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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있는 자유함 (고후 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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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있는 자유함 (고후 3:6~18)


오늘부터 앞으로 4주간 동안 대림절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매년 이 맘 때 시작이 되는 대림절! 말 그대로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 은혜와 구원을 상징하는 보라색 촛불에 매주 초 하나씩 켜면서 12월 25일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4개의 초를 다 켜게 됩니다. 

이 대림절 기간은 말 그대로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우리는 예수님을 맞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초대해서 그 분이 여러분의 집에 오시게 되면 미리미리 청소도 하고 음식도 준비하고 침구도 바꾸고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십니다.  그렇게 맞은 손님은 얼마나 귀하게 여기십니다.  손님도 굉장히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대하게 되면 분명히 이 번 성탄절에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지난 주일에 읽었던 고린도후서 3장 1절-5절 내용을 근간으로 해서 그 다음에 나오는 이 본문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에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나 기도하던 중에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대림절 첫 번째 주간과 말씀이 내적으로 상통이 되어있어 다른 본문을 정하지 않고 이 본문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림절,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으로 오시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년 이 맘 때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되는데, 어떤 때는 구원으로 어떤 때는 희망으로 어떤 때는 생명으로 다가오시는 그 예수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과 아주 정 반대의 개념으로 이 땅에 오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 들어왔습니다.  광야에 들어오자마자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시나무 떨기가 불붙고 있는데, 그것이 타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붙고 있는 광경을 모세가 바라보는 그 순간, 모세는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 이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그 기준으로 이 율법을 주십니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이 열 가지의 법,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법은 십계명 10가지뿐만 아니라, 보고에 의하면 약 685개 정도의 율법이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율법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십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자기 자신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율법, 이것을 가리켜 학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언약이란, 히브리말로 브리트라고 하는데요, 브리트라는 말은 둘을 하나로 묶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바로 이 언약이라고 하는 이것으로 묶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너희가 이것을 다 지키면 내가 너희의 자손을 축복 하마, 그러나 너희들이 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될 것이고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지키면 은혜를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정죄를 받게 된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약속, 이것을 가리켜 언약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3:6) 

그런데 이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모세의 율법으로 대표되는 이 율법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우리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가운데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을 가리켜 옛 언약이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신 언약을 가리켜 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이전에 있었던 옛 언약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새 언약은 아주 구별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요?  모세에게 주신 옛 언약은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죄가 되는지 죄가 되지 않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에 보면, 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이 규정이, 이 율법이 없었으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들을 섬기면서도 내가 우상을 섬기고 있구나 하는 모를 수 있습니다.  만약에 돈을 신으로 생각하고 돈 버는 일에 앞장서고 돈에게 경배하고 돈을 숭배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이 그렇게 살면 여러분은 하나님 말고 돈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우리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면서도 내가 우상을 섬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런데 이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지금의 주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주일에 놀러가고 세상 재미에 빠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을 몰랐을 때에는 그것이 죄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아,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전에는 하나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알고 난 다음에는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장난치면 안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부모님을 섬겨라, 이런 많은 율법들, 전에 십계명이 없었을 때에는 내가 한 거짓말, 내가 한 거짓 행동, 내가 한 음란한 행위, 내가 한 거짓 행동, 내가 한 불효, 이런 것들이 죄가 되는지를 몰랐었는데 그 율법을 깨닫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있습니다.  얼마나 방대합니까?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이 죄가 되는지, 범법행동이 되는지를 잘 모르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법에 접촉이 되는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전에는 모를 수도 있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법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율법의 결과는 정죄하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법을 어기게 되면, 당신 죄 있습니다.  라고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는 것이지요. 

