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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존재 이유는? (창 4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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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 이유는? (창 45:1~11)


너무 슬프면 사람이 웁니다. 너무 감격스러워도 웁니다. 슬퍼서 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감격스러워서 우는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감격스럽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감격스러워 울 수 있는 일이 많게 되길 바랍니다. 

노예로 애굽에 팔려왔던 요셉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애굽 총리 요셉이 20여년 만에 곡식을 사러 애굽에 온 10명의 형들과 만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형들은 20여 년 전에 요셉을 미워해서 노예로 팔았던 못된 형들입니다. 정말 나쁜 인간들입니다. 

요셉이 그런 형들의 마음을 떠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예전의 형들이 아닙니다. 특히 넷째 형인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극진히 생각합니다. 자기 친동생 베냐민을 너무너무 아낍니다. 형들이 많이 변해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요셉이 보면서 감격을 합니다. 신하들을 다 물리치고는 큰 소리로 웁니다. 형제의 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대성통곡하며 웁니다. 
우리 중에도 형제간에 상한 마음이 있다면, 이런 감격스런 회복이 있길 축복합니다. 

드디어 자기가 동생 요셉이란 사실을 형들에게 알립니다. 3절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은 놀라 기절할 지경입니다. 아무 말도 못합니다. 3절 “형들이 그 앞에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되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요셉은 형들에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가까이 오라고 초청합니다. 나는 애굽의 총리이다. 그러지 않습니다. 

4절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 에 판 자라”고. 요셉은 형들을 이미 다 용서하였습니다. 상처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과거의 굴레에 속박당하고 살지 않습니다. 감격의 눈물로 형들을 품어줍니다.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 전에 용서하시고 사랑하셔서 반갑게 감격스럽게 만나세요.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가 왜 애굽의 총리라는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1. 꿈의 차이만큼 인생이 차이가 나게 된다. 

요셉과 형들이 20년 전에는 다 똑같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 양치기였습니다.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요셉은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있습니다. 열 형제는 여전히 양치기로 살아갑니다. 그것도 먹을 양식이 없어서 곡식을 사러온 처지입니다. 

신분상의 차이도 차이지만. 형들은 과거의 죄책감에 매여 두려워서 벌벌 떱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줍니다. 인격적인 성숙에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형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아! 결국 꿈이 이루어졌구나!’ 그걸 깨달았습니다. 

창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요셉은 17살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20년간 꿈을 꾸고 품었습니다. 20년간 고난을 견뎌내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처음부터 요셉의 꿈을 시기하고 거부했습니다. 꿈같은 소리하지 마라 무시했습니다. 현실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2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먹고 살기 힘든 형편만 되었습니다. 

요셉과 형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꿈의 차이입니다. 비전의 차이입니다. 꿈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만든 것입니다. 

요셉은 비전을 품고 20년의 고통과 수고를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꿈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형들은 꿈을 무시하고 현실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전히 현실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꿈의 크기만큼 인생의 크기가 차이 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고, 주님의 비전을 품고 20년을 힘을 쏟아서 살아보십시다. 
그래서 20년 쯤 지나면 요셉처럼 감격의 눈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2.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가 애굽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 딱 한마디로 말합니다. 5절에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7절에도 같은 말을 합니다. 못된 형들이 나를 노예로 애굽에 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8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오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애굽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요.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합니다.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안경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잣대로 자기 현실을 해석합니다. 
정말 나쁜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형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들을 안심시킵니다. 위로합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아!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그걸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형들을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 며칠 전 국민일보에 나온 정원섭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36세 때 동네 파출소장의 딸을 성폭행하고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 감옥생활을 했답니다. 모범수로 석방된 후 재심 청구를 통해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고문하고 서류를 조작한 경찰들을 용서합니다. 요셉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형제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위로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게 연단을 주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선한 사역에 사용하실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을 가져왔듯, 내게 교도소 생활은 하나님의 은총을 예비하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요셉은 노예 출신이 큰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인생 대박이 난 겁니다. 그런데 그 형들은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입니다. 그런 형들은 보면서 얼마나 교만한 마음이 들까요? 얼마나 거드름 피울까요? 그런데 요셉에게 그런 모습이 안 보입니다. 그냥 인간적인 동생으로 형들을 대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나를 이 자리에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총리지만 교만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자리에 있지만 여전히 겸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은 겁니다. 노예의 자리에서도, 누명쓰고 감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섭리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미리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 지나가 봐야 깨달아 집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바라보십시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할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3. 이 자리에 세우신 이유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이다. 

요셉이 형들에게 또 고백을 합니다. ‘형님들 제가 왜 애굽의 총리자리에 있는지 그 이유를 저는 압니다.’ 뭐라고 합니까? 5절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에도 “하나님이 구원으로 당신들과 당신들의 후손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으니.”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그 이유를 요셉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세우신 이유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사명신앙’입니다. 사명의 안경으로 총리자리를 봅니다. 사명의 잣대로 총리의 자리에 있음을 해석합니다. 
사명신앙이 중요합니다. 어떤 자리든 하나님이 그 자리에 세우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자리든 분명히 사명이 있습니다. 그걸 깨달은 사람은 사명신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요셉이 총리의 자리에 있으면서 애굽 백성을 흉년에서 살려내는 정치를 합니다. 애굽만 아니라 흉년을 만나 곡식을 사러오는 주변 여러 나라 사람들을 살려내는 정치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도 경제난을 만난 우리나라를 여러 나라를 살리는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요셉이 총리의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 가족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9-11절을 보면, 요셉은 형들을 보내서 아버지와 가족 모두를 애굽으로 데려오게 합니다. 아직 5년이나 흉년이 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과 가족 75명이 애굽으로 이민 와서 살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지 가족을 이민시켜서 편하게 살게 했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있습니다. 창15:13-14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을 증손자 요셉이 지금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삭, 아버지 야곱에게 주신 동일한 비전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후에는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되어 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중요한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충성되게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한 사명을 위해 주신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하는 사명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구원을 위한 수단입니다. 
목적과 수단과 바꾸어지면 신앙이 변질되기 쉽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버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안전하게 이륙을 하였습니다. 기장이 안내 방송을 합니다. ‘승객 여러분 저는 이 비행기의 기장 조상구입니다. 여러분이 타신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안전하게 이륙하였습니다. 날씨도 비행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는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러면 큰 일 납니다. 


맺는 말 

국민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국민교육헌장’이란 걸 외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 시절 정치인들이 만든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라’는 사명입니다. 
경제적인 흉년을 만난 분들도 구원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요셉처럼 잘 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쌀도 나누고, 반찬도 나누고 해야 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감당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흉년을 만난 분들을 꼭 구원해야 합니다. 이건 정치하는 분들이 못합니다. 경제인들도, 누구도 못합니다. 이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그 사명 감당하라고 우리를 먼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시화 땅으로, 안산, 연성, 월곶, 오이도, 인천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 직장으로, 그 학교로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아파트로, 주택단지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12월을 맞이합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구원해야 할 사람을 구원하십시다. 
2009년을 맞이합니다. 새해에는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하고 준비하십시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오는 이 자리에 세워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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