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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지금은 서로 사랑할 때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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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로 사랑할 때 (요 13:34~35)


I. 초댁회 범퍼 스티커: 사랑

논산 훈련소를 방문하고 있던 한 어머니가 하는 말: 
"원 세상에 수천명 훈련병들 가운데 손발 맞는 놈이 우리 아들 하나 밖에 없어?"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아들만 크게 보입니다. 
왜요? 사랑 때문입니다. 

2006년 여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릭 워렌 초청 집회가 있었습니다. 자그만치 10만명이 모였는데 우리교인들 눈엔 류영모 목사 - 저만 보이더랍니다. 짤막한 시간 제가 시간을 맡아 인도했는데 릭 워렌 목사보다 류 목사가 크게 보이고 자랑스럽더랍니다. 왜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입니다. 이게 사랑의 힘입니다. 

자동차 뒤편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 "왕초보" 등등 이런 글귀를 붙인 것을 "범퍼 스티커"라고 하지요. 어떤 부인은 사람들이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몰고 나오지 말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고 소리들을 치길래 "왕초보, 집에 밥하러 가는 중"이라고 범퍼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초대교회의 범퍼 스티커가 있었다면 "서로 사랑하라"하는 것일 겝니다. 기독교의 범퍼 스티커는 "사랑"입니다. 

아담 이후 오늘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가 "사랑"이 아닐까요? 인간은 사랑의 홍수 속에 살아왔습니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시와 문학작품들 온갖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들, 갖가지 영화와 연속극 속에서, 여러 가지 예술 작품의 주제는 거의가 사랑 아닐까요?

연속극에서 남녀간에 사랑의 줄긋기가 끝나면 연속극도 끝이 나더라구요. 이토록 많이 말해 온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왜 "새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 유언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II. 고통의 시대를 치료하는 명약: 사랑

사랑의 질이 달라지면 인생의 질이 달라집니다. 
사랑의 의미가 달라지면 인생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사랑의 폭이 달라지면 인생의 폭이 달라집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오면 모든 것이 새로워질까요?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면 아무리 새해가 와도 세상은 어둡게 보일 겁니다. 우리의 시각이 오염되어 있으면 새하늘에 가도 내가 가는 곳은 오염이 될 겁니다. 내 영혼이 병들이 있으면 종합병원 100개를 차려도 그 인생은 시들고 병이 듭니다. 

새해, 새시간, 새환경이 새로운 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마음이 새하늘과 새땅을 가져다 줍니다. 인간은 환경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세상이 다 썩고 큰일났다 싶습니까? 내 심령이 건강하면 내가 있는 곳이 건강해집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교회에 대한 애정이 변했다고요? 
내 가족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내 교회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내 눈이 변했고 내 마음이 변한 것뿐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한 마디로 말하면 고통의 때입니다. 위기 상황입니다. 
바로 이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서로 사랑해야 할 때이니라.」
고통의 때를 이기는 힘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넘어서는 능력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을 한다고 거창하게 떠들더니 겨우 하는 얘기가 또 "사랑" 타령이냐구요? 그렇습니다. 공동체를 치료하고 병든 시대를 치료하는 명약, 신개발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오래된 치료약, 예수님이 가르쳐준 명약 바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사랑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치유할 수 없는 병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열 수 없는 문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건널 수 없는 강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녹일 수 없는 근심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풀 수 없는 매듭은 없습니다.」(에멧 팍스)

무너진 가정을 세우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약해진 교회를 세우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물어진 민족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III. 새계명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성만찬을 들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식사 도중 가롯 유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잠시 후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제 내가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31절) 십자가의 죽음을 예감하시고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영광이 무엇일까요? 내가 잘되는 것이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인간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잠시 비장한 분위기가 침묵 중에 흐릅니다. 걱정스럽게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겠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시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변에 어떤 위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일전불사를 각오하시고 중요한 명령을 하시려나 보다 생각했겠지요. 

