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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들 (느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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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들 (느 3:1~10)


기독교인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도 분분합니다. 교회마다 때로는 신학을 하는 사람들마다 그 해석이 다른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 외곽에서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실 때, 구원으로 부르실 때에 사회에 대한 결단과 책임에 호소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대한 방관자가 아니라 책임적인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결단 그리고 어떻게 책임지는가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인의 핵심입니다 .

우리가 그냥 겉으로 보아서 신앙생활을 잘 한다, 충성을 잘 한다, 다른 무엇을 잘 한다 등 이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가,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를 믿으면서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책무를 어떻게 감당하는가로 말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신앙과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이 회사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결단하고 살아가는가, 어떻게 신앙적인 생활을 하고 신앙의 행동을 하는가, 이것 역시 마치 신앙과 별 개인 것 같지만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느헤미야는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지만 페르시아의 최고위 관리가 되어 최고의 명예, 부귀와 영화를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늘 그의 관심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모든 관심과 힘을 기울여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는 이것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조국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이고 요구이고 기대하심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밤낮으로 조국인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과 그 민족에 대하여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좋은 것이 많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으로부터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수일간 울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냥 흥미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절절한 심정으로 조국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가 얼마나 신앙적인 사람인가를 드러납니다. 그는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좋은 자리와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신 까닭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갔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려고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단하고 난 후 제가 결단 해봐야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주셔야하니 이 결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서두른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기회를 주실까 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신앙인의 모습인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또다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속으로 준비했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말씀드렸습니다. 40일 동안 그냥 하나님께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기회를 주실 것인데 그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작정하고 있던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조국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문이 다 부서셨다고 하는데 제 가슴이 아파 너무 힘드니 저를 제 조국으로 보내주셔서 성벽을 재건축할 수 있도록 통행증을 주십시오. 그 일을 하려고 하면 목재가 필요하므로 목재를 주십시오.’ 하나 하나 준비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허락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신앙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으려면 이렇게 믿으라고 보여주십니다. 내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아 이제 부임하는데 왕은 기왕 가려면 그냥 휴가로 가지 말고 내가 잠시 총독으로 임명할 테니 가서 월급도 받으면서 할 일을 하고 다녀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갔습니다. 그는 부임한 즉시 예루살렘 성벽 재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저도 느헤미야 3장의 내용들을 읽을 때 사람들 이름을 읽으면서 참 힘들었습니다. 사람 이름만 계속 나오고 있는데 성벽 재건 건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개인별로 일일이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은 10절까지 읽었지만 3장 32절까지 전부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름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기독교 신앙 기독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일을 기록할 때면 큰 줄거리부터 이야기합니다. 다. 어떤 어떤 중요한 일들이 있고 무슨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이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일은 이 사람이 하고 저 일은 저 사람이 했다고 기록하는데 하나님은 정반대로 맨 먼저 사람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느헤미야를 1장부터 쭉 읽다보면 3장에 와서 성경이 끝이 나는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이름을 이야기한 난 그다음에 그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업적이 아니라, 성과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소중한 것이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한 것인지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니라도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 큰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할 수 있고 저 사람을 통해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정 시킬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세우시는 것은 여러분이 귀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이 일을 맡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세상과 교회간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것입니다. 세상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큰일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또 그 일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을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가, 어떤 사람이 온 전심을 다해서 온 성의를 다해서 하는가, 그것입니다. 일의 결과는 나중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작은 일, 큰 일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나게 큰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손톱만한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여러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 하시고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교사 중 한 사람 허드슨 테일러가 있습니다. 대단히 유명하고 귀한 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선교사님의 그 기적같은 놀라운 선교의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일하는 것이지 내가 일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있어서,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너무 모릅니다. 세상과 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람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하는 일이지 교회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언젠가 마르다를 책망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시다 잠시 쉬시려고 마르다 집에 가셨습니다. 