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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고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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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고전 3:1~9)


여러분들은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께서 그를 칭찬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만이 죄악과 사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평화를 주고, 생명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새벽기도회에 계시록을 묵상하는데 1장에 나타난 핵심 메시지는 교회에 대한 주님의 열심이라는 것이다.

(계 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계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다. 그는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다. 교회는 은혜롭게 든든히 세워져 갔다. 바울이 그곳을 떠나고 난 후 5년 정도 경과했을 때 바울은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에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근심을 누르면서 차분하게 한 가지 한 가지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의 내용이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 중에 첫 번째, 분파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책망과 함께 상세하게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 설명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원리,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분열 분파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영적 미성숙의 문제라고 보았다.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육신에 속한 자, 어린 아이, 밥을 먹지 못하는 상태로 비유했다. 육신에 속한 자란? 신령한 자의 상대가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1)신령한 자 - 영적으로 성숙한 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2)육신에 속한 자 - 신자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의 삶에 모습에 불신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그들은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어야 했다. 그러나 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아이의 모습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근심과 탄식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안에서 나타난 어린아이의 모습들은 무엇인가? 3-4절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교회 안에 파가 4개로 나뉘어 있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거기에 시기와 분쟁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와 같은 행동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단단히 화가 났다.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일을 맡길 수 없다. 혹 우리 중에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사역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사도 바울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을 것이다. 믿은지 1-2년 밖에 되지 않았다면 용납될 수 있겠으나 5년 이상 됐다면 책망을 받을 것이다. 마땅히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원리,은사를 따라 섬겨야 한다.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라는 말은 자신과 아볼로를 무참히 깎아 내리는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파를 갈라 놓고 그 파에 수장이 될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는 짓이 세상 사람들 하는 짓과 똑같은 것에 대하여 분노했던 것이다. 

우리는 단지 사역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지 그것을 빌미로 출세의 발판을 삼으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바울의 역할은 심는 것이었다. 바울에게는 개척의 은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 개척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목사님은 5-6곳은 한 분도 있다. 또 어떤 분은 한 곳도 하지 못하고 기성 교회 목회하는 분들도 있다. 

아볼로의 역할은 물 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하여 그곳에 복음의 씨를 뿌려 교회를 세운 사람이다. 그리고 아볼로는 후에 그곳의 담임목사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지 그들이 한 일에 대하여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흥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지 자신들의 수고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가병원의 병실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치료자가 되신다.’ 진짜 겸손한 의사들은 자기가 고쳤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잘해서 부흥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목사님으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신자라면 누구든지 한 가지 이상의 은사와 재능이 있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잘 살펴보고,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무익한 종들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이다.


세번째 원리. 최선을 다하여 충성해야 한다.

(고전 3: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바울은 자신이 개척했다고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아볼로 역시 자신이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만약 두 사람이 다퉜다면 그들 역시 영적 어린아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일반이니..’ 

각자의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하다. 

제 여식이 대학에 들어간 후 2년 간 ‘엘피스’라는 찬양단에서 엔진니어 역할을 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약간 섭섭했다. 싱어를 한다든지 반주를 한다든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엔진니어는 얼굴이 없다. 언젠가 물었다. ‘만약 다시 엘피스에서 활동한다면 어는 파트에서 사역하고 싶니?’ 그랬더니 ‘엔지니어!’라고 대답했다. 섭섭하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자세가 기특했다.

오늘날과 같이 혼란스러울 때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충성하는 사람을 주님께서 찾고 계신다.
(마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방방곡곡에 세워진 교회당 건물을 볼 때 진한 감동을 받는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용히 기도와 물질로 충성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결실인 것이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네번째 원리, 동역자 의식을 갖는 것이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동역자’란 말은 같은 일에 협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그 동역이 보통 동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성경구절은 제자반 암송구절 중의 하나인데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동업한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업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해답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은 바울과 아볼로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과 아볼로의 입장에서 사역의 대상이 당시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라 한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마28:19, ‘너희는 가서 ~’ 제자들만 해당되는 것이고 우리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이다. 동역자의 의미가 이제는 모든 평신도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축구장의 관객과 같다는 것이다. 축구장에 들어오기 위해 표를 사고 경기가 시작되면 게임을 즐기고 끝나면 빠져 나간다는 것이다. 끝나고 나면 다음 경기를 위해 청소를 하고 입장권을 팔고 선수들은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일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교회관과 평신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내 자신이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일 뿐 아니라 사역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나는 평신도에 불과한데요’라는 말은 겸손한 말 같으나 주님의 부르심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프란시스 아이레스, “1500년대 종교개혁이 평신도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면, 앞으로 올 영적개혁은 사역을 평신도에게 돌려줄 것이다.”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니요, 관객이 아니다. 교회는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지점과 같다. 목회자나 천사들만 일하는 곳이 아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올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니다. 예)조정경기

1090, 2080이란 말이 있다.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교회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에 대하여 낙심 할 것 없다. 고린도교회의 모습도 당시에 여론조사를 했다면 좋은 점수가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분열과 분쟁 속에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울의 권면을 유념해서 건강한 교회를 회복시켜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1.영적인 성숙을 위해 배우고 훈련받기를 힘써야 한다.
2.은사중심적 섬김을 위해 자신의 은사를 개발해야 한다.
3.자신의 맡은 사역에 인내하며 충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4.거룩한 사역에 동역자로 부름받았다는 동역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역 박람회가 오늘과 다음 주일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할 수 있기 바란다. 잃어버린 나의 사역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의 교회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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