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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을 찾게 하소서 (눅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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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을 찾게 하소서 (눅 15:3~7)


인류역사에 가장 놀라운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 큰 빛을 받아들이는 개인이나 민족은 역사에 별과 같이 빛난 민족이 되고 개인이 됩니다. 제 아무리 자기 스스로 대단하다 할찌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나라 그리스도가 없는 민족은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리석은 자요 실패의 삶이 됩니다. 

우리나라도 사천 년 긴 역사 속에서, 1세기 전에 기독교가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놀라운 은총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잠깐이지만 저 북한 땅에 그리스도의 빛이 꺼진 다음에 북한 땅은 저들은 대단한 세계적인 빛이라고 생각하지마는 그건 착각하는 빛입니다. 가장 비극의 슬픈 빛이 그 나라를 덮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인 것 그 이상의 축복이 없다라는 겁니다. 가장 큰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인 겁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해보면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술 때문에 못나간다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술 때문에 믿어야 됩니다. 술끊기 위해서라도 믿어야 됩니다. 술 때문에 일 년에 수십조에 달할만큼 국가적인 손실이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우선 자기 생명을 버립니다. 

술먹는 생명은 사는게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이나마이트 폭발물과 같은 인생입니다. 술 잔 위에 있는 인생, 술 잔 위에 있는 행복,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건 개인적으로 실패입니다. 또 그 것 때문에 가정 망치는 겁니다. 얼마나 술 때문에 비참한 결말들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술 때문에라도 믿어야 됩니다. 술값내는거 십 분의 일만 교회에 내도 아주 많이 쓰고도 남습니다. 여러분 술값에 쓰는 돈, 그거는 쓰고서도 망합니다. 자기위해 쓰지마는 자기 망치는 거고, 즐거움을 얻으려고, 기쁘려고 먹지마는 그건 슬픔이 찾아온다 라는 겁니다. 술 먹는 시간 십 분의 일만 교회 나와도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또 술끊는 길은 없습니다. 

이 괴로운 세상 한 잔 안하고 어떻게 삽니까? 교회 나와야지만, 우리가 술도 끊고, 죄의 길에서도 떠나고 어두운 장막에서 벗어날 줄 믿습니다. 고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부유함에 성공한 킴스는 말하기를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믿고 주일 성수하라 술마시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미 그런 생활에서 끊어지고 자유함을 얻은 줄로 압니다. 

오늘 이 세상에 많은, 오늘 말씀처럼 길을 잃어버린 양들이 술잔에 빠져있는 죄악의 잔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모든 이웃들을 건져내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해방의 종교입니다. 자유케 하는 종교입니다. 죄에서 해방 저주에서 멸망에서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겁니다. 마귀에게서 해방시키십니다. 모든 어두움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걱정과 불안과 근심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오늘 날 이렇게 좋은 세상인대도 300만이나 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서 죽고 싶은 세상으로 알고 괴로워서 못견디는 세상으로 알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건져내는 이 길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이들을 찾아서 주님 앞으로 인도할 때만이 어두움의 우울증이 떠나가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인 겁니다. 인간은 힘으로 이 세상을 잘살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잘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경제를 성장시켜서 GNP 7만 불이 설령 된다 할찌라도 7만 불의 그늘 속에 수많은 소외된 사람이 더 많이 생겨저는 겁니다. 

저는 미국에 극빈자가 4000만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같이 세계적인 대국이라도 그 안에 그늘진 사람이 많이 있는 겁니다. 빌딩이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올라간 빌딩만큼 그늘진 곳이 또 생기는걸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딩을 세우고, 돈 7만 불로, 대학을 세워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밝게 우리 마음과 영혼에 빌딩을 높이 세우고 내 심령의 GNP를 높일 때에 이 나라가 건강해질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번 주에 우리 미국에 골프에 신지애라고 하는 선수가 나갔습니다. 이 사람이 ADT라고 하는 이 게임에 나가서 챔피언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챔피언이 많았습니다. 박세리도 있고 그 외에도 많았지마는 세계가 지금 신지애에게 모두 흥분하고 열광하는 일이 지금 역사에 없었다 라는 겁니다. 신지애는 나이가 스무 살입니다. 이 사람이 세계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모인 이 곳에 처음 나가서 이긴 겁니다. 첫 번 나가서,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이 선수는 게임을 하다가도 중얼거리고요 그렇게 웃는답니다. 너무너무 웃는다는 겁니다. 골프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 자신과의 게임에 지거든요. 막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위기가 오면 올수록 ‘ㅎㅎㅎ’ 이건 왠 이런 애가 어디있느냐! 말입니다. 

