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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창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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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창 13:1~13) 

  
애굽에 내려갔던 아브라함 일행은,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 중에 구원받고, 도리어 바로 왕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와 같이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부터 내려온다. 그러나 물질이 있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갑자기 불어난 재산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동행하던 조카 롯과 더 이상, 동거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가축문제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아브라함은 가족회의를 열었고, 분가를 제의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한다. (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것은 단지 어른으로서의, 체면치레의 관용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권을 양보할 수 있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점이다. 롯의 선택과 아브라함의 선택기준은 달랐다. 

믿음의 사람은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 때로는 무시를 당하고, 억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산다. 아브라함은 롯과 갈등이 생겼을 때,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구했다. 

그런데 조카 롯은 아브라함이 선택권을 주었을 때,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큰 아버지의 은혜이고, 큰 아버지로 말미암아 내가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는데, 어찌 큰 아버지의 곁을 떠날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았다. 

롯은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기회는 이 때다’라는 듯이, 즉시 자신이 거절해야만 하는 땅을 선택하고 떠나 버린다. 아브라함과 롯은 이렇게 서로 달랐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사람이고, 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결론을 잘 알고 있다. 

롯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이 오히려 변질되고 말았다. 죄악에 빠져들어, 결국 그는 다 잃어버렸다. 재물도 사랑하는 아내도 잃어버렸다. 딸들과 부끄러운 모습을 기록해 놓았다. 그러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반면 선생으로 삼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1. 자신의 유익과 행복만 생각한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양보가 없다.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행복과 유익을 포기한다. 

하나님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유익만을 생각한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욕심일 뿐이다. (잠28: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하였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다투게 되어도, 하나님을 믿는 자는 풍족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하였다. 각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서라는 말이다. 

우리는 욕심에 끌려서, 마음이 미혹되지 않도록, 잘 다스려야만 한다. 욕심의 결과는 망하게 된다. 엄××라는 아줌마의 이야기다. 보험회사에 근무 했기에, 어떻게 하면 보험금을 많이 탈 수 있는가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2000년 5월부터 2005년 1월 까지 6억 6천만 원을 타먹었다. 

  2000년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오른쪽 눈, 배, 등을 날카로운 물체 등으로 찔러 실명시킨 뒤, 남편이 죽자 2억 9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또 결혼해서, 재혼한 남편의 오른쪽 눈을 실명케 해 돈을 보험사로부터 또 타냈다. 

  2003년 7월 같은 수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같은 해 11월에는 자신의 오빠를 실명케 한 데, 이어 2005년 1월에는 집에 불을 질러, 실명한 오빠와 동생에게 화상을 입혔다. 수면제를 먹이고 정신없을 때, 눈을 찔렀다. 결국 2005년에 잡혀 무기징역에 처했다. 

  50대에 접어든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너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까 보기에 좋다. 그래서 결혼기념으로 소원을, 하나씩 들어드리고 싶다.” 천사는 먼저 아내에게 소원을 묻자 아내는 “제 남편하고 세계 일주를 한 번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천사는 아내의 손에, 두 부부가 세계 일주할 수 있는 표, 2장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천사는 남편에게 소원을 물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남편은 머뭇머뭇하더니, 천사를 끌고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천사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보다 나이가 30살쯤 연하의 마누라와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자 천사는 빙긋이 웃으면서,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남편의 나이가 50대인데, 갑자기 늙어서 80대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욕심대로 살면 순간적인 이득이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망한다. 

  반면에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형과 아우가 있었다. 형의 밭과 아우의 밭이 서로 인접해 있었다. 형은 결혼을 해서 가족이 딸려 있었고, 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농사를 잘 지었다. 추수 때가 되었다. 형이 생각을 해 본다. 

  “이제 곧 내 아우도 결혼을 해야 할 텐데, 장가가면 필요한 것이 많겠지. 그러니 내가 양식이라도 조금 도와주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밤중에 몰래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 밭에 가서, 쌓여 있는 곡식 단을, 한 아름 안았다. 

