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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인생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어야 하나? (창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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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어야 하나? (창 47:1~12)


오늘은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2008년도 송년주일이며, 우리 교회가 지키는 항존직원 은퇴예식주일입니다.  연말이 되면, 항상 인생이란 잘 살았던지, 아니면 잘못 살았던지 간에 인생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해를 잘 마쳐야 합니다.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금년 일 년 동안 잘 살아오셨습니까?   잘 살려고 했는데, 지나놓고 보니 부족함이 많았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한 해를 정성스럽게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했느냐고 하시면,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정성과 성실을 다하여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것이나 말씀 읽는 것이나 독서와 설교 준비에 정성을 기울이면서 오늘을 맞이하였습니다.  

일 년을 최선을 다하여 산다는 말은 정말 힘든 말이고, 한 달을 최선을 다하여 산다는 말도 불가능한 말이고, 한주간도 사실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의 시작을 새벽기도하면서 출발하여, 그날 그 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다보니, 일 년을 되돌아보면 그런대로 잘 살았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사람들은 무한정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에 점을 찍어왔습니다.  나의 생애 중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계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루라는 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이라는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일 년, 10년, 반세기, 한 세기를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시간을 표시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도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시편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의 시라고 하면 정말 오래 된 시입니다.   시90:12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새번역에서는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달라”기도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우리의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 통계청이 발표한 기대수명을 보면 2005-2010년 어간에는 남자 78. 6세, 여자가 82.2세였습니다.   남녀 평균을 내면 80. 4세가 됩니다.    남녀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고무적인 면도 있고, 걱정이 앞서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제가 전에 인생 시계에 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한번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넉넉하게 잡아서 84세를 산다고 하면 84세를 하루로 계산해보면 지금, 오늘의 나는 몇 시에 살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84세의 연세라고 하면 밤12시가 넘어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77세의 연세를 잡수신 분이면, 밤 10시에 들어섰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많이 보아주시면 7년을 더 사시는데, 그것으로 우리의 생애를 마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느끼는 속도감은 자기 나이의 배속이라는 말을 합니다. 50대에는 약 100km의 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70이 넘으면 140Km의 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느낍니다.  고속도로에서 140Km를 놓고 달리면 대단히 빠릅니다. 정말 엄청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달력이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한 주일이 얼마나 빠른지 주일이 지나면 금방 다음 주일이 옵니다.   “주일, 수요일, 토요일, 주일”  일주일이 한 4일 정도 지나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때는 주일, 수요일, 주일  한 이틀 정도 지나가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   일 년을 이렇게 빨리 보내고 연말 마지막 주일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인생의 종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이란 생각하기도 싫다는 말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잘 살고 보니, 죽음이라는 것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속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입원하라고 하면서, 보호자를 부릅니다.  자식들을 오라고 합니다.  환자에게는 충격 받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식들을 불러 마지막을 준비시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삶이 나의 것이라고 하면 죽음도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잘 죽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 때에 그는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잘 먹고 평안히만 살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잘 죽으려고 힘쓰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말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않는 편이 더 나을 만큼 끔찍스럽고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보면 죽음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의 일이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결혼하고 살아가는 동안 겪어야 했던 많은 사건들보다 가장 아름답고 보람도 있고, 의미를 가지는 피날레로 장식해야 합니다.    ‘피날레’라는 말을 정말 가장 클라이맥스요 절정입니다.   피날레라는 말은 최종, 마지막이라는 말이지만, 마라톤이란 종목은 올림픽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빅 이벤트입니다.  

우리 찬양대가 성가곡을 연주합니다. 시작할 때에 잘해야 하지만, 중간에 조금 엇박자요, 불협화음이 있어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 하모니를 이루고, 잘 올리고, 음이 떨지 않으면 그 날의 성가는 아주 잘 했다고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어설프고 엇박자가 많았어도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치면 그는 인생을 정말 잘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삶은 죽음으로 통하고 죽음은 다시 삶으로 통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항상 함께 있어준다고 사탕발림으로 말하지 말고, 죽을 때 잘 도와줄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 죽어야 합니다. 

