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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사도 바울의 성공원칙 (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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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성공원칙 (빌 3:12~14)


우리나라 마라톤 선수 중에 여러분이 아는 사람 두 사람 이름을 말해보세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영조 선수와 이봉주 선수를 떠올릴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1970년 생으로 동갑네기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마라톤을 위한 신체 조건은 이봉주씨 보다 황영조씨가 더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이 폐활량은 보통 사라의 2배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영조씨 보다는 이봉주씨를 더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이봉주는 계속해서 세계대회 금메달 하나를 따고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황영조씨는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1위를 한 후 은퇴를 하여 지금은 감독 겸 마라톤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대회 금메달 하나로 만족하고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현역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이봉주씨가 우리들에게 잘 얼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에 105년 전통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하고부터 일 것입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달려서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7년에는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지금은 39살의 나이로, 마라톤의 세계에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 이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봉주씨는 본문의 사도 바울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12절에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사실 사도 바울이 본문을 기록할 당시에 그는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기록해서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세웠으며, 세계를 3차례 돌면서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제자들을 얻었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할만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2절 끝에 보면 바울은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이봉주가 존경 받는 이유가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달려가기 때문인 것처럼, 사도 바울이 존경스러운 이유 역시 세계 역사에 영향을 줄 만큼 큰 일을 하고서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사도 바울이 달려가는데 2가지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사도바울이 달려가는 2가지 원칙을 함께 살펴보고 우리들도 그렇게 달려가기를 결단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

뉴질랜드에서 목회를 하시는 조 목사님께서 평신도 시절에는 호주에서 사셨고, 굉장한 낚시광이었답니다. 그분은 때때로 시드니북쪽 약160Km 떨어져있는 뉴카슬이라는 곳으로 갈치 낚시를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갈치라는 어종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무리를 지어 떼로 다닙니다. 한번 잡히기 시작하면 한 두 시간 동안 수 십 마리를 잡을 수 있지만, 갈치 떼가 지나가고 나면 밤을 꼬박 세운다할지라도 한 두 마리 잡을까 말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치 낚시를 갈 때도 채비가 철저해야 해야 합니다. 만약 낚시할 타임에 낚시채비를 한다고 시간을 허비해 버리면 나중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한번은 장인과 함께 그곳으로 갈치 낚시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인께서 낚시를 하시다가 낚시 바늘이 바위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한번 바위에 걸리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갈치 낚시를 할 때는 물에 뜨는 우끼에 야광을 달고 그 밑에는 갈치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에 쇠줄과 납으로 만든 추를 단 후, 바늘을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씩 매어 달기 때문에, 낚시 바늘이 바위에 걸리면 호주달러로 약6불 정도가 날아가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그런데 장인께서 낚시 바늘이 바위에 걸리자, 6불을 아끼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갈치 떼가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조목사님이 
“아버님! 그냥 6불 날려 보낸다고 생각하시고 낚시 줄을 중간에 잘라버리고 다른 채비를 하시지요” 그랬더니 
“조서방! 6불이나 되는 것을 아까 와서 어떻게 자르나”, 
“아버님! 저희들은 여기까지 160Km 달려왔습니다. 또 돌아가려면 160Km를 달려야 합니다. 기름 값도 기름 값이지만, 이곳에 오기 쉽지 않은데, 갈치떼 다 가고 나면 빈바구니 들고 가시겠습니까?” 

어른께서는 아깝다고 생각하셨지만, 할 수 없이 칼로 낚시 줄을 잘라 버리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조 목사님이 17마리를 잡는 동안 장인께서는 4마리밖에 못 잡으셨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씨름하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니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라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특징은 미래를 향한 꿈과 기대보다는 과거의 것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사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과거에 집중하고 과거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미래를 바라보시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과거의 어떤 것들을 잊어버려야 할까요?