  그리고 동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동생 밭에 있는 곡식 단을 쌓아 놓았다. 그 다음 날도 그렇게 하고, 그 다음 날도 또 그렇게 했다. 그런데 곡식 단은 전혀 줄지 않았다. 동생도 형과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형은 가족이 딸려 있으니까, 양식이 많이 필요하시겠지. 내가 도와드려야겠다.” 동생은 동생대로 밤중에, 형 몰래 자기 곡식 단을 한 아름 안고서, 형의 곡식 단 위에 쌓아 두었다. 그러니 줄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두 형제는 밤중에 몰래 일어났다. 

  자기 곡식 단을 한 아름 안고, 형은 동생의 밭으로, 동생은 형의 밭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중간 지점에서,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제야 두 형제는, 왜 자신들의 곡식 단이 줄지 않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부둥켜안고 한참 흐느껴 울었다. 

  그 뒤에 솔로몬 왕이,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때마침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어디에 지을 것인지,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두 형제가 사랑으로 얼싸안았던 그 자리에, 성전을 지으면 좋겠다고 결정하고, 바로 그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졌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더 하신다. 그러나 욕심이 있으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음에 욕심을 버리면 평안하다. 욕심을 버리고, 주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만족하면서 감사하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망하는 땅도 좋아 보인다. 

아브라함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을 때, 롯은 즉시로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기에,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자신이 보았던 애굽과도 같은, 요단들을 택한다. 자신의 눈으로 볼 때는 완벽한 땅이다. 누가 보더라도 투자 가치가 있는 땅이고,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어, 절대로 남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다. 사람은 타락했기에, 올바로 볼 수 없다.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롯이란 말은 베일, 덮개를 말한다. 롯의 눈에는 베일이 있기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눈꺼풀이 벗겨지나?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기도할 때 눈이 열린다(행9:18).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을 때, 아람 군사들이 그들 잡기 위하여, 군사와 말과 병거로 성읍을 에워쌌다. 그때 그의 사환이 두려워서 떨었다. 그러나 엘리사가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셨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4-19).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면, 올바로 볼 수 없기에, 망하는 땅도 좋아 보인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는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믿는다. 롯의 눈에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풍족한 애굽과 같아 보이지만, 그 땅은 곧 망하게 될 땅이다. 망하기 일보 직전의 땅이, 축복받은 땅으로 보였다.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내 눈을 신뢰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 경험을 신뢰하지 말고, 내 지식을 신뢰하지 말라. 우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을 결코 앞설 수 없는 인간이다. 그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다. 

  자신의 눈을 들고 결정하지 않고, 무릎 꿇고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실 때까지 기다린다. 기도하지 않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 없이 자신의 눈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다 보면, 화려한 겉모습에 반해서 결혼하기 쉽다. 

내 눈을 들어 보니까, 망하기 일보직전의 사람인데도, 가진 것이 많다. 겉모습이 화려하다. 학벌이 뛰어나다. 그래서 속아 넘어간다. 특별히 기도하지 않는 형제들은, 여자들의 화장발과 옷차림에 잘 속아 넘어간다. 저런 멋진 여자를 만나다니, 나는 행운아라고 말한다. 

기도하지 않고 자녀들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교회만 나간다고 하면, 신앙 상태는 어떤지 보지도 않는다. 부모님이 장로님, 권사님이라고 하면, 그냥 믿어버린다. 저 정도 집안이면, 저 정도 학벌이면, 저 정도 재산이면 괜찮지 않느냐고 한다. 

충분히 기도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기도만 하다가, 저 좋은 사람을 빼앗기겠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결정하면, 후회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있다.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사업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기근의 때에, 기도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수치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롯은 자신의 눈을 들고, 그 땅을 바라보며 흡족해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처리할 때,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눈을 들고, 나의 눈을 믿는 사람인가? 

