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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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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마 1:18~25)

 
지난 주간에 안병일 집사님이 보람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팔에 핀을 빼는 수술을 하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오후에 정신과 담당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들어왔습니다.  안 집사님이 그 동안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어떻게 결정하세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먼저 욕조에 물을 채우고 욕조를 비우도록 차 숟가락과 찻잔과 양동이를 줍니다."
그랬더니 안 집사님은 그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숟가락보다 큰 양동이를 택하겠군요."
안 집사님의 말을 듣고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아닙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욕조 배수구 마개를 제거합니다."

여러분, 너무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마십시오.  생각이 복잡한 사람은 인생이 복잡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복잡하게 듣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려지는 그대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막을 조직도 없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이 적은 믿음이지만 이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연약한 믿음이지만 이 믿음을 쓰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계절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구주성탄 축하의 계절입니다.  축복의 계절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평화가 그 심령에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참으로 좋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보다 '임마누엘' 이것 이상 좋은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신다는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다면 내 놓아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오고 가는 세대에 어쩌다가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있어도 똑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이 땅에 살아간 사람들이 수십억이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도 수십억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저렇게 만들어졌을까?  성경에서는 사람이 만들어진 이야기에 대해서 너무도 정확하게 초과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을 빚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 먼지고 흙입니다.  그래서 흙을 빚어 가지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숨을 넣었다는 겁니다.  세상 천지에 숨이 떠나고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삽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우리의 존재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티끌과 같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니 생령이 되어서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숨이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입니다.  티끌과 같은 존재, 먼지보다도 못한 우리들이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니 그가 거룩한 생명력 있는 산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생기가 에스겔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 속에 들어가니까 그들이 살아나서 일어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안에 불어오면 우리도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될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면 나는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 교회 안에, 이 나라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면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 안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주옵소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주옵소서.
이 땅에, 내 직장과 사업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숨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로봇이 움직이는데 그 로봇이 숨을 쉬더라.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로봇이 어떻게 숨을 쉽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 영역입니다.
 
엄마가 애기를 낳았습니다.  애기를 낳으면 육신의 양식을 먹던 탯줄이 걸려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육신의 양식을 먹던 탯줄을 끊어 버리면 애기가 죽을까요?  죽는 줄 안단 말입니다.  육신의 줄을 끊으면 죽는 줄 알지만, 육신의 줄을 끊고 생기를 먹어야 사는 겁니다.  생기를 먹으면 삽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먹어도 살지 않는 것이 있고, 자꾸 먹으면 사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이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은 다 먹을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은 절대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이 죽는다는 말은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끊어지리라는 말입니다.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분리되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열매를 따먹은 결과 하나님과 단절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비극적인 존재로 태어나게 됩니다.  영적 사생아들의 출현.  인간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땅으로 빚었기 때문에 땅의 것을 먹으면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낳아 가지고 우유도 먹이고, 음식도 먹이고 자랍니다.  그런데 이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기는 자라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것을 먹어야 됩니다.
 