지금 전 미국이 LPGA가 신지애를 맞으라는 겁니다. 어제도 신문에 또 났습니다. 전 미국이 세계가 신지애에 지금 세계가 흥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느냐?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이 선수가 교회를 잘 다니는 겁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모릅니다. 

이 선수가 늘 웃으면서 중얼거리는게 뭐냐 이사야 41장 10절을 계속외우는 겁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저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한다 라는 겁니다.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는 겁니다. 사람은 배경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도 배경이 있으면요, 부모가 있으면, 큰 소리치고, 웃고, 편히 잠자는게 어린아이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인생은 정말 배경이 없습니다. 정말 의지할만한 배경을 이 지상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없는데, 억지로 의지하면 또 안됩니다. 우리 인간의 배경은 인간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17장에 있는 말씀대로 사람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권력, 하나님을 의지한 부유함 하나님을 의지한 과학자가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젊은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스포츠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겁니다. 영원한 승리는 하나님에게로 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겁니다. 그를 옆에 모시고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님과 사귀는 겁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사귀는 종교예요. 만남의 종교예요. ♪ 

늘 중얼거리면서 이야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지애, 이 선수도 대단하지만 남자 골프는 최경주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인구가 골프인구예요. 이 최경주도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골프체격에 안맞답니다. 남미사람, 유럽사람이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미국에 가서 지금 아시아 사람으로는 최고의 성적을 지금 올리고 있거든요. 

이 선수도 비결이 뭐예요?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잠잘 때, 꼭 성경을 옆에 놓고 잔답니다. 매일매일 긴장하며 살아가는 이 삶이 하나님 말씀을 옆에 놓으면 참 평안이 오는 겁니다. 자유함이 오는 겁니다. 게임이 앞에 있어도 마음껏 놀고, 두려워하지 않고, 먹고 잠잔다 라는 겁니다. 누가 빽이 있다 라는 겁니다. 뒤에 계시는 분이 있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보호하리라 주님의 약속인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나라를 보호해줍니다. 오늘 날 수천 년 역사에 유대인들이 하나님 보호받는거 보십시요 온 세계에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들이 보호받는거 보십시요 하나님은 끝까지 그의 약속을 지키시사 우리를 도와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 못박히셔서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어떤 아이가 자동차 안에서 벌이 왔는데 벌이 와서 욍욍거리니까 피했는데 이 벌이 아버지의 팔등을 쐈어요. 아버지가 앗 그랬어요. 그런데 이 벌은 계속 돌아다니는 겁니다. 아빠 벌 벌.. 아빠의 손등이 붓는 겁니다. 아이가 아빠, 벌잡아 벌잡아 그때 아빠가 말했습니다. 이 선수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벌은 한 번 쏘고나면 침이 없어지는 겁니다. 벌은 침을 두 개갖지를 못해요 한 번 쏘면 또 쏠 수가 없어요. 벌은 한 번 쏘면 딱 찌르면 침이 뽑히게 되어있는 겁니다. 그걸 아셔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5장에 무슨 말씀을 했지요?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사탄의 침은 빠져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탄아 너의 이김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마귀는 온 인류의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사망은 없어지고 저주는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부활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산다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떡과 잔을 먹은 것은 영원히 사는 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떡입니다. 믿음의 잔입니다. 주님과 하나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만 사는 것이 아입니다. 영원히 주와 함께 사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이 사탄을 멸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를 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시련은 있을지언정, 환난은 있을지언정 망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끊어지는것 아닌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교인은 누구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사탄은 우리를 망하게 할 수는 절대로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침과 독은 빠진 겁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저를 따라하세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은 예수님의 고난이고 저는 나의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날 위해서 당하셨다 라는 겁니다. 날 위해서 오셨다 라는 겁니다. 날 위해 죽음으로 내가 살고, 날 위해 십자가 저주를 받음으로 내가 저주를 안받는다 라는 겁니다. 이 공식을 모르십니까? 

내가 고난 당할거 같으면 뭐 때문에 주님이 오셨겠습니까? 주님이 내 죄 때문에 죄인이 되시고 내가 의인이 된 겁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심으로 내가 의롭게 되어 하늘나라 가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공로로 가는 겁니다. 주님이 소유하신 주님의 `증'으로 내 사망의 ‘증’을 버리고 생명의 ‘증’을 가지고 우리는 패스하게 되어있다 라는 겁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건강을 얻고 주님이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슬픔을 당함으로 우리가 기쁨을 얻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늘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이 날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조금 전에 찬송가도 불렀지 않습니까? 

