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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한 해 (고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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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한 해 (고전 4:1~2)

새해가 되면 보편적으로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복 받고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에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복 받는 길이 있습니다. 복 받는 식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그 길과 식과 법을 떠나면 복을 받을 수 없지만 누구든지 그 길과 식과 법을 따른다면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복의 길과 식과 법 중에 하나는 ‘최선을 다함’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복을 받을만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공평하다고 하나님은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타고난 재능’에 주시지 않고 ‘최선을 다함’에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은사가 있습니다. 재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와 재능만으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최선을 다하여 갈고 닦는 사람에게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아무리 받은 은사가 크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그것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최선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트윈 폴리오로 유명한 윤형주 장로님이 방송 중에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해가 송창식씨와 트윈 폴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한지 40년이 되는 해랍니다. 그래서 송창식씨에게 기념 컨서트라도 하자고 제안을 하셨답니다. 그랬더니 송창식씨가 컨서트를 하려면 자기와 최소한 10달을 연습해야만 한다고 하여서 결국은 성사되지 못하였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의 근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연말에 텔레비전에서 조영필씨가 인천의 문학경기장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컨서트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 만 명이 들어가는 문학경기장에 관중들이 1층과 2층 스탠드를 가득 채우고 운동장 바닥도 빈 자리가 없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조영필씨의 컨서트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번 40주년 기념 컨서트에 참여한 유로 관중이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하였습니다. 내년이면 60이 되는 사람의 공연에 이 불경기에 200만 명이 작지도 않은 관람료를 내고 참여하여 열광하고 환호하는 것을 보면 서 조영필씨가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영필씨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복은 우연히 재수 좋아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다른 노력과 최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중음악을 하시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저들이 쉽게 인생을 횡재한 사람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저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였는가를 알게 된다면 겉만 보고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 저들이 누리는 영광과 인기는 저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흘린 눈물과 땀의 열매들입니다.

얼마 전 김건모라고 하는 가수가 인터뷰하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가 신인이었을 때 노래 연습을 하면서 ‘그댄’이라는 단 한 단어의 가사를 감정을 실어 노래하기 위하여 며칠씩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가 천재성이 있는 가수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제가 알지 못했던 피나는 노력과 훈련이 있어서 한국 최고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가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특히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고등부 회장이 되었습니다. 월례회 때 사회를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도망가기는 싫었습니다. 월례회를 앞두고 일주일 정도를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상상하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가상하고 그에 대한 답들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진짜 회의를 해 보면 제가 준비하고 기도하고 예상했던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회의를 참 잘 진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장 잘 할 수 없는 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을 그런 식으로 열심히 하였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여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였습니다. 교육전도사 일을 할 때 선생님들이 공과책만 가지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싫어서 공과내용을 가지고 융판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에 필요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지 못해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으로 교재를 만들려면 복사를 하여야 했습니다. 당시는 복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려대에 복사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복사는 그 자리에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맡기면 며칠 후에 가서 찾아와야 했습니다. 복사된 그림을 찾아와 선생님들을 동원하여 색칠을 하고 그것을 오렸습니다. 그리고 동대문 시장에 가서 융을 사다가 그림 뒤에 융을 붙여 융판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대충하지 않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설교가 무엇보다 힘들었습니다. 사람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기도를 참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설교 때문에 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가 참 엉뚱했습니다. 제 기도는 일학년 어린 아이들도 은혜를 받는 설교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쉽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워하기도하고 울기도하고 속상해서 바람벽을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른쪽 주먹이 태권도 선수보다 더 단련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설교 때문에 안타까워 했더니 어느날 부터 꿈에 설교가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을 아이들에게 이렇게 설명하면 아이들이 알아듣겠구나 감동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도 꿈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머리 맡에 메모지와 볼펜을 놓고 잤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설교를 하니 아이들이 떠들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설교 시간에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설교를 목회를 쉽게, 쉽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입니다. 요즘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설교와 목회가 쉽게, 쉽게 되기까지 제 나름대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아마 여러분은 잘 모르실겁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특하게 보시고 제게 복을 주셨습니다. 목회와 설교가 어렵지 않은 복을 주셨습니다. 설교가 불가능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설교를 통하여 목회를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어느 교회를 가도 그 교회에는 거의 반드시 제 설교를 매주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교는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하고 그 설교를 일부러 찾아 듣는 사람들이 전국과 전 세계에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포기할 수 없어서, 그냥 안타까워하며 조금 열심히 하였더니 하나님이 정말 복을 주셨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꾀부리는 사람입니다. 요령을 피우는 사람입니다. 방위 시절 마당을 쓸고 있는데 나이 어린 선배 방위가 내 머리를 툭치며 ‘야 임마 군대는 요령이야. 마당을 쓸란다고 그렇게 우직하게 쓰는 놈이 어디있냐?’며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당에 떨어져 있는 휴지를 대충 줍고 군데군데 빗자루 자국을 좀 내 준 후 조리로 물을 뿌리니 정말 마당은 깨끗이 비질을 한 마당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꾀부리고 요령 피우는 사람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꾀부리고 요령 피우는 사람들 중에 복 받아 성공하는 사람 본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복의 길에서 벗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왕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쉽고 편한 넓은 길에 놓아두시지 않으시고 힘들고 어려운 좁은 길에 놓아 두셨습니다. 그래야 복이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팔자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팔자는 없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그런 것 만들어 놓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팔자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팔자를 좋게 타고 나는 것 같아 보이고, 어떤 사람은 팔자를 나쁘게 타고 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팔자를 좋게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팔자를 믿고 게으름을 피우면 그는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팔자를 나쁘게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팔자 무시하고 열심히 자기의 최선을 다하면 그는 결국 복을 받게 되고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꾀와 요령을 부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어리석은 일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 믿는데 꾀부리는 것입니다. 꾀로 공부하는 사람 중에 우등생 되는 사람 없습니다. 꾀부리며 운동한 사람 중에 스타가 된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꾀부리며 직장 생활한 사람 중에 출세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를 꾀부리며 요령껏 대충 믿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예배하신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꾀와 요령을 추방하십시다. 게으름을 추방하십시다. 대충, 대충하는 습관을 버리십시다. 남과 경쟁하여 너무 무엇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우직하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십시다. 세상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십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눈속임을 하지 말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십시다. 그래서 하는 일에 복을 받으십시다. 하나님께 그 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안타까워하며 최선을 다하십시다.