  1) 과거의 영광을 잊어버리라

사도 바울은 과거에 인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영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 혹은 하버드대학교 정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바리새인이었으며, 신분적으로 보면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지성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빌 3:7에 보니 그런 영광스러운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긴다”고 했으며, 8절에 보면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의 영광을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남부러울 것이 없이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재산 관리를 잘 못해서 가세가 점점 기울었고 결국은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 옛날에 일꾼들 부리듯이 다른 사람들을 부리려고만 합니다. 이 사람은 아주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어떤 상태가 될지 훤합니다. 그는 결국 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어떤 영광이 있었든지 현재 자신의 형편을 보고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과거에 잘 살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과거에 신앙이 좋아서 수많은 영적인 체험을 했고, 교회에서도 일등 신자로 인정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능력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과거의 영광에 빠져있으면 안 됩니다. 현실을 보시고, 현실에 충실하십시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일 것입니다.

  2)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기사 중에 “희망의 마라톤”이라는 실화가 있습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은 테리 폭스라고 하는 분인데 캐나다의 청년입니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진 이유는 18세에 암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캐나다, 넓은 땅, 대륙을 마라톤으로 횡단하였습니다. 무려 143일 동안 5,084㎞를 뛰어서 갔습니다. 

그가 마라톤을 한 목적은 “의족을 한 장애자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나와 같이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어떤 길로든지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렇게 마라톤을 하는 동안에 온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했습니다. 2,340만 불을 모금하게 되었고 기네스북에 최고 기금 모금가로 기록될 만큼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해 내었습니다. 이 돈을 암 연구센터에 기증했습니다. 

그는 사실 불행했습니다. 어쩌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이것을 새로운 기회를 삼았습니다. 좌절 없이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는 그런 생을 살아서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라고 모든 일에 성공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존경스러운 것은 그는 실패에 매이지 않고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역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덴에 갔을 때 였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철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논리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철학적 논쟁을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에 의지해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아덴의 철학자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바울을 ‘말쟁이’라고 할 정도로 철학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바울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 중에서 아덴만큼 구원 받는 사람이 적었던 곳이 없었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사역에 비교하면 아덴의 사역은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덴의 실패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그만큼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실패를 경험으로 십자가에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사역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실패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과거에 실패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신의 한계가 그것 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미련한 날 지혜롭게, 병든 날 새롭게, 가난한 날 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의지하셔서 과거의 실패에 매인 줄을 끊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끊어질 지어다”


  3) 과거의 죄악을 잊어버리라

어느 교회에서 한 자매가 열심히 교회생활을 합니다. 교회봉사도 앞장서고, 헌금도 열심히 합니다. 예배시간이면 늘 앞자리에 앉아서 “아멘”도 잘 합니다. 그런데 이 자매의 얼굴에 늘 수심이 가득합니다. 기도할 때 보면 늘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자매를 불러놓고 “자매님, 은혜 받으면 하나님이 기쁨을 주셔서 얼굴이 환해지고 생활이 밝아지는데, 자매님은 왜 그렇게 어둡습니까? 그리고 기도할 때는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매가 목사님에게 대답합니다. “목사님, 제가 과거에 용서 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 받으려고 이렇게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자매는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정결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데 그 자매는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몰랐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많은 죄악을 범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는 과거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을 때에도 사람들을 선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과거의 죄악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의 능력으로 과거의 죄를 용서 받고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믿기 전에는 사도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죄악을 저질렀던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롬 8:1,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4) 과거의 상처를 잊어버리라

열 길이 넘는 저수지에 비가 안 와서 물이 무릎 정도 차게 되니,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펄쩍펄쩍 뜁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기 집 창고에 들어가서 구멍 난 그물을 수리합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물고기를 다 잡는데 당신은 지금 뭐하고 있어요” 남편은 아내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물을 깊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에야 그물을 들고 저수지로 가더니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깊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지니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시간은 은혜의 저수지에 와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은 저수지에 있지만 손으로 고기를 잡듯이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고,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은 상처가 해결된 사람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무슨 설교를 해도 은혜가 됩니다. 예배시간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상처가 있는 사람은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상처는 사람에게 받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받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 것입니다. 상처는 우리의 마음에 쓴뿌리를 만듭니다. 그 쓴뿌리는 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가 처리 되지 않으면 결국 계속해서 생활에 쓴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인생이 쓴 열매로 가득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 받기 위해서 상처 준 사람을 “안 보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는 방법은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농담 중에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렘 28:13에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서 내가 변화 되려고 해야지 피하게 되면 더 센 사람을 붙이셔서 나를 변화시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전 11:23-27에 보면 기가막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우리 중에 바울처럼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상처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믿음의 생활입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일을 포기한다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평생 상처 부둥켜안고 사실 겁니까? 상처 받을까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안하고,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새로운 일에 도전도 안하고,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의 일도 안 할 겁니까?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담대하세요. 그리고 사람도 만나시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시고, 하나님의 이에 헌신하십시오. 웅크리지 마세요. 피하지마세요. 치료의 하나님을 붙잡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를 사랑해 버리세요. 그 길이 상처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