♬왠 말인가 날 위하여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날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주받지 않기 때문인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언제나 이 세상을 볼때 긍정적으로 보고 소망을 가지고 보고 우리는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미국에 남북 전쟁시에 친구가 둘도 없이 지내는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영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군에 가면 이 가정이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가 대신해서 갔습니다. 내가 갔다 오겠다 너는 있어라 친구는 그런 친구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군에 갔습니다. 그런데 군에 간 다음에 군에 가서 이 분은 결국 제대를 하지 못하고 전쟁에 전사를 했습니다. 너무 이 친구가 이 친구의 죽음을 가지고 와서 울며, 울며 자기 가족 묘지에 친구를 모셔놓고 거기에다가 뭐라고 묘비를 꽂았느냐면, 너는 나를 위해 죽었다 이 비석을 세워서 항상 그 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은 화를 내다가도 화를 못내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는데 내가 참게 되는 겁니다. 그래 교인들이 잘 참지 않습니까?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교인들은 항상 목에다가 십자가 걸고, 손에다가도 걸고, 이 반지도 끼고 집에도 십자가 딱 가져다 놓는 것은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죽었다고 생각을 하고 그걸 믿음으로, 우리 책상위에 올려놓고 방에도 올려놓고 벽에도 걸어놓고 사는 겁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위해서 죽으심으로 여러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예수님을 떠나서 길 잃어버린 모든 양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여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얻고,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함을 얻도록 우리는 열심으로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잃은 양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내 이웃 내 형제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겁니다. 예수믿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제가 만약 우리 부모님이 예수 믿게 안했다면, 이 세상에 내가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 주님을 믿게 된 이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저의 아저씨 한 분이 학교 이사장으로 중 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오래 계셨는데, 장학금도 많이 대주고 돈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자나고 나면 다 헛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예수 믿게 했는데 이거는 얼마나 얼마나 감사해하는지 그가 놀라운 축복을 받아서 평생 은혜로 알고 감사한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자식도 길러놓으면 배반하고, 천하에 없는 친구도 배반하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이런 부하들도 배반하는 세상인데 얼마나 배반하는 세상입니까 그러나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하는 것은 영원한 축복이고 자식보다 더 소중한 일이 바로 전도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겁니다. 어린아이도 인도하는 겁니다. 저는 수원에 있는 큰 교회 집회를 갔습니다. 집회를 나오는데 그 교회 부목사님이 저의 뒤를 따라오시면서, ‘목사님 저를 아시겠어요?’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잘모르겠는데요?’ 했더니, ‘십 년 전에 인천의 호텔에서 구두닦이한테 돈 만원 준거 기억하세요?’ ‘아! 기억난다’고 하니까, ‘바로 그 사람이 접니다.’
  
