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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된 그릇의 분량대로 축복하심 (창 49:8~1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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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그릇의 분량대로 축복하심 (창 49:8~12, 22-28)


야곱이 147세에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야곱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녀를 축복합니다. 12 아들을 다 불러서 축복합니다. 
큰 아들은 100살은 다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축복하며 키웠더라면 12 아들이 인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축복하는 아버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아주 아름다운 야곱의 인생 퇴장입니다. 이런 부모가 되시길 힘쓰십시다.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부모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야곱처럼 자녀를 축복하십시다. 믿음으로 우리 자녀에게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히11:20-21절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을 축복합니다. 야곱에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마침내 축복의 가문을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명문가문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부모입니다. 귀한 부모입니다. 
우리 자녀를 축복함으로 축복의 가문을 만드십시다. 믿음의 가문을, 영적인 명문가문을 세우시길 축복합니다. 

물질을 유산으로 물려주면 자녀들끼리 갈등합니다. 싸우기 쉽습니다. 홍콩의 유명한 영화배우 성룡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4000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아들에게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의 돈은 필요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 아들이 만일 능력이 없다면 재산을 탕진할 것이기 때문에 물려줄 수 없다” 

성룡씨가 매우 지혜로운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도 많이 봐 주야겠어요. 

재산은 안 물려주더라도 축복은 많이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축복이란 말이 본래 ‘베레크’입니다. 미국 새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입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오바마란 뜻이랍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잘 지어 주었습니다. 
우리 자녀의 이름을 뭐라 지었든지,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축복의 가문을 세우는 원리인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은 유언적인 축복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축복하고 나서 곧 죽습니다. 33절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유언적인 축복입니다. 

야곱의 자녀를 위한 축복은 예언적 축복입니다. 1절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자녀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며 축복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야곱처럼 우리 자녀들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가진 부모가 되기를 힘쓰십시다. 

예언하는 것이니 자기 마음대로 축복하지 못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 잘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8절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각각 축복 받을 분량만큼 축복했습니다. 각각 축복을 받을 그릇의 크기만큼 축복한 것입니다. 세 부류의 축복의 분량이 나옵니다. 

1. 축복받을 분량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세 명의 아들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입니다. 
장자 르우벤에게 야곱이 말합니다.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르우벤은 부모가 보기에도 탁월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가지고 죄짓는 일을 합니다. 새 어머니와 성관계를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준 못된 아들입니다. 

르우벤은 장자지만 장자의 분량이 전혀 못되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장자의 권리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버지 야곱이 장자 르우벤을 축복하지 못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르우벤 지파에서는 선지자도 왕도 사사도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자녀가 되지 마세요. 하나님이 그런 자녀를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축복대신 저주를 받습니다. 5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절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라.” 
여동생 디나가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이 세겜성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흉악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열정을 악을 행하는데 다 사용했습니다. 

야곱이 두 아들에게 저주를 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그런데 그릇이 그것 밖에는 안 되니 아버지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7절 “저주를 받을 것이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후에 시므온 지파는 점점 소멸해 가고 맙니다. 

민1:23에 인구수가 59,300입니다. 40년이 지나서 민26:14에 보면 인구가 22,200입니다. 무려 37,100명이 줄었습니다. 

신명기에 모세가 12지파를 축복할 때도 시므온 지파는 축복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서도 시므온 지파는 기업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유다지파의 땅에 더부살이를 하다 나중에는 흡수되고 맙니다. 
레위지파도 자기 기업이 없이 12지파 사이에서 흩어져 살게 됩니다. 야곱의 저주대로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도 레위지파는 후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헌신을 합니다. 그래서 성막을 봉사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저주아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직도 역전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둘째 셋째 임에도 불구하고 형 르우벤의 장자권을 이어받지 못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이 두 아들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축복받을 분량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저주받을 만한 분량의 사람들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처럼 절대로 저주 받을 분량의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저주의 씨앗을 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2. 축복받을 분량도 저주받을 분량도 아닌 사람들 

