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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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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8~10) 
  

2008년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린 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옛날에는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 말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세월이 총알같이 빠르다!” 이래야 맞을 것 같습니다. 

금년은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습니다. 특별히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몰아닥친 경제 위기로 인해 모두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지난 한 해를 회고하면서 과연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직 한 마디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다!”라는 고백일 겁니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예배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오직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새해에 더 큰 은혜를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이런 고백은 성경에서 가장 강조되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5대 정신을 보면, 그 가운데 “오직 은혜!”라는 말이 나옵니다. 참고로 종교개혁의 5대 정신을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등입니다. 이런 정신들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내용들입니다. 그 중에서 ‘오직 은혜!’라는 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새기고 또 새겨야 될 중요한 신앙 원리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위인들은 예외 없이 이 원리를 따라 신앙생활을 했고, 또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 원리를 잘 터득하고, 이 원리에 따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쪼록 하나님의 은혜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만사가 하나님의 은혜 : 오직 은혜

바울은 성경 인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 은혜 의식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 서신 곳곳에서 만사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실 가만히 관찰해 보면 세상만사, 인생만사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공기(산소)와 같습니다. 공기는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어찌 우리가 한 순간인들 공기가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① 구원 받은 것도 은혜 :

무엇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셨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그 믿음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정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공부해서 된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니고, ...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시고 감동해 주셔서 예수 믿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 하나에서 열까지 내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만일 내가 지금 예수 믿지 않고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영원한 사망 가운데 헤매고 있을 텐데, 예수 안에 있는 이 기쁨과 평안을 맛도 못보고 살 텐데, ... 정말 한심한 거죠. 이따금 불신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친구들도 많지만, 참 딱해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더러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지만, 우리는 그들에 예수 안 믿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 궁금합니다. 만일 잘 나가는 친구가 자기 자리하고 바꾸자고 한다 해도 절대 안 바꿉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 때문입니다. 

② 사는 것도 은혜 : 

우리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 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주셨으니까 이렇게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 중에 누가 스스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가 낳아주셨다고 말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일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낳는 것이라면, 자식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겁니까? 하나님이 세상이 보내는 겁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은혜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감사한 겁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적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합니까? 그 가운데 죽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어려운 고비마다 잘 넘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게다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높든 낮든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죠. 재물을 쌓아 둔다고, 건강 관리를 잘 한다고, 노후 준비를 잘 한다고 미래가 보장되나요? 결코 그렇지 않죠. 미국 같은 나라가 흔들거리는데, 어느 나라가 안전하겠습니까?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고 있는데, 어느 기업이 안전하겠습니까? 건강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병들고 죽어 가는데, 어느 누가 안전하겠습니까? 

여러분, 구약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잘 나가던 사람이 누구죠? 솔로몬 왕이죠. 그런데 그 역시 인생을 살아 보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많았었나 봅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시127:1~2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 아무리 인간이 기를 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흔히 이런 말을 하잖아요. 운칠기삼!(運七技三) 무슨 말인가요?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업을 할 때도, 투자를 할 때도, 학생이 공부하고 대학에 갈 때도, 운동선수들이 시합을 할 때도 노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참 하나님을 만남으로 깨달은 게 아니라 운이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실력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역도 선수 장미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경기 직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금메달은 하나님이 주는 겁니다. 이것이 제게 주어져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사실 당시 참가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이라고 놀고먹었겠습니까? 각자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장미란 선수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승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당면하는 큼직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마음 먹는 대로, 노력하는 대로 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 때, 취직할 때, 결혼할 때, 사업할 때, ... 큰 일일수록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실은 큰 일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하다못해 우리가 순간순간 호흡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스스로 호흡하나요? 공기도 하나님이 주시지만, 내 몸 갖고 호흡하는 것도 하나님이 해주시는 겁니다. 호흡하는 것을 일일이 신경 쓰고 살아야 한다면 아무 일도 못할 겁니다. 보통 사람이 1분에 숨쉬는 회수가 18회~20회 정도라고 하는데, 그거 일일이 내가 시계 보면서 세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있던 분이 호흡기를 떼고 나니까 살 것 같더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때는 전혀 몰랐는데, 호흡하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알았다는 겁니다. 내가 힘들이지 않고 호흡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연말을 보내면서 저도 지나온 생애를 회고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년에는 몇 살 되나 계산해 보니까 제 아버지와 같아지는 겁니다. 53세에 돌아가셨거든요. 어르신들 앞에서 외람되지만, 나도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만큼 살았으니까 말입니다.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새삼 깨달은 겁니다.

