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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왕하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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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을 하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멍하니 있는 것 같아도 분명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잠을 잘 때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60억이 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쉬임없이 생각을 하고 있고, 저마다 생각이 전부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면서 각자의 생각대로 생각을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맞벌이로 일하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아내가 먼저 집에 들어오고 남편이 늦게 퇴근을 했지만, 가끔씩은 아내가 늦게 귀가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날따라 아내는 회사에 일이 많아서 늦게 퇴근을 해서 집에 오게 되던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많은 업무로 인해 지친 몸이었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편안하게 쉬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한편, 집에서는 남편이 먼저 퇴근을 해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 역시 피곤한 몸으로 만사가 다 귀찮은 상태에서 아내가 집에 오면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금방 신발을 벗은 아내에게 대뜸 한다는 소리가 “여보, 나 커피 한 잔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지친 모습으로 들어왔는지는 보지도 않고, 남편은 TV만 보면서 커피나 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힘들기는 서로 마찬가지인데 “힘들었지? 밥은 먹었어?”라고 다정하게 말은 못해 줄 망정,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는 남편이 못마땅했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생각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편하게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편은 아내가 오면, 커피 한 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인데도 생각이 이렇게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①번 : 아내가 신발을 던지면서 대판 싸웠다. ②번 : 그날로 이혼 도장 찍었다. ③번 : 커피를 남편 머리에 갖다 부었다. ④번 : 사이좋게 커피 마셨다. 몇 번일 것 같습니까? 정답은 4번입니다. 

  남편이 커피를 달라고 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이런 생각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보니까 나와 같이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아내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부부는 행복한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충분히 겪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저희 집사람과 생각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일이 많이 있는데, 결혼 전에 처음 만나던 때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제가 옷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가짓수도 적은 데다가 대부분 싼맛에 산 거라서 데이트 할 때 입을만한 옷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마음 먹고 좀 비싼 옷을 하나 사입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옷이 제일 좋은 거니까, 만날 때마다 그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한 얘기였지만, 저희 집사람이 장모님께 한 얘기가, “엄마 그 사람은 맨날 만날 때마다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온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도 데이트할 때 좋은 옷을 입고 간다는 차원에서 새로 산 그 옷만 입고 나갔는데, 저희 집사람은 허구헌날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오니까 그게 못 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저는 늘 싸고 양 많은 것을 좋아하고, 저희 집사람은 싼 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좀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고... 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잘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제 생각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상대방은 자기 사고방식대로 나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부부 간에 시댁과 친정에 대해 생각하는 견해의 차이라든지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갈등을 겪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나병환자였던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와서 나음을 얻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 일이 있기 전에 아람왕은 자신의 신하 나아만의 병을 고쳐달라고 편지를 써서 이스라엘왕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왕은 자기 생각대로 오해를 하고서는 이것은 분명, 아람왕이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싸울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람왕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더 심각한 생각의 차이는 그 뒤에 나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나아만 장군을 자신에게로 보내달라고 전갈을 보내서, 나아만 장군은 이제 이스라엘 왕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늘 끊임없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아만 장군 역시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로 갔을 때 그가 어떻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엘리사 선지자의 집 문앞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땠습니까? 나아만 장군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어떤 점이 달랐습니까? 

  먼저는, 나아만 장군 생각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직접 나올 줄 알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5장 1절 말씀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람 나라를 구원한 적이 있는 큰 용사였고, 나라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아람 나라 주위에 있는 나라들은 나아만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떠는 명성 높은 장수였고,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나병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그를 상대하거나 얕잡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는 당연히 엘리사 선지자가 공손히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이고 나와서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줄줄 알았습니다. 1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 장군 생각에는 엘리사가 직접 나올 줄 알았는데, 버릇없게도 사람을 보내서 한다는 얘기가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아만이 이스라엘왕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가는 것만 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엘리사 선지자가 왕궁까지 직접 올라와서 치료를 해줘야지, 자기를 오라 가라 하는 것만도 기분 나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그것까지는 감수를 하고 내려갔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치료법 한 마디만 던져줄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병든 부위에 안수해서 고쳐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어떠한 특정한 의식을 통해 고쳐줄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위엄에 걸맞는 거창한 의식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는 것도 자신의 생각과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다마섹에 있는 아마나와 바르발강이 훨씬 더 나은데 하필 요단강에서 씻으라는 것도 못마땅했고, 더군다나 그런 일을 일곱 번이나 반복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도 자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어찌나 화가 났던지, 11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가 보낸 사람의 말을 듣고 난 후에, “내 생각에는 그가 이렇게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말하고 나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직후에 바로 노하여 물러가면서 그 얘기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도 격분한 나머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그의 성격이 얼마나 불같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부하들의 말을 듣고서 그 생각을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가 시킨 대로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고 나니 어린 아이의 살같이 깨끗이 나음을 얻었다는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우리는 나아만과 같이 “내 생각에는 이러하다”고 하면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믿음의 과오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 주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보다도 오히려 내 생각과 뜻을 주장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거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기도한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전부 내 생각대로, 내 뜻을 하나님께 주장하는 내용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바로 이 시기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수능시험을 치게 되는데,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우리 자녀들이 대학시험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도 가장 곤란한 때가 바로 이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끼리 축구경기를 하는데, 두 교회 모두가 우리 교회가 이기게 해달라고 하면, 하나님도 입장이 참 난처하실 것도 같은데,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서 곤란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지하신 생각대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40명 정원의 기독교학과에 목회자 자녀 120명이 원서를 넣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내 자녀가 꼭 합격해야 되는데! 