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송구영신]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 잡초 잡초
  • 567
  • 0

첨부 1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17~24)


오늘은 2009년도 새해를 맞이하는 첫 번째 예배입니다. 매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려왔는데, 사실 2000년 새해의 예배는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새해를 시작한 적도 있습니다. 새 천년이라는 생각에 심각하게 한 해를 맞이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새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 새해가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을 계기로 인하여 달라지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역시 새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 많은 사건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한 해를 한 텀(term)으로, 중요한 기간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우선 무엇이 달라집니까? 나이가 한 살 많아지지요. 나이가 한 살 많아진다고 하는 것은 아주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9년 새해 1월이 되었습니다. 1월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순서대로 번호를 메겨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달마다 고유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1월만 정월이라, 원월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정월(正月)이라고 하는 말은 “바를 정”이라고 하여 바르게 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원월(元月)이란 처음 달이라는 말입니다. 1월을 원월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하는 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1월을 “January”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항하는 로마신화에만 존재하는 신의 이름이 야누스라고 하는데, January라는 말은 로마의 신화 야누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January라는 말은 ‘야누스의 달’이라는 말입니다. 야누스는 로마의 동전에 새겨진 유명한 신이며, 로마의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제물을 받는 신이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두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누스의 얼굴이란 말은 인간의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날카로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야누스는 로마 신전의 관문 수호신으로, 문지기로 있었습니다. 

야누스의 한 머리로는 과거를 돌아보고 있으며, 다른 머리로는 미래를 내다본다고 말합니다. 새해의 관문인 1월은 과거를 한번 살펴보시고, 다시 미래를 설계하는 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달이 되었습니다. 

오늘 새해들어와 첫 번째로 드리는 예배에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엡4:17-24의 말씀을 찾게 되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한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와 자기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들은 수치의 감각을 잃고, 자기들의 몸을 방탕에 내맡기고, 탐욕을 부리며, 모든 더러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오늘 제목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옷을 입고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하여 헌옷은 벗어버리게 됩니다. 옷을 벗고, 옷을 입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옷을 벗는다는 말은 더럽혀지고, 오래 입어서 구겨지고, 혹 냄새가 배어 있다면, 그런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 옷을 내어 입을 때에는 헌 옷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도움을 받는 노숙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어떤 때는 직원들이 식사 중인 때에 오기도 하고, 식사 전에 밖에서 서성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의 특징은 옷을 몇 벌 끼어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옷을 많이 껴입고 다닙니다. 옷을 어디에 둘 수 없어서 계속해서 껴입는 것 같습니다. 

상도동에 살 때보니, “벗을 래, 입을 래”라는 옷 가계가 있는데 보니, 아동복 파는 가계인데, 상호가 아주 특이하고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벗을 래 입을 래” 하면 입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옷을 입는다, 벗는다는 말은 어떤 스타일의 삶을 사느냐 접느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옷을 벗는다는 말은 깨끗이 털어버린다, 내어버린다, 청산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사람 옷을 벗었대” 그 직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은퇴하시면서 강단에서 목사의 성의 가운을 벗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정말 그 직을 벗는다,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입는다는 말은 이제는 그 옷에 걸맞게 산다는 말입니다. 