"새계명"이라?
지금까지 한번도 말씀하지 않은 대단한 명령을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드디어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사랑하라"는 이 말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습니다. 율법의 요약이요 지금까지도 수없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위기에 부딪힌 제자공동체를 잘 지키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 나라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계명이라는 겁니다. 

신약성경에서 "새로운"이라는 말을 의미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네아"라는 말과 "카이넨"이란 말입니다. "네아"라는 말에서 영어의 New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시간적으로 최근의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 "새계명"이라고 할때 "새"는 "카이넨"이란 말로 성격, 본질적인 면에서 전혀 다른 차원을 말합니다. 옛날부터 있었지만 전혀 다른 차원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문학과 예술 인간들의 감정속에서 움직이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차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계명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이 옛사랑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옛사랑이라면 하늘에 속한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나 중심 이기적인 사랑이 옛사랑이라면 하나님의 관점 중심의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한을 품고 미워하는 것이 옛것이라면 감사하고 기쁨에 겨워하는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사랑이 옛사랑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감격하여 하는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받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옛사랑이라면 주면서 행복해 하는 사랑이 새사랑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랑하라"는 말이 56번 나옵니다. 
이 56번 가운데 주님의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시는 13장에서 21장 사이에 44번 즉 대부분의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지금 제자들 곁을 떠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방황할 것이며 그 충격으로 제자 공동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위기를 만났다면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면 그 비별이 무엇일까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IV. 공동체를 세우자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기간동안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매주 다루게 될 것입니다. 매주 다루게 될 보석같은 각 주제들을 꿰는 실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가족 -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천지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원리로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옆구리를 찢어 가정 공동체를 만드시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찢어 교회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리기 위해 가정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헤치려 합니다. 공동체를 세우려는 우리의 몸부림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계획을 세우시는 거룩한 몸부림입니다. 

랄프 네이버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은 삼위일체 공동체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말씀하셨습니다.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공동체를 벗어나 혼자서 살고,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40일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한소망 모든 가족들은 소그룹 공동체 목장안으로 다 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목장 안에 들어가 목장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십시요. 친절하게 도와줄 것입니다. 
열정이 있으신 분들은 이번 캠페인 기간동안 목장을 개척하든지, 취미그룹, 사역그룹, 소그룹 공동체를 친히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역자들과 당신의 계획을 의논해 보십시요. 친절하게 도와 드릴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I love you" 사랑한다는 얘기를 아무데나 사용합니다. 
I love a pie(파이). I love a pizza(피자).
그러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할까요?
I need you!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내 생애에서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사십시다.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사십시다 하는 제안이지요.

옆에 계신 분들에게 확인시켜 드립시다. 
"우리교회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의 가게도 하나님의 가족- 교회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러기가 먼 길을 여행할 때에 홀로 날아가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힘쌘 기러기 한 마리 앞장서 날아가면 저항을 피해서 두 마리 기러기가 그 뒤를 따릅니다. 그 뒤에 두 마리 또 두 마리 그래서 V형을 이루어 먼 길을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서 바람을 맞고 있는 한 마리 기러기가 힘을 잃어버리면 그 기러기가 뒤로 빠지고 힘을 비축했던 다른 기러기가 앞장 서면서 앞을 선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그들이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천국까지 신앙여정을 여행하려고 할 때에 혼자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연약한 사람들을 끌고 가십시오. 나의 멘토들과 신앙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따라가십시오.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V. 공동체를 세우는 기술: 용서와 위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사랑해야 합니다"하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합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입고 외출을 해야 합니다 하는 말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을까요? 그것이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편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되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제자는 초대교회의 성도, 교우의 다른 말입니다. 
제자됨의 바로메타가 서로 사랑입니다. 성도됨의 바로메타가 서로 사랑입니다. 
교우됨의 바로메타가 서로 사랑입니다. 

