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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복 있는 자가 되라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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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자가 되라 (시 1:1~6) 

(시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1.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보다 돈 많고 건강하고, 게다가 모두가 다 잘 생기고, 직장이나 사업이 안정된 가운데 번창하고, 자녀들 모두 다 잘되고 가정이 평안하고, 이웃들이 모두 다 좋은 사람이고, 사는 자연환경이나 사회 환경이 깨끗하고, 나라가 평안하고 경제가 안정되게 성장하고 있다면,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복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사람이 죽어서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개연적으로 알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서 막연하지만 좋은 데 가기를 원합니다. 그 ‘좋은 데’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아무리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았을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복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도 복 있고,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가서 산다면 바로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아무리 복 있는 사람이라도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인생을 산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2:20)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맨 먼저 전파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며 전파하신 ‘천국 복음’이었습니다.(마4:17-23) 

그리고 이어서 복 있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진 복이 ‘천국의 저희 것’이라 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받는 복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사람의 위로는 복으로 나타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역시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불쌍히 여김을 받아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불행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받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복을 받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에게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습니다. 

이 모든 복들이 모두 다 ‘천국’,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로 Happiness인데 ‘갑자기 일어난 일’, ‘우연히 일어난 일’을 뜻하는 Happening과 그 어원이 같습니다. 이들 두 단어의 어원은 'hap'인데 우연, 요행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행복, Happiness는 복권 당첨처럼 우연히, 갑자기 일어난 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변화에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행운을 빕니다.’(Good luck to you!)를 스페인어로 ‘que buena suerte’라고 하는데 이는 ‘정말 다행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 ‘suerte’?라는 단어가 ‘제비 뽑다’라는 뜻입니다. ‘어쩌다 제비 뽑은 것이 잘 되어서 행운입니다, 다행입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복에 대한 또 다른 단어 'Bless'가 있습니다. ‘bless’의 어원은 ‘피를 흘리다.’라는 'bleeing'과 같은 어원인데 이는 고대영어 ‘피로 붉게 물들이다, 피로 신성하게하다.’ 라는 뜻을 가진 ‘bledsian’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가 ‘blessen’으로 변하여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이렇게 복을 빌어 줄 때 영어로 “May God bless you!”라고 인사합니다. 이 말은 실제로는 “God bathe you in blood!”인데 ‘하나님이 당신을 피로 목욕시키기를’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뜻과 스스로는 죽음에 이르는 희생을 할 때 축복이 온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피흘리는 죽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서로 “God bless you!”라고 인사해 봅시다. 누가 이렇게 인사했더니, ‘나 불렀슈?’하고 되묻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결코 happiness, 즉 행운이 아니라, 축복 ‘Blessing’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 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택하사, 다시 말해 우리를 낳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흘림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러한 복을 축복, 신령한 복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쩌다 일어난 요행수로 행복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창세 전부터 그 기쁘신 뜻대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택하사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원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복이라고 했고,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갈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이루어주시는 복은 이름이 창대케 되는 복, 천하만민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되는 복의 근원이 되는 복(창12:2-3), 강대한 나라 백성이 되는 복(창18:18),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창21:22),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셔서 지키시고 약속된 축복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떠나지 아니하는 복(창28:14-17) 등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신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축복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자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는 예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자 사막에서 샘물이 터진듯이 너무나 기뻐 냉큼 내려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이에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는 말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바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악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최후로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의 기준을 농부가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듯이 ‘의인과 악인’으로 분별하고, ‘의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 ‘악인’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자’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말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의 생활 방식은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하며, 거짓되고 교만하며, 원망불평을 일삼고 삽니다. 그러나 ‘의인’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하고 겸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보호하시고 형통하게 하시고자 반드시 ‘악인의 꾀’를 실패하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보호하시고 형통케 하시기 위해 악인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도모(모략, 꾀)까지라도 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33:10-11) 여호와께서 세상 나라들이 계획한 것들을 좌절시키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그러나 여호와의 계획은 변함이 없고 그의 목적은 어느 세대에나 한결 같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신 나라가 복이 있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민족이 복이 있다! 

악인의 꾀, 악인의 모략과 계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폐하여져 패망하게 될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 세상을 향한 의로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만이 영원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쫓는 자’는 결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만이 삶을 지혜롭게 하는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잠19:20-21) 

다음으로 “꾀”라고 단어는 여호수아 9:14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간단히 함락시키고 승승장구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기브온 족속들이 원방에서 온 것처럼 위장하고 찾아와 여호수아에게 화친조약을 청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까 침략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호수아와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아니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어 보지도 않은 채 곧장 기브온 사람들과 평화 조약을 맺고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들과 맺은 조약을 엄숙히 지킬 것을 맹세했습니다.