“마지막 강의”라는 책은 카네기 멜론대학의 교수이신 랜디 포시박사가 쓰신 책입니다.  그가 간에 열 개의 종양이 있고, 살 날은 몇 달 밖에 남지 않은 46세의 젊은 교수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세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아버지이며 이상형의 여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낙담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나나 내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분명한 것은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그들과의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갈무리하고 내가 없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앞날의 계획을 세워놓아야 한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들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다면 한 20년은 더 살면서 자기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많은 것들을 살아있는 짧은 시간에 다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좋은 나침반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하여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강의에서 인생의 즐거움에 대하여, 인생의 가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정직함, 고결함, 감사할 줄 아는 마음, 평소에 귀중히 여기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를 중심으로 하여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췌장암 선고를 받고, 치료에 실패하여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하면서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였습니다. 

자신의 비통함을 달래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슬픔에도 대처하면서, 내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마지막 강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가 46년 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 그가 사랑하였던 모든 것,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꿈과 목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던 소중한 것들,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 그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었던 열정을 쏟아놓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강의의 제목을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라고 정하였습니다.   교수는 강당의 정원이 400명인데, 한 자리도 여유도 없이 가득찬 가운데 자신의 CT촬영한 10개의 종양을 보여주면서 의사가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는데, 이제 한 달이 지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좋아요.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바꿀 수가 없어요.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선택하는 일만 남았어요.  이미 돌려진 카드의 패는 바꿀 수 없으니 손에 쥐고 있는 카드로 승부를 걸어야하겠지요.”  

그는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꿈과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남은 생애 어떻게 그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자신감 넘치게 강의하였습니다.  그의 강의는 동영상으로 제작되었는데 1천만 명이 동영상을 시청하였고, 타임지가 선정한 2008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 ABC TV 쇼에 소개되었습니다.  

그의 책, 마지막 강의가 출판되자마자 뉴욕타임스가 선정하고, 아마존에서 선정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 강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꿈을 달성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줄 것이라,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 마지막 강의는 내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교수가 마지막에 남긴 말,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준다는 말과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보다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일반적인 진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가 매일 같이 찾아와 심방한 일이며, 목사님과 성도들의 심방은 참 위로와 힘을 얻은 일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강의는 자기의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책을 쓰면서 1장의 제목이 “부상당한 사자도 으르렁대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가 1시간 16분 강의한 동영상이 있는데, www.thelastlecture.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감명 깊게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도 보았습니다. 

애굽의 총리 요셉은 주군인 바로에게 들어가서 아뢰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소 떼와 양 떼를 몰고, 모든 재산을 챙겨가지고, 가나안 땅을 떠나서, 지금은 고센 땅에 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코 얻어먹으러 내려온 것이 아니라, 소떼와 양떼가 있고,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요셉은 형들 가운데서 다섯 사람을 뽑아서 바로에게 소개하였습니다.   5명의 이름은 알 수는 없지만, 얼굴이 선하게 생기고, 지혜롭게 보이고, 호감 가는 인물로 선정하였을 것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5이라는 수는 은총의 수였다고 합니다.  바로에게 공식적인 이주허가를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바로는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생업이 무엇이오?”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임금님의 종들은 목자들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소인들은 여기에 잠시 머무르려고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기근이 심하여, 소 떼가 풀을 뜯을 풀밭이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소인들이 고센 땅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청을 드렸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가장 좋은 곳에 살아갈 수 있도록 거주지를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중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왕의 짐승을 맡아 돌보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와서 바로를 만나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의 말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바로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습니다. 9절입니다. “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다시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물러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하려는 것은 야곱이 고백한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한 말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순례 여행’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 세상을 순례 여행이라고 보았고, 나그네의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말하면서 “나그네의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돌아다닌 사람입니다.   ‘순례’라는 말은 우리 성도들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땅에서 안정된 정착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는 인생을 사는데 험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고 험난하였음을 말합니다.   그가 살아온 130년의 세월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말로 들어야 합니다. 지금에 와서 과거를 돌아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는 말로 들어야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가 조상들보다는 아주 짧게 살았다고 하지만,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인생은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는 연단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유대 랍비의 글에는 “지나가는 통로에는 집을 짓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신혼부부가 백년해로의 언약을 맺지만, 정작 100년을 함께 사는 부부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생은 아주 짧다는 것을 알아야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불원간에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그네의 길이란 누구나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단 한번 주어진 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공도가 죽음입니다. 다윗은 죽음을 앞에 두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최선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형제에게 자랑스러운 동기로, 우리 교우들에게는 참으로 본받을 만한 선배로 기억될 수 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겸손과 성실로 우리의 남은 생애를 살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 했다는 칭찬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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