?"

아내의 말에 은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내와 딸을 보면서 나는 최고의 동역자를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자신과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인생을 걸었던 이들 가족이 어떻게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지 이 책은 아주 감동 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걸었더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랍고도 엄청난,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걸었더니 주님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과 평안과 감격을 그들의 심령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주님께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인생을 나 자신과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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