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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먼저 구해야 할 일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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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먼저 구해야 할 일 (마 6:25~34) 


사람이 먹어야 살지만 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왜 불행한가?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마4:4). 이것은 사람이 육신을 가졌음과 동시에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사람을 3 종류로 분류했다. 
1)육에 속한 자 - 자연인,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사는 사람들. 영혼이 죽은 자들.
2)신령한 자 -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 성령의 사람. 곧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3)육신에 속한 자 -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에 있는 신자들.

자, 그럼 먼저 육에 속한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비신자,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삶의 목적이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며,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얼마나 소유했느냐? 얼마나 올라갔느냐? 삶의 중요한 이슈가 된다. 

만약 만족할 만큼 소유하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하면 불안에 떨게 된다. 그래서 항상 비교하고, 항상 경쟁하며, 항상 자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들은 불안과 염려라는 질병을 가지고 산다. 

반면에 신령한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삶에 중심에 계신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물질적 가치를 뛰어 넘어서 가난하거나, 굶주리거나, 건강이 나쁠 때나 좋을 때나 관계 없이 항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는다. 믿음의 베짱이 있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사람은 육신에 속한 신자들이다. 
예수는 믿지만 안 믿는 사람들, 육에 속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한다. 부족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지르고, 불평과 원망을 터뜨린다. 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은혜도 받지만 염려 속에서 염려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사람들, 예수는 믿지만 의식주 문제에 매달려 염려를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다. “염려하지 말라!” “don't worry!"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1.염려는 불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왜 불신앙이 되는가? 성부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맺어진 양자 관계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할 때 ‘성령의 인치심’의 역사가 있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쌀 걱정, 입을 옷 걱정하면서, 한 숨 푹푹 내쉬고 있다면 부모님이 뭐라고 말할까요? 오늘날 신자들의 모습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철저한 시청각적 교육이다.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3가지 사례를 들며 설명하셨다. 

1) 공중의 나는 새를 보아라.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내가 저 미물들도 먹고 살기에 지장 없도록 모든 환경을 허락하였다. 내가 누구냐? 아버지가 아니냐? 그렇다면 내가 저 공중에 나는 새들보다 너희를 먹이시는데 어찌 너희를 더 귀중히 여기지 아니하겠느냐? 왜 염려하느냐?

2)들의 백합화를 보라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이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렸는가 성경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영광이 들의 백합화만 못하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다르다. 세상에서 아무리 탁월한 의상가가 만든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천국의 디자이너만 못하다. 들의 백합화는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것이다. 

3)들풀을 보아라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누구냐?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한 존재가 아니냐?, 들의 백합화도 들풀도 입히시거늘 하물며 내 자녀들을 외면하겠느냐? 의식주 문제에 매여서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다. 


2.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해서 키가 자랄 수 있다면 염려를 장려할 것이다. 염려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교회당 안에 ‘염려실’을 마련해 놓겠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된다. 마귀의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근심에 빠지면 낙심케 되는 것이요. 낙심에 빠진 자가 극단적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3.이방인들의 태도와 같기 때문이다.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치게 먹기를 탐하는 것 보기 좋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치게 명품 구하는 것도 덕스럽지 못하다. 음식이나 의복이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지 못한다. 광고에 속지 않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민한다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생각이 매여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영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염려는 불신앙이요, 무익한 것이요, 이방인의 행태이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가 우선적으로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의)이다. 이 본문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져야 할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며, 성도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되었으므로 성도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윤리적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홍창표).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우리 주변에 바람과 유혹과 조롱이 많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려고 결단하고 결단한다. ‘나 좀 믿음으로 살려는데 내버려둬!’ 그래도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본문을 중심으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청중들을 향하여 반복 강조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부께서 공중의 새도 책임지시고, 들의 백합화도, 들의 풀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천부의 자녀된 성도들이 의식주 문제에 매달려 염려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이방인들의 태도라는 것이다. 

(사 43:1)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 자임이라 

2)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마 6:32)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부모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신다. 중요한 것은 의심 없이 그 약속을 믿는 것이다. 영국 고마의 아버지 죠지 뮬러 목사의 간증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고아들을 굶기신 적이 없으셨다. 문제는 우리가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3)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LA 어느 작은 교회를 섬기는 집사님 한 분이 있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가르치신 분이었다. 12월 달의 주일은 보통 수입이 5천불 정도로 매상이 오른다고 했다. 그해의 12월은 5주였기 때문에 주일날 장사를 하면 2만5천불을 벌을 수 있었다. 그 집사님은 목사님에게 이번 12월 달에만 가게 문을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목사님은 허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집사님은 포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LA 흑인폭동 때 그 주변의 모든 가계는 불나고 약탈 당했는데 그 집사님 가게만 불타지도 약탈당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태가 진정된 후에 주변 사람들이, ‘주일날 대목에도 문을 열지 않고 주일 지키더니 참으로 하나님이 당신 가게를 지켜주신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주일 잘 지켰다고 지켜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주일 잘 지켜도 장사가 안 될 수 있고, 사고 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되든 안되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손해를 봐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어린 소년들, 다니엘과 그이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비록 어린 소년들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상에게 절할 수는 없었다.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적 상황에 놓여 졌다. 왕이 그 소년들을 조롱했다.
-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없느니라.
- 우리 하나님이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결코 우상 앞에 절할 수는 없나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희생, 손해보는 것 없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드러낼 수 없다. 

죠지 스위팅 목사, 
‘내 인생 최후 여정에서 내가 얼마를 벌었는가? 이것은 하나도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없다. 그 때 중요한 물음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주었는가? 나는 얼마나 드렸는가? 참된 가치와 일을 위해 나를 얼마나 드릴 수 있었는가? 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의식주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요하지만 먼저 더 신경 써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삶 속에서 의식주의 문제를 푸는 비결인 것이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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