제가 그 때 호텔에서 나오는데 누가 구두 닦으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구두를 닦았어요. 얼마나 침을 뱉어가면서, 팍팍 열심히 닦는 겁니다. 그래서 보니까, 나이가 스물 대 여섯 살 되어 보이드라구요. 대체로 그 때는 열 대 여섯 살 된 애들이 구두 닦았지 그런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인물도 너무 잘 생기고, 건강한 청년이 구두를 열심히 닦아서 제가 다 닦고 만 원을 주었습니다. 구두닦는 비용이 그때 이천원 했는데, 만 원을 떡 주면서, 거스름돈은 가지라고 그러면서 제가 이래 웃었습니다. 웃었는데 이 청년이 굉장한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 믿어야 되겠다 그래서 깡패생활, 넝마주의 이런 길로 가다가 완전히 그 길에서 돌아서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것도 신학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목사가 되서 그 교회에 온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씨애틀에서 학교 선생님이 공부하는데, 가난한 고등학생 데려다가 예수를 믿게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빌게이츠입니다. 그리고 보잉사 사장 세계적인 제강회사 사장입니다. 저는 그 곳에 갔을 때에 직접 들었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는 밤새도록해도 다 못합니다. 지금 미국에 있는 오바마도 마찬가지고,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인같은  생활을 하던 사람이 마흔 살 생일날에 전도해 가지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인류역사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떠난 사상 안됩니다. 주님을 떠난 문화는  안됩니다. 오늘 날 이 사회를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이 시대가 얼마나 방황합니까? 여러분 자녀들 공부 잘한다고 그냥 대학에 좋은 대학에 갔다고 그냥 두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얼마나 나쁜 문화가 우리 학생들을 넘어뜨리고 있는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 동성연애가 온 나라에 퍼진걸 알아야 됩니다. 저는 계속해서 개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도요 절대로 숫놈끼리는 안그럽니다. 간혹 가다가 어느 숫놈이 숫놈에게 어떻게 올라가면요,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물어뜯지, 숫놈끼리 좋아하는 걸, 한번도 못봤습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됩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지금 마약과 동성연애로 번져나가는걸 보면 참담합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인간, 하나님 없는 문화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지성이, 하나님 없는 사상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보십시오. 그 삶을 전부 파괴하는 사상이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 없는 가정이, 지금 얼마나 위기를 맞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에게로 인도해야 된다 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안에만 평안이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이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헤메이는 겁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살리는 길이 먹을게 아닙니다. 예수 믿게 해야만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다. 고아를 어떻게 시설을 좋게 해준다. 그런것보다는 근본적으로 고아도 예수믿어야 됩니다. 병든 사람도 예수믿어야 되고, 남자도 여자도 할 것 없이 복음을 받아드려야만 살 수 있습니다. 길 잃어버린 양이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사는 길이요 풍성한 길입니다. 목자를 만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앞에 나올 때만이 우리 인간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아무리 재벌이요, 천하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없는 우리 인생은 목표가 없는 겁니다. 저는 요사이 신문에서 개가 죽으면 그렇게 장례식을 향나무 관에다가 넣어 가지고 상복을 입히고, 장례식을 하고, 함에다 넣어 가지고 제사를 지내고 계속 보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요, 야! 정말 할 일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그렇게 개 수의를 비단 수의를 입힌답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가 가는 이 삶의 모든 문화가 이렇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사람도 지금 죽어 가지고 어디 묻힐 데가 없는데, 개를 그렇게 장례식을 잘한다는 말이 그게 말이 됩니까? 이 모든 자기들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말하겠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지성인이라고, 문화인이라고 생각하겠지 만은, 하나님 없는 문화가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주님에게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에게 평화가 있고 그에게 사랑이 있고 그에게 자유함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세계 그림 전시회에 출품에 대상을 주는데 마지막까지 올라온 것이 뭐냐 하면 평화라고 하는 주제인데 평화가 어디 있느냐 평화에 대한 그림이 첫 번째 나온 것은 아주 꽃이 만발하고 잔디가 있고 소와 양떼들이 풀을 뜯으며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행복한 연인이 두 사람이 요렇게 앉아있는 그 모습이 평화의 이름과 고렇게 맞추어서 그림을 그린 겁니다. 또 하나의 그림은 절벽에 파도가 막 치고 비바람이 막 몰아치는 그 절벽에 갈매기 한 쌍이 둥지에 요렇게 앉아 있는 것을 그린 겁니다. 이 두 출품이 마지막에 올라왔습니다. 

어느 것이 평화냐? 여러분 어떤 것이 평화입니까? 어디에 샬롬이 있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아름다운 곳 거기에 샬롬이 있는거 같지요? 그러나 그 심사위원들이 그건 이 세상에 없는 거라는 겁니다. 그런 자리도 없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어디 없습니다. 날마다 꽃에 앉아 가지고 요렇게 꽃이나 보고 살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건 사람을 속이는, 우리 인간이 이렇게 모두 바라고 있지만은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겁니다. 기독교적인 평화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주님이 함께 하는 평안을 주안에서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가정이 그냥 놀고 먹고 그런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도 부부간에도 풍랑이 일고 부모 자식간에도 풍랑이 이는데 이 풍랑을 믿음으로 이기고, 감당하는 겁니다. 어떤 분은 교회도 은혜로운 교회 아무 문제없는 푸른 초장 찾아가는데 그건 이단입니다. 그런 교회는 이 지상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뭐 아주 은혜로운 교회요? 이 세상에 은혜로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들어가면 모두 시험이 있고 전부 싸우고 말많고 욕얻어 먹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바로 교회생활이요 가정생활입니다. 

민주주의가 데모도 하고, 요사이 말도 많고 이게 민주주의입니다. 북한 데모했다는 말 한 마디도 못듣는데 그게 좋은건 줄 알아요? 그건 죽은 나라입니다. 사람사는데 웅성거리고 민주주의는 복잡한게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잘 적응해야 됩니다. 흔들리지 말고 우리에게 선동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정신차려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는 풍랑이 일찌라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라 사랑하고 민족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힘있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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