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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평과 은혜로 지키시는 하나님 (시 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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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은혜로 지키시는 하나님 (시 27:1~6) 


성탄의 계절이 왔습니다. 벌써 곳곳에 성탄을 알리는 성탄트리가 세워지고 있고 이곳 저곳에서는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평화의 왕이 오신 절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내 삶 속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평화가 임해야 합니 다. 온 세상 평화는 곧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범죄 심리학에 의하면 대부분 연속범죄들을 범죄자의 바운더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범죄를 저지르는 한정된 영역, 그리고 방법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마음과 삶속에 평화를 이루지 못하면 가장 많이 피해를 입을 대상이 누구이겠습니까? 첫째는 자신이겠지만 바로 자신의 지근지간에 있는 사람들이고 공동체입니다. 

요즈음 생활범죄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나라는 9월 위기설 때문에 두려워했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별일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은 3월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꽁꽁 얼어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지금 조금 어려운 것은 정상으로 가려는 거품빠지는 소리입니다. 우리나라를 팔면 캐나다 2개를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부동산거품이 많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의 아직 일어나지 않는 장래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솓담에 "손톰 곪은 것은 알아도 영콩 곪는 것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끝은 보이니까 알고 아파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염통이 어디입니까? 심장입니다. 삼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아니하니까 그리고 손톱 곪은 것과 같이 고통이 없으니까 심드렁합니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비교가 안되게 심각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두려움이 생긴 것일까요? 그것은 아담이 범죄한 후로 인간의 마음 속에 본능적으로 가지게 된 정서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본성은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다 줍니다. 마귀는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고 형별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평안일 것입니다. 
건강이 있어도 평안이 없다면, 
물질이 있어도 평안이 없다면, 
이런 것 저런 것이 다 있다고 해도 평안이 없다면 그런 것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의 갖가지 모순된 삶의 깊은 곳에서는 "평안 없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평안의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평안은 인격가지도 안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되고, 땅 가지고도 안되고, 권력이나 명예가지고도 안 됩니다. 평안을 이런 것으로 얻을 수가 있다고 하면 이미 돈 가진자 땅 가진자 권력이나 명예가 있는 자들이 모두 독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참된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본문말씀은 두려움이 많고 불안이 많은 이 세대속에서 살면서 그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했습니다.
이 말은 두려울 것이 많고 무서운 것이 많이 있지만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고,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고,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 되심을 믿기에 그 많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몰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끊임없이 두려움의 조건과 무서움의 조건이 따라다녔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구체적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나의 살을 먹으려고 왔으며"(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치고"(3)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한다"(3)고 했습니다.   

이처럼 극한 두려움과 불안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속에서 다윗은 도리어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 내가 오히려 태연하리로다"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가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요 내 생명의 능력이 되셔서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멸의 불이 군대처럼 많은 원수들을 소멸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을 당기실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요새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속하신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것만큼 군사들을 잘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적과 싸워 실패할 수 밖에 없으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했기 때문에 평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아 내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한가지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소원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4절을 한번 보세요.
"여호와 앞에서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했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하나님의 집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주님의 기이한 일을 목도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맛보기를 소원했습니다. 
  
다윗은 주님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다윗 같은 소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도 다윗같은 이런 체험이 없으신 분은 꼭 이런 귀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지 아십니까? 누구나 환란을 당할 수 있는데 그 환난 때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사모해야 하고 기뻐해야 하고 소원해야 할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청한 일 바로 그것이어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와 그 일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는 것이라"
  
다윗이 얼마나 바쁜 사람이었습니까? 다윗이 또한 얼마나 높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이와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소원이었습니다. 

다윗이 이런 소원을 가지고 살 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5절에 "환난날에 나를 초막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 환난날에 하나님의 안전 속에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다윗의 간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했던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보호하시는 오새였으며 방패였고 구원의 뿔이었고 산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6절 말씀에 보면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궁극적인 승리를 주셨습니다. 

다윗처럼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는 것이라"하는 소원을 가지고 산다면 반드시 여호와께서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생명을 하나님의  능력에 맡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능력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위축되 어가는 내 생명, 꺼져가는 등불같은 내 생명 속에 새로운 생명의 활력을 불 어넣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나의 삶은 평화와 안정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 속에서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주님께 이 두려움과 불안의 문제를 맡기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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