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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그리스도, 임마누엘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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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임마누엘 (마 1:18~25)


부모들은 아기가 자라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마음에 담아 자녀들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들이 소개됩니다.  사람들에게 불리어지는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 하나가 아니고 공식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탄절을 앞둔 오늘 아침 우리를 위하여 오신 아기 예수의 이름에 담긴 뜻을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19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하고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배경 설명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예수’와 ‘그리스도’ 두 가지 이름이 동시에 언급되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란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구약 히브리 말로는 ‘메시야’ 이고 신약에서 헬라 말로 ‘그리스도’라 번역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 탄생의 기록을 보면, 천사들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알린 소식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1) 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안드레라고 하는 갈릴리의 어부가 먼저 예수를 만난 후 집으로 돌아가 자기 형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1:41) 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때 성경을 보면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 우물가에 물 길러 왔다가 예수님과 대화하던 한 여인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는데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도록 하실 것이라’ 하자 예수께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곧 그 사람이다’ (요4:25, 26) 하시며 자신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때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직명’이고 예수는 본명입니다.  ‘수상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 수상’하고 영국 수상을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혹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구약을 보면,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 세우는 세 가지 공직이 있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입니다.   모세의 형 아론이 성경 역사상 맨 처음 대제사장이었고 그의 네 아들들은 아버지를 돕는 제사장으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그들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제사장 취임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모든 제사장들은 같은 방식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지자로 부름 받은 사람이 공식으로 일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중에 사무엘 선자가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 공식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과 두 번째 임금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의 대관식을 집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은 이처럼 구별된 사람에게 정결한 기름을 붓는 의식을 통해 구별된 직분을 맡겨 제사와 말씀선포와 다스림의 일들을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도’는 직명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3직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제사장이고 선지자이며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아기 예수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려고 왔습니다’ 하였습니다.   헤롯 대왕과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예수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생애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예수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왕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할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을 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내가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 왔다.  곧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난 왕이다.  누구든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소리를 듣는다’ 하심으로 스스로 왕이심을 증언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또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고 광야에서 외쳤던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외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제사장이셨습니다.   일반 제사장들처럼 어린 양을 잡아 피 흘리는 제사를 담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드림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단번에 담당하신 가장 큰 대제사장이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14) 고 증거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는 오늘 본문 21절에 설명된 것처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즉 ‘구원자’라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직명이라면 예수는 본명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사람들에게 예수라고 불리었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할 사람이라는 엄청난 뜻을 가진 이름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출생한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왕족이나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구원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를 부를 때 ‘나사렛 예수’라고 했을 겁니다.   별 볼일 없는 변방 갈릴리 나사렛과 같은 지역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하며 한 마디로 무시하고 거절해버리는 그런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나사렛 예수가 온 인류의 죄악을 홀로 담당하신 구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승리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임마누엘입니다.   23절 말씀처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직명, 본명 외에 임마누엘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예수 탄생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선포하신 이름이었습니다.   

남쪽 유다의 임금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 아람 나라에게 위협을 받던 유다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거기다가 한 핏줄을 가진 북쪽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하여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하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아하스 임금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들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무엇이든지 한 가지 징조(sign)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아무 것도 구하지 않겠다고 하자 이사야가 임마누엘의 징조를 선포합니다.   아하스가 믿든 믿지 못하든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때면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인데, 그러나 그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하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당신이 두려워하는 저 아람과 이스라엘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이 임마누엘의 징조는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실 메시야의 예언이기도 하였습니다.   마리아를 찾아온 천사가 동정녀인 마리아의 잉태를 선언하였고 그와 정혼한 남자 요셉에게 임마누엘의 징조를 선언함으로 마리아에게서 날 아기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렸습니다.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징조를 구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세상에 탄생하실 때 사람들 역시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시겠다는 징조를 믿음으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신 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에게 향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니 과연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려고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수 많은 이적과 징조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을 믿지 못합니다. 아니, 믿으려 들지 않고 오직 현실의 문제와 씨름하며 두려움에 휩싸여 너무나 볼품이 없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버둥하며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은 혹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다는 불신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나약하고 가련한 인생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육신으로 보내셨고 사람들과 함께 하며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으로서의 사명을 다 이루고 떠나실 때는 사람들을 고아처럼 그냥 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어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신 주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14:16)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또 우리 속에 계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하시는 말씀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즐거울 때나 고난 중에라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고 구원자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기쁨의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은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임하여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보호자요, 상담자이시며,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회개케 하여 하나님께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말씀을 정리하여 마태복음 1장에 소개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직분명, 예수는 본명, 그리고 임마누엘은 별명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청년부 회장 이승주는 핸섬 보이다!’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 예수 그는 우리의 임마누엘이시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신 그분은 자기 백성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며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이름들을 통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이해가 되실 줄 압니다.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이름이 곧 나를 위한 위대한 이름이 되길 바랍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저 이스라엘 땅에 2천년 전에 태어나 성인의 삶을 살다가 떠난 위대한 스승 정도로만 인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이름이 나와 개인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이름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줍니까?   어떤 분들에게는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히 제한적이고 그 이름과 나를 연관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가 다 압니다.   그러나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 이름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능력을 주는 위대한 이름입니다.   오바마 차기 대통령과 친분을 맺어보겠다고 많은 정치가들이 줄을 지어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자기 이름 전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우리를 향해 오셨고 우리가 부르기 전에 먼저 우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원하기만 하며 곧장 문을 열고 내게로 들어오시는 영광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의 탄생은 온 인류에게 비치는 빛이고 은혜의 선물입니다.   

속된 말로 이런 놀라운 분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너무 쉬워서 믿어지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미국 대통령 한 번 만나려면 너무도 어렵고 복잡한 경로와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 너무 쉬워 싱겁고 권위가 서질 않고 신뢰가 가질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어느 할머니가 노년에 늦게 예수를 믿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성경 읽기에 재미를 들이셨는데 손자가 가만히 보니 할머니가 성경을 읽을 때 사람 이름만 읽고 외우시더랍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요한, 바울 등….’  손자가 이상하여 물으니 할머니 말씀이 ‘이눔아 그것도 모르냐?   내가 천국가면 이 유명한 사람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만나면 아는 체 하고 인사라도 할 것 아니냐?’ 하시더랍니다.   아주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성경읽기를 실천하시는 할머니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이신 그분이 자기를 내어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를 만나주시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십니다.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은 분이 있다면 마음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오래 내 문 밖에 서서 서성이시고 떨고 계시지 않도록 환영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이번 성탄절이 이 기쁨과 감사를 풍성히 누리는 날이 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복된 날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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