기도하지 않는 눈은, 신뢰할 수 없다. 기도하지 않는 눈은, 곧 망할 땅을 바라보면서 흡족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지금 보니까 삼류, 변두리,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는가? 

“야, 내가 어떻게 저런 사람을 좋아했을까?” 후회한 적이 없나요?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눈이 바뀐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도해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 같아도,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빼앗기게 될 것 같아도,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떠났다. 소돔과 고모리가 있는 요단 온 들을 택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간다. 여기서 롯은 장차 낙원 속에서 살게 된다고 상상했으나, 지옥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롯의 최대 실수는, 바로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간 일이다. 


3. 축복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축복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진정한 축복의 사람을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을 보시기 바란다. 

나이가 75세요, 아들은 물론, 딸도 없다. 그런 좋은 땅을 자신에게 주다니, 조카 롯이 생각할 때, 참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롯이 보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 했다(창12:3). 

바로 아브라함은 축복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통로다.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었는데, 롯이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롯은 축복의 사람을 떠나고 만다. 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나에게 좋은 것 같다. 세상의 눈으로 보니까, 아브라함이 별 볼일 없어 보였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축복의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사람은, 축복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그러나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울리는 사람들도 다 그런 부류다. 예수 믿기 전에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을 보면,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시간만 나면, 술 마시러 가고, 나이트클럽 가고, 노래방 가고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재미가 없어진다. 기도하고 말씀 읽고, 은혜를 나누는 모임이 좋아진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심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12-13)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떠난 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렀다. 가나안은 기근이 있었던 땅이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 좋은 땅이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 땅에 계속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 소돔은 음란한 땅이다.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땅이다. 믿음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땅이다. 롯은 거기까지 이르렀다. 

소돔이 왜 망했는가?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해서 망했다고 알고 있는데, 소돔이 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겔16: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소돔이 망한 궁극적인 이유는, 음란이 아니라 교만함이었다. 소돔에는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고, 자신의 쾌락과 유익을 좇아 살다보니까 결국은 음란함 가운데 빠졌다. 소돔의 문제는 이기주의였다. 나누지 못함이었다. 

롯이 소돔으로 가게 됨은, 우연이 아니었다. 롯이 장막을 옮기고 또 옮겨서, 소돔까지 간 이유는, 그 곳이 그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롯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소돔으로, 점점 가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지금 한번 살펴보라. 내가 지금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수준을 알 수가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수준이, 바로 나의 수준이다. 

교회에 나오고, 말씀을 듣는데, 같이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이 술 취하고, 음담패설하고, 세상적인 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바로 나의 영적 수준이다. 롯은 장막을 옮겨서, 소돔까지 간다.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 옆에만 있어도 떨어지는 복이 있는데, 그 축복의 자리를 차버렸다. 

축복의 사람, 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야 된다.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아야 되고, 또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축복의 사람으로 부르셨다. 지금 우리 가정에 눈물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나로 인하여 우리 가정이, 복 받게 될 것을 믿으라. 

왜냐하면 우리는 축복의 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축복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 왜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인생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심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혹시 롯처럼, 축복의 사람을 거부하고 소돔 땅으로 가고 있지는 않는가?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도 하는데, 학교에만 가면, 직장에만 가면 나와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소돔 사람들이라면, 나는 망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함께 망하려고 소돔으로 가고 있는 롯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면서, 가나안에 머물고 있는 아브라함인가? 구약성경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롯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배반했던 가룟 유다와 같이, 그는 축복의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도,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떠나면 안 된다.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병 낫기 위하여 몰려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나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고 예수님을 떠났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다.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기에, 주님의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떠났기에, 결국 목을 매고 죽고 말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주님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소돔으로 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돌아오십시오.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말고 놀러 가자고, 소돔으로 가자는 유혹을 거부하고, 축복의 자리를 지키라. 특히 홀로 믿음 생활하는 분들, 집안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핍박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축복의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 나누어 주시는, 축복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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