아버지 야곱이 저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축복하지도 않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베냐민 7명입니다. 
‘스불론’ 아들에게는 ‘해변에 거주할 것이다.’ ‘잇사갈’ 아들에게는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이다.’ ‘단’ 아들에게는 축복인지 저주인지 애매모호 합니다. ‘갓’ 아들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셀’ 아들도 별스럽지 않습니다. ‘납달리’ 아들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막내 ‘베냐민’도 그저 그렇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신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열두 아들 중에 일곱 아들은 악한 일에도 선한 일에도 그냥 수동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악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선하지도 않습니다. 미울 것은 없는데, 예쁠 것도 없습니다. 그냥 그럭저럭 살아온 겁니다. 대충대충 신앙생활 한 겁니다. 
그러니 저주 받을 분량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다지 축복받을 그릇도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요? 


3. 최고의 축복을 받은 분량의 사람들 

최고의 축복을 받은 아들은 넷째 유다와 열째 요셉입니다. 이 둘은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유다와 요셉은 장자의 축복을 받을 그릇이라는 마음을 주신 겁니다. 아버지가 보기에 유다와 요셉은 장자의 축복을 받을 분량의 아들이었을 겁니다. 
유다와 요셉 같은 축복의 분량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야곱이 넷째 유다에게 축복합니다. 8-12절까지입니다. 함께 읽으십시다. 
유다가 형제들의 지도자가 될 거라고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할 거라고 축복합니다. 사자새끼라고,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아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축복합니다. 통치자가 유다에게서 나올 거라고 축복합니다. 
유다지파가 가나안 정복의 선두주자가 됩니다. 힘든 일에는 유다 지파가 먼저 앞장섭니다. 
유다 지파가 지도자 지파가 됩니다.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나옵니다.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왜 야곱이 넷째인 유다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시고 싶으셨을까요?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유다는 요셉을 살릴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았습니다. 

창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후에 요셉이 형들의 마음을 시험해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이 넷째 유다입니다. 아버지에게 막내 베냐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담보로 걸었던 아들도 유다입니다. 요셉에게 자기 목숨을 걸고 아버지와 베냐민을 지키려고 했던 아들도 유다입니다. 

창44:33-34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하나님이 유다의 중심을 보고 계셨던 겁니다. ‘유다야 너는 넷째이지만 네가 장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네가 아버지와 동생을 네 목숨보다 귀하게 생각하는구나. 너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분량의 사람이구나!’ 

유다처럼 부모도 형제도 생각하십시다. 유다처럼 교회도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이 유다처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도 유다와 함께 장자의 축복을 합니다. 22절부터 26절까지입니다. 
22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야곱의 축복이란 찬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온갖 최고의 축복을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승리하는 자.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 부모의 축복을 이어받는 아들. 형제 중 뛰어난 자...’ 

10번째 아들인데, 장자의 축복을 합니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두 지파의 몫을 기업으로 줍니다. 두 아들 에브라임 므낫세가 열두 지파가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두 지파의 몫을 받습니다. 

요셉 지파에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드보라 사무엘 기브온 입다...’ 
요셉은 설명할 것 없는 장자의 분량의 사람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열째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을 다 부양합니다. 다 먹여 살립니다. 기쁨으로 합니다. 정성으로 합니다. 
야곱이 요셉을 최고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던 거지요. 

하나님이 요셉처럼 최고로 축복하고 싶은 그런 신앙의 분량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분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을 다르게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편파적인 게 아닙니다. 축복을 담을 분량만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사랑의 분량만큼 담아주십니다. 비전의 분량만큼, 헌신의 분량만큼 담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분량의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까? 
우리가 2009년 직분자를 세웁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량을 가진 직분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축복의 그릇을 크게 준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준비된 그릇의 분량만큼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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