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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우리가 버리고 갈 것들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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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리고 갈 것들 (엡 4:25~32) 


최근에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분노한 일도 있었고, 마땅히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해를 넘기지 않고 모두 회복되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안색이 어둡기도 했을 것입니다. 웃음도 많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교우들에게 따뜻한 눈길도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연히 교우들의 마음도 무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며 사과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 한파로 움츠려들고 시름이 쌓일 교우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러던 차 아주 최근에 뭔가 억눌려있던 마음을 풀어주고 여유롭게 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몇 편의 시를 읽다가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며 새삼 깨달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시들은 우리 한나여전도회에서 2008년도 정기총회자료의 부록으로 만든 유인물에 실린 것들입니다. 이어령, 김현승, 정지용, 조병화 등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 열한 편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정기총회에서 시들을 나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한나여전도회가 그렇게 멋진 여전도회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그 시 모음집을 제 책상에 놓고 가신 분께 정말 감사를 드리며 한나여전도회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였지만 특히 제 눈길과 마음을 붙든 시 가운데 두 편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김시현 시인의 이라는 시입니다:

   낙엽은 미래의 동경도 없고
   슬픔과 희열에 넘치는 감정도 없다
   그러나 세상을 터득한 철학이 있고
   애련을 놓아버린 평화가 있다
   이제 어디에 떨어진다 해도 불만이 없다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돌담 밑 그늘진 곳도 좋고
   양지 볕 따스한 곳도 좋다
   어디인들 쉴 곳이 아니랴
   하늘하늘 춤추듯이 내려오는 낙엽에는
   그냥 자연이 있을 뿐이다

이 시를 다 읽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늘하늘 아무데나 떨어져 앉는 낙엽에서 [애련을 놓아버린 평화]를 보고 [자연]을 읽는 그 시인의 감수성과 통찰력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한 때는 그런 시인의 마음을 품고 다닌다고 자부했었는데 그 마음이 어느새 이렇게 무뎌지고 어두워졌는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을 터득한 철학과 애련을 놓아버린 평화와 자연의 순리를 말없이 보여주는 한 닢의 낙엽보다 못한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도 했습니다. 한 닢의 낙엽의 초연함과 한 시인의 달관이 나의 것이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낙엽을 만드시고 거기서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는 시선을 한 시인에게 허락하시며 그것을 통해 새로운 자기성찰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한 편의 시도 엄청난 위로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이란 시인데 그 저자가 김동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김동익 목사님이신지 아니면 동명이인의 시인인지 확인을 못했지만 그 시의 저자가 누구라 하더라도 이 시는 목회의 고통을 다 체험하고 달관의 경지에 오른 분의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좌우명처럼 가슴에 새겨야 할 이 시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해를 받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도 변명하지 말고 그대로 가세요.
   상대가 밉고 악마같이 보이더라도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그냥 사세요.

   당신이 착한 일을 하고 의로운 일을 할 때
   그것을 [위선이다. 나쁘다.]고 욕을 해도
   그래도 이해하고 용서하세요.
   피곤해도 정의의 걸음을 중단하지 마시고
   사랑의 실천도 멈추지 마세요.

   따질 일이 있더라도
   입 막고
   눈 막고
   귀도 막고 사랑하세요.
   말없이 끌어안고 사랑해 주세요.

   사랑은 차별하지 않고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겁니다.
   사랑은 교환조건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런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사랑을 무슨 열매 따는 것처럼
   장사하듯이 생각하지 마시고
   나무를 가꾸듯이
   멀리보고 인내하며 사랑을 가꾸세요.

이 시들을 읽고 나서 이 시의 제목대로 [깊이 있는 사랑]을 하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분노하게 하는 이들에게 보냈던 경멸의 시선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떨쳐버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서 부드러운 미소를 받아보지 못하신 모든 분께 사과를 드립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어디가나 제 인상을 얘기하는 사람들로부터 [해맑은 미소]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시 그 해맑은 미소를 되찾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임 당시에 비해 머리가 많이 세어서 마음이 여린 교우들에게 무고한 죄책감을 안겨주는데 해맑은 미소까지 빼앗았다는 비난을 받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가 바로 서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일치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첫 절부터 끝 절까지가 하나하나 실질적인 권면들입니다. 

다시 귀담아 들어 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여기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면 교회 안에서의 평화와 일치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엇을 버리라 합니까? 거짓을 버리라 합니다. 도둑질을 버리라 합니다. 더러운 말을 버리라 합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로 교회 안에서 평화를 짓밟고 일치를 깨뜨리는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이런 모습들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 해를 넘기지 말고 다 버리고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사도 바울은 특히 분노를 버릴 것을 반복해서 권면합니다. 26-27절을 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를 품고 지내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어 우리로 죄를 범하고 말게 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가인의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 4:1-8에 보면 가인과 그의 아우 아벨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어느 날 두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하고 그의 아우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분노하고 안색이 변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게 됨을 봅니다. 즉 분노에 사로잡히면 자칫하면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죄 짓게 만드는 좋은 기회와 수단의 하나가 바로 분노라는 사실입니다. 가인의 부모를 유혹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어 불순종하게 했던 사탄은 그들의 아들에게서는 분노를 사용하여 끔찍한 범죄를 자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도처에서 분노를 경계하며 분노를 다스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잠22:24-25에서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하고, 

잠29:22에서는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마5:22) 하셨습니다. 

본문 31절에서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함으로써 다시 한 번 [노함과 분냄]을 언급했습니다. [노함과 분냄]은 2009년을 맞기 전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버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는 버리라고 하는 부정적 권면과 함께 지키라고 하는 긍정적 권면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본문 25절).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본문 28절).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는 것입니다(본문 29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본문 32절). 그 일을 힘쓰면 모든 교회는 평화로움과 하나 됨을 넘어서서 진실하고 사랑이 넘치며 은혜로운 교회와 개개인의 삶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2008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2009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버릴 것은 다 버리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킬 것은 더 열심히 지키는 2009년이 되기를 바랍니다.(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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