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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하시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렘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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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렘 33 : 1 - 9
제 목 : 행하시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근심과 걱정, 그리고 고통 가운데 자신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줄로 압니다.  할 수만 있으면 평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우리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언제나 이러한 행복한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런 우리의 바램과는 다르게, 인생이 때로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 처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고난이 자신의 삶 가운데 닥쳐올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체념하면서 그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다 내 죄 때문이지!” 혹은 “내 운명인데 어떻게 하겠나!”  이렇게 자신이 당한 모든 것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드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 어떤 방법을 동원합니까?  주술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샤머니즘적인 방법들을 동원해서, 점을 치거나 굿을 하는 방법 등을 통해, 이런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면, 이런 사람들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이런 고난의 때가 닥쳐 올 때에,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이 인생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분명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폴 스톨츠” 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제목이 이렇습니다.  “역경 지수 :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  책 제목이 참,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역경지수라고 하는, 큰 타이틀과 같이, 사람들이 역경에 부딪쳤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이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을 보면, 대게 세 가지의 형태로 반응을 한다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무엇이냐?   포기 형입니다. 
인생이 힘든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그냥 포기하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   안주 형입니다.  
역경 앞에서 포기하거나 도망가지는 않지만, 그냥 그 현실의 자리에 주저앉아,  그 모든 상황을 그대로 인정을 하고, 그 상태에서 현상 유지나 하는, 안주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유형과, 두 번째 유형이, 전체의 60-70%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요.  그러면 나머지 셋째는 무엇입니까?  정복 형입니다.  인생에 산과 같은 역경을 만나면, 그냥 포기해 버리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역경을 맞서서 모든 힘을 다해서 기어 올라가, 기어코 그 문제를 해결하고 정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바로 이 세 번째의 유형, 정복형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탁월한 지도자인, “존 맥스웰” 목사님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아주 간단하게 대비시켜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고, 비전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에 자극을 받아,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또 그들은 언제나 보다 큰 꿈을 품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라도, 굴하지 않고, 계속 헤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오직 현재만 보고, 지금만 바라보는, 매우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급급하게 되지요.  또 그들은, 내일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당장 필요한 것에만, 심취되어 살아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오늘과 현재만을 생각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내일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비전, 이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결국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예요.  꿈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가난한 사람도 꿈이 있다면, 내일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러시아의 유명한 음악가인 “차이코프스키”가, 불후의 명작인, 발레곡 “백조의  호수”를 작곡한 것은, 1876년 그의 나이 36세 때였습니다.  
그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측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곡한 이 곡은, 1년 뒤에 초연 되었을 때, 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수준이하의 저질이란 악평까지 들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은 차이코프스키는,   밤에도 잠을 못 이루며, 허탈한 심정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끝에 가서 꼭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현재의 악평에 두려워하지 말자.  이 악평이 반드시 찬사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할 때,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지요.  
남들보다 더 큰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의 고난 가운데서도,   결코 쓰러지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오뚜기처럼 일어서게 된다는   것이예요.  무엇 때문에요?   자신이 가진 그 비전 때문에... 자신이 품고 있는 그 장래에 대한 큰 꿈 때문에...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비전과 꿈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이러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비전을 가지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또 희망적으로 살아가는데, 그래서 결국 그들의 꿈과 목표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오늘 우리 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성도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과연 그들을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꿈을 가지고,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주일 아침에, 2008년도 첫 주일을 맞아 예배하는 이 아침에,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큰 꿈과 비전을 새롭게 선물 받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내용의 말씀입니까?  오랜 포로 생활 가운데 절망 중에 빠져 있는, 유다에 대한 회복을,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감옥에서 고생할 때, 계속해서 그를 격려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백성과,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오래전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실망할 수밖에 없고, 좌절 할 수밖에 없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장 비참한 절망 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격려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에게 그러한 유다에 대한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생전에 유다의 회복을 바라보게 되지 않겠습니까?  유다의 회복과 동시에, 자신도 자유의 몸이 되어질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의 몸으로, 다시금 유다의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2절과 3절 말씀을 보세요.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라도, 흔들리지 말고, 오직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꿈을, 나도 꾸는 것이 비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것을, 나도 바라보는 것이 비전인 것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멘!!!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비전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도무지 따라오지도, 흉내 내지도 못하는, 엄청난 비전인 것입니다.  
이 비전을 우리가, 믿음으로 같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비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보여 주신 비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에게만, 하나님께서 이런 비전을 허락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각 자에게도, 이미 장래에 대한 비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니 내 형편에 무슨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겠나?  

지금 여러분의 형편을 보면 암담하지요?  실망스럽지요?   초라하지요?  
뭐 하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늘의 이 초라한 현실을 벗어 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이나 인생에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 이 나이에 무슨 인생에 소망이 있겠나?   그래서 남은 인생 자체를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생각을 이제는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 14 : 12절 말씀에 보세요.  갈렙이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할렐루야!!  

이런 담대한 외침을 하고 있는 갈렙의 나이가 얼마였습니까?  그이 나이 85세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85세만 인생 막장의 나이입니다.  
완전 꼬부랑 할아버지인 것입니다.  사실 그 나이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무슨 비전을 새롭게 하겠습니까?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런 외침을 하고 있는 갈렙을, 여호수아가 어떻게 반응하며 대하고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고, 면박을 주며 물리쳤습니까?   아닙니다. 
이어지는 수 14 : 13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오히려 갈렙을 축복하고, 그가 차지하고자 하는 그 땅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땅이 갈렙과 그 후손들의 기업이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바로 비전인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소망인 것입니다.  