두 자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데 철없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할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려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마르다가 더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보다 못한 마르다가 ‘예수님, 저 철없는 아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언니 마르다를 마르다야, 마르다야 하나만 잘하면 족하다 마리아는 하나를 잘 선택했다 그것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더 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대접받고 대접하는 것 등의 일들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라는 이 아이가 당신에게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정은 이제 곧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인데 먹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이야기하자 한번이라도 더 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강가 간 아들이 조금 멀다고, 일이 좀 바쁘다고 온라인으로 몇 푼의 돈을 보내고 나면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의 얼굴이 보고 싶은데 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보고 싶다는 그 심정을 아이들이 알아주어야합니다. 우리 주님의 심정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렇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돌로 떡을 만들라고 시험했을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가 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정말로 보기 싫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야단쳐도 몰라 너무 너무 화가 나신 하나님께서 결심을 단단히 하였습니다. 보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말도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친히 말씀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의 종도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4백년간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종도 보내지 않으셨는데 그 일 바로 전에 하신 말씀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에서 그 까닭을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노나 하는도다(말1:6)..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화나셨는데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1:7).. 너희는 음식을 드리기만 하면,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렇습니까? 라고 묻지만 그런 식으로 마음에 없는 제물을 내가 좋아할 것 같으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어서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1:8) 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고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왜 화가 나셨는지 한 번 보십시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불사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제물을 드릴 때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데 불사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며, 무엇을 조금 바치면 다 되는 줄 아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절한 심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면서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이 저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힘든 사람을 보면 나도 힘들지만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든가 하는 이런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에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지는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이 예배당에 오신 여러분들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오랜만에 자식들, 손자 손녀들을 보면 얼마나 좋습니까? 바로 이런 심정입니다. 무엇을 들고 와도 좋고 빈손으로 와도 좋습니다. 바쁘면 못 올수도 있고 자주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 아십니다. 마음이 있기만 하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너무 사랑만 하면 버릇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 그 마음을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4백 년 동안 침묵하시기 전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 4장에서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사랑하는 아이가 병들었는데 고쳐주시지 않겠습니까? 깨끗하게 치료해주십니다. 치료하는 광선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선을 비쳐주셔서 치료해주십니다. 젊은 사람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를 보지 못했을 텐데 외양간에서 뛰어나온 송아지가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풀어주면 좋아하면서 뛰어다는 것이 마치 노루 뛰어다는 것과 같이 예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뛰어놀고 걱정없는 인생으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그것을 좋아하시는가를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좋아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아하고 잠깐이라도 예배당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자주 나오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나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그런 심정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느헤미야 3장입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그 수많은 이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렇게 전부다 그 다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돌아가면서 그 이름을 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뻐하는 이 일을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먼저 아셔야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한 사람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 수 한 그릇이라도 준 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은 결단코 상을 잊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일을 했습니까? 물 한 그릇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큰 일만, 대단한 일만 생각합니다.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저 사람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연탄 몇 장 가져다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다른 일이 아닙니다. 큰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한 그 사람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을 바로 예레미야 3장에서 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아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헐벗을 때는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는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일이 아닙니다. 힘든 일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도 할 일입니다. 그렇게 건강하지 않아도 할 일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내 심장이 내 가슴이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연결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하면 이렇게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실 때 목적이 무엇인지 정리하게 됩니다. 그 일 자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일을 부탁하면 그 일 때문에 부탁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성숙시키고 성장시키고 여러분들의 기쁨과 삶의 의미와 보람을 주시고 여러분들에게 영광과 명예를 주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기도 하고 저런 일을 부탁하시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절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광이고 나에게 복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보람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후회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한 해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해를 더 주셨습니다. 혹시 아쉬운 것, 후회스러운 것이 있어도 나가오는 한해를 이제보다 더 단장하면 됩니다. 정말로 내년에는 내가 멋진 한 해 하나님 앞에 후회할 것이 없는 아름다운 한 해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시고 내년에는 잘 가꾸어 그런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있는 어떤 인물보다도 더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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