미국의 최고의 언론인 데이빗 브랭클린은 “자기가 만난 인생의 성공자는 하나 같이 자기에게 던져지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기초를 다진 사람들이다.”라고 말했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 여인이 “미래가 없는 가난뱅이 주제에 누구한테 프로포즈를 하냐?”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이 죽일 여자야...” 했을텐데 록펠러는 “하나님, 내가 가난해서 이렇게 멸시 받습니다. 나 부자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악물고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서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록펠러는 자기에게 던진 벽돌을 상처로 받아드리지 않고 그것을 쌓아서 자신의 인생의 기초를 쌓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이 던진 상처의 벽돌을 다시 상대에게 던지지 마시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성공의 기초를 쌓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롯의 처는 소돔성에서 나올 때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잡으러 달려가기를 축원합니다.


2. 앞에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라

바울에게 앞의 것은 무엇일까요?

  1) 앞에 것은 자신의 푯대를 말한다.

14절에 보니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푯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로마를 통해서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살아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100m 달리기 시합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100m를 8초대에 끊었어도 그 사람이 라인을 벗어나서 엉뚱한 곳으로 달렸다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의 기록은 인정이 안 됩니다. 그는 실격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서 성공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알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면서도 그는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잃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서 머리가 당에 덜어진 상태에서도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망치로 나무를 치면 나무가 깨지기는 해도 망치가 나무에 박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못을 데고 망치로 치면 못이 나무에 박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못 끝의 뾰족한 곳으로 힘이 모이니까 박히는 것입니다. 이게 집중력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려면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알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여러분들이 도실 것입니다.

  2) 앞에 것은 하늘의 상을 말한다.

14절에서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하늘에 상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상을 목표로 달려가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현세의 복보다 내세의 영광, 내세의 상급을 사모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양곡교회에 신앙생활을 손님처럼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여자인데 별장을 지어놓고 사는데 일주일에 주일날만 한번 교회에 옵니다. 하루는 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가서 보니까 좋은 집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 집이 유난히 좋아보였습니다. 온갖 보석으로 지어졌는데, 문은 금으로 되어있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천사님, 저 집은 누구집입니까?” 물었더니 “네가 나가는 교회 담임목사님 집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자매가 목사님 집을 보다가 자기 집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천사님, 제 집도 좀 보여주세요”라고 했더니, 천사가 “안 보는게 좋을 걸”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천사를 졸라서 허락을 받고 자기 집을 보기 위해 가는데, 천사가 시골로 인도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다 무너녀 가는 오두막집을 보여주면서 “이게 네 집이다”하더랍니다. 

그 집을 여자 분이 천사에게 따졌습니다. “아니, 이거 너무 사람 차별하는 것 아닙니까? 목사님은 목사님이라고 그렇게 좋은 집을 주시고, 저에게는 이런 집을 주실 수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합니다. “네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 생각해 보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했는데 하나님을 위해서는 한 일이 없더랍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서 이분이 다음 주일에 교회에 1억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계시록 22장에서는 새예루살렘과 주님의 재림에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교수가 암에 걸려서 머리가 다 빠진 상태로 목욕탕에 갔더니 중 한 사람이 “어느 암자에 계십니까?” 묻더랍니다. 머리 깎았다고 다 중이 아닙니다. 교회 나온다고 다 같은 신자가 아닙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땅에 것을 바라보고 땅에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이 땅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대로 상이 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1. 뒤에 것을 잊어버리라
  1) 과거의 영광을 잊어버리라
  2)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라
  3) 과거의 죄악을 잊어버리라
  4) 과거의 상처를 잊어버리라

2. 앞에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라
  1) 앞에 것은 자신의 푯대를 말한다.
  2) 앞에 것은 하늘의 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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