그 믿음, 그 비전, 그 소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비전을 허락하시고, 그 비전을 행하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십니까?  나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 또 우리 성천교회 성도, 모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하나님을, 여러분 마음에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과 비전을,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까?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절망스러운 현재의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첫째는, 무조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을 때, B.C. 588년   바벨론의 3차 침입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하고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선지자들이 회개를 촉구했지만, 유다 왕들은 이를 계속   무시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다가, 왕궁의 감옥인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엎드려 기도하라는 겁니다.  현재 네 모습에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오직 부르짖고 기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가난과 질병과 저주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조건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동업하시면, 사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업이 흥왕케 되고, 날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이런 축복이 나타납니까?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믿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복이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여러분 그렇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손을 내밀 때, 하나님은 그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아 주시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세요.  유다 백성들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극심한 고난 중에서라도, 이제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대로 B.C. 537년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축복해 주셔서, 이후로는 전 세계 만방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도성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혹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절대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보면, 정말 기도해야 할 분들이,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나와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지를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비밀이 무엇인지, 우리를 향하신 계획이 무엇인지를,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라도 당장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만이,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고, 여러분의 삶을  성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올 한 해도, 부르짖어 기도하는 여러분의 모든 기도에, 이런 놀라운 응답의 축복이 넘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절망스런 인생의 때에,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무작정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장래에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을 치료하며, 그 삶에 있어 평강이 있고,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모든 죄악을 사하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6 - 8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과 풍부함으로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첫째, 이 성을 치료하고 회복할 것이며, 둘째, 백성들의 죄악을 사할 것이며,   셋째, 풍성한 축복을 허락해 주시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미 파괴되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잃은 것도 되찾게   하시고, 이 성을 다시 새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회복과 축복을, 우리는 기대하며, 올 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불순종했다 할지라도, 범죄 했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 고쳐   낫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시고, 인생과 사업에 실패한 사람을 성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버림받은 사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새롭게 역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기대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응답해 주시겠지, 이런 마음 가지고 소극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으니 나에게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은 최상의 축복이요, 최고의 축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장래에 대한 기쁨의 소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기대를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맹물이 최고급 포도주가 되는 최고의 축복을, (the best)의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뭘 못하시겠습니까? 창조의 하나님은 재창조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재기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실패하여 절망과 고통 가운데 처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시험에 실패한 사람, 사랑에 실패한 사람, 결혼에 실패한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인간관계에 실패한 사람, 건강에 실패한 사람. 수많은 사람이 실패하여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실패했다 할지라도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시고, 성공의 길로 가게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라는 책이 있는데요, 그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알래스카 공군병원에 근무하던 23세의 한 여자가, 출근길에 대형   트럭과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그때   임신 5개월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뛰어가 여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공군병원으로 급히 후송을 했습니다. 

온몸은 뼈가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뱃속에 있던 아기는 그만 유산이 되었습니다.  담당의사는 그녀를 살펴보며, “조금만 참으세요. 당신만 결심하면 살 수 있습니다.” 라고 위로하며 말했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상태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고 소식을 들은 남편마저, 그녀와 이혼하고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혼자가 된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살리셨습니까? 저를 데려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보살피던 의사는, 아주 정성스럽게 치료를 해주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뭔가 뜻이 있으셔서 살려 주셨을 겁니다.  그러니 살아난 것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군의관이 7년 동안 35번의 수술을 한 끝에, 그녀는 얼굴도 몸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년 후 그녀가 퇴원하게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녀를 그토록 극진하게 돌봐주었던 군의관으로부터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독신이었던 그 군의관이, 그녀에게 결혼을 하자고 청혼을 한 것입니다.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이 여인은, 전 남편보다도 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까지 절망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면,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이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축복이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성공이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역사하시면,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힘을 내어 기도하시되, 여러분의 장래에   하나님이 하실 큰 일을 기대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 절망스러운 현재의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 때, 가장 선할 수 있습니다.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소요리 문답 제 1 문에 보면, “사람이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절망 중에 있을 때, 나의 구원과, 나의 행복과, 나의 만족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통하여, 이제 우리의 남은 인생,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윌리웜 캐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시도하라.”  우리가 왜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장차 크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세요.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장차 유다 백성들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계 열방 앞에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절에서 말하는 그들이 누구입니까?  이제까지 유다백성들을 괴롭혔던 바벨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했던 모든 이방 민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의 회복과 축복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만방에 나타내고, 그들 앞에 당신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은 받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축복을 언제 관리합니까?  받고 나서 관리합니까?  물론 우리가 축복을   받았을 때 그 축복을 신앙으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미리 기도로서 그 축복을 관리합니다.  “아직 받지도 않았는데, 뭘 관리하나?”받은 것처럼 관리합니다.  아직 축복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치 풍성한 축복을 받은 것처럼, 그 축복을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쓰겠다고 기도하고, 그 축복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더 귀하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이런 기도를 어찌 들어주시기 않겠습니까?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이 기도를 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이 목적이 맞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위해,   회복을 간구하며, 축복을 간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절망 중에 있는 성도들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며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주께 나아와 믿음을 가지고, 무조건 엎드려 간구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먼저 위로하시며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향한 계획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꿈과 비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시고, 하나님이 바라보는 장래를, 여러분도 바라보면서, 여러분의 축복의 지경을 넓혀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남은 인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기를 소원하며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세상에서 존귀한 자로 살아가며, 이 땅에 많은 신앙의 유산과 업적들을 남기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에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올 2008년도 한 해 동안에도, 우리 성천교회 성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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