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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삼하 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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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삼하 7:1~13)

 
‘위하여’라는 말에는 상대방을 위한 헌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연말이 되어 우리 주변에 회식하는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람들은 포도주 한잔을 따르고 서로 ‘건배!’를 외치곤 합니다. 요사이 여러 가지 말로 건배를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위하여!’라는 말입니다.‘건강을 위하여’,‘우정을 위하여’,‘집안의 평안을 위하여’,‘직장과 기업의 번영을 위하여’,‘나라의 축복을 위하여’,‘상대방을 위하여’라는 말속에는 우리의 생각과 정성, 사랑과 헌신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위하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잔만 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 전체를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의 모습을 보시면서 반대로“나는 너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서로 축복하는 모습을 성경은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사무엘하 7:1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귀히 여기시고 다윗의 왕국을 세워주신다는 약속의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다윗을 예뻐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사람 중 하나가 다윗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적지 않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참 흡족해하시며 기특하게 여기셨습니다. 도대체 다윗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었을까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핵심은 어린 아이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젊을 때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왕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기특하고 흡족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순수하고 순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 목동이었습니다.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딸만 낳다가 여덟 번째 아들을 낳았다면 귀하게 여겼겠지만, 계속해서 여덟 명의 아들만 낳았으니 마지막 아들은 별 볼 일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막내 아들 다윗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아들 중에 특별히 기름 부을 자를 선택하겠다고 해서 아들을 소개할 때도 아버지는 다윗을 빼고 일곱 명의 아들만 소개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아들이 이것 밖에 없냐고 하니까 그때서야 들판에 내보낸 목동이었던 여덟 번째 아들 다윗이 기억나서 데려왔습니다. 그의 형들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던 평범한 보통의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들판에서 양을 키웠습니다. 그는 인생이 자기 혼자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직분임을 깨달았습니다. 목자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심을 그의 삶에서 경험했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에 용감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한 시편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표현한 것도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다”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선한 목자의 역할을 했던 것을 다시 되새겼습니다.
  
다윗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골리앗과의 한판 승부입니다. 어려서부터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 믿는 사람은 물론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많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거대한 족장이었습니다. 그의 키가 너무나 컸고 모습이 장대해서 이스라엘 군병들은 감히 그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마음에 포기하고 있을 때, 십대 후반이었던 다윗이 등장하여 골리앗과 맞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침체된 분위기를 한 순간에 역전시킵니다.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할 때 다윗은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놓고 포기할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 앞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엄마 품에만 있으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이 다가와도 마음속에 평안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손만 붙잡고 있으면 다른 어떤 강대한 것 앞에서도 그의 마음은 기쁩니다. 바로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 자기 속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대한 골리앗 앞에 도전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 17:45)

거대한 체격으로 칼과 창을 지니고 나오는 골리앗 앞에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더 큰지, 하나님이 더 큰 분인지 시험해 보자고 도전했습니다. 그에게 이런 큰 용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승리하게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무엘상 17:47)

그는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칼을 가지고 목을 베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군대와 백성들에게 환상적인 승리의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뒤따라갔던 용감한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그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생각하며 뽐내지 않았습니다.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예뻐하시며 그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마음에 든다. 네 모습이 참으로 귀하고 흡족하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다윗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생길 수 있었을까요?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이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혼자의 능력만으로는 이런 담대함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에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조롱할 때 어느 정도의 참을성이 있으면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비난하고 조롱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부모님을 모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갖고 있던 마음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되고 함부로 조롱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의 태도가 용기 있게 해주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존 스튜어트는 이런 마음을 “로마서 강해”에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기 위하여 질투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을 때 괴로워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이 무시될 때 상처를 받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할 때 분해해야 한다.
언제나 그 이름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의 존귀를 받도록 열망하고 결심해야한다. 

우리가 만약 내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은 분노하고 화를 내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때에는 가만히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다윗을 예뻐하고 기특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왜 마음에 흡족해 하시며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가득했고,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고백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러면 나는 너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시며 다가와주셨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사무엘상 17:36) 

다윗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침묵하고 주눅 들어 뒤로 물러가 있을 때 그런 마음의 열정으로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했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미 다윗이 왕이 된 후의 일입니다. 자주 일어나던 전쟁도 그치고 가정과 궁궐과 나라에 평화가 생겼습니다. 다윗은 백향목으로 된 멋지고 화려한 궁정에 들어가 안락하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뜰 휘장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만 편안하게 잘 사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사무엘하 7:2)

여기에도 다윗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나이가 들어 왕이 되어 모든 권력을 가졌어도 하나님 앞에만 서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데 하나님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우선인데 하나님의 법궤가 마당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들으시면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하겠느냐? 아니다.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집을 지을 생각을 하는 다윗을 예쁘게 여기셨지만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순전한 다윗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자와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너는 내 백성을 이끌라. 그러나 성전을 짓는 것은 네가 하지 말고 네 아들에게 맡겨라.” 그러면서 다윗에게 새로운 축복을 주십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사무엘하 7:9)

다윗은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의 열망을 접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내 주장보다 하나님의 주장이 더 컸습니다. 
내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더 컸습니다. 

자기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다윗을 축복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했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고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믿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열어 놓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한 마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마음, 거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받으신다는 마음이 다윗의 소중한 삶의 태도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것을 빈손으로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응답받을 때 특별히 겸손히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 손이 너무 꽉 차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과 생각이 가득 차서 하나님의 품성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마르타 니콜슨이라는 사람이 빈손의 축복을 시로 썼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분은 내게서 가져 가셨다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그 모든 것들을
모든 번쩍이는 장난감을 다 잃었네,
내가 빈손이 될 때까지.
누더기와 가난 속에서 
이 땅의 거리를 걸었네, 슬퍼하며.
“그 빈손을 내게로 들라!”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기까지.
그때 나는 내 손을 하늘로 내밀었네.
그 손을 그분은 가득히 채우셨네!
자신이 넘치는 풍성함으로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을 때까지.
내 어리석고 둔한 마음으로 
마침내 나는 알았네!
이미 가득 찬 손엔 
하나님도 그 보물을 부어 주실 수 없음을.

하나님께서 다윗을 흡족하게 여기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악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의 열망과 욕심과 야망이 있어도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처럼 기도하면서 마지막 주도권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다윗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불의나 하나님과 사람들이 용납 못할 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는 돌아섰습니다. 자신의 체면, 왕으로서의 권력과 상관없이 돌아섰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순종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세움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와 소원이 응답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실망하고 자책합니다. 어떤 경우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몰고 갑니다. 이것은 나의 영원한 목표니까 꼭 들어주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강경하게 밀어붙입니다. 기도하다가 너무 빨리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몰아가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주도권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수고하고 땀 흘리며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수고하며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주도권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대로 받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로 계속 가라고 하시면 가겠습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마음의 태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다윗을 흡족하게 받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사무엘하 7:18)

이것이 다윗의 감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내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나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 집이 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시다니 감사할 뿐 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주님을 위하여’라고 고백하며 드렸던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시며 다가오십니다.
  
성탄절의 가장 큰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우리 가슴에 감사함으로 받으면서 주님을 위하여 순종했던 다윗처럼 나아갑시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고 ‘내가 너를 위하여’라는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만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위해 귀 기울이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위하여 축복해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감사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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