③ 죽는 것도 은혜 :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만 하나님의 은혜인 게 아닙니다. 내 생전에 주님이 재림하지 않으면 언젠가 죽을 텐데,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1년이면 수도 없이 장례식을 인도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죽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편안하게 죽는 것, 그리고 그 후에 천국 가는 것, ...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늘 핍박 가운데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예수 믿는 자에게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빌1:23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무슨 말인가요?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아니, 죽으면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더 좋다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이 들어갈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조차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잠14:32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성도는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기에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라는 겁니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본문에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10절 말씀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회고해 보면서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 겁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진솔한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저절로 이런 고백에 도달하게 됩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당연한 것이죠. 은혜를 깨달은 자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 보답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시늉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마땅합니다. 
  

[2] 은혜에 보답하는 삶 : 겸손, 감사, 충성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본문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겸손, 감사, 그리고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자연히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겸손해지면 감사할 줄 압니다. 그리고 감사하면 저절로 충성하게 됩니다. 연쇄적으로 이뤄집니다. 이럴 때 은혜가 더 풍성해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은혜의 사이클이죠.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면 은혜가 소멸됩니다. 

사무엘상 1장~4장을 보면, 한나의 가정과 엘리 제사장 가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나의 집안은 평범하고 소박한 가문입니다. 반면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명문가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지만 기도함으로 사무엘을 얻습니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사람을 살아나니까 갈수록 빛나는 가문이 됩니다. 반면 엘리 집안은 배은망덕한 가운데 은혜를 까먹고 결국 패가망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① 겸손 :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무엇보다 먼저 겸손해집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뭐라고 고백합니까? 8절~9절.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자기는 팔삭둥이같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낮춥니다. 사실은 바울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글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까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또 딤전1:15 보면, 심지어 뭐라고 고백합니까? “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자기는 가장 사악한 죄인이었다는 겁니다. 

우리 말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늘 겸손한 모습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지속됩니다. 

② 감사 :

바울은 겸손한 자세를 가졌기에 또한 하나님 은혜에 늘 감사했습니다.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 모든 게 감사하다는 겁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 모두 감사 제목입니다. 

흔히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있는 만큼 감사한 겁니다.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난과 시련조차 감사의 제목일 수 있습니다. 고난을 겪을 때는 힘들었는데,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그랬어요.(고후12:7~10 참조) 대장간 식칼이 논다고 제 몸에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 가시는 아마 심한 안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감사했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겸손을 유지하고 그로 인해 계속 능력이 나타나니까 너무 감사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 아시죠? 3중 장애인 아닙니까?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 장애 ...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 됐습니까?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은혜를 헤아리기도 바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기뻐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관점의 차이입니다. 제로베이스(Zero Base) 감사예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계속 베풀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장애인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고(하버드대), 사회복지가로서 세계적 명성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크게 영광을 돌리는 생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③ 충성 :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면 저절로 충성하게 됩니다. 10절 하반절을 보시죠. “ ...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그 은혜를 절실히 깨달을수록 더욱 더 수고했습니다. 여기서 ‘수고한다’는 단어가 흥미롭습니다. 성경 원어 헬라어로 ‘코피아오’(κοπιάω)인데, 탈진한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소리가 희한하게 우리 말하고 비슷해요. 코피 나게 일하는 겁니다. 바울 이렇게 충성하자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로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음악가 하이든(Franz J. Haydn 1732∼1809)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로 오라토리오「천지창조」를 작곡하였습니다. 그가 66세 되던 해 지나온 생애를 회고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창세기 내용을 기초로 만든 곡입니다. 그는 매일 기도하면서 그 곡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주신 결과가 그 곡입니다. 곡이 완성된 후,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든! 하이든!” 연호를 하면서 하이든에게 「천지창조」연주를 부탁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하늘을 보십시오! 고개를 들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모든 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있었기에 그에게 계속 은혜가 부어진 것입니다. 이런 게 바로 은혜 위에 은혜(Grace upon Grace)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잠시 회고해 보십시오. 그러나 후회할 것도 없고, 자책할 것도 없고,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만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힘으로 우리가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그 은혜의 힘으로 새해에도 계속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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