세 번째 이 율법의 마지막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정죄 받고, 심판을 받게 되어 나중에 죽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들에게 주신 새 언약은 어떤 것인가요?  새 법은 어떤 것인가요?  이것은 옛 언약과 아주 구별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오셔서. 너 하나님 안 믿으면 죽어, 너 간은하면 죽어, 너 도적질하면 죽는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정죄하고 심판을 가져다주고 그리고 그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구원과 희망과 용서를 가져다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불효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 했지만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고 거짓말하고 간음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구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생명을 주신다는 이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분이 지금 오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우리가 옛날 모세가 가져다 준 그 율법, 그 옛 언약과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오시면서 가져다주는 새 언약은 이렇게 다르다고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불렀을 때에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하라고 불렀을까요? 구약 시대에 율법으로 대표되는 옛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셨을까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로 대표되는 이 생명과 구원과 용서의 복음을 전달하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새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떤 잘 못한 사람을 앞에 놓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옛 언약, 율법과 계명에 빠져있는 율법주의자들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을 대할 때 이렇게 대합니다.  당신 죄 지었지?  이것도 못했지? 저것도 못했지?  당신은 그래서 정죄 받을 거야, 당신 심판 받을 거라고,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어, 라고 율법의 가르침, 계명의 가르침, 옛 언약의 가르침대로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실수와 허물을 보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정죄합니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과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 이런 사람은 죄 지은 사람을 앞에 놓고 율법주의자처럼 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주님께 오면,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께 오세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증언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하나님과 저를 율법주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죄의 결과, 죽음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시고 위로하고 생명을 가져다주고 용서하고 희망과 구원을 전달해 주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여러분과 저를 부르셨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율법주의자로 살아갑니까?  왜 남들을 정죄하고, 왜 남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왜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음을 가져다주는 메시지를 증언하나요?  율법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율법주의자가 되고 율법아래에 있어서 저주와 심판과 죽음을 경험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대림절에 주님이 오시는 이유는, 율법 가운데 있어서 절망과 좌절과 심판과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서 희망과 구원과 용서와 사랑으로, 생명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율법주의자, 옛 계약의 옛 일꾼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과 구원과 용서의 복음을 가지고 전달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율법조문은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에게 당신 죄 지어서 벌을 받아도 싸, 당신은 당연해, 그렇게 살면 죽지,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이야기 해 보세요.  그 사람은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기 원치 않습니다.  어느 누구가 나한테 와서 너 벌 받아도 싸, 죄 값을 싸 심판받아야 돼, 죄 값을 치를 거야, 그렇게 이야기 한다면 듣기 좋겠습니까?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사람에게 찾아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범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과 구원과 용서의 복음을 전달해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율법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사람을 살리시기 위하여 지금 예수님이 오시고 계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자유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선한 행동을 할 때 일반적으로 보면,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어느 며느리가 있었는데 이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고 싫어요.  그런데 남편이 윽박지르고 부모님이 계시니까 어쩔 수 없어 시부모님을 섬기는데 시부모님이 압니다.  며느리가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지 알지요!  이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홀대합니다.  아주 버르장머리 없고 예의를 갖추지 않고 막 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며느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시부모님이기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싫은 내색 다 하면서 섬겼는데 예수를 믿고 예수의 복음을 믿고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더럽고 잘못된 행동을 했었는가를 그 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영은, 예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복음을 경험하면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며느리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시부모님이 그렇게 미웠는데, 그렇게 불편했는데, 힘이 들었는데, 예수의 영을 만나고 난 다음에 가슴속에 불붙는 사랑하는 마음이 담아졌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담겨졌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시부모님을 대하는데 똑같은 시부모님이고 똑같은 자기 자신인데, 완전히 사람은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나요?  시부모님이 불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차이가 있나요?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7절) 

사람이 예수를 만나지 않게 되면, 옛 계약 하에 율법 아래 살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의무와 책임 때문에 하게 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자발적으로 하게 됩니다.  기뻐서 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무슨 말인가요?  자유함, 기쁜 마음으로 섬기게 된다는 것이지요.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영을 경험하지 못하면, 주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면 예배 오는 것도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 하나님께서 감격을 주실 때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릴 때 편안하고 쉽지만, 이 예수의 영을 경험하지 못하면 복음을 경험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한 시간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고역입니다.  고문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을 만나고, 예수의 복음을 경험하게 되면 일주일에 몇 번씩 와서 예배를 드려도 그것이 감격이 되고,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됩니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예수의 영을 만나지 않았을 때에는 교회 봉사도 힘들고 어려운데 예수의 영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얼마나 교회 일이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의 영, 주의 영을 경험하게 되면 마음의 자유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얽어맵니다.  율법은 사람을 강하게 압축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사람을 자유스럽게 내놓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도록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오시는 이 대림절 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셔야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 하에 있어 정죄 받고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으나, 오고 계시는 예수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예수의 영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기쁨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과 구원과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의 영을 경험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율법 하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비판하게 될 것이고, 손가락질 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저주하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 죽음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의 문을 열고 오고 예시는 예수님을 맞아 들여 예수의 영을 경험하셔서, 이 대림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을 만나 은혜의 사람, 축복의 사람, 위로와 격려와 용서의 사람, 생명의 사람으로 여러분이 바꾸어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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