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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고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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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고전 1:3~9)


오늘의 교회력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대림절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Advent라고 하여 12월 25일 성탄절로부터 역으로 4주 전에 시작됩니다.  

대림절이란 강림하시는 주님을 대망하는 계절이라는 뜻으로, 이 대림절이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계절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대림절에는 우리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몸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고, 아들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며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는 희생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느끼신 엄청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큰 사랑이요,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뿐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이요, 은혜는 예수님뿐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도행전4:12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1:7-8에서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라고 하면 당대의 석학입니다. 동서양의 모든 문물을 알고, 서양의 철학과 유대인의 종교를 통합한 학자입니다.  그리스의 철학과 문명인 헬레니즘과 유대인의 종교와 문명인 헤브라이즘을 통합할 수 있었던 학자였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만을 전해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몸소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살고 죽는 문제요, 나의 나 됨을 말하고, 내가 구원받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종교라고 하여 다 같은 종교로 안다면, 종교란 가질 것도 없고,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것도 없습니다.  종교란 다 같은 것이라고 하면, 종교를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다 같다는 말은 다 틀렸다는 말이요, 모두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종교를 연구해보면 탁월한 사상과 진리를 가진 고급 종교가 있고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속박하는 저급한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종교라고 하면 모든 종교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성숙함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종교에 대한 전혀 모르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저급한 종교는 인간과 사회와 국가에 엄청난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세계 많은 종교를 놓고 비교 연구하는 비교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이 분야에서 나온 결론은 종교 간에는 일부 유사성도 있지만 그런 유사성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결론으로 내어놓았습니다.  세계의 많은 종교들 중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도 있으며, 성차별이 극심한 종교도 있고, 음란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와 윤리 도덕을 떠나 염세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종교도 있었고, 국가를 떠나서 지독하게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 간에는 일일이 비교할 수 없는 편차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의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요,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더불어 3대 도시를 이루고 있었고, 부와 학문의 도시였으며, 사치와 방종, 타락의 대명사가 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 평판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고린도화하다, 고린도인처럼 행동하다는 말을 코린티아제스타이(Korinthiazesthai)라는 말은 “문란하다, 간통하다”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 신전의 1000명의 여사제들은 당시의 공창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종교라는 미명 아래에 간음이 성행했습니다. 

이런 타락한 도시에 사도바울이 들어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음란한 도시, 물질적으로 풍요를 구가하는 도시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계속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이기에 바울이 항상 감사한다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 영광중에 오시는 주님, 부활하신 육신을 입고, 영광스럽게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은 어떠한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하셨으며, 8절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1.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4-6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4-6)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 받아야 하고, 은혜 안에 거할 때만이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그 분 안에서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은혜 중의 가장 큰 은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몰랐다고 하면, 지금 우리는 죽은 신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을 것이요, 꿈과 소망이 없는 저주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만신 우상을 모시고, 우상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우리 부모님이 교회로 나오지 않으셨으면 지금도 산을 헤매고 다녔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부모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5:10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어서 꿈과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떨치기 위하여 우리는 위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배우며, 예수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에 대한 모든 증언에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변과 지식이 늘어간다”고 하였는데, 원문에는 “로고스”와 “그노시스”라고 하였습니다.  “로고스”란 말씀, 교훈, 진리, 구변,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노시스”란 경험적인 참 지식이란 말입니다.  

고린도라는 도시의 사람들은 말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지식이 넘치는 사람들이지만, 이제야 말로, 영적인 진리와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왜 예수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깊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변이 좋다, 구변이 좋다, 말을 잘 한다는 말인데, 고린도교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우려고 하십니까?  예수님을 배우려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과 죽음에서 승리하신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은 타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진리입니다. 종교와 윤리는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윤리적인 이야기는 인간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기에 비슷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진정한 윤리는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에, 타종교의 윤리와 기독교의 윤리는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윤리와 다만 인간애의 발로에서 바로 살겠다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기 원하면 기독교 만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예수님이 나의 더럽고 추한 죄와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든 종교의 시조는 다 죽어 무덤에 묻혀 그 몸이 썩어 없어졌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시므로 인류 최대의 적인 죽음이 무너지고, 깨어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은 아주 단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살아나심에 우리도 참여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은 사함 받으며, 영생을 얻고, 예수님의 부활에 우리도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회는 복잡한 종교가 아닙니다.  명상이나 윤리도덕을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변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이 없습니다. 조금 깨끗하고 고상하게 살았다고 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어 있습니다.  