땅의 것만 잔뜩 먹고 하나님과 분리된 기형아적인 영적 가분수들, 영적 기형아, 육적 가분수들로 이 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하나님과 단절되고 끊어졌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지식의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하나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2000년 전에 구주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 말 중에 제일 무서운 말이 있습니다.
"자기 부모도 몰라보는 놈"
인간이 우리를 만든 하나님도 몰라보면서 사는 것,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고도 인간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혼자서 살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죄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영적 사생아들이 부모님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이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살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으로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상태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이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하나님이 끊어지고 단절되었던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다시 다리를 놓았느니라.  다시 구원의 다리를 놓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이것처럼 귀한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아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병상에 누워있는 형제 자매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형제 자매와 함께 하십니다.  수술을 기다리는 그 아버지, 어머니를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딸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런고로 분명해집니다.
"내가 온 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또 풍성히 얻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시고 또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에 남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저는 신체적인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에 꼭 영생을 얻었어야만 했습니다.  영생에 대한 눈을 떴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너무 너무 못나고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영생을 얻어서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하나님과 함께 잘 살고 싶었습니다.  600백만불의 사나이처럼 아주 멋진 모습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저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 33살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예수님이 33살을 사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간사해졌습니다.  "하나님, 여기도 좋사오니 여기서 오랫동안 잘 살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마음은 저의 마음이기 전에 오늘 현대인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인들의 제일 병폐된 비극입니다.  옛날에는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면 모두가 "아멘!"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에라도 나를 데려가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모두가 "아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목사님이나 빨리 가세요.  나는 여기서 잘 살래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가 어떻게 하다가 망한 줄 아십니까?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이 기독교 가치관의 마지막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옛날 이 땅의 믿음의 사람들은 곧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조금 복을 주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조금 가진 것이 생기고, 살만하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주 예수여, 여기도 살만하니 천천히 오시옵소서!"
그래서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천국 지향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강단에서는 종말에 관한 설교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에는 천국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가정적인 문제로, 개인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세계적인 글로벌 경제위기를 당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못 살겠다", "죽겠다"는 울부짖음이 들려옵니다.  이 삶의 끈을 놓으면 자유와 평화가 임하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목사로서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모진 목숨을 끊음으로서 자유와 평화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기에, 모든 고난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 때 순간 순간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영생을 얻고 자유를 얻는다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인들 두렵겠습니까?  과거로부터 자유하십시오.  환경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남의 구설수로부터 자유하십시오.  모든 억눌림과 좌절과 실패와 고통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분을 만드는데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데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멸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인식이 조작된 사회질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강요되고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살도록 배워졌기 때문에 우리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거나 우리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감격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영적인 사생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복된 음성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는 인간의 혈통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서 그의 귀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백성이요, 전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비밀이 나에게 깨달아질 때 너무 기뻐서 밤을 새면서 그 기쁨과 감격 속에서 흥분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저에게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못나고 부족한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말씀 앞에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하나님, 이 한 생명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경험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런 경험을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현실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주 예수 안에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혼과 골수를 지배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지배를 받지 말고 하나님에게 지배를 받으십시오.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지배를 받으십시오.  분노와 절망과 미움에 지배를 받지 말고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지배를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언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천강을 보십시오.  남천강에는 어떤 때는 한 쪽이 모래밭이 되어서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거기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풍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비가 한번 내리고 창수가 지고 여름이 지나니까 물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쪽에 풍요가 살아납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는 물줄기를 돌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돌릴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생각을 좀 해 보십시다.  우리가 누구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을 결정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우리가 누구인가를 결정합니까?  제 질문이 어렵습니까?  원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느냐, 인간이 하나님을 하나님이 되게 하느냐?  어느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대통령의 일을 하면 대통령이 됩니까?  사람을 모아놓고 판사의 일을 한다고 판사가 됩니까?  사람을 모아놓고 주사를 찌른다고 우리가 다 의사가 됩니까?  아닙니다.  내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압니다.  내가 장로라고 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를 압니다.  내가 권사라고 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내가 목사라고 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압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제일 시급한 문제는 자기 정체성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이 가정의 아버지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현대판 탕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무엇입니까?  그 부자집에 아무 고통도 없는 둘째 아들을 보십시오.  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정체성에 위기가 왔습니다.  자기가 그 집의 아들인 것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받는 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오늘 모든 삶의 고통이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하나님의 권세 받은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저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더라.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고 하는데 그 권세를 내동댕이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삶의 혼란, 모든 삶의 고통, 모든 삶의 아픔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당당함, 확신, 고마움, 감사, 이것들을 너무 쉽게 내동댕이치는 겁니다.  술잔 하나 때문에, 어떤 사회적인 분위기 하나 때문에, 어떤 여건 하나 때문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당신은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게 길지 않는 목회를 하면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넘어지는 사람도 보았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삶의 고통, 모든 삶의 문제들이 그 사람 속에 왜 일어났는가?  한 마디로 스스로 그 신분을 상실한 어리석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탕자의 고민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늘 회개하고 신분을 찾으라는 겁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너 하나님의 백성아, 내가 내 보혈을 주고 산 생명인데 네 신분을 내동댕이치지 말라.
 