옷에 대한 속담이나, 격언이 많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옷이 날개”라고 합니다. “비단 옷 입고 밤길 걷기” 남이 없는 곳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하여도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이 말은 아무리 작은 가랑비라도 자꾸 맞으면 옷이 젖듯, 아무리 작은 손해라도 여러 번 받다 보면 피해가 크다는 뜻입니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예 사람이 좋다.” 이 말은 옷은 깨끗한 새 옷이 좋지만, 사람은 사귄지 오래일수록 인정이 두텁고 좋다는 뜻입니다.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 이 속담은 주로 북한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돈이 없어 옷을 잘 입지 못하면 못나 보이고, 못난 사람도 돈이 많아 옷을 잘 입으면 잘나 보인다는 뜻입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과 같습니다.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헌 것이 있어야만 새 것 좋은 것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옛날부터 옷은 그의 신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황제나 황후가 입는 옷이 다르고, 태자와 태자비가 입는 옷이 다르고, 사대부 집안이 입는 옷이 다르고, 양반이 입는 옷, 중인 즉 평민이 입는 옷, 상민이나 천민들이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이것은 고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옷으로 사람의 신분을 구분하였습니다. 오늘에도 군인이 입는 옷, 경찰의 제복, 소방관의 제복, 운동선수의 유니폼, 법관이 입는 법의, 죄수가 입는 옷이 다릅니다. 옷 중에 호주머니가 없는 옷이 있는데, 병원에 입원 치료하는 사람들이 입는 환자복, 감옥에서 입는 죄수복, 그리고 마지막 장사지내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엡4:17의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이 살아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의 삶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이 편지 에배소서를 받은 에배소 교인들은 그들의 과거 예수님을 모를 때에 살던 삶이 어떠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번 노회의 한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조금의 여비를 받게 되었는데, 기독교 서점에 들어가 한 책을 샀습니다. 책 제목은 “사랑을 잘 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입니다. “7가지 습관”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명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앤디 스탠리의 “성공하는 사역자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도 보았습니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은 게리 체프먼이란 분이 썼는데, 게리 체프먼의 다른 책은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유명합니다. 그 책은 약40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무려 500만부가 팔린 책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을 잘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을 썼습니다. 우선 사랑의 7가지 특성에 대하여 말하고, 부부사이에서 사랑 잘 하기, 부모로서 사랑 잘 하기, 직장에서 사랑 잘 하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사랑의 특성이란 친절, 인내, 용서, 호의, 겸손, 관대함, 정직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려고 하면 친절하고 잘 참으세요.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면 사랑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전문 상담가인 게리 체프먼이 딸과 함께 여행을 갑니다. 좌석표를 받아보니, 자기는 4A 창가입니다. 딸은 7A로 역시 창가인데, 세 자리 뒤에 떨어져 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랑 함께 앉아 가려고 통로 쪽에 앉은 사람에게 “저 앞에 창가에 앉은 아빠랑 함께 앉도록 자리 좀 바꿔주실래요” “통로 쪽 좌석인가?” “아니에요. 창가 쪽이에요.” “그럼 안 되겠군요. 사람들을 비집고 왔다 갔다 하기는 싫거든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딸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옆에 앉은 분에게 “딸과 함께 앉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7A 좌석으로 옮기실 마음이 있습니까?” 그 남자는 “그럼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남자는 신문을 들고 7A 자리로 옮겨주었습니다. 같은 상황인데, 왜 두 사람은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쓰게 된 책이 “사랑을 잘 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습니다.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은 친절합니다. 호의도 잘 베풉니다. 관대합니다. 나중에 끝까지 읽으면 다시 한번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후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표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표준이란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성경 말씀이며, 말씀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의 허망한 것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허망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옛 사람의 삶이란 한 마디로 어두운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 우리 구주 예수님이 배제된 삶이란 무의미한 것, 어두운 것, 공허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이 없다면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18절 말씀에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영성이 어두워지고, 총명이 사라지고, 무지에 빠지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됩니다. 옛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면 무지하고 완고한 것으로 지각이 어두워져 있다는 말입니다. 영성이 뛰어나면, 곧 믿음이 좋다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1에 보면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올 해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지 말고, 하나님에게 여주어보고, 의노하고 상의한 후에 행하십시오. 하나님에게 한번만 물어보세요. 기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항상 말씀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앉으면 기도하고, 성경을 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19절을 보시면 더욱 정확해집니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하고, 예민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흐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나를 알고, 사회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요즈음 허망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글을 읽다가 메모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남겼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욕을 다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계속 울렸습니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조용한 탈의실에 통화하는 내용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렸습니다. 딸이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나 MP3 하나 사고 싶은데 사도 돼?” 아빠가 말합니다. “암~ 되고말고.” “근데 아빠 여기 나와 보니까 핸드폰이 너무너무 예쁜 게 많은데 하나 바꿔도 돼?” 역시 아빠가 대답합니다. “그래 그래라” 조금 있다가 딸이 또 묻습니다. “아빠, 나 컴퓨터가 너무 느려져서 그런데 신형 하나 사도 돼?” 하고 묻습니다. 이런 대화를 듣던 사람이 생각합니다. MP3나 핸드폰은 1-20만원이면 된다고 하나, 컴퓨터는 백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이라 설마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빠는 “그래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 하고 통화가 끝났습니다. 

그 남자는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좌우를 둘러봅니다. 그리고 크게 외칩니다. “핸드폰 주인~ 전화기 좀 찾아 가세요~” 하고 외치더라는 겁니다. 자기 딸이 아니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너 원하는 거 그리고 네가 뭘 해도 다 괜찮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 딸아이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그렇고, 모두다 생각이 허망합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20-24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이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이요, 진리 안에서 주님에게 듣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마음가짐이 새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수양하고 훈련한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이 완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물에 내려가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예전에 입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겠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새 영을 두시고, 새 마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만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3:6-9에서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2008년에 최선을 다할 수도 있었는데, 차선에 머물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위안을 삼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롬12:1-2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하셨습니다. 우 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 구습을 좇아가던 옛 사람은 묵은해와 함께 내어버리고, 벗어버리고, 

새해는 새 사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사실 더 멀고 넓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도 없고, 갈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 나를 인도하고 나를 데리고 나와 함께 동행하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을 알았습니다. 한 여성이라고 하여도 그 어떤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사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지역을 복음화 할 수도 있고, 한 나라를 살릴 수도 있습니다. 새해에는 큰 꿈을 품으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목표가 여러분을 이끌고 저 높은 하늘로 도약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이방인의 허망한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지지 말고, 밝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감감 없는 사람처럼 욕심대로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