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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리라 (욥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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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심히 창대하리라 (욥 8:7)


고전 1:26에 보면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나 능력 있는 자 그리고 집안이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보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문벌 좋은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 대부분은 그 당시 사회에서 멸시천대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친구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난지도처럼 지지리도 못살던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가 있었고, 창기 출신들도 많았습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서도 괜찮은 사람은 가룟유다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고전 1:27,28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은 미련한 사람을 들어서 지혜로운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자들과 멸시 받는 자들을 들어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 받는 사람의 입장에 있다면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지혜롭고, 강하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혜롭고, 강하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무작정 심판하시고 멸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가 가진 지혜와 강함과 있는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지혜와 강함과 소유를 더욱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 받는 자를 들어서 지혜롭고, 강하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일까요? 고전 1:29에 답이 나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신이 가진 지혜와 강함과 소유가 자신의 능력으로 얻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이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사울은 약한 자였습니다. 그는 사무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 할 때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모아 이스라엘 왕을 뽑을 때 사울의 행동을 보면 그는 정말 왕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제비를 뽐아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다시 제비를 뽑아 사울이 속한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다시 제비를 뽑아 사울이 뽑혔습니다. 제비뽑은 후에 사람들이 사울을 찾아도 사울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하며 멸시를 했습니다. 그렇게 약한 자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가 점점 강해져 갑니다. 그가 강해진 것이 그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약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 겸손했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그가 강해지자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신접한 여인 즉 무당을 찾아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린 사울을 버리시고 그를 멸망에 처하게 만드십니다. 마치 연이 하늘을 멋있게 날다가 끈이 끊어지면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사울의 인생은 절망적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울을 부끄럽게 하는데 사용된 사람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선택하사 사울을 부끄럽게 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사무엘을 통해서 왕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의 직업은 양치기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흔하고 천한 직업이 양치기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붓기 위하여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집에 갔을 때에도 다윗은 양치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새는 사무엘이 자기 집에 온다고 하니 8명의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맞이해야 할 아들과 양을 지켜야 할 아들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아들 중에서 특출하게 잘났다면 이새는 다윗으로 하여금 사무엘을 맞이하게 하지 양치기를 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한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부끄럽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싸움이 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간격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고 다윗은 베들레헴이라는 시골 동네의 이름 없는 양치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점점 강하게 하시고 사울을 점점 약하게 하셔서 결국은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대상 11:9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삼하 3:1에서는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아무리 약하고 미련하고 천하고 멸시 받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미약하지만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나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담대한 고백을 하며 이 어려운 세상을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미약하고, 시작은 미약한 자가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생각지 못했던 고난으로 완전히 망한 욥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입니다. 욥은 엄청난 복을 받았으나 사탄의 시험으로 모든 것을 잃고 몸도 병이 들었습니다. 욥은 고통이 너무 심하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 고통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작은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러 찾아옵니다. 친구들이 욥을 보고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7일 동안이나 말을 못했으니 욥의 형편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말문이 막혀서 7일을 말을 못할 정도이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빌닷이라는 친구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욥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빌닷은 본문에서 2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빌닷이 제시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이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여러분의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을 찾으라.

5절에 보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모든 문제의 열쇠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를 창대케 하실 수 있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믿음으로 산다고 살았던 사람이지만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니 하나님에게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변론하려 했습니다. 자신은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욥 32:1,2에 보면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라고 말합니다. 욥이 자신의 의를 강하게 주장하니 친구들이 말을 그쳤습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욥이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하니 친구들이 화를 내게 됩니다.

믿는 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고 무엇인가가 부족하면 그 문제를 풀고, 부족한 것을 채움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방법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요즘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여러분의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 말은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간절하게 적극적으로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해주시면 감사하고 안 해주시면 할 수 없고”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찾으며’라는 말씀을 표준새번역에서는 ‘간절히 찾으면’ 이라고 번역했고, 개역 성경에서는 ‘부지런히 구하면’이라고 했습니다. 박윤선 주석에는 “새벽에 구하라”고 풀이를 했습니다. 좀 쉽게 풀어보면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려라”입니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거든, 지금 너의 현실이 심히 미약하거든,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찾아라. 간절히 찾아라.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려라” 그런 말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응답이 없으면, 포기할 것이 아니라 다시 기도하고,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새벽기도를 하고, 안 되면 철야기도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금식이라도 하면서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라 우리가 약하게 살살 찾기만 해도 응답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의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한번만 불러도 대답하실 수 있는 분이고, 우리가 극성스럽게 기도하지 않아도 바로 응답이 가능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간절하게 때로는 오랫동안 간구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현실세계만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한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으므로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만 축복하고 우리가 육체적인 만족에 빠져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육체는 옷과 같습니다. 욥은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고 말합니다. 가죽이 벗김을 당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인생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이 죽은 후에는 참된 나인 영이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가진 사람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만 아니라 그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2. 그릇을 준비하라.

시작이 미약한 사람이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려면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를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네가 만일 청결하고 정직하면”이라고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청결하고 정직하게 되는 것은 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릇으로 보십니다. 딤후 2:20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그릇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습니다. 또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다양한 그릇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이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기왕이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겠습니다.

딤후 2:21에서는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좋은 것들이며 깨끗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담을 그릇이 더럽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깨끗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영적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아무리 불평하고 원망해도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를 우리가 변하여 주님 닮아 가는데 두고 계십니다. 엡 4:11,12에 보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사역자를 세우셨습니다. 목사를 세우신 이유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게 하기 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해서봉사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온전하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성도가 온전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내가 변화되어 내게서 주님의 모습이 점점 더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가지고 계신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나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심히 창대한 것만을 원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사업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마음을 먹었어도 아들이 사업가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사업을 넘겨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롬 8:26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되어지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되도록 돕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성령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나님이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내가 변화되어야 나의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나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봅니다. 그래가지고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변화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산다는 것은 고통이 따릅니다. 육체의 소욕은 육체에 달콤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에 쓴 약과 같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은 당장에 좋으나 나중에는 자신에게 큰 아픔을 주고 결국에는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적으로 귀찮고 피곤한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이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힘든 것이지만 힘든 것을 참아내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가 힘들다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보나마나 성적은 형편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십시오. 힘들어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십시오. 그것이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되는 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미약해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약한 우리들을 심히 창대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심히 창대하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그릇을 변화시키십시오.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되고 영적인 변화까지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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