오늘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들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과 동일시하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값없이 세상 사람들과 동일시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기 혼란과 자기 착각과 자기 무지와 자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끝없이 일하시는 것처럼 사탄도 끝없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무슨 일을 하느냐?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을 아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야 하나님과 함께 있고 또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줄을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 속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것을 모릅니다.  그것은 사탄이 그렇게 공작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난 최고의 사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므로 내 신분이 달라졌다.  그래서 우리 속에 술, 담배를 잊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죄를 이길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벼랑 끝에서도 웃을 수가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전에다가 그렇게 못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나님, 이 몸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가꾸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이런 것을 깨달음이 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기에, 주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기에 비굴하지 않고 하늘의 평화와 풍요를 누리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다는 그 비밀을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면 지금 돈 있는 사람들이 다 사고 여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권력으로 빼앗을 수 있다면 다 빼앗아 갔습니다.  만일 권세를 가진 사람이 권세의 책략으로 그것을 차지한다면 여기 그것을 차지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크도다, 하나님의 비밀이여.  주께서 내 생명 속에 대사를 행하셨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상 최고의 기쁜 소식.  인류 역사에 최고의 소식.  이 죄 많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우리의 신분이 격상되는 신분의 변화를 얻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내가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게 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는 우리가 한 일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신 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분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를 부르십시오.  어린아이들이 어려울 때 아버지를 찾잖아요.  어머니를 찾잖아요.  성령님이 이 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끝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깨우침과 각성과 깨달음을 주십니다.
 
오늘 임마누엘, 하나님의 영으로 권능의 체움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아무쪼록 다시 당당한 신분을 회복하는 그런 귀한 축복의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이 한 적은 생명 다시 붙잡겠사오니 이제 걸음마다 때마다 순종하는 삶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하나님이 이 적은 생명에 증인이 되어주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내 생애에 증인이 되어주시옵소서!"

이제 2008년의 구주 성탄.  돋는 해가 위로부터 떠올라서 우리에게 다시 임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국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도 나라의 형편도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이 땅에서 특수한 신분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빛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셔야 합니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창고는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제한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제한하는 것은 내 신분일 뿐입니다.  자기 정체성의 위기에서 벗어나십시오.  잘 믿든 못 믿든 나도 하나님의 딸이다.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지금은 어둠이 만민을 덮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둠의 그늘이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심하게 일어납니다.  그런 것처럼 어떤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훨씬 짙게 덮여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낙심해서 안됩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의 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모든 영혼들 속에 임마누엘 하늘의 빛이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고된 생활에 임마누엘 하나님의 풍성함이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질병과 외로움 속에 임마누엘 하나님의 치유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나단이라는 한 남자가 플로리다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침울하고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역력했습니다.  어떤 친절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굳게 닫혔던 입을 열고 자기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자기는 죄를 지어 뉴욕 형무소에서 4년간 징역을 살고 형량만기로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부끄러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옥으로 가면서 그 아내에게 자기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고 권했습니다.  1년간은 면회도 오고 편지도 왔지만 3년 전부터 아내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감일이 가까워오자 갈데라고는 없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집 앞에는 커다란 참 나무가 있었는데 마침 이 버스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만약 아내가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주기를 원한다면 그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노란 손수건이 참 나무에 걸려 있으면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갈 것이지만 만일 노란 손수건이 없으면 그 아내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줄 알고 버스가 가는 종착점까지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 마을이 가까워 오자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초조하게 숨을 죽이고 큰 참 나무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차 안에서 함성이 터졌습니다.  그 큰 참 나무가 온통 노랗게 꽃피어 있는 것입니다.  손수건 하나만 매달아 놓으면 혹시 남편이 못보고 지나갈까 봐 아내는 나뭇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을 주렁주렁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 밑에는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노랗게 물든 나무를 바라다보면서 즐겁게 뛰놀았지만 그 아내는 집안에서 남편 맞을 준비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오늘은 대강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몇 일만 지나면 성탄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솔직히 성탄을 기다리는 당신의 마음과 믿음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높고 높은 보좌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분은 당신의 자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분은 당신의 전부를 버리셨습니다.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분은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그분을 위해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은 무엇을 드리셨습니까?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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