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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으로 사는 생명 (약 4: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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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사는 생명 (약 4:14~17)


오늘의 제목‘생명은 사랑으로 산다.’는 생명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존귀하고 아름답다. 이 세상에는 수백만 종의 생물들이 있고 각각 먹을거리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미경을 통해 보아야만 볼 수 있는 미생물도 먹을 것을 필요로 하고 살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간다. 성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 믿음을 믿고 살며 실지로 그 믿음을 사랑으로 실현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존귀함이요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은 그 사랑의 속성으로 삶(생명)을 유지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생명의 주성분은 사랑이요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생명 존재의 가치가 사랑이라는 말이다.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생명감(生命感)이라는 말은 살아 있는 생생한 느낌을 가질 때에 쓰인다. 생명권(生命權)은 인격권의 하나로서 인간의 생명이 불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말함이요 생명력(生命力)이란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나가는 힘이며 생명령(生命靈)을 영혼 관념의 한 유형으로서 살아 있는 동식물의 보편적인 생명원리로서의 영혼으로 생명령은 개체가 죽으면 없어지고 보편적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생기의 힘은 사랑이다. 사람의 삶의 목적은 사는데 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만을 의지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구임도 알게 하는 것이다. 생명은 빵이라는 먹이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빵은 사람의 육신의 양식이요 사랑은 사람의 전인격적인 양식이다. 빵이 사람의 전인격적인 양식이 될 수 없다.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으로 아름답다는 말이다. 모든 생태계의 생명도 이와 같다. 한 예로 나무의 생명은 관계를 이루는 가지를 떠나 열매가 맺지 못한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생명의 살아 있음은 근원적으로 생물학적인 의미의 생존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살아 있음의 자연적인 관계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생명은 다른 생명들과 공존한다. 생(生)은 생으로서 있게 하고 명(命)은 명으로서 지켜지도록 관계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生命)임을 알게 한다. 성서는 생명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요 동시에 생명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아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미증유의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생태계적 위기와 생명경시풍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러한 생명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데서 생긴 병폐이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이며 어떤 것이 생명체이고 생명체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생명체의 특징만으로 이해하여 생명은 호흡을 할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행위와 신진대사를 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일부 기계들의 작동이나 자동차가 기름을 먹고 가스를 품어내는 경우도 생명체로 볼 수 있을 우려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번식하는 것으로만 특징을 이루다면 생명체가 복제를 통하여 번식하는 문제도 이해할 수 있어야 되는 위험한 문제도 알게 될 것이다. 컴퓨터바이러스가 생명체가 아니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생명체의 특징만으로 생명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한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산업사회는 생명의 특징만으로 이해하려는데 걱정이 있다. 

사람의 생명은 모든 것 보다 귀하다. 이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에게 고유한 것인 만큼 남에게 빌려줄 수도 없는 것이다. 생명은 본래의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없다. 인간다운 삶이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존귀한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오늘의 세계는 과학의 발달과 사회의 세분화, 고도화에 따라 과학적, 신학적, 철학적 그리고 법적, 정치적으로 인간의 생명윤리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생명이 귀중하고 존귀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간은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위해 자기 생명을 보호할 수단으로 생명(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생명이 왜 존엄하고 사랑인가에 대한 신학적 설명으로 철학적인 기초믿음에 대한 초월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 가운데 삶이 부여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여타 피조물과 함께 생명이 창조하였음도 알지만 인간은 하나님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그 존엄성과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입혔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로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피조물의 우주 천체를 보시며 ‘보기에 좋았다’ 하심은 사랑의 생명을 선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명을 헤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된다.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기본적인 살인행위는 말할 것 없이 자살, 낙태, 안락사,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 그리고 전쟁,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조건, 불법감금, 유형, 노예화, 매춘, 자연을 해치는 생태계의 위기,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 받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는 인간 문명을 해치는 행위이며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 높이는 세상의 짓은 생명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창조에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부재의 현상이다. 차제에 금년은 ‘세계인권선언’이 채택하여 선언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8년 12월 10일에 제3회 국제연합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은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생명이다. 폭력과 전쟁에 대한 반성과 인간 존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국제 사회 간에 최소한의 합의를 위해 인권은 관계 속에서의 정립이 기본이 됨을 알게 한다. 

차제에 요즘 한국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선대의 어른들이 인권이 훼손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그 시대마다 애국적이고 선량한 시민들이 궐기(蹶起)했던 ‘민주화 운동’ ‘혁명’을 데모로 폄하하는 내용(4.19데모)을 각급 학교 교육 자료로 배포하는 처사에 대해 하늘의 뜻과 사람의 뜻을 져버리는 행태를 보고 모두들 아연실색(啞然失色)이다. 

인간존엄이 무너진 곳은 언제나 폭력이 존재했음을 우리는 보았다. 또다시 국가적 폭력이 인권을 짓밟고 피 흘리게 해서는 아니 된다. 정의에 대한 강한 신념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 정의가 사랑과 유리되면 잔인해지고 사랑이 정의와 유리되면 이기심이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기다려야 하고 참아야 하고 울음을 삼켜야 한다. 보고픔을 팽개쳐야 하고 진노해야 하며 뜨거운 열기로 온 마음이 탈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러나 사랑이란 그 아름다움 속에 있는 피 말리는 안타까움을 알 사람이 있는가? 사랑의 99%는 인내이고 수고이고 땀인데 1%의 즐거움은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생명과 삶은 사랑이다. 삶과 생명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다. 그것을 이롭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며 그것을 해롭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생명은 모든 존재의 궁극적 존재이며 그래서 지고지선(至高至善)이다. 

Life is God. Life is Good. 사랑이 좋음도 그것이 바로 생명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나의 존재의 귀함을 알고 귀하게 대하는 것이며 남의 존재의 귀함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도, 남도 존재의 귀함(존중)은 나의 존재도, 남의 존재도 귀함을 아는 것은 생명을 아는 것이다. 나의 존재도, 남의 존재도 귀함을 아는 것은 사랑을 아는 것이다.”, ‘너의 생명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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