내 생각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내 자녀가 더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재수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되는데! 내 생각에는 올 해 이 학과에 못 들어가면 큰 일 나는데! 교회에서 내 직분과 체면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 떨어지면 안 되는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일 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십니다. 우리 생각은 합격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2학년 때까지 신앙생활을 잘 했는데, 3학년이 됐을 때 그 집사님이 아들을 불러놓고 얘기하셨습니다. “1년 동안은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교회는 대학 가서 또 다니면 되니까, 올 해는 교회보다 공부에만 전념해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들은 집사님의 소원대로 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 술 담배를 일삼았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이 눈물로 회개하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아들은 폭력전과를 가진 범죄자가 되었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아들에게 있어서는 대학합격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으로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뒤늦게 후회해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고아로 아주 어렵게 자랐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학교 다닐 때도 먹을 게 없어서 여름에는 수박 껍질에 사카린 넣어서 그거 긁어 먹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그렇게 힘든 중에 서울에 시험을 치러 가야 되는데 당장 그날이 시험인데 지방에서 서울 올라갈 차비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권사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성경책 위에 봉투를 주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걸 들고 서울 가서 시험을 쳤는데, 그런 어려운 형편에서, 합격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바로 불합격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 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교회에서 유치부 교사를 했었기 때문에, 유치부 아이들도 간절히 예배 시간에 기도해줘서 시험을 치러 올라갔는데, 유치부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렇게 기도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하는데, 결국 3수를 해서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목사님이 되셨고, 학생부를 맡게 됐는데, 고3 학생 중에 한 학생이 대입시험에 떨어져서 그 학생과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입시에서 떨어지고 나니까, 너무 부끄럽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어서 죽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임마야, 나는 3수까지 했다. 한 번 떨어진 것 가지고는 내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과거의 경험담을 얘기해줬더니, 그 학생이 큰 힘과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왜 불합격시키셨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원망스러웠는데, 바로 그 일에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러셨는가보다.”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던 것을 누가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경우를 통해서도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도 바울의 생각이었고,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의 뜻을 막아서시고, 그를 마게도냐 지역으로, 유럽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왠지 모를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마게도냐 지역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무슨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습니까?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생각대로 소아시아로 진출했다면 기독교는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로 확장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유럽 선교를 통해서 복음의 전환점이 마련되고, 복음이 세계 제일의 나라였던 로마로 들어가게 되었고, 복음이 로마를 정복하게 되었고, 복음의 로마 정복이 오늘날의 거대한 기독교를 낳는 씨앗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각대로 일하셔서, 결국은 바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게 되면, 나아만처럼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됩니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목사님이 이렇게 하시는 게 맞다고 생각되는데...” “내 생각에는 교회에서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상처를 받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기 생각대로만 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결과를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다시스로 행했던 요나 선지자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답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 생각대로 행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종말이 어떠했습니까? 내 생각대로 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숲속 마을에 숲속 마을을 다스리는 호랑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호랑이도 어느 날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느냐면, 험한 산 길을 다니다 보니까,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돌뿌리에 걸리기도 하고 발이 성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는 인간들이 도로 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아스팔트를 깔아서 반들거리는 도로를 보면서, 호랑이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내가 다니는 산 길에 도로 포장을 해야 되겠다. 토끼들을 잡아다가 가죽을 벗겨서 내가 다니는 길에다가 깔아놓으면 발을 다치는 일이 없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다니다가 마침 토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토끼에게 “미안하지만 이 어르신이 산 길을 편하게 다니려면 니가 희생될 수밖에 없구나.”하면서 모든 산 길을 토끼 가죽으로 덮을 자신의 계획을 말해줬습니다. 그랬더니, 토끼가 하는 말이, “어르신, 참 놀라운 생각이십니다. 하지만, 이 산에 있는 우리 토끼들을 다 잡는다 해도 토끼 가죽 길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차라리, 제 꼬리를 잘라서 어르신의 발에 가죽신을 만들어 신으신다면 산 길 전체가 토끼 가죽길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토끼의 그 말 한 마디로 인해서, 그 숲 속에 있는 토끼들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 한 숲속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만 내려 놓으면! 자기 생각 하나만 바꾸면 모든 것이 평안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관철하려 들게 되면, 피바람이 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나 위험한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고 무서운 믿음의 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믿음의 적을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말한 것과 같이 믿음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 생각과 이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나아만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나병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업장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내 가정과, 또 어떤 분들에게 있어서는 수능시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러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내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우리 인생의 질병이 치료되지 못하는 것은 내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이란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훈련입니다. 이런 훈련을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인생에서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고, 기적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가장 먼저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섭리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줄 아는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것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내 생각에는 큰 일을 이루기 위한 힘이 필요하고,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이 필요하고, 부유함이 필요하고, 성공이 필요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서 우리에게 연약함을 주시고, 병을 주시기도 하시고, 가난을 주시고, 실패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만을 구하고, 합격을 구하고, 물질의 축복만을 내 생각대로 구하는 우리들이 되기 보다, 그 이전에 내 생각을 내려놓는 훈련을 쌓아가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읽는 훈련을 쌓아 나가서, 하나님의 생각대로 내 인생이 조율되어지고, 움직여질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의 삶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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