2.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받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은 각양 은사를 받았다는 말인데, 은사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뜻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교회는 새로운 일꾼들을 많이 뽑았고, 새로운 일들을 맡기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교회의 많은 일꾼들을 어느 자리에, 어떠한 일에 배정하는 것을 놓고 당회원들은 고심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각양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신약 성경의 아주 많은 기대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파루시아의 주님, 영광 중에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천천만만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넋 놓고 앉아 먼 산이나 쳐다보면서 저 구름 타시고 주님이 오시려나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도바울 같은 분은 당신의 생애에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바라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면서 주님이 오신다고 뛰어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사도입니다. 

한 해의 농사를 마친 분들이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정비하고, 하우스 재배에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하이칼라 하고, 와이셔츠 입고, 넥타이 매고 일하지 않습니다. 땀에 쪄든 남방셔츠 입고, 머리에 밀짚모자 눌러쓰고, 튼튼한 농구화 같은 신발을 신고, 손에 굳은살이 뭉쳐 있고,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어야 농군이지요, 농군이라고 하면서, 놀러 다닐 것 다 다니고, 할 것 다하고 언제 밭에 나가서 일할 수 있습니까? 그의 몸에는 수없는 농사꾼이라는 흔적이 있어야 진짜 농사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예수쟁이들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경 읽는 사람들입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봉사하고, 우리 사회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흔적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기도했다고 하면, 한 두어 시간 진지하게 앉아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성경을 한 번 잡고 앉으면, 한50 장은 읽고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일 년에 몇 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내 것은 아낌없이 내어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명 감당하면서 주님을 맞이하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의 딸이 한양대학을 나왔습니다. 한양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패스를 하여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아버지 목사님에게 사법연수원을 자퇴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게 말이 되느냐?,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하고 들어간 것인데, 그러느냐?”고 달랬습니다. “아버지, 사법연수원에서 저는 바닥을 기고 있어요. 절반은 서울대학이고요, 또 나머지 절반은 연고대 출신이고요, 나머지 절반은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였는데, 서울 연고대 학생들의 눈에서는 빛이 나요. 기가 죽어 공부 못하겠어요.” 그러는 것예요. “아버지는 너를 위해 기도하마. 죽어라고 기도하마” 

며칠 후에 아버지는 딸에게 하루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고, 밤12:00-12:20까지 꼭 기도하고 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의 공부를 마치고 12시가 되면 기도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또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고, 꿈과 비전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사법연수원 과정을 잘 마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1등으로부터 100등은 판사를 지원하고 200등까지는 검사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로펌으로 가는데, 검사를 지원한 사람들 중에서는 2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서울지검을 신청하였는데, 서울지검에서 하는 말이 “당신은 목사 딸이니 종교 재판을 맡아보라”고 했습니다.  20대의 초년 검사가 쟁쟁한 변호사, 전관예우를 받는 8명의 변호사와 싸우는데, 유명한 JMS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맡았는데, 정명석라는 자는 자신을 Jesus Morning Star  또는 Jesus Messiah Savior의 약자라고 합니다.  

정명석은 이단 사설을 퍼뜨리며, 자칭 메시아, 수많은 여성들을 농락한 파렴치범으로 중국에 도피하였다고 국내로 송환되었는데, 그를 법정에 세우고, 구속시키는데, 성공한 검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지어놓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세요. 차선에 머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냥 놀다가 주님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거룩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8절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우리 하나님과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까?   힘으로 못합니다. 능으로 못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거룩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차선은 최선의 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선에 머물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하여 방임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잘 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9절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과 대화합니다.  주님을 친구삼아 자주 만나서 동행하고, 함께 갑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과 교제하려는 사람은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지금 교회를 출석하시고, 신앙생활하면서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 주님이 하시려는 일을 도와드리고, 주님을 기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제 아내를 소개받고서 3년간 교제하고 결혼하였는데, 그 때는 매일 하루도 안 만나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밤늦게라고 보고 집에 가야지, 하루라도 안 보면 잘못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디 출타하면 편지를 보내는데, 요즈음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지워버리지만, 예전에는 주고받은 편지를 보관하는데, 시집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하루라도 주님과 대화하지 않으면 잘못되는 줄 알고, 주님의 편지를 읽고, 주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다가 주님 앞에 아름다운 신부로 서야겠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받은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거룩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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