공동체안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며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공동체를 늘 부정적으로 말하며 욕되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의 등뒤에 나를 비난하고 명예를 실수시키는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들까지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십자가 이후 제자 공동체를 상상해 보십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일어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불평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당신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사람이 아니요. 그러고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해? 그러고도 베드로 당신이 수제자요?" 그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는 겁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침묵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만이 공동체를 지키는 것입니다. 

불평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용서는 공동체를 세우는 접착제입니다. 
비난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공동체에 생기를 줍니다. 
원망은 공동체를 나누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공동체를 하나되게 합니다. 

주님을 잃은 제자공동체는 큰 위기를 만난 것이지요. 이 때는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면 안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서로의 약점과 상처를 보듬어 안아 주어야 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두어도 무너집니다. 각자 서 있기도 힘이 듭니다. 

"나 목자 안 할래" 힘이 필요합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나 사역 관둘래"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 공동체를 떠날래. 맘에 안들어" 힘이 필요합니다. 
이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으면 공동체의 위기는 공동체는 무너뜨립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요한이 다락방에 온 몸에 힘을 잃고 들어섰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마디 위로였습니다. 죽음이 무서워 도망갔던 제자가 다락방에 들어왔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 마디 격려와 따뜻한 포옹이었습니다. 그 누가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지쳐 교회 예배에 찾아오고 직장의 아슬아슬한 위기속에 불안한 얼굴을 하고 목장에 왔을 때 꼭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입니다. 서로가 서로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40일 특새기간동안 나의 기도제목 뿐만 아니라 소그룹 공동체 목원들의 기도제목까지 기도수첩에 적어 기도해 주십시요.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보여주십시요. 나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 주십시요.


VI. 맺는 이야기

저와 우리교회는 개척이후 지금까지 줄곧 소그룹 공동체 목장을 세우기 위해 가히 몸부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원형회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세우시길 원했던 바로 그 교회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남성 목장을 세우기 위한 사랑방운동, 목장 회복운동을 펼쳤습니다. 세계를 뛰어다니며 셀교회운동을 연구하고 배웠습니다. 

이런 몸부림을 하는 가운데 연약했던 성도들이 리더로 세워지고 목장들이 세워지고 번성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주님은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러나 때로 한 목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넘어지고 쓰러지는 모습을 볼때면 내 가슴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수 백개의 목장 가운데 목장 하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교회리더 한 사람이 지치고 넘어져 공동체를 떠날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요? 얼마나 미운지, 미운만큼 얼마나 안쓰러운지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미워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어 공동체를 떠나도록 버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공동체 - 목장을 무너뜨리고 교회리더를 쓰러뜨리는 것은 사탄의 작전이다. 사탄에게 결코 승리를 안겨 주지는 않으리라. 목장이 무너지고 리더들이 쓰러지고 공동체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사역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떠났던 한 리더를 만나 찢어지는 제 가슴을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우리교회에 참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우리교회에 집사님이 꼭 필요합니다. 집사님이 제 손을 붙잡아 주어야 우리교회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집사님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천하에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 목사님 내가 필요하다니? 내가 우리 목사님과 교회에 힘이 될 수 있다니. 그날부터 집사님과 가정이 일어났습니다. 주일 교회에 보이지 않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날 예배가 얼마나 저는 신이 나던지요? 설교에 얼마나 힘이 생기던지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주일 하루 5번, 6번 설교를 하고도 힘이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목장이 세워지고 번성하는 모습을 보면 살 맛이 납니다. 리더들이 제 역할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천국 공동체의 마음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한 마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목장들마다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역팀들이 동일한 비전으로 세워지길 바랍니다. 

내일 새벽부터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십시오.
함께 기도하십시다. 나라를 세워달라고 함께 기도하십시다. 
지금은 나라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기 위해 울며 기도할 때입니다. 
한국교회와 우리교회를 향한 어떤 부정적인 말도 침묵하십시요. 긍정적인 말만 하십시요.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십시요. 서로 사랑하십시요. 
지금은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사랑할 때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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