(수9:14-15)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꾀’는 바로 여기 “어떻게 할 것을” 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기브온 족속이 화친약조를 맺도록 거짓으로 속일 때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자신의 판단과 생각대로 결정한 것이 바로 “악인의 꾀를 따른 것”입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악인”이라고 하는 이 말은 우리들이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악인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자를 의인이라고 말하며,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자를 악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되는데 그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과 관계없는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마음과 생각과 시각을 가지고 결정을 내릴 때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극구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고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 말씀하신 바처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도록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란 표적에서 벗어나거나 길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정하신 목적에서 벗어나 살거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The Way)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께서 자신을 찾는 모친과 동생들을 두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2:48-50)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면서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혈연관계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혈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혈연관계는 하나님 나라에까지 가는 영원한 관계가 아니고, 그야말로 ‘혈육’을 가지고 사는 이 세상에서만 그 관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혈과 육으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살지 아니하고 자기 뜻대로 산다면 하나님 나라에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요6:38-39)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며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무엇인지 에베소서 1:5-6을 다시 보겠습니다. 

(엡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은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살전5:16-18) 

셋째로,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지금부터 2700년전 경 히스기야 왕이 유다를 통치할 때, 앗수르 왕과 군대 장관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침공하면서 유대 진영을 향해 이렇게 조롱하며 하나님을 경멸했습니다. 

“네가 무엇을 믿고 그처럼 대담해졌느냐? 너는 군사력과 전략을 가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빈말에 불과한 것이다. 네가 모든 우상을 철저히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종교를 개혁했다고 해서 너희 하나님이 과연 너희를 구원하리라고 믿느냐? 어림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앗수르 군대를 물리칠 것이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라. 세상 어느 나라의 신이 이 앗수르 왕의 손에서 그 백성을 구출한 적이 있느냐? 이 신들 중에 나라를 내 손에서 구해 준 자가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너희는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왕하18:17-35) 

이러한 랍사게의 조롱과 경멸에 대해 히스기야 왕은 일언대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께서만 온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경멸하는 말을 들으소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해 주소서. 그러면 온 세상 나라들이 주 여호와만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러한 응답을 보냈습니다. <앗수르 왕이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를 꾸짖고 모독하였느냐? 너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향하여 큰소리 치고 잘난 척하였다. 또 나에 대한 너의 그 오만 방자한 태도에 대해서도 나는 다 들었다. 그러므로 내가 네 코에 갈고리를 꿰고 네 입에 재갈을 물려 네가 오던 길로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에게 직접 이렇게 응답해주셨습니다. ‘랍사게는 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화살 하나 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방패 든 군인들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성 주변에 토성을 쌓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나의 명예와 내 종 다윗을 위해 이 성을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바로 그 날 밤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군 진영으로 가서 185,000명을 단칼에 쳐죽였습니다.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두 죽어 시체만 즐비하게 널려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철수하고 니느웨로 돌아가서 자기 아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하19:14-37) 

오만한 자들은 반드시 망합니다. 오만한 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패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오만한 아합 왕과 자리를 같이 했다가 죽을 뻔 했고, 그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경제 동맹을 맺어 오만한 자와 자리를 같이했다가 애써 거액을 들여 합작 투자해서 건조(建造)한 무역선을 띄워보지도 못하고 파선당하는 낭패를 당했습니다.(대하20:35-37)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와 자리를 같이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지혜서 잠언6:16-19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아합은 바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짓들만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과 자리를 같이 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살아서 돌아온 여호사밧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후를 통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들을 분별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오직”, ‘only’,이 뜻은 ‘이 길밖에’, ‘이 방법밖에’, ‘하나밖에 없는’ 이라는 뜻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오직 말씀 묵상 밖에 없습니다. 말씀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이 풍랑이 불어도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예수께서 주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7:24-27입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러므로 시편기자와 지혜자는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9: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잠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또, “묵상하다”라는 단어는 레위기 서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되새김질과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레11:1-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든지, 읽었든지 조용한 시간에 다시 그 말씀을 되새겨 보며 자신의 마음 가운데 말씀의 의미와 뜻을 각인시켜 삶 가운데 적용하며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세상 무엇보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앙생활로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궤를 악용한 엘리 시대의 지도자들과 백성, 그리고 사울 왕은 패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시19:7)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삶을 복되게 하는 지혜를 누리게 됩니다.(딤후3:15)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마음에 기쁨을 누리게 되며 눈을 밝아져 바른 분별력으로 복 있는 삶을 누리게 합니다.(시19:8)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기 위해 주야로 묵상하며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범사에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사람들 보다 더 잘사는 것 같고 세상에서 더 빨리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마태복음 13:29-30의 말씀처럼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았더라도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섰을 때 “너는 가라지” 하면 그 인생은 망한 인생이요,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알곡” 하면 그 인생은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가라지는 바람나는 겨와 같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며,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고 마는 쭉정이와 같은 것입니다. 

2009년 첫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와 말씀으로 시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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