율법을 잘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잘못 생각한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나름대로 율법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을 잘 지키려고 안식일에 대한 세칙을 600여 가지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그와 같은 율법을 잘 행한다고 얻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가지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고 행함은 없는 값싼 은혜주의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에 많습니다. 율법주의자나 값싼 은혜주의자나 다 잘못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보다 율법을 더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은 경계하셨지만 저들의 행하는 바 즉 열심은 본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하늘교회 교인 여러분, 올 한해를 세상과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해로 만드십시다. 특히 예수를 한번 죽자고 열심히 믿어 보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최고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우리의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사람들은 최상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선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은 보면 언제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집니다. 두 달란트를 맡은 사람이 인정을 받고 두각을 나타내기란 여간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재능이 두 달란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형편과 처지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면 다섯 달라트를 받은 사람이 최선을 다하였을 때와 똑같은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은 세상에서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최선이라면 과부의 엽전 두 푼은 때로 부자의 자루 돈보다 더 크게 빛을 발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욕심내시어 스카우트 하셨던 베드로는 유능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빈 그물질을 한 어찌 보면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는데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그의 무능함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그물질을 밤새도록 한 베드로의 우직함과 충직함을 보셨습니다. 재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고 충성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직하고 충직한 베드로를 귀히 보시고 축복하시니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사람이 두 배에 채우고 남을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욕심내시어 스카우트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사울이라 불리우던 바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답시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어리석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의 마음에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자기 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진심 그리고 그 진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보셨습니다. 바울의 열정은 정말 흉내내기도 어렵습니다. 사도행전은 어찌 보면 바울행전입니다. 바울의 그 충성과 열심은 사도행전을 거의 혼자 쓰다시피 할 만큼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을 열심히 충성스럽게 하는 한 해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충, 대충 하는 습관을 털어버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교회와 하나님과 세상을 한번 섬겨보십시다.

우리 나이 34살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십일조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회계에 십일조라는 항목이 없었습니다. 월정헌금이라는 항목이 있었고 기타헌금이라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월정헌금을 하였고 개중에 십일조 헌금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월정헌금을 하시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불편하셨는지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뭉뚱그려 기타헌금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 담임목사가 되어 한 개혁은 월정헌금 제도 없이하고 십일조헌금만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월정헌금을 십일조를 대충하는 사람들의 헌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안 하자니 그렇고 제대로 하자니 부담스럽고.... 그래서 대충 한 달의 얼마를 정해 놓고 그것을 십일조라고 우려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꾀와 요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월정헌금 제도를 폐지하고 십일조만 인정하면 그나마 월정헌금은 하던 사람들이 탈락하게 되어 교회 재정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염려하는 장로님들이 계셨지만 고집부리고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 월급부터 깍자고 덤벼 들었습니다. 어떻게하면 교회 재정을 늘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바르게 하는 일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 월정헌금 제도는 폐지하였습니다. 그해 교회 재정은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꼭 곱접로 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월정헌금하는 식으로 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있습니다. 꾀부리고 요령피우며 그냥 주일 날 예배당 뒷자리에서 대충 예배만 드리고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역전 될 것입니다.

건성으로 예배드리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십시다. 할 수 있는 대로 결석은 물론이고 지각도 하지 말고 예배에 정성을 쏟으십시다. 찬송도 기도로 건성으로 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찬송하고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찬송 때마다, 기도 때마다 은혜를 받아 보십시다. 특히 설교 시간에 집중하십시다. 그리고 말씀의 은혜를 놓치지 마십시다.

구역과 교회 조직에도 빠지지 말고 참여하십시다.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십시다. 교회 활동이 너무 지나쳐서 가정과 직장 일에 큰 지장이 있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시간을 잘 쪼개면, 그리고 불필요하고 건강하지 못한 시간들을 정리하면 얼마든지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면서도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헌금생활도 열심히 하십시다. 특히 온전하고 흠 없는 십일조생활을 하십시다. 헌금 하나를 해도 은행에서 신권을 바꿔서 하십시다. 하나님과 교회가 너무 좋아서 언제나 제일 좋은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한번 가져보십시다. 예수 믿는 맛을 한번 제대로 느껴보는 한해가 되게 하십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에, 가정에, 직장에, 사업에,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높은 뜻 네 교회가 올해 예산을 세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두 교회는 조금 낮게 잡았고 한 교회는 조금 힘들게 잡았고 한 교회는 아주 힘들게 잡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잡았습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 하늘 교회입니다.

그래도 나는 하늘교회가 마음에 듭니다. 저도 이제껏 목회하면서 예산을 호락호락하게 잡은 적 없습니다. 그래서 결산이 예산에 미달한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결산이 미달하면 속상하지만 저는 결산이 예산보다 훨씬 더 많아지면 그게 더 속상했습니다. 너무 목표를 느슨하게 잡은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한해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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